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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빌립보서 3강 김아브라함

빌립보서 3:1-21

 

 

그리스도를 얻고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립보서 3:8)

빌립보서를 시작하면서 많은 목자들이 괴리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바울과 내 모습이 너무나 비교가 되고 무슨 수를 써도 저렇게는 못하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히 말하건대 저를 포함해 여기 우리 중에 바울 수준에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빌립보서를 하는 것은 바울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그 길로 따르고자 함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목자 바울 사도가 걸어간 믿음의 길을 배울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1-3)

1절을 보겠습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여기서 끝으로 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하니 잘 들어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결론적으로 빌립보 성도들에게 강조해서 권면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주 밖에서’, 다른 데서 기쁨을 찾지 말고 예수님 안에서 기쁨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즉 주 안에서 기쁨을 찾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기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기쁨과 자랑거리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여러 번 쓰고 있습니다. 똑같은 소리, 잔소리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빌립보 성도들을 안전하게 합니다. 사람이 누구나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바랍니다. 기뻐하더라도 어디에서 기뻐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주 밖에서 기쁨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빌립보 성도들 중 일부는 율법, 특히 할례를 통해 기쁨을 얻고자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할례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생각하고, 이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 바울은 어떻게 말합니까?

2절을 봅시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개역성경에는 손할례당을 삼가라 합니다. 이들은 개, 행악하는 자들입니다. 개는 토한 것을 도로 먹는(잠언26:11) 부정한 짐승이요, 믿음의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것은 행악하는 자들의 행위입니다. 율법으로, 할례로 되지 않는 것을 알았기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이를 믿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미 구원을 얻었는데 뭔가 부족해서 다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면 할례이딴 것은 다 필요 없는 것입니까?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3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살을 자르고, 피를 흘렸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행실을 실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기에 우리를 구원하십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4-9)

4-6절을 봅시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바울 자신도 육체를 자랑하자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많은 것들을 자랑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족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말은 다른 이방인에게서 개종한 유대인이거나, 다른 족속과 피가 섞인 혼혈아 유대인이 아니고 정통 이스라엘, 그것도 북이스라엘이 아닌 남유다에 남은 베냐민지파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울이 과거 자신이 그토록 신뢰하던 자신의 육체를 어떻게 여긴다고 말합니까?

7절을 봅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바울은 이전에 자신에게 그토록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제는 다 해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별 것 아닌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왜 그처럼 자랑스럽고 유익하던 것들을 해로 여긴다는 것입니까? 다같이 8,9절을 봅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예수님을 만나기 전, 바울은 율법이 고상하고, 혈통이 존귀한 줄 알았습니다. 학벌이 중요하고, 출신 지파가 중요한지 알았습니다. 누구 밑에서 공부했는가? 스승이 중요하고, 계보가 중요한 줄 알았습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성실성과 열심, 도덕성이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이런 것들은 너무나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자신이 가진 율법의 의는 너무나 추하고 더럽고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는 불완전한 반면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는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님을 아는 지식은 세상에 그 어떤 학문에서도, 그 어떤 인물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최고의 지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죄와 죽음으로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죄 사함과 영생에 이르게 합니다(요한복음 17:3). 우리가 보배되신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 과거에 나의 자랑거리들을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예수님을 향해 달려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바울은 이를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며 어디까지 가고자 합니까?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10-16)

바울은 예수님을 얻되 부활의 권능을 얻고 체험하길 원했습니다. 다같이 10,11절을 봅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바울은 단지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알고 예수님의 일부분만을 얻길 원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얻되 예수님의 삶의 핵심 부활을 배우기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마지막도 부활이요, 예수님의 사역의 가장 큰 신비도 부활이요, 예수님의 삶의 가장 영광스러운 부분도 바로 부활이었습니다. 바울도 부활의 능력을 체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활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코스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고난과 죽음이었습니다. 부활의 영광에는 이르고 싶은데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코스를 통과해야 합니다. 딜레마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죽지 않는, 손해 보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따르고자 합니다. 편하고 쉽게 신앙생활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찌하든지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려고, 할 수 있는 대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하고자 하였습니다(11). 그는 희생과 헌신과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까지 체험하고자 애를 썼기 때문에 그는 죽음까지 불사하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기꺼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았기 때문에 그는 수없이 부활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었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또 바울은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죄사함도 받았습니다. 과거에는 포행자요, 악행자요, 훼방자였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12,13). 많은 교회를 개척하며, 주의 사람들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감으로 주께서 이루셨습니다(14).

15절을 봅시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은 바울과 같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바울이 이처럼 외친 것처럼, 그들도 자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믿음의 길을 달려가라는 뜻입니다. 다 바울 같을 수 없는데 지금 우리도 바울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입니다(15).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그대로 행할 것이라 계속 같은 길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다르지만 형편도 조건도 환경도 다 같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구원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달려온 같은 길을 끝까지 달려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길을 달려 오셨나요? 아쉽고 급할 때는 달립니다. 그러다 살만해지면 걷다가 그것도 익숙해지면 어슬렁 거리며 따라갑니다. 나는 달리는데 당신은 왜 걷고 있는가 비교하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각 사람이 다르지만 나름대로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바 저만큼 해야 하는데 나는 못하겠다 포기해서도 않됩니다. 중요한 것은 계속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원에 이르는 그 목적지에 끝까지 가는데 있습니다.

끝까지 달릴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17-21)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할 때에 중요한 것은 믿음의 선배들을 본받는 것입니다. 17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을 본받으라고 한 것은 끊임없이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바울의 투쟁심과 열정을 배우라는 뜻입니다. 빌립보 교회내에는 여러 종류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할례를 중시하는 율법주의자들, 은혜만을 강조하는 은혜 지상주의자들, 사도 바울과 같이 주님을 닮기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며 충성하는 복음주의자들, 또 여기저기 양다리 걸치고 필요에 따라서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기회주의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보지 말고, 자신과 같이 분명한 푯대를 정하고 믿음의 길을 달려가는 복음적인 사람들이 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길을 달려가고자 할 때에 어떤 삶의 스타일을 나의 신앙생활의 본으로 삼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처럼 결국은 내가 본으로 삼는 그 스타일의 삶을 나도 닮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를 배우기 위해 헌신하는 자들은 영광이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들은 그들의 행한 대로 멸망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달려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망을 하늘에 두어야만 합니다. 20절을 봅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 땅의 시민권의 특혜와 비교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특권이 시민권입니다. 지금은 비록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우리이지만 믿음의 경주를 마치고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에는 만물을 복종하게 하시는 주께로 우리의 낮은 몸을 영광의 형체로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21). 아멘.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립보서 3:8)


2023년 빌립보서 3강 메시지 0301-0321 김아브라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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