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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빌립보서 2강 정여호수아

빌립보서 2:1-30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어딜 가도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죄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도 동역자들 간에 서로 하나 되지 못하는 다툼의 문제가 있었습니다(4:2). 이런 그들에게 목자 바울 사도는 무엇이라고 권면합니까?

한 마음을 품으라(1-2)

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빌립보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그들 가운데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의 교제’. ‘긍휼과 자비가 있었습니다. 성도들 간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빌립보 성도들이 여기서 멈추지 말고 전진하여 나아가도록 권합니다.

2절을 봅시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같은 의미를 가진 같이’, ‘같은’, ‘합하여’, ‘이라는 단어를 4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그들은 서로 간에 한 마음을 품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42절을 보면 유오디아자매와 순두게자매를 중심으로 빌립보교회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들은 다 믿음이 훌륭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를 힘써 도왔다는 것을 볼 때 책임의식도 강하고 복음역사에 대한 열정과 사랑도 남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개인적인 신앙과 생활이 훌륭해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믿음의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하면, 그 훌륭한 개인적인 신앙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을 같이하는 그 사람들의 모임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한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까?

오직 겸손하라(3-4)

3절을 봅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툼‘selfish ambition’ 곧 자기중심적인 야심, 이기심 혹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태도입니다. ‘허영은 자기 실제의 모습보다 더 잘 나게 보이려 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영광을 구하고, 자기 생각과 뜻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딜 가서든지 하나 되지 못하고 분란과 다툼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이런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먼저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보다 남을 낮게 여기고가 아니라, 자기보다 남을 낫게여기고 입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긴다생각만 해도 마음이 언짢아 집니다. 남보다 자기를 낫게 여기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객관적으로 나보다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낫어! 정말 흥!’ 하며 콧방귀를 뀔지언정, 좀처럼 그가 나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보다 자기가 낫게 보이려고 남의 약점을 들춰내어 깎아 내리고자 합니다. 또는 그 사람보다 더 잘 나 보이도록 겉을 꾸미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다툼이 생기고, 원치 않게 이중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는데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긴다고 해서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으로 생각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때로는 실제로 사람마다 다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 누구에게나 훌륭한 점 한 가지 이상은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기와 질투가 많지만 또 사랑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좀 이기적인데, 또 열정적이고 흥이 많아 모임 분위기를 밝게 해 줍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조용해서 있는 듯 없는 듯 한데, 어떤 일이라도 맡으면 묵묵히 충성스럽게 잘 감당합니다. 이처럼 각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다르고 고유의 장점이 있습니다. 이를 마음에서부터 인정하고 배우고자 하는 것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한 마음은 또 어떤 마음입니까? 4절을 봅시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사람이 기본적으로 자기의 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공부도 하지 않는 사람, 누가 깨워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잠 자버리는 사람, 일은 하지 않고 밤낮 놀러 다닐 궁리만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기초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자기 일만 잘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남에게 폐 안 끼치고 부담을 안주고 자기 일만 잘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공동체 안에서는 자기 일만 돌보는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같이 장막생활을 하는데, 다른 사람은 어찌되던 계속 혼자 밥을 먹으려 하거나, 자기 공간만 깨끗하게 청소하고, 자기 수건과 이불만 빨고, 자기 먹은 것만 설거지하고, 자기 것만 챙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장막은 결코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서로 투명인간 취급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자기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아볼 때 실제로 마음을 같이할 수 있고, 뜻을 합할 수 있고,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남의 일을 돌아본다는 게 무엇입니까? 물론 힘든 일에 부딪친 형제들을 도와주거나, 고민과 슬픔에 빠진 형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남의 일을 돌아보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남의 일을 돌아보는 일에는 이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것도 남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조금 괴롭다고 해서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면서 남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 자기감정에 충실하다고 하면서 남의 감정은 생각지 않는 사람도 사실은 자기 일만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괴로워 죽겠는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위선자가 되란 말입니까? 괴롭다고 해서 얼굴만 굳게 하지 말고 속에 있는 대로 말을 해야 합니다. 괴로움을 털어놓고 기도를 부탁해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놓거나 죽어도 남의 도움은 받지 않으려 하는 것도 교만이고,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괴로움을 다 알아주고 함께 괴로워하기를 바라며, 사랑을 강요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얼굴 표정에서부터 모든 일에 이르기까지 남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도 이 정도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알지만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우리 믿음의 사람은 이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5-11)

