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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6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창세기 6:1-22

 

 

홍수 심판과 구원의 방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창세기 6:13,14)

지난 주 3일에 걸쳐 옥상 방수 공사를 하였습니다. 곧 있으면 어김없이 찾아올 장마를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살던 때에 지금의 여름철 장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홍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사람을 포함하여 세상에 숨을 쉬는 모든 동물을 완전히 쓸어버리십니다. 그 가운데 노아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로 방주를 짓게 하여 노아와 그 집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시대 때 왜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셨을까요? 노아는 그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1-7)

1절을 봅시다.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났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가인이 죄를 범하였어도 하나님은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게 하는 복을 거두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수명이 평균 900세인 것을 생각할 때 한 가정에서만 수많은 자녀들이 났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자녀들도 자녀를 낳고 또 낳는 가운데 노아시대 쯤에는 사람의 수가 엄청 많았습니다.

그때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2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경건한 자들입니다. 반면 사람의 딸들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 정과 욕심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서 난 딸들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경건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 정과 욕심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서 난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아름다운 데에 시선이 가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그 아름다움이 어떤 아름다움인가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들이 본 그 아름다움이 어떤 아름다움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딸들은 눈에 보이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베드로전서 3:3), 목을 요렇게 늘이고,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내고 다녔습니다(이사야 3:16). 그들은 남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무는 것을 즐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런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가인의 5대손인 라멕이 두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4:19). 그 이후 사람의 아들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 것은 이미 보편화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야 할 하나님의 아들들조차 이들과 똑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이 뒤죽박죽 섞여버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모두 사람의 아들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보시고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3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십니다. 사람이 비록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음에도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죄에 넘어지려는 가인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하시고, 또 죄에 넘어진 가인이라도 다시 찾아오셔서 네 아우 아벨은 어디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사람이 죄와 싸울 수 있도록 끊임없이 경고하고 경책하여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들의 원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려고 투쟁할 수 있었습니다.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음을 알고, 죄를 다스리고자 애를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투쟁은 힘들었고, 힘든 투쟁을 하는 그들의 눈에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달콤한 유혹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은 안타깝게도 이 유혹에 넘어져버렸습니다. 이번에도 간교한 사탄 마귀의 승리였습니다.

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제는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그들과 함께하여 주시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죄를 다스릴 수 있도록 같이 씨름하고 다투는 일에서 이제는 손을 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육신이 되었다는 공동번역에서는 사람이 동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육체의 본성만을 따라 사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노아의 시대를 가리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데 온 마음과 정신을 다 빼앗겼다고 하였습니다(마태복음 24:38, 누가복음 17:27).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날이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육신이 되었음에도 오래 참으사 바로 심판하시지 아니하시고 일백이십 년이라는 심판 유예 기간을 주셨습니다. 이제 그 끝 날을 향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4절을 봅시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당시에 네피림이 있었습니다. 네피림은 침략자, 폭군, 거인이란 뜻입니다. 이들은 체격이 크고 성질이 포악하여 싸움을 잘 하는 그 시대의 용사요, 그 힘과 무력으로 고대에 명성을 떨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5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습니다. 사람은 사람의 겉모습만 주로 봅니다. 속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간혹 속을 알고 싶어도 좀체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생각과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습니다.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하니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모든 말과 행동도 악했습니다. 어쩌다 한두 번, 가끔 악한 것이 아니라, 항상 쭉, 늘 악했습니다.

그러면 악하다는 무엇을 말할까요? 네피림이 되어 자기들이 가진 힘으로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속이고, 괴롭히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힘들여 얻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열심히 연구하고 실행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이런 생각과 행동은 다 마음에서 나온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신 사람의 악함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신 악함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어떤 마음의 생각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1도 없었습니다. 온 땅이 부패하고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포악하고 부패했습니다(11,12).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6절을 봅시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생각만 하면 절로 한숨과 탄식이 흘러나오고 마음에 근심이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서 어떤 소망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어떤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7절을 봅시다.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그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고자 작정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는 이제 끝입니까? 아닙니다. 창세기 68절은 그러나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8-13)

다같이 8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다 쓸어버리고자 하셨지만, 노아만은 그 쓸어버리는 대상에서 제외시키셨습니다. 노아 또한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쓸어버림의 대상인데도 쓸어버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노아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입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슨 일이든 다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9절을 봅시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세기 6장에서 9장이 노아의 족보입니다. 그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의 기록입니다.

노아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먼저 노아는 의인이었습니다. 로마서 310절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무 죄가 없는 완전한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당대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노아 시대 때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한 아내만을 계속 사랑했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한 아내를 통해서만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습니다(5:32, 10).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의 부패하고 죄악 된 사람들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상과 가치관에 휩쓸리지 않았고 그 시대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동행이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같이 걷는 것입니다. 23각 경기를 하듯이 서로 보조를 맞추어 걷는 것입니다. 요즘 제가 네 살난 제 아들 갈렙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때 함께 걸어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한번은 제가 평상시 제 걸음걸이로 갈렙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갈렙이가 계속 넘어졌습니다. 이는 저의 보폭을 갈렙이가 따라올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안 후에야 저는 갈렙이의 보폭에 맞추기 위해 아주 천천히 걷습니다. 또 갈렙이는 어린이 집에서 집으로 돌아 올 때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여러 군데를 둘러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제게는 인내가 필요 합니다. 제가 제 아들 갈렙이와 동행하는 것도 이렇게 많은 자기부인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어떠할까요?

