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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1강 정여호수아

마가복음 1:1-15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15)

이제 봄학기가 시작됩니다. 특히 신입생들은 내일부터 대학교생활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다 생소할 것입니다. 하나하나 알아가야 할 것이 많습니다. 매일 새롭게 마주해야 할 일과 상황, 새롭게 관계성 맺어가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고 또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합니다. 어찌되었든 학교에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나의 새로운 인생 역사가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도 어떤 시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가라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복음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알리는 서문입니다. ‘마가는 잘 알다시피 바울의 선교동역자였던 바나바의 조카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그가 선교여행 도중에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서게 됩니다. 마가는 부잣집 아들로 자라서인지 어려움에 부딪치면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실 때에 한 청년이 홑이불까지 벗어버리고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14:51,52), 이 청년이 바로 마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후에 바나바의 충실한 선교동역자가 되었고, 또 베드로는 마가를 내 아들 마가’(벧전 5:13)라고 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바울은 그를 골로새교회의 감독으로 추천하며 나의 동역자 마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우고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처럼 연약하고 숱한 실패를 한 그 마가가 복음으로 누구보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그가 전하는 복음은 그의 인생을 실제로 바꾸어 놓은 진짜 복음입니다. 당시 로마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고 힘들어진 성도들에게 어떤 메시지보다 강력한 힘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이 복음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1-8)

1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창세기 1:1절이 천지창조의 대역사를 선포하는 말씀이라면, 마가복음 11절은 인류를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구원하는 장엄한 구원역사의 시작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죄와 어두움과 절망이 물러가고 빛과 생명의 역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고대 그리스가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한 병사가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려와 우리가 이겼다는 승전보를 전하고 죽을 때 이 복음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그때부터 사람들은 전쟁 승리의 소식이나, 로마 황제의 아들 탄생 소식을 복음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가는 복음이라는 이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숨넘어 갈 정도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전쟁에서의 승리의 소식도 황태자의 탄생소식도 아니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란 뜻입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주신 왕이십니다. 그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미가 5:2). 로마 황제의 아들 정도가 아니라 진짜 신의 아들, 참 황태자가 오셨습니다. 그가 가져다주는 구원으로 인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복음의 시작이 어떠합니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에 앞서 그의 길을 준비되는 역사로 시작됩니다.

2절을 봅시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예언된 대로 예수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주의 사자가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합니다(3). 그는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그가 기록된 대로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4). ‘세례는 사람이 물속에 푹 잠겼다가 나오는 의식입니다. 이전의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로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이 의식을 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회개의 세례를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전파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하며 자신들은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했지만(마태복음 3:9), 그 실상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하나님 모르는 이방 로마에 식민지배를 받았고, 헤롯 왕에게 억압을 받았습니다. 그 삶이 애굽이나, 바벨론에서 노예로 살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내부적으로도 형식적인 율법주의의 울타리에 갇혀 고통하고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눈멀고, 귀가 닫혔으며, 온갖 귀신의 세력에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은과 금이 아닙니다.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는 것도 아닙니다. 상황과 조건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을 떠난 죄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그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죄사함을 은혜를 받기 위한 준비입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그들의 죄 문제에 도전했습니다. 요한은 미사여구가 담긴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실제적인 죄 문제를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참된 사랑이란 좋은 말만 해 주고 좋게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아프고 일시적으로 사이가 안 좋을지라도 죄를 근본적으로 회개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이 전파한 회개의 세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5절을 봅시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를 볼 때 사람들이 정말 듣고 싶은 메시지는 온갖 축복과 성공으로 치장된 거짓된 메시지가 아닙니다. 참 진리를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 이후에 40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기갈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아모스 8:11). 이런 가운데 심령을 찔러 쪼개는 것 같은 세례 요한의 강력한 회개의 메시지는 오랜 가뭄을 해갈해주는 단비와 같았습니다.

6절을 봅시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사람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스타일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낙타털 옷과 가죽 띠는 전천 후 작업복과 같은 것입니다(스가랴 13:4). 또 메뚜기와 석청은 당시 가난한 자들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삶은 단순하고 검소했습니다. 그의 삶은 당시 성전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다니는 종교 지도자들과 대조가 됩니다. 그는 엘리야와 같이 그 시대와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메시지의 진정성은 그의 거룩한 삶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를 보고 사람들의 관심이 요한에게 점점 집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혹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가 아닌가 생각할 만큼 존경하고 흠모했습니다(누가복음 3:15). 그러나 이때 요한은 어떻게 했습니까?

7,8절을 봅시다. 전파하되 나보다 능력 많은 분이 내 뒤에 오신다고 합니다. 자기는 낮추고 자신 뒤에 오실 분을 높입니다. 심지어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신발끈은 당시 가장 낮은 종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 뒤에 오실 분에 비하면 자신은 이 조차도 감당할 자격이 안되는 자라고 합니다. 지나친 자기 비하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아는 만큼 하나님 앞에 자기 발견이 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겸손은 자기를 억지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깊이 아는 데서 옵니다. 요한은 자신과 예수님의 능력의 차이가 어떠한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 베푸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8).

