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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8강 정여호수아

사도행전 8:1-40

 

 

흩어진 사람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사도행전 8:4,5)

 

오늘 말씀은 스데반의 순교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대대적인 박해로 인해 복음역사는 이제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 흩어진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새(1-4)

얼마전까지만 해도 예루살렘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온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순교 이후로 이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특히 스데반을 죽이는데 찬성투표를 하고, 그가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긴 사울을 중심으로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1). 그 박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사도들 이외에는 모두 유대지방과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질 정도였습니다(1). 경건한 사람들은 스데반을 장사하고 있는 와중에도(2),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3).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끌어내서 감옥에 넘겼습니다(3). 그동안 생명의 싹을 틔우며 쑥쑥 성장하던 복음 역사는 모든 동력을 잃어버리고, 이대로 망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4절을 봅시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갑작스럽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안정된 삶의 보금자리와 직장을 잃어버렸습니다. 늘 함께하고 의지했던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자기 생존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더구나 신앙을 드러냈다가 다시 박해를 받아 또 도망가야 할지도 모르니 조용히 숨어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흩어진 성도들은 도리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의 복음의 진정한 능력입니다. 참된 능력은 언제나 위기의 순간, 가장 어려울 때에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사람들은 짓밟으면 꺼질거라 생각합니다. 잡아 가두면 사그라 들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아무리 꺼꾸러 뜨리고 넘어뜨려도 오뚝이 같이 일어납니다. 짓밟고 가둘수록 더욱 깨어나고 자라갑니다.

그러면 그 흩어진 자 중 두루 다니며 복음을 증거한 사람 중에 누가 있었습니까?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니(5-8)

5절을 봅시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까지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였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스데반과 함께 뽑힌 일곱 명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사도들조차 내려갈 엄두도 못 내고, 아예 시도조차 할 생각이 없었던 그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파하였습니다. 그가 왜 사마리아 성으로 갔을까요? 거리상으로 피신가기에 가장 가까운 곳이 사마리아입니다. 그러나 거리상으로는 제일 가깝지만 또 가장 가기 어려운 곳이 바로 사마리아 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을 서로 상종하지 않을 정도로 민족적인 갈등의 골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립이 이런 모든 장벽을 먼저 허물고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했습니다(5).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6절을 봅시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 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까지 나았습니다(7). 이로 인해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8).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가 있었는데, 사마리아에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큰 박해도 있고, ‘큰 기쁨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큰 박해를 통해 큰 기쁨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 사역으로 큰 박해가 왔는데, 사마리아는 말씀 사역으로 큰 기쁨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박해를 쓰셔서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박해를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셨습니다. 흩어진 그들은 아팠지만,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아픔을 통한 기쁨, 이것이 복음 역사의 비밀이며, 복음의 일꾼이 누리는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이번에 저는 큰 박해까지는 아닐지는 모르지만, 예상치 못했던 일들로 말미암아 여러 모양으로 마음이 위축되었습니다. 이대로 다 망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오히려 더욱 주 앞에서 깨어나게 되고, 부활의 복음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주께 대한 우리 믿음의 공동체 각 사람의 믿음과 소망이 더욱 견고해지고, 정결하게 되는 귀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큰 박해와 고난과 시련들은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고 망하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큰 기쁨, 온전한 구원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신령한 복입니다. 제가 시련으로 인해 잠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오히려 이를 통해 양들이 살아나고 주의 역사에 큰 기쁨이 있음을 생각할 때 감사합니다. 우리가 매순간 고난에 눈이 가려지지 않고, 주께서 이를 통해 저와 우리가운데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일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그 성에 또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까?

시몬이 돈을 드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소서(9-25)

9절을 봅시다. 그 시몬이라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들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9).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그를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였습니다(10). 이는 오랫동안 그가 마술로 놀라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11). 그러나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를 하니 시몬을 따르던 그 사람들이 다 믿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있었습니다(12). 심지어 마술사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습니다(13). 그가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닌 이유가 무엇입니까? 빌립이 행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기 때문입니다(13).

