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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2 13:36

2019년 창세기 27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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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27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창세기 49:1-50:26

 

 

열두 지파를 위한 야곱의 축복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창세기 49:28)

오늘 메시지는 창세기 마지막 강의입니다. 창세기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은 뱀의 꾐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고, 에덴으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그 마음의 생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였습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으로도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악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드리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더욱 견고히 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이삭과 그의 아들의 야곱에게 이어졌습니다. 야곱은 자기 좋은 것은 어찌하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과 함께 하시고 그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도록 씨름하셨습니다. 그의 이름 야곱, 붙드는 자, 쟁취하는 자, 사기꾼이라는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이스라엘로 부르셨습니다.

그 씨름의 결과가 오늘 본문입니다. 야곱도 때가 되어 죽을 날이 가까웠습니다. 말하자면 그 인생을 정리할 때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49:1-28)

1,2절을 봅시다. 야곱은 죽기 전에 그의 열두 아들을 불러서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하였습니다. 이제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풍요로운 애굽 고센 땅에서 생업을 얻어 정착을 하게 된 시점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이제 그곳에서 그냥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사고 팔며 그대로 거기서 생각없이 살기 쉬운 때였습니다(마태복음 24:38, 누가복음 17:27). 이때에 이스라엘은 열두 아들들에게 그들이 후일에 당할 일을 증거합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일이 행하실지를 증거 합니다.

3,4절을 봅시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르우벤은 야곱의 장자로서 기력의 시작입니다. 장자로서 그는 두 몫의 유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였습니다. 그러나 르우벤은 물의 끓음 같았습니다. 물이 끓으면 넘지 말아야 할선을 넘습니다. 실제로 르우벤은 정욕을 다스리지 못해 아버지의 아내 빌하와 관계를 가지는 죄를 범했습니다(35:22). 이는 정욕 죄를 범한 것뿐만 아니라 질서를 어긴 심각한 죄악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장자로서의 받을 수 있는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5절을 봅시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로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야곱은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를 형제로 한 묶음으로 말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분노와 혈기를 쏟아 붓는데 있어서 서로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였습니다. 여동생 디나가 세겜성에서 강간당했을 때 그들은 그들의 분노대로 세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이에 야곱은 그들의 그 노여움이 혹독하고 분노가 맹렬하여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실 것이라 무섭게 저주합니다.

그런데 넷째 유다는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8,9절을 봅시다. 야곱은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유다는 왕처럼 형제들의 찬송을 받습니다. 또 사자와 같은 위엄과 힘을 가지고 원수의 목을 잡아 내리칠 것입니다. 또한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 곧 메시야가 오시기까지 하며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할 것이라고 합니다. 곧 유다에게서 왕이 나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진 믿음의 계승역사가 유다를 통해 이어지게 됩니다. 유다지파에서 다윗 왕이 태어나고, 여자의 후손으로서 원수 사탄의 머리를 박살낼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으로 이 축복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뿐 아니라 유다는 물질적인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의 나귀와 나귀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매며 또 그 옷과 복장을 포도주와 포도즙에 빨며,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해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게 될 정도입니다.

