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INJE UBF

메시지

조회 수 2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019년 창세기 13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창세기 18:1-19:38

 

 

아브라함을 동역자로 삼으신 하나님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랴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18:18,19)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고, 그의 조카 롯은 삼촌 아브람을 따라갔습니다(12:4). 오늘 말씀에서 말씀을 따르는 아브라함과 사람 따라 간 롯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나옵니다.

먼저 말씀을 따라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18:1-15)

18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어떻게 나타나셨습니까? 말씀으로 나타나셨습니까? 날이 뜨거울 때에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은 말씀으로 아브라함을 만나주셨습니다. 뭇별을 보여주실 때에도 환상가운데 말씀으로 임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놀랍게도 육신의 몸으로 천사를 대동하고 아브라함을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동안 말씀으로만 일하시던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육신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을까요? 어떤 이유에서 아브라함에게 육신으로 자기를 나타내실 필요를 느끼셨을까요? 13년동안 이스마엘에게만 푹 빠져있던 아브라함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고 순종하여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행하여 그가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보여주고 싶습니까? 나를 알아주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 내 뜻을 받아주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에게 있어 아브라함이 이제 이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주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했습니다. 그래서 13년동안 아무 말없이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 불현 듯 갑작스럽게 육신의 모습으로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요 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2절 하반 절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마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히며 말합니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데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자니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3-5)” 말만 듣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환대입니다. 이에 그들이 말합니다. “네 말대로 그리하라.(5)” 그러자 아브라함의 발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6절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먼저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였습니다. 세 스아는 아브라함에게 딸린 식솔들이 다 같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분량입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먹을 것을 풍성하게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또 그는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어 급히 요리를 하게 하였습니다(7). 또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섰습니다. 마치 웨이터가 된 것 마냥 낮아져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며 섬겼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들 중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고 이렇게 했던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이 라고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자신을 직접 방문해 주실 줄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이런 아브라함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13:2)” 그러니깐 부지중에 아브라함은 이같이 행하였습니다. 하나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우리가 평소 때 그 사람이 다른 사람, 특히 별로 관계성 없는 사람에 대해서 실제로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같이 평상시에 타인에게 베푸는 삶을 몸소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본래 정이 많고 마음이 착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물론 그런 것도 무시할 수 없지만, 실제 삶속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평안으로 인해 그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이지 않았을까요? 사람이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타인을 배려할 수 없고 섬길 수 없습니다. 자기문제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고 섬길 여력도 없습니다. 제가 그랬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저의 문제에 빠져 골골대고 있으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어떠한지 보이지 않습니다. 양들의 실제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없고 그들을 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그 사람은 속이 시끄럽지 않습니다.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아니하고 마음은 평온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같은 극진한 대접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크게 흡족하시며 맛있게 그 음식을 드셨습니다. 맛있게 먹는 그들을 보며 아브라함의 마음도 흡족했습니다. 사람을 섬기를 기쁨 그리고 섬김받는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껏 잡수신 후 이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십니다. 9절을 봅시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이에 아브라함이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짐짓 놀랐을 것입니다. 처음 보는 그들이 어떻게 아내 사라의 이름을 알지? 이 사람들이 왜 갑자기 사라를 찾는 거지?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세 명 중 한 사람이 놀라운 말을 합니다. 10절 상반 절을 봅시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이를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습니다(10). 아브라함은 그제야 지금 식탁에 앉아서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놀랐을 것입니다. “내년 이맘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가 그동안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복된 소식입니까? 그러나 이 말씀은 사라에게 있어 현실적으로 너무나 믿기 어려운 말씀이기도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1절을 봅시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곧 사라는 현재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불능의 몸이 되었습니다. 사라 자신이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속으로 피식 웃으면서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하였습니다. 사라가 이 같은 반응은 보인 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생리가 끊어짐과 동시에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희망도 다 끊어진 사라였습니다. 그런데 내년 이맘때에 자신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시니 농담도 이런 농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하나님 이제는 이런 희망고문을 더 이상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13,14절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호와는 이미 생리가 끊어진 사라도 아들을 능히 낳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에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하십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신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이 믿음 갖도록 줄기차게 도우셨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기까지 도우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도 아브라함이 되어야 하지만 사래도 사라가 되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앞에서 사래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 져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한 몸을 이룬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사라를 한 몸으로 여기고 믿음의 길을 같이 가도록 사라를 돕고자 하셨습니다. 이 일을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사라의 생리가 끊어질 때까지 계속 기다리셨습니다. 그가 자신의 몸이 불능이 되었을 그때, 자신에 대한 모든 소망이 다 끊어 졌을 그때, 그가 실제로 하나님 한분만 믿고 의지하는 믿음을 갖게 하시기 위해 이같이 행하셨습니다.

