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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가을수양회 주제메시지

히브리서 12:1-2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2)

 

히브리서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각국으로 흩어졌습니다.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지냈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난 가운데 살다보니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야 하는 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 하셨는데 언제 오실지 모르겠고,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는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요즘 저도 믿음으로 산다고 여기에 있기는 있는데, 나에게 무슨 상이 있는지 싶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믿음’,‘믿음으로등등 믿음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제가 무엇을 믿고 바라며 살아야 하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이를 알아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저에게 말씀은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십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죄를 벗어 버리고(1)

1절을 봅니다. 말씀은 이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앞과 뒤를 연결해 주는 단어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믿음의 선배들의 구체적인 믿음의 증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나 한 사람쯤이야 상관없겠지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선진들이 약속을 받고 안 받고 가 결정됩니다.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학수고대하며 그날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면 됩니다. 어떻게 경주해야 합니까? 마라톤 선수들은 짧은 티에 반바지를 입고 뜁니다. 긴 소매나 긴 바지를 입지 않습니다. 시계 등을 몸에 차지 않습니다.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움직임에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음의 달리기를 하는데 있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죄가 우리를 무겁게 하고 얽매이게 합니다. 말씀은 죄를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죄를 벗어 버리라고 합니다.

제가 벗어 버려야 하는 죄는 무엇인가 살펴보았습니다. 제게는 제 나름의 율법과 양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기준으로 삼으니 편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오히려 삶에 방해가 되고 무겁고 저를 얽매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쁘고 마음씨 착한 은선 목자를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딴 여자를 보지 않겠다 서약하였고, 지금까지 16년 간 이를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그만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지나가던 딸이 이를 보고 아빠! 아버지는 하나님 믿는 사람 맞아?” 하였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보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양심대로 살려고 했는데 저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코로나로 인해 주일 예배가 대면과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예배는 꼭 대면으로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줌으로 예배 보고자 하는 딸을 억지로 데리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나쁜 아빠로 불리게 되었고 아이를 울게 만들었습니다. 아이가 우는 것을 보고 그때야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를 울게 만든 저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갈수록 제가 만든 율법을 자녀들에게 강요하고 요구해서 원성이 자자해지고, 저 자신은 양심대로 살지 못해 머리가 무거웠습니다. 그것을 붙들고 살면 계속 불화와 단절이 생기고 결국 망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더 이상 제가 만든 율법과 양심으로 살 수 없습니다. 율법과 양심은 저를 살리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에게 있는 죄를 드러내고 죄는 저를 얽맵니다. 말씀은 과감히 죄를 벗어 버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를 하라 합니다. 여기서 믿음의 경주란 무엇입니까?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믿음과 소망으로 사는 삶입니다. 저는 대학 1학년 때인 1992년 한 목자님의 초정을 받았습니다. 봄 수양회에서 드라마와 아프리카 댄스를 한다며 같이 하자 하여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공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저의 죄를 대신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며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저의 죄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고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시기, 질투, 다툼으로 살던 제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늘로 가시며 저의 처소를 예비하시고 다시 오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오신다는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믿음을 지키며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1년이면 한 번씩 어김없이 저에게 전화가 옵니다. 어머님께서 편찮으셔서 구급차나 다른 것에 실려 병원에 입원하십니다. 그럴 때면 뒷수습을 제가 해야 합니다. 병원비도 문제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찾아 봬야 하는 등 신경을 써야합니다. 저는 종종 아침 510분에 일어나 밤 12시 되어 집에 옵니다. 하루에 3-4시간을 잡니다. 요즈음 코로나로 인원이 감축되고 부서가 없어진다는 등 여러 소문이 난무합니다. 뿐만 아니라 너 교회 다니지, 떨어져 앉아”, “이번 주에 교회 갔다 왔어? 가지마!” 합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불안합니다. 점점 어머니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여겨지고 저의 속에서 사랑이 식어 갑니다. 이렇게 살다 제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망하지 않을까? 왜 여기에 있는가? 무슨 상이 있을까? 하며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저에게 말씀은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라고 하십니다. 인내를 저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이 인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내란 말 그대로, 역경을 견디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인내할 수 있습니까?

 

예수를 바라보자(2)

2절을 봅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 나라에 계십니다. 저의 시선을 보이는 땅에 두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보라고 하십니까? 말씀은 한마디로 가르쳐 주십니다. 믿음의 주입니다. 믿음의 기초를 놓으신 분으로 믿음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하늘에 계시지 않으시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육체가 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온갖 일들을 몸소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속에서 인내하셨습니다.

어디까지 인내하셨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인내하셨습니다. 십자가 형은 벌거벗겨져 높은 곳에 매달려 수치심을 느끼다 까무라치는 고통을 반복하다 서서히 죽습니다. 인간이 만든 사형제도 중 가장 끔찍한 것으로, 극악무도한 죄인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데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 앞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부끄러움을 주는 일을 개의치 않으시고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시고 나중에 어떻게 되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쁨을 얻기 위해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인내로 경주하는 사람에게는 예수께서 상을 받으신 것처럼 상이 있습니다. 저는 가을 운동회 장애물 경기에서 1등을 하여 공책 3권을 받았습니다. 딱 한 번이었지만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나도 상을 받을 수 있구나 하며 그 때부터 자신감이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경주에는 어떤 상이 있을까요? 저는 직장을 못 얻어 제 인생을 끝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읽도록 하셨고 말씀이 있는 이곳에 오게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직장을 주시고 아내도 주시고 세 아이까지 주셨습니다. 더군다나 캠퍼스 개척역사를 위해 향유 요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꾸준히 캠퍼스에 나갔습니다. 수많은 거절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보내시는 양이 있을 것이라 믿고 도전하였습니다. 그 때 천세임 형제를 만나게 하시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 인내하며 살 때 우리에게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상이 있습니다. 장차 마지막 날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됩니다. 예수께서 맡겨 주신 일을 하며 참고 기다리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로 온전하게 하십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그렇게 합니다. 저도 예수께서 챙기십니다. 우리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선진들과 더불어 약속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믿음의 삶을 살고자 결단하였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직장에 다니게 되었지만 첫날부터 나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직장을 주셨다는 생각 가운데 뒤통수가 가렵지만 버티고 있습니다. 아침에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가, 일어나 걸어가라는 말씀을 붙잡고 일어납니다. 창세기를 읽는 가운데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동역자도 유일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의 죄악 된 본성에 따라 한 눈 팔지 않고, 가정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 하나쯤 말씀역사에 빠져도 되겠지 하며, 해야 되는 줄 알면서도 머뭇거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선진들이 약속을 받지 못한다 합니다.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서 경주를 하라고 하십니다.

왜 제가 인내로 경주를 해야 합니까? 저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자신을 살펴보니 하나님께서 저의 인생에 과분한 상들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오히려 고난으로 여기고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현재의 상으로 만족하며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에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앞의 기쁨을 위해 부끄러움을 주는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상을 받으셨습니다.

 

말씀은 현재의 상뿐 아니라 저의 앞에 더 큰 상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받은 상을 저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기쁜 소식입니다. 저도 예수님처럼 앞에 있는 상을 보고 부끄러움을 참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고대하며 인내로 경주해야겠습니다. 저의 속에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요구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저의 가까운 이웃인 동역자와 아이들, 또 캠퍼스 형제자매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내함으로 생명의 길을 능히 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021 가을수양회 주제메시지 히브리서 1201-1202 박엘리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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