야곱이 왜 이렇게 유다를 크게 축복하는 것일까요? 오래전부터 야곱은 요셉을 편애하였습니다. 그에게 채색 옷을 입히고 특별히 사랑하였습니다. 그 요셉은 모든 형제를 구원하는 놀라운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요셉이 아니라 유다에게 이렇게 축복하였습니다. 우리가 르우벤이나 시므온이 아닌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아니라, 유다에게 믿음의 역사가 계승되는 것은 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유다는 형들처럼 문제가 많습니다. 그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또 그는 자기 아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욕을 채우고자 창녀로 변장한 그의 며느리와 관계를 하여 자녀를 낳았습니다. 또 동생 요셉을 팔아넘기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요셉은 그에 비해 흠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아니고 왜 유다일까요? 과거 유다는 문제가 많았지만, 후에 그가 회개하고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며느리 다말과 관계한 일이 드러났을 때 즉각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또 기근으로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 갈 때에 베냐민을 데려오지 못하면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요셉이 베냐민만 두고 가라고 할 때에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생각하며, 자신이 베냐민대신 종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그의 변화된 모습은 요셉도 감동시켰습니다. 그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과거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유다를 하나님 편에서 보고 그를 이같이 크게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죄와 허물이 많고 또 부족하더라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변화된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부족한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저는 왜 제가 인제 역사를 계승하게 되었는지 그것을 생각할 때 늘 놀랍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보아도 실수와 허물투성이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유다를 통해 제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의 역사에 쓰임 받는 비결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마가복음 1:15). 그러면 주님께서 저를 쓰실 것입니다. 혈기를 부리면 르우벤처럼 될 것입니다. 제가 저의 연약함이 어떠하든 저의 죄악 됨이 어떠하든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자신을 드려 주께서 맡기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할 때 주께서 저를 유다와 같이 주의 구원 역사에 쓰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13절을 봅시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고, 그곳은 항구가 될 것이며 그 경계가 시돈까지 이를 것입니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처럼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아래에서 섬길 것입니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길가에 숨어있는 뱀이나 독사처럼 말굽을 물어서 그 타고 있는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는 사탄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의 어두운 미래를 내다보면서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간절히 기도합니다(18).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지만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할 것입니다. 아셀은 기름진 옥토를 차지하고 왕의 수랏상을 차리게 됩니다. 납달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뛰노는 놓인 암사슴처럼 풍요를 누리게 됩니다.

22절을 봅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입니다. 샘 곁에 있는 가지는 얼마나 무성하게 잘 자라겠습니까? 그 가지가 번성해 담을 넘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입니다(시편 1:3). 그가 어떻게 이 같은 축복을 받은 것입니까?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대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23),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가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곧 여호와의 손을 힘써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24). 때문에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고 그에게 복을 주심으로 그가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25). 이 복은 영원한 산이 한이 없음같이 무궁한 복입니다(26).

27절을 봅시다. 막내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처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눕니다. 자기 것을 확실히 챙기는 축복을 받습니다(27).

다같이 28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이 축복한 이 열두 아들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입니다. 후일에 각 아들들은 한 지파를 이루는 각 지파의 조상들이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그의 아들들을 이같이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은 원래 그 이름대로 축복을 쟁취하고 받고자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애굽 왕 바로를 축복하고,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더니 이제는 그의 열두 아들들을 축복하는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변화되었을까요? 자신이 욕심과 뜻을 따라 복을 얻고 누리려 할 때 그는 험악한 세월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서도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세겜에서도 죽을 뻔했습니다. 이때 야곱은 자신을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따라가면 약속대로 복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이로서 그는 자기 욕심대로 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가는 삶이 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그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이 복 주심을 따라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하되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먼저 열두 아들들 각 사람을 각각 축복하였습니다. 각 아들의 개성과 특성을 알고 그 개성과 특성을 따라 각각 축복하였습니다. 또한 야곱은 그들 각 사람을 축복하되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정욕과 혈기를 따라 악을 행한 아들들은 무섭게 저주했고, 정과 욕심을 버리고 선을 행한 아들들은 크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평소에 자식들이 잘못을 많이 하고 속을 썩게 했을지라도 이제는 죽을 때가 되면 자식들에게 좋은 말만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각 아들들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있는 그대로 축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분이십니다(로마서 2:3). 이로 볼 때 야곱이 지금 아들들에게 하는 이 축복은 그들의 삶에 대한 평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입니다. 그런 점에서 야곱이 르우벤, 시므온, 레위나 단에게 하는 무서운 저주는 겉으로 볼 때는 저주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향한 축복입니다. 그들도 어찌하든 죄에서 돌이켜 무서운 저주와 심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돕기 위한 회개와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는 야곱을 보면서 저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앞으로 양들과 잔녀들에 대해서 제가 실제로 어떻게 행하고 도와야 하는지를 이 시간 새롭게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저는 양들을 돕는다고 하면서 그들을 저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과 눈으로 보고, 또 좋은 마음으로만 돕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죄 문제가 보이더라도, 듣기 거북해 하거나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문제가 더 커지거나, 양들이 실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축복은 사람들이 듣기에 좋아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그 사람이 죄를 회개하도록 돕는 것이 진짜 축복입니다. 제가 이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로써 이제 정신을 차리고 사람으로 죄를 깨닫게 하고 죄에서 회개토록 돕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49:29-50:26)

