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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11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창세기 15:1-16:16

 

 

뭇별을 보여주신 하나님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15:5)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간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상속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실의에 빠져 두려워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15:1-4)

1절을 봅시다. “이 후에로 시작합니다. 아브람이 포로로 사로잡혀 간 조카 롯을 구한 후 그 대적을 자신의 손에 붙이신 분이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물질 문제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돈 문제에 있어 확실하게 되었습니다. 물질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자신은 이를 잘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돈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절실한 문제인 상속자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였습니다. 아브람이 전쟁에서 이기기는 했는데, 과연 이 전쟁은 언제 끝나게 될지, 다음에 또 전쟁이 나면 그때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지, 전쟁만 하다가 자식문제를 해결되지도 않고 자신의 인생은 끝나는 것은 아닌지, 이런 곳에서 내가 계속 살아야 할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속이 시끄러웠습니다. 무엇이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때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위로부터 그에게 임하여 왔습니다. 아브람이 이 궁리 저 궁리하면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왔습니다.

그에게 임하여 온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이로 볼 때 아브람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승리의 때에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었을까요? 롯을 구출하기 위해 공격했던 그 돌라오멜 왕의 연합군의 보복이 두려웠던 것일까요? 그런 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반응을 볼 때 그게 다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 목숨을 걸면서까지 롯을 구출하였지만, 다시 가버린 롯으로 인해 괜히 씁쓸하고 마음에서 힘이 빠졌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큰 승리를 경험했는데 그 승리한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나 열매가 없으면 이렇게 쉽게 낙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 같이 실의와 두려움 빠져 요동치는 아브람의 마음의 상태를 잘 읽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에게 이전과는 다르게 환상 중에 임하셔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의 방패요 또 아브람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고 있는데 두려워하지 하지 말라고 하시니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2절을 봅시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 하셨는데 아브람은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라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지극히 큰 상급이란 말에 꽂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실 상급이 무엇인지에 마음이 쏠려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실 상급으로 생각한 것은 무엇입니까? 2절 하반 절을 다시 봅시다.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한마디로 자식입니다. 아브람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12:2)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자식을 얻을 소망가운데 이제까지 하나님이 보여주신 땅 가나안 거류민들 틈바구니에서 장막생활을 하며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0년이 지나도 자식 하나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대안으로 조카인 롯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고자 생각하고 그가 전쟁 통에 포로로 사로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목숨까지 걸고 구출해 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롯은 그 은혜도 모르고 다시 소돔 땅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는 나는 네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시니 이제까지 자식 하나 안 주셨으면서 하나님이 무슨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십니까? 하고 따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아브람은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절을 봅시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하나님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이제 나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합니다. 내 생각대로 내 집에서 길린 종을 내 상속자로 삼겠다고 합니다.

이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4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아브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또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 곧 그의 집에서 길린 종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네 몸, 곧 아브람의 몸에서 날 자가 아브람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애초부터 아브람이 가장 기다리고 원하고 바라던 바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가장 기다리고 원하고 바라던 바를 이루어 주시겠다고 확실히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들리고 또 들렸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아브람에게 임한 복입니다.

이 같이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비전이 위로부터 그에게 임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말씀을 따라갑니까? 말씀이 좋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이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을 소망을 가지고 따라갑니다. 그런데 소망이 잘 보이지 않고 확실하지 않을 때, 언제까지 이런 불확실한 삶을 살아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이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여전히 말씀을 따라 묵상하면 그 사람에게 말씀이 임합니다. 이것이 말씀 따르는 자의 복입니다.

