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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018.02.18 15:18

2018 인제 30주년 기념예배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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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인제 30주년 기념예배 특강 이바울(관악1)

여호수아 17:14-18

 

 

스스로 개척하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여호수아 17:15)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을 주시므로 우리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우리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우리에게 주심은 어찌함입니까?” 여호수아 장군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너무 좁다면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은 전체를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자립적으로 개척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개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두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 그 땅에는 이미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철병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철병거는 요즘 말로 말하면 탱크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다 합해서 공격하면 철병거를 이길 수 있겠지만, 요셉 자손 스스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둘째, 그 땅은 산지인데 그것도 나무가 빽빽한 산지인데다 땅이 그리 넓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다 그 땅은 나무가 빽빽하게 있는 그런 땅입니다. 나무를 다 베어내야 합니다. 나무를 베어내고 뿌리까지 뽑아내야 합니다. 그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다 그런 땅은 산지이기 때문에 비탈졌습니다. 비탈진 산을 농토로 개간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일을 전체가 다 합해서 하면 훨씬 쉽게 할 수 있는데 요셉 자손 혼자서 힘듭니다. 무슨 일이든 여럿이 같이 하면 쉽게 끝나지만 스스로 혼자서 하려면 많이 힘듭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다, 마리아 집에 가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고 마르다는 음식 준비하는 일로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께 나아와 말합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십니까? 마리아더러 나를 도와주라 하세요.” (누가 10:40) 혼자 일하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요셉 자손도 말합니다. “우리 혼자서는 못합니다.”

그래도 여호수아가 말합니다.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왜 이렇게 말합니까? 스스로 개척하면 얻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땅을 얻습니다.

지금 요셉 자손은 자기들이 분배 받은 땅이 자기들 크기에 비해 너무 좁다, 그래서 더 많은 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가서 스스로 개척하면 땅을 더 얻습니다. 물론 여호수아에게 요구해서 땅을 더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다른 지파들이 공평하지 않다고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요셉 자손에게 땅을 더 주고 싶어도 못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개척하면 확실하게 땅을 얻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얻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남에게 부탁하기, 돈 주고 사기, 남의 것을 빼앗기, 내 스스로 얻기. 남에게 부탁해서 얻으면 쉽기는 하지만, 그 사람이 주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빼앗으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다 상대방은 빼앗기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잘 싸우는 사람이 잘 빼앗을 것이요, 싸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돈을 주고 사면 편한데,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 먼저 돈부터 벌어야 합니다. 스스로 하는 것이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작은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 내가 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가 타서 마시면 됩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해 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누구나 자기가 칭찬 받기를 원하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데 인색합니다. 칭찬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요?

여러분은 지금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이루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오천 명이 넘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나와서 말합니다. “선생님, 이 사람들을 보내서 동네에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이 곳은 광야인데다 날이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너희 스스로 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말합니다. “우리가 가서 이천 만원 어치의 빵을 사다 먹일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빵 몇 개나 있는지 알아봐라.”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진 그것으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제자들의 경우 자기들에게 있는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그 이상 확실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면 어떤 이는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나한테는 아무 것도 없는데요. 세상에 태어난 사람 치고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네게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아라.” “스스로 개척하라.”

둘째, 불만, 원망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요셉 자손은 여호수아 장군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우리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우리에게 주시니 어찌 된 것입니까? 이럴 수 있습니까?” 그들의 이 말에는 불평, 원망이 섞여 있습니다.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서 기대하고 바라면 원망, 불평의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개척하면 원망,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돈을 타서 쓰기만 하면 감사하기도 하지만, 왜 적게 주시는가,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스스로 돈을 벌어보면 돈 벌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서 힘든 일 중 하나가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돈 벌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면 부모님이 정말 어렵게 돈을 버셨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돈을 받는 것이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제게 딸이 하나 있는데, 어머니 아버지가 오빠들은 잘 지원해주고 자기는 지원해 주지 않았다는 약간의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주 퀸즐랜드 대학에 가서 공부하게 되었고 거기서 스스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딸이 급한 일로 돈이 필요해서 우리에게 돈을 요청하면서 다 큰 딸이 손을 벌려서 죄송하다면서 울었습니다.

스스로 개척하게 되면 개척의 어려움도 알게 되고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커집니다. 한 목자님이 선배 목자와 같이 일하다가 스스로 개척하기를 원했습니다. 속으로 선배 목자를 무시하면서 스스로 개척하면 아주 잘 할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척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통해서 선배 목자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복이 있습니다.