29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은 각 아들들을 그 분량대로 축복하고 이제 자신도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니 선조들과 함께 자신도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묻어달라고 명하였습니다. 자신을 이곳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고 합니다. 그는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았습니다(46:4). 그리고 이 소망가운데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었습니다(32).

501절을 봅시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이 울며 아버지의 얼굴에 입 맞추었습니다. 그는 40일 동안 그의 몸에 향재료를 넣게 하며 장례를 준비했고 애굽 사람들은 칠십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습니다(2,3). 바로도 요셉의 맹세대로 그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해주었습니다(4-6). 이에 바로의 모든 신하와 궁의 장로들, 애굽 땅의 모든 장로들, 요셉의 온 집과 그 형제들, 아버지의 집이 다 요셉과 함께 가나안에 올라갔고 병거와 기병도 함께 올라갔는데 그 떼가 심히 컸습니다(7-9). 이같이 야곱은 어느 왕보다도 성대한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이후 야곱의 아들들은 그의 아버지의 명을 따라 막벨라 굴에 그를 매장하였습니다(10-13).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평안히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약속을 바라보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죽은 후 애굽으로 돌아오는 요셉의 형들의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14). 이는 동생 요셉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15). 이제까지는 아버지 야곱이 있어서 요셉이 자기들에게 복수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셉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16,17절을 봅시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이 말을 들은 요셉은 아직도 형들이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고 안타까워서 울었습니다. 울고 있는 요셉에게 형들은 그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였습니다(18).

요셉은 이런 형들을 어떻게 위로합니까? 19절에서 21절을 봅시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요셉은 먼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형들이 자신에게 악을 행한 것은 사실이라 하였습니다. 요셉도 지난날에 자신이 당한 일을 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할 마음이 없습니다. 형들처럼 지나간 그 날의 일로 괴로워하거나 자신이 받은 상처에 울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자신을 통해 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같이 과거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와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하면 이전에 행한 죄로부터 오는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요셉과 같이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사람은 끊임없이 악을 행하였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죽고 죽이는 악을 행하며 고통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죄악가운데 고통하고 어두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보실까요?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또 각 사람을 어찌하든 죄로부터 구원하고자 하시는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실제로 이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은 요셉의 형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선을 행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사람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어떻게 바꾸셨습니까?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바꾸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증거하는 이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선을 변함없이 행하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과거 많은 악을 행했고 또 원치 않게 악을 계속 행할 수밖에 없는 죄인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우리가 악을 선으로 바꾸신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무겁게 짓누르는 모든 죄의식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간 끊임없이 저의 악함으로 인해 다시 시름하고 죄의식으로 고통 할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창세기 말씀을 통해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보여 새롭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저의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모든 죄의식과 두려움과 염려로부터 자유 함을 얻고, 이 기쁜 복음의 소식을 증거 하여 요셉과 같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22,23절을 봅시다. 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서 백십 세를 살며 증손자까지 보았습니다. 그는 죽을 때에 그의 형제들에게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24).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살면서 애굽의 화려한 삶을 즐기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아버지 야곱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했고, 그도 죽을 때 후손들에게 이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분명히 심기 위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반드시 그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도록 맹세시키고 백 십세에 애굽에서 죽었습니다(25,26).

이상에서 우리는 창세기에서 증거 하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또 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원하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선하게 지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 어떠할지라도 변함없이 선을 베풀어 주시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악하게 변해 버린 사람이라도 어찌하든 구원하고 살리고자 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악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악함이 어떠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유다처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어둡고 악한 세상에서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의 생명을 구원하고 살리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능히 쓰임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창세기 49:28)

 

2019 창세기 27강 메시지 4901-5026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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