그런데 위로부터 임한 말씀을 들은 아브람의 반응은 싸했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이 듣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참 좋지만 실제 현실은 너무나 냉혹하고, 이제는 이상과 현실을 구분해야 된다고 생각했을까요?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은 또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5)

다같이 5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하나님은 먼저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자기 생각과 불신에 잡혀 방안에 콕 박혀 있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우째 살꼬 하며 현실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는 그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그 하늘에 있는 뭇별을 세어보도록 하셨습니다. 하늘의 뭇별이 어떠합니까? 반짝 반짝 빛이 납니다. 반짝 반짝 빛이 나는 뭇별은 어둠속에 해매는 사람들의 소망이 됩니다.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또한 뭇별은 셀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많아서 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네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라 하십니다. 하늘의 셀 수 없는 뭇 별과 같이 아브람의 자손도 이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밤하늘을 우러러 봐도 별보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밤에도 어둠을 밝혀주는 여러 불빛들과 또 공해와 미세먼지로 가려져 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나 도심지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저는 2007년 케냐 아프리카 수양회에 참석했다가 그 곳에서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별들이 제 눈앞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은하수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아름답고 놀라운 장관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11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같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사람도 아프리카의 밤하늘을 보고 이 같이 감탄을 할 정도인데 하물며 그 당시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바라보는 아브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정말 얼마나 그의 가슴을 뛰게 하고 또 소망스럽게 들렸을까요? 이처럼 하나님은 불신에 빠져 방콕하고 있는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어 내셔서 하늘에 떠 있는 뭇별을 세어보게 하셨습니다. 그 뭇별을 세어 보게 하심으로 그의 내면에 임한 어둠과 불신의 세력을 몰아내시고 그로 하여금 다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 수 있도록 믿음과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따르는 사람에게 아브람에게 이 같이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따르는 사람을 아브람과 같이 복을 주십니다. 현실 문제를 풀기 위해 이 궁리 저 궁리 하는 사람에게 위로부터 말씀이 임하게 하시고, 캄캄하게 보이는 현실에게 빛나는 수많은 뭇별을 보게 하십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듣고 아브람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6-21)

다같이 6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성경은 아브람이 여호와께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으니라고 말하지 않고 여호와를 믿으니라고 말합니다. 곧 아브람은 하나님이 주실 상급보다 상급이신 하나님 자체를 믿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께 원망 섞인 탄식을 늘어놓던 아브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이같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습니까? 당장 눈앞의 현실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그가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은 환상 중에 임하여 아브람을 도와주셨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그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심으로 그가 자기 속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정말 원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다시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약속을 실제로 소망가운데 믿을 수 있도록 그를 밖으로 이끌로 나가 시청각 교육까지 해주셨습니다. 이로서 아브람은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실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 붙들었습니다. 여호와를 굳게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호와를 믿은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의심하고 불신했던 그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일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그아 함께 하십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십니다(마가복음 10:27).

이같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또 무엇을 말씀하여 주십니까? 7절을 봅시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하나님은 자신이 아브람을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신 이유를 재차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것은 아브람에게 이 땅을 주어 소유로 삼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는지 그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8). 이는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시험하거나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믿음을 실제에서 확실히 갖기 위해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9). 아브람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9-11절을 봅시다.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습니다(10). 또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습니다. 아브람은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제물을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증거를 보여주실 때까지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2절을 봅시다. 이후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3절에서 16절을 봅시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하나님은 아브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의 자손이 이 땅을 받게 될 것이지만 당장에는 받을 수 없고 그의 자손이 400년 동안 이방에서 객이 되어 거기서 종살이를 한 후에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당장 자기 상속자 세우는 일에만 골몰하고, 또 이 땅을 소유로 받을 수 있다는 증거를 구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놀랍게도 400년 뒤에 일어날 일을 상세히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는지 그 이유까지도 상세히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당장 눈에 보이는 일, 코앞에 닥친 일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한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계속해서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앞으로 우리에게 있을 크고 놀랍고 은밀한 일을 친히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감겨진 눈을 띄워주십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17절을 봅시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준다고 하십니다(18). 겐 족속, 그니스 족속, 갓몬 족속, 헷 족속, 브리스 족속, 르바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기르가스 족속, 여부스 족속까지 총 10족속이 살고 있는 크고 광대한 땅을 그의 자손에게 다 주신다고 하십니다(19-21).