다같이 5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바울 사도가 겸손을 이야기 하다가 왜 갑자기 예수님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겸손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에베소서 4:23,24). 우리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는, 겸손한 척 할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겸손해질 수는 없습니다. 겸손은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도덕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6-8절을 봅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예수님은 그 본체가 하나님이십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골로새서 1:15). 창세 전에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화를 누리신 분이십니다(요한복음 17:5).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쥐꼬리만 한 권세나 영광이라도 있으면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으스댑니다. 그 영광의 자리에 한번 올라가면 내려오지 않기 위해 별짓을 다 합니다. 또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그에 걸 맞는 대우나, 존중을 받지 못할 때 이를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에도 이를 자기 것으로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이 되셨습니다. 섬김 받고 대접받아 마땅하신 분이 도리어 낮아져 섬기는 종의 모양을 취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사람이 지렁이가 되는 것보다 더 큰 낮아짐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사람의 종이 되시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존중받고 대접받는 그 자리를 버리고 도리어 존중해주고 대접해주는 그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어떤 모양의 병자와 죄인이라도 그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 낮아져 섬기셨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제자들의 발을 그 손으로 친히 다 씻겨주셨습니다. 자기중심적인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의 연약함을 감당해주셨습니다. 이기심과 야심으로 가득 차 있는 요한과 야고보를 인내로 감당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반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가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끝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비우는 것에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더라도 이왕 죽는 것 좀 멋있고 폼 나는 죽음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부끄러운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그것도 당시 최고로 흉악한 죄인들에게 내려졌던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거기에 달리셔서 사람들의 온갖 비방과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발가벗겨진 채로 천 조각 하나 몸에 걸치지 못하고 고통과 수치심으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같이 비참하게 죽는 것으로 끝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또 그를 지극히 높이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9). 하늘에 있는 자들, 땅에 있는 자들, 땅 아래에 있는 자들 곧 모든 사람이 그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10),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11).

저는 그동안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낮아져 섬기는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겸손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것은 순전히 저의 착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일 동안 저는 여러 일들을 겪었습니다. 성탄 때는 한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실족하게 할뻔 했습니다. 결산 및 계획보고 때는 한해동안 수고했다고 격려는 못해 줄망정 도리어 동역자들의 힘을 빼는 광고를 하고 말았습니다. 학생리더들과 여호수아 말씀공부를 하다가 실제 사정을 다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제 판단이 앞서, 한 자매목자의 마음을 힘들게 했습니다. 이틀 전 학사 목자 공부 때는 한 목자님과 언성이 높이며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의 말씀공부 시간이 목자님들의 말을 경청하여 듣기보다는, 저 혼자 신나서 떠들고 말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낮아져 섬긴다고 하면서 하는 일이 왜 다 이렇게 흘러갔는가 저는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의자를 낮추고, 목소리를 낮춰도 제 마음이 높은 자리에 있기에, 상대방에 대해서 내려다보기 때문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무시하고 판단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제게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feeling으로 그것을 다 느낀 것입니다. 결국은 저의 높아진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이를 확실히 알게 되니 낙심이 되었습니다. 목자님들의 얼굴을 보기가 너무 부끄럽고 민망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제가 무슨 자격으로 이 강단에 서서 이 메시지를 전하는가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저로 이를 깨닫게 하시고. 여기서 돌이키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저를 어찌하던 지극히 선한 믿음의 길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높아진 마음을 낮추고 다시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기 위해 겸손히 나아가야 겠습니다. 자기를 비우사 종이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께서 쓰실 수 있는 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12-18)

12절을 봅시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낮아져 하나님께 복종하심으로 구원역사를 이루신 것처럼, 너희도 하나님의 뜻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합니다. 곧 그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온전한 구원을 얻기까지 주앞에서 매일 치열한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영적 소원을 불러 일으키시고, 우리의 믿음을 성장하게 하시고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13). 그러면 어떤 싸움을 싸워야 합니까? 먼저 공동체 안에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합니다(14). 그리할 때 우리가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요 또 빛들로 나타나게 됩니다(15). 또 생명의 말씀을 밝혀 주의 종들이 이제까지 달음질한 그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게 됩니다(16). 이에 바울 사도는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17,18). 그는 그의 양들이 성장하고 믿음의 진보를 이룰 수만 있다면, 자신은 전제가 되어 피를 뿌리게 될지라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기쁘고 기뻤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을 닮은 목자였습니다. 그는 양들에게서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양들을 섬겼고, 예수님처럼 그들을 위한 제물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를 어떤 일보다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우리에게 이 기쁨처럼 크고 높은 기쁨은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로 이 기쁨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바울 사도는 또 그들에게 무엇이라 합니까?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19-30)

19절을 봅시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속히 그들에게 보내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그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그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20).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21), 디모데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바울사도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습니다(22).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석방되기 전 디모데를 미리 그들에게 보내고자 합니다(23,24).

그리고 바울은 그 편에 에바브로디도도 같이 보내고자 합니다. 그는 빌립보 성도들이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돕고 섬기기 위해 보낸 사자입니다(25). 그런데 그가 먼 여행길에 병이 나서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27). 그가 이같이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바울사도를 섬기고자 했습니다(30). 이런 그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사 병을 고쳐 주셨고(27), 이에 바울 사도는 그를 더욱 급히 들려 보내 그들의 근심을 덜어 주고자 했습니다(28). 끝으로 그들을 돌려 보내면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29)

세상에 자기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자보다 존귀한 자들이 없습니다. 그런 자를 존귀하게 여기는 자를 하나님은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고 이를 구하는 동역자들을 존귀히 여기기를 기도합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일생토록 헌신하는 목자님들과 선교사님들을 존귀히 여기기를 기도합니다.

자기 일만 구하고, 자기 영광만을 구하는, 조금도 존중해주고 대우해 줄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 죄인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종이 되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입은 우리가 마땅히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는지요? 우리가 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배워서, 때마다 높아진 마음을 비우고 낮출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또 각각 자기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까지도 돌보는,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는 믿음의 삶, 기쁨의 삶, 존귀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 2:5)


2023년 빌립보서 2강 메시지 0201-0230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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