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INJE UBF

메시지

마가복음
2024.03.31 12:45

2024년 부활절 특강 (정여호수아)

조회 수 2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024년 부활절 특강 정여호수아

마가복음 16:1-20

 

 

그가 살아나셨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마가복음 16:6)

 

유월절 전날 금요일 제 구시, 곧 오후 3시경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께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으로 크게 소리 지르시며 운명하였습니다(15:34). 이를 보고 조용히 예수님을 믿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당돌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들 달라 요구하였습니다. 빌라도가 허락하자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았습니다(15:43-46). 그렇게 예수님의 장례식은 일사천리로, 그리고 아주 초라하게 끝났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이제 하나님나라 복음 역사는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죽음과 어둠의 권세에 다 넘겨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끝일까요?

그가 살아나셨고(1-6)

1절을 봅시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또 살로매가 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몸에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갈릴리부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도망가지 않고 지켜보았고(15:40), 예수님이 요셉이 준비한 무덤에 장사되는 것도 보았습니다(15:47). 이들은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에 향품을 준비해서 다음날 새벽 일찍 해 돋는 때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했습니다(2). 지금의 주일 아침 새벽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는 이유는 한가지였습니다. 유대의 장례는 시신에 향품을 바르고 동굴 무덤에 안치하는 형식입니다. 그런데 급하게 장례를 치르느라 시신에 향품도 바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마음에 걸렸던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새벽길을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가면서 생각하니 무덤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이 생각났습니다(3). MBTI로 보면 그들은 이성보다 감성이 앞섭니다. ‘무덤 돌문을 어쩌지그러면서도 돌아서지 않고 갑니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갑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향한 이들의 마음은 간절했습니다. 비록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죽으셨지만 그 사랑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도착한 그들은 어떤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까? 4절을 봅니다.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컸습니다. 걱정했던 문제가 이미 해결되어 있어서 그들은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혹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 한 것은 아닌지 더 큰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두려운 마음을 부여잡고 그들은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세마포로 싸여 놓여져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고 대신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아 있었습니다(5).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런데 그 청년은 여자들에게 더 놀라운 소식을 전해 줍니다.

다 같이 6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먼저 청년은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놀라게 해놓고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놀라면 지금 자신이 전해 주는 말을 그들이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를 환기시킨 후 청년은 너희들이 지금 찾는 예수는 여기 없다고 합니다. 그들이 찾는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입니다. 사람들을 돕고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거룩한 삶을 사셨는데, 결국은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시고, 그 시신에 향품도 체 바르지 못하고 무덤에 안치되신 예수, 이제는 시체가 되어 버린,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되신 그 나사렛 예수님입니다. 청년은 지금 그 예수님은 여기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생각한 대로 누가 그의 시체를 도둑질해 간 것입니까? 청년은 그런 이유 때문에 그가 여기 없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가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계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청년이 전해 주는 첫 부활 메시지입니다.

이를 그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죽으면 끝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더구나 예수님은 너무도 참혹하게 십자가에서 그 육신이 다 찢기시고 상하셨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여자들에게 청년은 그가 살아나셨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6-7)

6절 하반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청년은 먼저 예수님이 시신을 두었던 곳에 아무 것도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빈 무덤 그 자체가 예수님이 살아나셨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합니다. 실제로 여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지낼 때 어디다 두었는지 두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입니다(15:47). 예수님의 무덤은 그들에게 생소한 장소이긴 하지만, 시신을 안치한 지 대략 36시간 정도 지났으니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무덤은 지금 빈무덤 입니다. 그가 살아나시지 않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빈 무덤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가 혹시 그의 시체를 도둑질 해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정말 부활하셨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어디 있는가? 하는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이런 여자들에게 청년은 무엇이라고 증거합니까?

다같이 7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예수님은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마치고 감람산으로 가시면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4:27).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28). 곧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그 인생이 끝나지 않음을 이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의 부활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해 하신 말씀은 이 말씀 한마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여러 번 자신이 죽으신 후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8:31,9:9,9:31,10:34). 그들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도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이요, 살아나심도 말씀대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제 여인들이 찾는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는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모든 사랑을 베푸셨지만 허망하게 죽으신 그 예수는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슬픔과 원통함을 주고, 불러도 대답 없는 그런 공허한 예수님, 믿음으로 살아도 결국은 인생의 허무함을 주는 그런 나사렛 예수는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가두는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도 살리시고, 마리아,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리셨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죽음의 문제앞에 무력하게 끝나버리신 무력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주이십니다. 우리 인생들을 옭아매는 죄와 사망권세를 완전히 파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8-14)

여인들은 분명 예수님의 무덤이 빈 무덤임을 보았습니다. 또 청년을 통해 예수께서 부활하실 것을 그들에게 미리 말씀하셨고, 그 말씀하신 대로 실제로 부활하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할렐루야 찬양을 하며 제자들에게도 달려가서 이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8).

9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셨습니다.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신이라도 찾아보고자 예수님 무덤 주변을 계속 배회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에게 먼저 자신을 보이셨습니다. 이에 마리아는 즉시 슬퍼하며 울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로 가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렸습니다(1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했습니다(11). 그 후에 제자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낙향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12). 이에 그들이 다시 돌아와서 남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역시 믿지 아니하였습니다(13).