14절을 봅시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에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이 일이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가서 보니 그 소식이 정말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중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었습니다(16).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었습니다(16). 이에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을 위하여 성령받기를 간절히 기도하고(15), 그들에게 안수하였습니다(17). 그러자 그들도 성령을 받았습니다(17). 이 말씀을 자칫 오해하면, 빌립이 믿음을 심고, 세례를 준 것이 뭔가 문제가 있었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이 말씀을 근거로 자신이 기도해주면 성령도 내리게 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 동안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런점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또 사마리아도 예루살렘 교회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께서 특별히 다른 방법으로 일하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수백 년을 가로막았던 장벽이 허물어지고 유대와 사마리아가 성령안에서 하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알지 못한 시몬은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빌립이 대단한 줄 알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더 고수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사도들이 손을 얹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을 보고 욕심이 생겼습니다(18). 그래서 돈을 주면서(18), 자신에게도 이런 권능을 주어 누구든지 자기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19). 아마도 그가 이제까지 하는 마술도 돈을 주고 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손을 얹기만 하면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이번에도 이 능력을 돈을 주고 사서 떼돈을 벌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중세시대 돈으로 성직을 사고, 면죄부를 주어 천국행 티켓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베드로가 무섭게 책망합니다. 20절을 봅시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또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다고 합니다(21).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혹 마음에 품을 것을 주께서 사하여 주실 것이라 합니다(22). 그제야 정신이 났는지 시몬이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24).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나의 영광과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내 뜻과 욕심을 위해 쓸 수 있는 도구나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님 그리스도로 믿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돈을 드리고 내가 시간을 드리고 내가 피땀을 흘려 수고함으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거저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거저 받은 은혜를 거저 주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마태복음 10:8). 이 은혜 안에 항상 머물러 있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후 두 사도는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25). 돌아가면서 그들은 이전에 예수께서 사마리아 땅을 향해 하셨던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한복음 4:35)” 이 말씀이 이 생각났던 것 같습니다. 이에 그들도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25).

이같이 빌립으로부터 시작된 사마리아 복음역사는 베드로와 요한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으로 더욱 굳게 믿음의 터를 잡고 점점 세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주의 사자는 빌립에게 어떤 방향을 주었습니까?

일어나 가라 그 길은 광야니(26-40)

26절을 봅시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합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지금 빌립은 사마리아 땅에서 놀라운 복음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교회가 세워진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개척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목자는 나를 찾고 나를 알아주는 양들이 있는 곳에서 목자 생활하고 싶습니다. 더군다나 아무도 없는 광야에 가서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차라리 보낼려면 그 광야에서 더 가까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을 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왜 가라고 하는지 어떤 이유조차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빌립은 어떻게 했습니까? 즉시 일어나 갔습니다(27). 자기 생각과 자기 뜻, 자기 계획, 그리고 사마리아에서 이룬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 광야로 갔습니다. 이는 큰 박해를 피해 흩어지는 일보다 더욱 더 어려운 일입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더 큰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좁은 길입니다. 이 방향에 순종한 빌립은 진실로 믿음과 성령에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를 광야로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거기에 누가 있었습니까?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가 왜 거기 있었을까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27). 그 돌아가는 길에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28). 저는 기차나 지하철은 몰라도 흔들거리는 버스안에서 성경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수레에서 성경을 읽을 정도면 그의 영적인 소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양이 그 광야에서 목자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성령께서는 빌립에게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명했습니다(29). 이번에도 빌립은 지체하지 않고 성령의 방향에 순종해서 그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성경읽는 것을 보고 읽는 것을 깨닫느냐물었습니다(30). 이에 그가 대답합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31)” 그리고는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였습니다(31). 빌립은 수레에 올라 내시와 함께 일대일을 하였습니다. 그가 읽고 있는 성경 구절은 무엇이었습니까? 32,33절을 봅시다.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놀랍게도 그가 그리스도가 받는 고난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이사야 53:7). 이후 그가 하는 질문은 더욱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34절을 봅시다.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이에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35). 그렇게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합니다.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36)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38). 이후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갔고, 내시도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였습니다(39). 이후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렀습니다(40).

하나님께서 왜 가까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도 아니고 사마리아에서 복음역사를 열심히 섬기는 빌립을 이곳 광야로 보내셨을까요? 민족적인 문화적인 장벽과 편견을 깨뜨리고 사마리아에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한 빌립입니다. 이런 그이기에 피부색이 다른 에디오피아 이방인 내시도 주의 이름으로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해 듣고 받은 이 복음은 진실로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복음입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이 복음은 한 장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장소와 사람을 벗어나 온 세상, 만민을 향해서 나갑니다. 그런데 그 일은 바로 내가 나와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일로부터 시작합니다. 한 영혼에게 말씀을 증언하는 일로부터 시작합니다. 빌립이 이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빌립과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이 복음의 불씨를 퍼트리는 자들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다들 잘 알다시피 저는 여러 모양으로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입니다. 이번 주에도 수양관 답사를 하러 가다가 동역자와 언성을 높이고 싸웠습니다. 제가 듣지 못하는 문제가 심각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자신을 계속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통해 저로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겸손히 주께 무릎 꿇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자기 생각과 뜻을 고집하던 것을 멈추고 성령의 역사에 자신을 쳐 복종시키는 방향전환을 하게 하십니다. 또 이전에는 영접이 되지 않던 양들을 공감하고 영접하기까지 계속 도와갈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제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사람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사도행전 8:4,5)

 

2023년 사도행전 8강 메시지 0801-0840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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