노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육신이 되어 살아갈 때 홀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롭고 진실 되게 살려고 하다가도 막상 캠퍼스나 직장의 하나님을 떠나 있는 분위기에 있다 보면 그 분위기에 말려들기 쉽습니다. 적극적으로 죄는 짓지 않는다 하더라도 분위기에 맞추어 동조하며 살아가는 것이 편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조금도 그 시대 분위기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세상의 죄악의 파도와 물결을 거슬러 싸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노아 한 사람을 주목해 보셨고,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자신과 함께하는 친구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듯,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해 주십니다. 13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땅의 그 끝날이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노아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십니까?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14-21)

14절에서 16절을 봅시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방주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방주네모난 모양의 배를 말합니다. 이를 어떻게 만들라고 하십니까? 그 재료는 고페르 나무로 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전나무의 일종으로 크게 자라고 방수 효과가 좋아 배 만드는 재료로 적격입니다. 그리고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물이 새지 않도록 그 안팎에 역청을 칠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규빗은 당시에 쓰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인데, 어른의 손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말합니다. 대략 50cm 정도 됩니다. 그렇게 계산할 때 방주의 길이는 150m, 너비는 25m, 높이는 15m정도로 추정됩니다.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됩니까? 길이는 축구장보다 조금 길고, 너비는 승용차를 열대 정도 주차 할 수 있고, 높이는 5층 건물의 높이 정도가 됩니다. 또한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의 재료와 설계도를 제시하셨습니다.

노아에게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왜 그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십니까? 17,18절을 봅시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할 홍수로부터 노아와 그의 가족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되 너를 위하여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다른 누구를 위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명을 위한 것입니다. 그에게 속한 가족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방주를 이렇게 까지 크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크게 지으라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19-21절을 봅시다.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혈육 있는 모든 생물의 씨를 보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이 암수 한 쌍씩 배에 다 들어가려면 이 정도의 크기는 되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한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와 그의 가족들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의 씨를 보존하고자 하셨습니다. 노아가 모든 생물을 보존하고 구원하는 일의 주역으로 쓰임 받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 비록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을지라도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 목적대로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존재로서의 그 자리를 지키고 그 존재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심판가운데서도 어찌하든 사람을 구원하고, 또 사람을 통해 만물을 보존하고 지키고자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노아는 하나님께 이 명령을 듣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22)

22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그대로 다 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방주를 당시의 기술과 도구로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진시황처럼 수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껏해야 노아와 그 아내, 셈 함 야벳 세 아들들과 그 며느리들 모두 합하여 여덟 명이 전부였습니다(베드로전서 3:20). 이 여덟 명이 120년 동안 그 큰 방주를 지어야했습니다. 날마다 나무를 베어다가 톱질하고 대패질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힘들고 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방주를 짓는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후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방주에 들어가는 재료비를 충당 하느라 투 잡, 쓰리 잡을 뛰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이처럼 맑은 하늘에 뭐...비가 내린다고? 그것도 바다도 아니고 산에 다가 배를 만든다고? 노아 할아버지가 아무래도 미쳤나봐! 호호그러나 그가 가장 힘든 때는 힘든 육체노동이나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흔들릴 때였습니다. 둘째 아들 함이 아빠, 도대체 홍수 심판이 언제 시작 되나요?” 하고 물을 때면 하나님만이 아신단다. 그 날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순종하면 되는 거야.” 하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 자신도 하나님이 날짜라도 좀 가르쳐 주셨으면 견디기가 좀 쉬울 텐데, 하고 원망하는 마음도 들고, 정말 홍수심판이 있기나 할 것인지, 불현듯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방주 짓느라 바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지, 삶에 회의도 몰려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이 모든 어려움과 의심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완성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다 준행할 수 있었을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11:7) 노아가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 경고함을 받았지만 끝까지 다 준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건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그가 방주를 짓고자 할 때 별의별 인간적인 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고페르 나무를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다른 나무로 지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역청을 밖에만 칠하면 되지 굳이 안까지 칠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방주 크기가 너무 커서 힘들기 때문에 1/2로 축소하여 지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생각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말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정말 어리석을 만큼 우직하게 인내로 말씀을 다 준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홍수 심판은 있었고 노아는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습니다.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이었습니다(베드로전서 3:20). 이로써 노아는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던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노아시대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 뉴스에는 읽어보기에도 민망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있는 대로 말세가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디모데후서 3:1-5).

예수님은 이런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노아 때의 홍수심판보다 더한 환난이 찾아올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4:21). 그 환난의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4:30).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4:37). 그럼에도 노아시대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이를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최후심판의 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노아처럼 방주를 준비해야 합니까? 늙어 죽을 때 까지 방주를 지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후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창세기 9:11).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마가복음 9:49, 요한계시록 16:8, 17:16). 그러면 불을 막는 커다란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심판으로 구원 얻을 길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1:12). 누구든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면 심판가운데서 구원을 얻습니다(요한복음 5:24).

우리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며 세상을 거슬러 주의 말씀을 준행하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노아가 구원의 방주를 짓기 위해 온 인생을 바친 것만큼이나 감당하기 벅찬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어찌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함으로 듣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모든 시험과 유혹을 이겨낼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그날을 소망하며 깨어 의를 행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간 죄로 인해 심판받아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창세기 6:13,14)

 

 

2019 창세기 06강 메시지 0601-0622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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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1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5.28 31
130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5.26 28
129 창세기 2019년 창세기 10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9.05.24 49
128 창세기 2019년 창세기 9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5.12 57
127 창세기 2019년 창세기 9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5.12 29
126 창세기 2019년 창세기 8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5.07 59
125 창세기 2019년 창세기 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4.28 36
124 요한복음 2019년 부활절 특강 메시지 file 정여호수아 2019.04.21 26
» 창세기 2019년 창세기 6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4.1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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