이렇게 약속을 받은 아브람은 어떻게 행하였습니까?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16:1-16)

161절을 봅시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그 이름은 하갈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데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시간이 지날수록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초조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는 큰 맘 먹고 자기 여종을 아브람에게 주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자기 종을 남편에게 주어서라도 자녀를 낳고자 하는 사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주인으로서 정체성, 아내로서의 자존심, 그리고 여인으로서 존재 의미마저 다 포기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자녀를 얻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 아브람이 , 무슨 소리야. 나에게는 당신 밖에 없어.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잖아.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도 확실해졌으니 조금 더 기다려봅시다.’ 하면서 사래의 제안을 거절하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어떻게 합니까? 2절 하반 절을 봅시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었습니다. 사래의 말을 들음으로 그 여종 애굽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첩으로 들였습니다. 그때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년 후였습니다(3).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고도 아브람이 왜 이렇게 했을까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는 말씀에서 사래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습니다. 또 그동안 사래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었는데 사래가 먼저 이 방법을 제안하니 아브람도 내심 좋았던 것 같습니다. 사래와 아브람의 생각이 이때는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4절을 봅시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하갈이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하였습니다. 하갈이 배가 불러오자 그가 종의 신분을 망각하고 주인 행세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사래가 그의 남편 아브람에게 말합니다. 5절을 봅시다.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이를 듣고 아브람이 사래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그때부터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였습니다. 하갈은 그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식이 없어도 단란했던 아브람과 사래의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수습해주셨습니다. 7절에서 10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 있는 하갈을 찾아가서 말합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은 먼저 하갈이 누구인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는 사래의 여종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여주인인 사래에게로 돌아가서 복종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호와께서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또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기 때문이라 하십니다(11). 또 그가 들나귀처럼 되어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고 하십니다(12). 이에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고(13), 그 샘 이름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습니다(14). 15,16절을 봅시다. 여종 하갈이 돌아와 아브람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람은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고통을 들으시고 살펴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그때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였습니다.

이상에서 하나님은 불신에 시달리고 있는 아브람에게 임하셔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말씀으로 그에게 믿음과 소망을 새롭게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사 비록 그가 죄와 허물가운데 있더라도 그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도 아브람처럼 말씀을 잘 따라가다가도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로 인해 좌절하고 말씀 따르는 삶을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가 실족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환상 가운데 임하셔서라도 다시 찾아와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약속을 더 구체적으로 하시고, 뭇별을 보여주기도 하십니다. 어두운 생각들을 이기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기까지 말씀으로 계속 도와주십니다. 말씀을 믿으면 이를 의로 여기시고 우리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눈에 보이는 현실문제에서 코 박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계속 듣고 받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을 항상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나의 삶속에서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으로 저와 어찌하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서 감사합니다. 저는 최근 들어 앞으로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많이 답답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듯 쑥쑥 자라나 여러 모양으로 감당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큰 아이는 벌써 자기 세계가 생긴 것 같고, 작은 아이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더 클텐데 여기에 들어가는 물질도 많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올 봄에는 캠퍼스 모임에 많은 형제자매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각기 개성이 확실합니다. 제 머리와 능력으로는 감당하기가 점점 더 힘듭니다. 거기다가 노쇠해 가시는 부모님도 걱정입니다. 이런 현실 문제들을 걱정하다 보니 제 속에 조금씩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이 생겨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속에 이런 생각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니 힘들어졌습니다. 이런 제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이 시대 젊은 형제자매들을 옳은 데로 이끌도록 말씀으로 부르셨습니다. 제가 이 부르심에 응한 것은 저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제가 이 시대 젊은이들을 말씀으로 섬기고자 결단한 것은 주의 말씀이 제게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일서 4:11) 저를 부르신 주의 말씀이 제게 새롭게 들립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서 123절입니다. 다 같이 다시 읽어봅시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어떤 실제 어두운 현실 가운데서도 계속 말씀이 임합니다. 뭇별을 보여주십니다. 이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자신이 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쓰임 받습니다.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납니다. 아멘!

 

2019 창세기 11강 메시지 1502-1616 정여호수아.hwp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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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4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6.20 35
134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3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6.12 48
133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3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6.09 30
132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2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6.02 49
13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1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5.28 39
»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5.26 37
12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0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9.05.24 56
128 창세기 2019년 창세기 9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5.12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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