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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23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마가복음 12:18-44

 

 

첫째 되는 계명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마가복음 12:29,30)

 

우리가 성경을 매주 읽고 또 공부도 하지만 성경이 정말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씀공부한지 수십년이 흘러도 하나님과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모르겠고 말씀대로 한다는 것이 실제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두개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성경을 오해하여 이상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런 우리를 위해 예수께서 성경의 핵심을 딱 두 마디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려면 먼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18-27)

18절을 봅시다. 바리새인들이 능히 예수님을 책잡지 못함을 보고 이번에는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그 질문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9-23절을 봅시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칠 형제 중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부활 때에 여자는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할까요? 첫 남편인 맏이의 아내가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그녀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아내가 되어야 할까요? 대답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부활이 있게 되면 이런 실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부활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들의 논리가 일리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다같이 24,25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예수님은 그들이 부활에 대하여 오해하였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오해했습니까?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장가가고 시집가듯이 부활 때에도 장가가고 시집간다고 오해했습니다. 곧 부활을 이 세상에서의 삶의 연장으로 오해했습니다. 부활 때에도 사람이 죄악된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이라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 때에 우리가 덧입게 될 몸은 이런 몸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된다고 하십니다. 썩고 욕되고 약한 육의 몸이 아니라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신령한 몸이 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이 부활에 대해 이 같은 오해를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가문의 후손들로서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실제로는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성경을 성경대로 읽고 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자기중심적으로 읽고 이해하고 해석했습니다. 자기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성경을 끌어들였습니다. 실제로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역사서나 선지서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모세오경에서는 부활에 대한 말씀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므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의 책에서도 부활의 진리가 있음을 확실히 밝혀주십니다.

다같이 26절을 봅시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하나님은 미디안 망명생활 40년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는 모세를 가시나무 떨기 불꽃가운데서 찾아오셔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이전까지 모세에게 있어 하나님은 과거 조상들과 함께했지만 지금은 아무 일도 안하시고, 또 하실 수도 없는 그런 죽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 그는 지금 여기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 출애굽 역사의 리더로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증언하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27). 사두개인들은 이를 오해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께서 모세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지금 살아 계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살아 역사하시고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알고 믿을 때 우리는 사두개인들과 같은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곧 부활은 죽은 자들의 문제가 아니요 지금 살아있는 자들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 있는 동안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떠한 삶을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28-40)

다같이 28절을 봅시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왔습니다.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과는 다르게 부활이 있음을 믿는 바리새인으로서 그는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듣고 답답했던 속이 시원해졌던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운 말씀도 예수님께 듣고 나가면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그는 율법교사로서 아직도 자신이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중요한 질문을 예수께 들고 나왔습니다. “모든 계명 중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모세가 쓴 율법에는 지켜야 할 계명이 613개나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지켜야 할 것이 많은지, 또 못 지킬 것도 많은지 몰랐습니다. 그는 이 613개의 계명 중에서 가장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성경이 정말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이는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바로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다같이 29-31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예수님은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첫째 계명을 말씀하시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또 유일한 주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사실 애굽 땅에서 종살이 하던 노예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어떻게 구원하여 주셨습니까? 애굽을 재앙으로 무섭게 징계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곳은 그 재앙이 미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애굽 군대가 맹렬히 추격할 때 홍해를 갈라 그들로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광야생활 40년 동안에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눈동자같이 지키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주이심을 그들로 알게 하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그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보다 나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장자를 희생하시되 이스라엘에게는 죽음의 사자가 어린 양의 피를 보고 그냥 넘어가게 하셨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하는 그들을 오래 참아주시고 용서하여 주심으로 마침내 약속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들을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신 유일하신 그들의 주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 제물로 보내주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온전히 구원하시고 참 평화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전에는 백성이 아니던 우리를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던 자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벧전 2:10). 이 같은 하나님의 구원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31절을 다시 봅시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서기관은 첫째 되는 계명만 물었는데 예수님은 첫째 계명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둘째 계명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두 계명을 하나로 묶어서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따로 국밥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랑이 실제로 어떻게 나타납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일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일 4:21)

그런데 예수님은 네 이웃을 사랑하되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합니다. 자기 몸에 좋다고 하면 별의 별 걸 다 먹습니다. 옆에서 누군가 암을 앓고 있다고 해도 오늘 내 감기가 더 심각합니다. 사람은 이같이 자기를 끔찍이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잘 아십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것 만큼만이라도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명령하십니다.

죄인 된 우리가 어떻게 이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 주신 하나님, 곧 우리를 사랑하시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알고 믿을 때 나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을 듣고 서기관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32,33절을 봅시다.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그는 솔직하게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인정하였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번제물과 기타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셨습니다. 그 후에는 감히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34).

이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서기관도 있었지만 실제 당시 서기관들은 어떠했습니까? 35절을 봅시다. 당시 서기관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혈통에서 나오는 정치적인 왕으로만 오해하여 이를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어떻게 고백하였습니까? 36절을 봅시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이처럼 다윗은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37).

서기관들은 성경을 이같이 잘못 가르칠 뿐 아니라 또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38절을 봅시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했습니다. 과부를 도와준다는 명목 아래 실제로는 그 가산을 삼키고(39),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였습니다(40).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도, 이웃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를 사랑함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고, 재물을 탐하는 자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런 자들이 받을 판결은 더욱 중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의 실제 모습은 어떠합니까?

 

자기의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41-44)

41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마침 성전의 뜰에 있는 헌금함에 사람들이 헌금하는 장면을 보셨습니다. 여러 부자는 많이 넣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습니다(42). 오늘날로 치면 500원 동전 2개를 넣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자들이 헌금을 많이 하는 것을 보고 칭찬했지만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고 그것도 헌금이냐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43절을 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헌금의 액수의 많고 적음을 보기보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드렸는가를 보십니다. 과부가 어떻게 이렇게 생활비 전부를 드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먹이시고 입히실 것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같이 그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실제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곧 부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헌금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때 곧 부활을 믿을 때 실제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사두개인들처럼 저도 실제로는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깊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특히 부활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이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적지않게 놀랐습니다. 그동안 제가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었는지 문제의식을 느꼈고, 성경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저로 부활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나를 사랑하시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신 유일하신 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하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사두개인들이나 서기관들처럼 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음으로 성경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에서 자라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따라 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신 유일하신 주 하나님, 지금 우리를 사랑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지금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길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풍성히 누리고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마가복음 12:29,30)

 

 

2018년 마가복음 23강 메시지 1218 1244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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