이 시간 아브라함을 뿐 아니라 그의 아내 사라에게 믿음을 심기위해 친히 낮아져 육신의 몸으로 심방오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로볼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믿음의 가정이 하나되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런데 부끄러운 일이지만 최근까지도 저는 목자님이 저를 위해 기도하실 때 제 동역자를 위해서도 같이 기도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하루에 1시간 이상 동역자와 대화하는 시간을 절대적으로 가지라는 당부를 듣고도 이를 실제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제가 저의 동역자를 동역자로서 보지 못하고, 또 실제로 존중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다 드러났습니다. 어떻게 드러났는지는 따로 저를 찾아서 물으시면 답해드리겠습니다. 어떻든지 제가 동역자와 서로 하나되는 일에 소홀했던 것을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저의 가정이 서로 하나 되는 일에 더욱 힘을 다하길 기도합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사라를 도우심으로 사라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해졌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18:16-21)

16절을 봅시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갔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17절을 봅시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이전까지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숨기지 않고 밝히 드러내십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성은 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깊이 신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하려는 일이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8, 9절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이로볼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한 사람을 통해 하려고 하신 일은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 나라는 다른 나라 위에 군림하여 파괴하고 쓸어버리는 강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 백성이 행하는 의와 공도로 인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는 축복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온 천하 만민을 향하여 흘려보내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이 같은 복된 일에 쓰시고자 그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때가 되었으므로 자식을 주심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일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일에 쓰시길 원하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전국 학사목자 수양회를 참석하여 홍갈렙 선교사님의 인생소감과 유럽선교보고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뿐 아니라 저같이 쓸모없고 연약한 자도 하나님의 복을 온 천하 만민에게 흘려보내기 위해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두신 큰 뜻과 소망을 알게 되어 하나님께 깊이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앞으로 목자의 삶에 대한 새로운 도전의식과 비전이 생겼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저를 향한 소망과 사랑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복을 깨달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의 계획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20,2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이에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와 앞에 그대로 섰습니다(22). 이때 아브라함이 여호와 앞에 가까이 나아가며 말합니다. 23-25절을 봅시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이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 기도를 들으시고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하셨습니다(26). 그런데 아브라함이 생각해 볼 때 소돔 성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숫자를 필사적으로 깎기 시작했습니다. 27-32절을 봅시다. 오십 의인 중에 오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려나이까?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려나이까?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려나이까? 아브라함은 이같이 끈질기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 드렸습니다. 기도하되 자신을 티끌과 재와 같이 비천한 자임을 고백하며(27) 겸손한 마음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그 땅에 의인 십명 만 있으면 그들을 위하여 그 온 지경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32). 이같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이전에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할 때의 그 아브라함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물론 그가 의인을 십명까지 줄여달라고 기도하는 대는 조카 롯을 염두해 주고 그를 살리고자하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내면은 이제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그 죄악이 하나님 앞에 심히 무거운 사람까지도 마음에 품고 구원을 위해 기도할 정도로 넓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정말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아브라함은 이같이 믿음이 성장하여 여러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반면 롯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19:1-38)

19장을 1,2절을 봅시다. 저녁 때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렀을 때,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했습니다. 롯도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들을 초청하였습니다.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2)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세울 것이라며 거절을 했습니다. 그래도 롯이 간청하자 그들이 롯의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롯은 이때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워 대접했습니다.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고,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한 아브라함에 비하면 인색하기 짝이 없는 대접이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손님 대접하는 일이 귀찮아서인지 등장하지도 않았습니다.