부활 소식을 듣고 제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하나같이 믿지 않음입니다. 그전에 미리 다 말씀해 주셨고, 천사를 보내셔서 이를 다시 상기시켜 주시고, 그것도 안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증인들을 두 번이나 보내서 증언해도 역시 믿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안 믿는 것일까요? 첫 사람 아담 이후로 이제까지 죽음을 이겨낸 역사적 전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살아있던 자가 죽는다는 소식은 괴롭지만 다 받아들입니다. 이제까지 수없이 반복된 사실이고, 현실이기에 다 받아들입니다. 이 세상은 죽는 것이 당연하고, 죽으면 다 끝이라는 사망 권세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제자들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마비시켰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더라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히브리서 2:5).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이런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14절을 봅시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이유와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를 볼 때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이 완악한 문제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하고 대적했던 종교지도자들처럼 낡은 가죽부대가 되어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데 있어 분명 새부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들은 새 포도주되신 예수님이 가져다 주시는 생명의 복음을 담아낼 수 없는, 신축성이 하나도 없는 낡은 가죽부대와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죽음 문제 앞에서 만큼은 자기 생각과 경험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을 무섭게 꾸짖고 책망하십니다. 그 낡은 가죽 부대인 상태로 계속 있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다 터트리사 다시 새 부대가 되도록 하십니다. 그 완악함에서 돌이키도록 하십니다. 부활을 믿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고 또 더딘 일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이 이 믿음을 갖기까지 끝까지 포기치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정말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가장 좋은 부활을 주고자 하십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활을 주고자 하십니다. 부활을 믿을 때 그들은 어떠한 삶을 살게 됩니까?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15-20)

15절을 봅시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태어나서 한번도 유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는 편협한 유다이즘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그들이 원수 나라인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일을 맡기십니다. 지금의 제자들로선 죽었다 깨어나도 못해 낼 것 같은 이 일을 제자들에게 맡기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는 그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가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처음부터 두셨던 비전과 소망입니다.

16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제자들이 전파하는 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죄를 당합니다. 곧 심판을 받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이제 복음을 맡아 전하는 제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활 믿음과 사명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복음을 받은 자로서 동시에 이를 전해야 할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온 천하에 갈 수 없으면 바로 내 곁에 있는 자에게라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요즘 갈수록 복음에 적대적인 분위기입니다. 때때로 이 일을 하고자 할 때 맨땅에 헤딩을 하는 일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명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같이 주십니다. 17,18절을 봅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낫게 하십니다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이러한 능력의 표적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그가 전하는 구원의 복음의 확실함을 증거해 주십니다.

19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부활의 증인된 자로 살 것을 말씀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후에 제자들이 두루 나가서 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또 그때마다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여 주셨습니다(20).

오늘 본문에서 부활의 소식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도 계속 믿지 못하고 있는, 여전히 두려워 떨고 있는 여인과 제자들의 모습속에서 저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꺾이지 않는 믿음과 소망을 봅니다. 도저히 변화되지 않을 것 같고, 그 완악함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것 같은 그들인데, 예수님의 그들을 향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그들을 마침내 변화시킴을 봅니다. 제가 이런 줄 알면서도 저를 부르심에 후회가 없으신 예수님, 처음부터 제게 두신 비젼과 소망을 놓지 않고, 제가 믿음을 갖기까지 도우시는 예수님, 그리하여 어떤 모양으로든지 저를 복음역사에 쓰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지금 제 모습이 어떠할지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안에서 저도 변화될 것을 믿고 제가 중간에 꺽이지 말고 계속해서 캠퍼스 복음역사에 도전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실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정말 주고자 하시는 것은 이 죽음을 이기는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부활을 믿기까지 역사하시고 도우십니다. 이를 믿는 그 사람을 사람 살리는 하나님이 역사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쓰십니다.

갈수록 죄와 사망 권세가 강해져 가는 시대입니다. 소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일수록 부활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또 더욱 적극적으로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사는, 죽음을 이기는 이 부활의 권능을 날마다 덧입어 일상의 삶 속에서 승리하고, 또 자기를 넘어 캠퍼스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는 일에 믿음으로 도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때 주께서 표적으로 친히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마가복음 16:6)

 

2024년 부활절 특강 마가복음 1601-1620 정여호수아.hwpx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4 요한계시록 2024년 요한계시록 4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2.11 33
423 요한계시록 2024년 요한계시록 3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24.02.04 24
422 요한계시록 2024년 요한계시록 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1.29 29
421 요한계시록 2024년 요한계시록 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1.21 31
420 디모데후서 2024년 신년 3강 메시지(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4.01.14 37
419 마가복음 2024년 신년 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1.07 35
» 마가복음 2024년 부활절 특강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31 25
417 민수기 2024년 봄학기 준비특강 2강(김유신) file 정여호수아 2024.02.25 26
416 민수기 2024년 봄학기 준비특강 (여동현) file 정여호수아 2024.02.18 23
415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4.29 4
414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6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4.24 19
413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6강 메시지(양산 센터 천모세) file 이제현 2024.04.21 20
412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5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24.04.14 16
411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4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24 38
410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3강 메시지(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4.03.18 30
409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10 27
408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03 35
407 시편 2024 신년 1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23.12.31 25
406 느헤미야 2023년느헤미야 2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3.11.05 73
405 시편 2023년 추수감사절 특강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3.11.19 3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2 Next
/ 2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