셋째,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요셉 자손은 말합니다.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철병거가 있는데요.“ 그들은 자기들에게는 철병거들을 이길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반대로 말합니다. ”너희는 큰 지파요 큰 능력이 있다.“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너희는 그들을 쫓아낼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스스로 개척해보지 않고서는 자기들에게 그만한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개척하는 그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그래서 실제로 철병거를 이기고 개척을 하게 되면 자기들에게 그런 힘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피터 리 선교사는 한국에 있을 때 영어를 정말 못했다는 것, 공부도 못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영어 실력, 공부의 능력으로는 미국 자매와 결혼해서 미국에 가서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요? 그런데 실제로 믿음으로 미국 자매와의 결혼, 미국 선교사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도 영어를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부할 능력도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유대인 청년 다니엘은 청년의 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좁은 유대세계 안에 머물러 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넓은 바벨론 세계로 끌려가게 되었고 궁중장학생으로 뽑혔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바벨론 말, 바벨론 학문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세계에 던져지고 스스로 혼자서 그 세계에 맞서야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바벨론의 책을 읽고 학문을 이해할 지혜를 주셨고 결국 다니엘은 그 모든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세계에 도전했을 때 자기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듯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는 창조의 능력, 생각하는 힘,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생명력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에게 창조의 능력, 생각하는 능력, 생명력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은 가만히 있어서는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실제로 도전해야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한 주인이 세 종에게 각각 한 달란트씩을 주시면서 “장사하라(활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스스로 개척하는 일에 도전했습니다. 그랬을 때 한 사람은 열 달란트, 다른 하나는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열 달란트를 남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그 달란트로 스스로 개척하지 않고 수건에 가만히 싸두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에게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인생을 그냥 묵혀두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말씀하셨고, 그 하나를 빼앗아 열 달란트 남긴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이 가진 능력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 어떤 사람은 사람을 잘 사귀는 것,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 어떤 사람은 암기, 어떤 사람은 암기는 못하는데 이해는 잘 하는 것. 어떤 사람은 요리하는 것이 재미있는 것. 윤다니엘이라는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있는데, 그는 일찍부터 자기는 요리를 할 것이라 작정하고 대학은 안 가고 요리학교를 가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서 아무 능력도 안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능력은 스스로 개척할 때 나타납니다.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있는 능력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나한테 이런 능력이 있었나 하며 놀랍니다. 스스로 개척하지 않고 자기보다 더 힘센 사람, 더 능력이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에게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무슨 능력이 있는지도 모른 채 인생을 묵혀두게 됩니다. 반대로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은 능력을 알게 됩니다. 천모세 목자는 의대를 스스로 개척하면서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자기가 목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창수 목자님이 은퇴를 하셨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시면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요셉 자손은 스스로 개척하면서 무슨 능력을 알게 되었습니까?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처음 요셉 자손은 자기들은 철병거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개척하면서 철병거에 도전하게 되었고 이겼습니다. 철병거를 쫓아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저것은 이길 수 없어, 저것은 내 힘으로 절대 안 되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해도 그것은 못해 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 중에는 이성이 강한 사람이 있고 반대로 감성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성이 강한 사람이 볼 때 감성이 강한 사람은 철병거처럼 보일 것입니다. 반대로 감성이 강한 사람에게는 이성이 강한 사람이 철병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요한 목자님은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요한 목자님은 가끔 제게 말씀하시기를 제 방식의 성경공부가 없었다면 아마도 모임을 떠났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방식이라는 것이 성경을 이성적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이성적으로 공부하면 감성적으로 감동이 온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런 제 방식에 동의하는 것으로 봐서 요한 목자님이 이성이 강한 분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요한 목자님이 개척 초기에 종종 화를 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 말을 듣고 요한 목자님이 이성적인지, 감정적이신지 제게 혼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한 목자님이 화를 낸 경우는 이성적인 것이 통하지 않은 경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성이 강한 사람도 화를 냅니다. 그러나 자기 할 일은 합니다. 그러나 감성이 강한 이들은 감정이 상하면 마음을 닫아버리고 할 일을 하지 않기가 쉽습니다. 인제센타 형제들은 어느 쪽일까요? 자매의 경우는 드보라 목자를 보면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것 같아서 자매는 제외하고 형제들은 어떻습니까? 천모세 주니어, 피터 리 목자의 인생 소감을 보니 감성이 이성보다 센 것처럼 보입니다. 감성적인 사람을 대할 때는 감성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감정이 상한 사람에게는 그 하는 말이나 상황에 대해서 “그랬어요” “마음이 아프겠네요”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성적인 사람은 이성으로 설득하려 하거나 정답을 주고자 합니다. 제발 생각 좀 해 보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이 통하지 않으면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화를 내거나 외면해 버립니다. 그런 점에서 이성적인 사람에게 감성적인 사람은 철병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 목자님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씀을 따라 감성의 철병거에 도전하셨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엄청 깨지셨지요. 이성으로 감성을 깨려고 했는데, 도리어 이성이 감성에 깨졌습니다. 자신에게는 감성적 능력이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서는 이제는 감성적인 이들의 감정을 알게 된 줄 압니다. 자신에게 감성을 읽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에 모니카 사모님, 그리고 두 딸들 모니카, 레베카의 공로가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아들들만 있을 때는 이성만이 가동되었는데, 두 딸들로 인해 감성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한 목자님은 이제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룬 목자가 되셨습니다. 한편 감성적인 형제들이 요한 목자님으로 인해 이성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고 믿음에 굳게 서서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할 일을 하는 이들이 되었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워싱턴 선교사 피터 리 목자입니다. 천사라 사모님도 지난 30 년 간의 인제센타 생활을 통해서 감성과 이성이 잘 조화된 그런 분이 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로고스의 하나님, 곧 이성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감정으로 알기도 하지만 이성으로, 곧 깊이 생각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생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만 하나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읽으려면 이성적으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이성의 힘이 더욱 커져서 하나님의 생각을 읽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은 감성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시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십니다. 마음 아파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우리의 감성 또한 풍부해집니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 감성과 이성의 조화, 이것이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의 모습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이 말씀을 따라 스스로 개척할 때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 개척할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되면 자기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 존재, 삶에 대해서 스스로 한계를 정하기 쉽습니다. 혹은 다른 사람이 내 한계를 정해주기도 합니다. 너는 그것 밖에 할 수 없어. 너는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해. 자기가 만든 한계,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이런 한계에 갇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게 능력이 있는데도 알지 못합니다. 본문은 말씀합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스스로 개척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되고 자기 한계를 넘어섭니다. 여러분 중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스스로 개척하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여호수아 17:15)

2018 인제 30주년 기념 메시지 여호수아 1714 1718 이바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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