물세례는 죄사함을 받도록 마음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그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소멸하는 불로서 사람의 속에 있는 더러운 죄악을 불태워 버립니다(사야 4:4).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기록하여 이를 지킬 수 있도록 합니다(예레미야 31:33). 그래서 성령 세례를 받으면 사람이 실제로 변합니다. 속 사람이 달라집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고린도후서 5:17).

이같이 요한이 주의 길을 준비하고 있을 그 때에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9-11)

9절을 봅시다.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앞에서 요한이 증언했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능력많으신 분으로서 요한에게 세례를 주셔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도리어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이는 그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신 것입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빌립보서 2:6,7). 또한 요한을 통해서 시작된 복음역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역사로 인정하시고 이를 계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같이 주의 뜻에 순종하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0절을 봅시다. 그가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갈라졌다는 것은 찢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다시 하늘이 닫히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예수님께 내려오셨습니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죄로 인해 가로막혔던 하늘 길이 뚫리고, 하나님과 화평케 되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는데,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12) 이는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예수님이 요한보다 크다는 가장 확실한 증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직접 인정하시는 아들, 사랑하는 독생자입니다. 이 예수님을 통해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를 어디로 인도합니까?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고(12-13)

12절을 봅시다. 성령이 곧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13). 광야는 거칠고 메마른 사막입니다. 들짐승이 우글거리는 위험한 곳입니다. 성령은 왜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해 사탄에게 시험받게 하셨을까요? 그것도 40일간의 극심한 한계 상황으로 몰아가셨을까요? 첫 사람 아담은 사탄의 시험에 넘어갔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에 져서 40년간 뺑뺑이 돌다가 엎드러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일은 이 사탄을 이기는 것입니다. 또한 사탄의 시험에 늘 넘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체질을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시는 일입니다(히브리서 4:15). 이는 시험을 받아본 사람이 시험의 어려움을 알고, 또 그 시험을 극복해낸 사람이 시험을 이기는 법을 가르쳐주고 도와 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히브리서 2:18).

우리와 같이 세례를 받으신 예수께서 우리와 같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극심한 조건에서 이를 다 받으셨습니다. 시험받는 예수님과 들짐승이 함께 했고, 천사가 수종을 들었습니다(13).

박해로 인해 광야로 내몰려 고난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같이 시험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된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그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셨다는 것은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시험을 이겼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뒷부분에서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는 사건이 바로 나오는 것을 볼 때 예수께서는 분명히 사탄을 이기셨습니다(마가복음 1:25,26). 강한 자를 결박하셨습니다. 강한 자를 결박할 수 있으려면 더 강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시므로 우리를 능히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이 예수님을 의지할 때 우리도 능히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은 이제 무엇을 하십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4-15)

14절을 봅시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셨습니다. 요한은 헤롯의 죄를 책망하다가 잡혔습니다. 이로써 요한의 사명이 끝났습니다. 이제 더 능력많으신 예수님이 일하실 때가 되었습니다. 이에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셨습니다. 같이 15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시작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때가 찼다는 말은 The time has come.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의 시대가 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회개는 방향전환입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기를 향하고 세상을 향하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회개의 전제는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인정하려면,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내가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회개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내가 왕이 되어 내 욕심과 뜻대로 살아왔던 것을 실제로 뉘우쳐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만 믿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내 삶을 복음에 의탁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순종의 행동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지난 주 민수기 말씀처럼 눈을 들어 놋뱀을 쳐다봐야 사는 것과 같습니다. 복음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죄사함의 복음입니다. 죄사함을 받으면 그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는 그 현실이 비록 광야와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와 평강을 누립니다. 구원이 임합니다.

제가 변하지 않는 저의 모습, 그리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을 보며 기가 꺾여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게 지난주 민수기 말씀과 마가복음을 들려주사 다시 믿음을 가지고 복음 앞에 새롭게 설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의 복음으로 그 연약했던 마가가 변화되어 고난받는 성도들을 실제로 복음의 말씀으로 도와가는 모습에서 다시 힘이 났습니다. 과거에 저를 변화시켰던 그 복음이 이제는 더 이상 역사하지 않는다는 불신을 제가 회개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더 이상 일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겠습니다. 제가 이번 마가복음을 다시 듣고 받아 주께서 주시는 복음의 능력을 새롭게 덧입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걸어가길 기도합니다. 사탄을 이기신 예수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믿음으로 매일 주어진 광야의 시험을 통과해 나가길 기도합니다.

2024년 새 봄이 왔습니다. 겨울의 추위에 고생한 사람에게 봄은 얼마나 반가운 친구입니까? 복음도 그렇습니다. 죄와 죽음으로 고통당한 사람에게 복음은 너무도 반갑고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영원히 믿고 의지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이번 마가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게 듣고 받고 배우고 또 굳게 붙잡기를 기도합니다. 봄학기 우리 안에 시작된 이 복음의 능력이 각 사람의 심령에 힘있게 역사하고, 또 복음으로 인한 기쁨을 풍성히 누리고 나누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복음 1:15)

2024년 마가복음 1강 메시지 0101-0115 정여호수아.hw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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