4,5절을 봅시다. 그런데 그들이 먹고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며 말했습니다.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여기서 상관한다는 것은 성 관계를 맺겠다는 말입니다. 이는 당시 소돔 성의 죄악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더러운 욕심을 따라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1:26,27). 너무나 음란하고 강포하여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면 이때 롯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7,8절을 봅시다.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그들을 만류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두 딸을 대신 내어 줄 테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으니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가라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 사람들 곧 천사들은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 들이고(10) 문을 닫고 문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으라 헤매었습니다(11). 이후 그 천사들이 롯에게 말합니다. 12절을 봅시다. 네가 속한 자가 또 있으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의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곳을 멸하시고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13). 이에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지만 그들은 농담으로 여길 뿐이었습니다(14). 이곳에는 의인 십명도 없었습니다. 동틀 때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지체하였습니다. 세간살이를 챙기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을까요? 아니면 아내와 딸들이 심판은 무슨 심판이냐며 소돔을 떠나지 않으려 함으로 설득하느라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 지체함으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는지 결국은 그 사람들 곧 두 천사가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습니다(16). 천사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 롯에게 말합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며 멸망을 면하라(17)” 그러자 롯은 내 주여 그리 말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18). 또 도망하며 산에까지 가다가는 재앙을 만나 죽을까 두려우니 가까이 보이는 들의 작은 성읍으로 피하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19,20). 그들이 이번에도 롯의 소원을 들어줌으로 롯 일행은 소알이라 불릴 그 성으로 도망했습니다(21).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심으로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습니다(23-25). 이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26).

27-28절을 봅시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십 명이 없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을 뜻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기도가 땅에 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 내보내셨습니다(29).

이후 롯은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산에 올라가 굴에 거주하게 되었습니다(30). 아마도 언젠가 소알 성도 멸망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을 던 것 같습니다. 이때 두 딸은 자기들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다는 절망에 빠져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고자 하였습니다(31-32). 이렇게 해서 큰 딸에게서 난 아들이 모압의 조상이 되고(37), 작은 딸에게서 난 아들이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38).

이상에서 창세기 말씀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변화와 롯의 비참한 최후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 역시 사람인지라 현실 문제가 있었고,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큰 실수를 할 때도 있었고, 눈에 보이는 이스마엘에 빠져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회개하고 그 말씀을 영접하고 그 말씀을 따라 다시 결단하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귀한 동역자로 여기시고 그를 전폭적으로 섬겨 주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브라함의 내면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변화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가정은 손님이 오면 같은 마음으로 손발을 움직여 즐거움으로 대접하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서로 웃으면서 대화하고, 다른 사람의 형편을 보고 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반면 롯도 아브라함을 따라 다니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유익을 좇아 아브라함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사람들이 사는 소돔 땅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많은 돈도 벌고, 집도 샀습니다. 값비싼 세간도 마련했습니다. 또 그 사회에서 인정도 받았습니다. 풍부한 물질생활, 세상의 명예, 안락한 도시 문화생활을 즐기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적당하게 믿고, 자기 실속 차리고자 했습니다. 그의 소망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롯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자의 말을 듣고도 자기주장을 계속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저주의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우리가 롯과 롯의 처와 같이 되지 않고,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역사에 동역자로 삼으시고 친구와 같이 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다 하셨습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합니다(시편 1:1).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시편 1:2).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됩니다(시편 1:3). 악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합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게 됩니다(시편 1:4-6).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그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고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더욱 복을 더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말씀을 듣고 받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사람이 복을 받고, 또 다른 사람을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루어가십니다. 아멘!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세기 18:18,19)

 

 

2019 창세기 13강 메시지 1801-1938 정여호수아.hwp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2 2019 여름수양회 주제 4강 메시지 newfile JohnKim 2019.07.24 3
14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8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7.15 16
14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7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7.13 14
13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7.07 20
138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6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7.01 25
137 창세기 2019 창세기 15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6.25 18
13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5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6.23 36
13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4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6.20 26
13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3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6.12 35
»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3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6.09 23
13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2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6.02 38
13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1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5.28 31
13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5.26 28
12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0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9.05.24 49
128 창세기 2019년 창세기 9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5.12 57
127 창세기 2019년 창세기 9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5.12 29
12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8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5.07 59
12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4.28 36
124 요한복음 2019년 부활절 특강 메시지 file 정여호수아 2019.04.21 26
12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6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4.14 2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