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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4강 정여호수아

사도행전 4:1-31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2)

오늘 말씀부터 성도들이 박해받는 내용이 계속 나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이를 시기하는 사탄의 역사가 함께 있습니다. 그들은 전도하다가 끌려가 옥에 갇히고, 채찍질 당하고, 심지어는 돌로 때려 죽임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시련과 고난을 당하면 힘들고 두려워서 포기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믿음을 끝까지 지킵니다. 도리어 더 담대해져서 복음을 전합니다. 무엇이 그들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자들이 되게 하였습니까?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1-4)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자가 일어나 걷고 건강하게 된 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이 일을 행한 사도들을 주목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를 일어나 걷게 하였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렀습니다(1). 그리고는 사도들을 잡았습니다. 이미 날이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습니다(3). 그들이 사도들을 왜 가두었습니까? 2절을 봅시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 싫어서였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들어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난다고 선전하는 데 격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까지 격분할 정도로 이 일을 싫어했을까요? 사두개인들은 부활과 내세를 믿지 않았습니다. 천사도 영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의 눈에 보이는 삶이 전부라 여겼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나오는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고 죽자는 악한 자들과 그 생각과 사상과 가치관이 같은 자들이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32). 그것이 당시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인 성전과 주의 백성들을 섬긴다는 제사장들의 신앙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그들의 심장부인 성전안까지 들어와서 그들이 없애버리면 끝날 줄 알았던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증거합니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전합니다. 이쯤 되면 좀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을 해볼만도 합니다. 그러나 죽어도 싫습니다. 듣기가 싫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듣기 싫어도, 실제로 부활은 일어난 사실입니다. 아무리 우긴다고, 실제로 일어난 그 일이 없는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가고 완전히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도저히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이 죽을 몸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수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옥에 갇혔음에도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4절을 봅시다. 말씀을 듣는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았습니다(4). 남자의 수만 약 오천이나 되었습니다(4).

성전을 장악하고 독점하고, 은과 금을 가진 자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하는 자들을 잡아 가둘려고 했습니다. 이를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없애지도 못했고, 무너뜨리지도 못했습니다. 도리어 없애려고 했던 그들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AD 70년 성전이 무너지는 그 날에 같이 사라졌습니다. 이 같이 세상 권력이 잡아 가두어도 부활의 복음은 가두어지지 않습니다. 무너뜨리고자 해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은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사실로서 그 효력을 가집니다. 또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신 성령께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반드시 있습니다. 이 죽음을 이길 산 소망으로 지금도 우리는 세상을 거슬러 싸우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와 또 많은 성도의 존재 자체가 부활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대적하고 무너뜨리고자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의 복음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또한 이 싸움을 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또 우리를 통해 이를 믿는 자들을 계속 세워 주실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의 부활이 의미하는 바가 또 무엇입니까?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5-12)

5절을 봅시다. 다음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중에는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요한과 알렉산더도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였습니다(6). 곧 당시 종교와 정치와 교계의 거물급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것처럼 공권력을 앞세워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심문하기 시작합니다. 7절을 봅시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누구라도 이런 귄세와 이름과 자격을 운운하는 공격을 받으면 기가 죽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전의 그 베드로가 아닙니다. 죽을까봐 두려워서 여종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던 그 베드로는 이제 죽었습니다. 그가 성령 충만하여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에게 말합니다(8). 9절을 봅시다. 먼저 자신이 병자에게 행한 일은 착한 일이라고 합니다. 그 말대로 그가 행한 일은 착한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아픈 사람 병 고친 일이 착한 일이듯, 평생 걸어본 적이 없는 그 한 사람이 일어나 걸어가게 한 일은 착한 일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칭찬할 일이지, 옥에 가두고 추궁하고 심문할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내가 이 착한 일을 행했는지 질문한다면 그 답은 내가 다 알려줄 수 있다고 합니다. 10절을 봅시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증거합니다(11). 이 말씀대로 성전 건축자들인 그들은 예수님을 쓸모없다고 버렸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이 버린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곧 그를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집을 지을 때 모퉁이의 머릿돌은 그 집을 떠받치는 기초석이요, 기준석입니다. 이 머릿돌을 기초로 하고, 기준으로 삼아 그 집을 짓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으로 견고히 세워집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게 됩니다(벧전 2:6). 그러나 이 기초와 기준을 따르지 않는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같이 12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시작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한마디로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곧 천하 사람 중에 어떤 이름 안에도 하나님께서 부활 생명을 넣어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말을 합니다.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러 길이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종교지도자들이 쌓아놓은 그 율법과 전통과 그 많은 지식이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장려하던 제사와 금식과 구제와 선행이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은과 금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일어나 걸어가게 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 모든 것들이 사람들을 더 병들이고, 괴롭게 하고, 죽어가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정말 무엇이 사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합니까?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줄 수 있습니까(히브리서 2:15)? 오직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입니다(로마서 1:4). 누구든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사도행전 2:21). 아멘!

이 증거를 듣고도 위협하는 그들에게 베드로는 또 무엇이라고 합니까?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3-22)

13,14절을 봅시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겼습니다.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학문을 그렇게 자랑하고 내세웠던 그들이 학문없는 범인인 베드로와 요한에게 논쟁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이에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는 서로 의논하였습니다(15). 의논하여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위협하여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16,17). 이에 그들을 불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였습니다(18).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의 위협에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담대히 말합니다. “하나님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19,20)

이를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진정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 사람들의 어떤 말에도 휘둘리지 않게 합니다. 그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합니다. 또한 전도는 많은 성경지식이나 학문같은 것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고 들을 바를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다 자기가 보고 들은 바 하나님에 대한 경험과 체험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주신 은혜요 권능입니다. 이를 있는 대로 증거하고 나눌 때 성령께서 친히 일하십니다. 아멘!

21절을 봅시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23-31)

23절을 봅시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같이 기도하였습니다.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24-26) 또한 헤롯과 빌라도가 예수를 거슬러 죽인 그 사건이 주의 예정하심으로 된 일이라 말했습니다(27-28). 또한 그들은 이같은 박해가 있더라도 그 박해를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위협함가운데서도 담대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29). 또 그들은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해달라 하였습니다(30). 이같이 빌기를 다하자 모인 곳이 진동하였습니다.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31). 이제 사도들뿐 아니라 성도들도 고난에 동참하여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역사로 이어 졌습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믿는 자들은 어떤 시대적 분위기도, 어떤 힘들고 두려운 상황도, 어떤 강력한 세력의 반대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가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사람들과 그 상황을 그가 실제로 다 이겨낸 현장을 우리가 다 목격했습니다. 이 베드로를 볼 때 저도 주께 쓰임받을 소망이 생깁니다. 제가 학문없는 범인이지만 제가 보고 들은바 십자가 부활의 복음의 말씀을 있는 대로 증거할 때, 주께서 인제와 양산가운데 저를 통해서도 복음이 증거되게 하시고, 주의 제자들을 친히 세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죽음의 세력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온전히 구원하시는 구원의 반석이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 믿음을 따라 예수님 안에 있는 부활 생명의 권능을 덧입고 어떤 적대적인 분위기 가운데서도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담대히 캠퍼스에 증거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2023년 사도행전 4강 메시지 0327-0431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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