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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14강 정여호수아

사도행전 15:1-35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사도행전 15:11)

안디옥에서 최초로 이방인교회가 세워지고, 1차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겼습니까?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1-5)

1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형제들을 이같이 가르쳤습니다.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이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 일어났습니다(2). 바울 뿐 아니라 위로의 아들, 누구보다 수용적이고 마음이 넓은 바나바까지도 그들과 크게 다투었습니다. 이는 타협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할례를 받으면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고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고, 구원에 대한 더 큰 믿음과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 정도의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아예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는 일입니다. 한치도 물러서거나 양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이런 다툼을 계속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안디옥 성도들은 착잡했습니다, 지도자들이 이렇게 계속 다투고 있으니, 누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 자체가 피곤합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고, 갈등은 더욱 커졌습니다. 한마디로 은혜가 안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안디옥교회는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습니까? 2절 하반절을 봅시다.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당사자인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그 중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직접 듣고 받은 사도와 장로들이 있으니, 그들이 가장 올바른 판단을 해 줄 것을 믿고, 합당한 방향을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그들도 그 의견에 동의하여 교회의 전송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있는 그들은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보고하였고, 이를 들은 형제들이 다 크게 기쁘게 하였습니다(3). 예루살렘에 이르러서도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였습니다(4). 이같이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역사를 온 힘을 다해 증거함으로,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게 하고자 힘썼습니다. 그런데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합니다.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5) 이들은 한술 더 떠서 할례뿐 아니라 모세의 율법까지도 다 지켜 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유대교의 바리새인이라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는 것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고,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율법에 기초한 절제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먹어도 되는 음식,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에 대한 구별도 철저했습니다. 불이익이 있어도 안식일을 철저하게 구별하여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과 수고와 헌신도 하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오직 예수님을 믿는다는 한 가지 이유로 자기와 같아진다는 것을 용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같이 믿지만 같은 형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같아지려면 자기들처럼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인정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옵니다(마태복음 21). 새벽부터 하루 종일 일한 품꾼들이 오후 5시에 나와서 1시간만 일한 품꾼들과 똑같이 대우받자, 주인에게 항의합니다.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일한 자신들과 어떻게 한 시간 일한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하는 이런 부당한 처사가 어디 있느냐고 항의합니다. 이 비유에 비추어 본다면, 바리새파 신자들은 새벽부터 나와 일한 사람들입니다. 이방인 신자들은 오후 5시에 와서 조금 일하고 하루 일당을 다 받은 것입니다. 바리새파 신자들이 보기에 이는 부당합니다. 그들이 한 행위에 따라 차별하는게 정당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율법적이고 유대인 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지금 예루살렘 교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사도행전 21:20). 자칫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전 유대교로 회귀할 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때 베드로가 일어나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동일하게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6-11)

6절을 봅시다.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였습니다. 그들 가운데서도 많은 변론이 있었습니다(7).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이 이방인들 속에서 일하셨다라고 증언했는데, 베드로는 이를 그대로 받아서 고넬료 사건을 언급하며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증언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시려고 베드로를 택하셨습니다(7). 베드로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사도 중의 사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택하셔서 이방인 복음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곧 이방인 복음 사역은 하나님께서 친히 시작하신 일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유대인과 같이 이방인에게도 성령님을 주어 증언하셨습니다(8).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으로 이방인의 마음을 깨끗이 하셔서 차별하지 않았습니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주께 돌아온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10절을 봅시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들과 그들 자신도 능히 메지 못하는 멍에를 이방인 제자들의 목에 두려는 것입니다. ‘멍에무거운 짐을 끌거나 밭을 가는 쟁기를 끌도록 소의 목에 걸어두는 도구입니다. ‘행동에 구속을 받게 하거나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도 지지 못하는 무거운 짐을 이제 힘내어 걸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지우는 일은 그야말로 양심불량입니다. 하나님을 뜻을 거스르고 시험하는 일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무엇이라 말합니까?

다같이 11절을 한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시작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여기서 두 단어가 중요합니다. ‘동일하게은혜로입니다. 실은 한 단어입니다. 동일하기에 은혜입니다. 동일하지 않다면, 은혜가 아니라 자격이 됩니다. 유대인들이 할례나 율법준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방인들도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어떤 죄가운데 있든, 어떤 치명적인 약점과 허물이 있든, 어떤 운명적인 환경과 조건가운데 놓여 있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에게나 구원의 소망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이전과 다른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 치우쳐 가고 있어도, 심지어 다른 사도와 장로들도 잠시 흔들리고 있더라도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이 복음의 진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자기가 무슨 자격이 되어서 구원을 받고, 사도가 된 것이 아님을 그는 잘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죽음의 두려움앞에 도망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누가복음 22:57-61) 그런데 주께서 이런 그를 다시 찾아오셔서 세 번 사랑 고백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요한복음 21:15-17). 이같이 죄인된 자신을 향한 주의 사랑과 그 베풀어주시는 은혜가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은혜가운데서 그는 자기를 의지하던 데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만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반석으로 쓰임받은 비결입니다.

바울 사도 또한 일생동안 주 예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10) 그는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죄인중의 죄인,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구원의 은혜를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핍박자, 박해자, 교회에 해를 끼치던 자를 동일하게 사도로 부르신 은혜를 자랑했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고, 주 예수의 은혜로 사도의 삶을 살며, 주 예수의 은혜로 하루하루 주 예수님을 닮고 배워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심지어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으심, 그리고 부활까지 닮아가고자 했습니다(빌립보서 3:10). 신앙생활은 바울처럼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주 예수의 은혜로 살아가고, 주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알고 주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 같은 자에게도동일하게 은혜를 주셨음을 항상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의 말이 끝났을 때 온 무리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2절을 봅시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그들의 신앙 양심이 깨어났습니다. 이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믿음의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이 때 바나바와 바울도 힘이 나서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더욱 힘내어 보고하였고, 이를 모두가 경청하였습니다(12).

이로 볼 때 오늘 본문에 나온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이방인 구원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동시에 유대인의 구원 문제도 같이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을 보면, 아직도 그들은 율법 신앙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믿고 돌아온 이방인들을 돕는 문제를 통해 다시 율법신앙으로 변질되어가는 예루살렘 교회를 흔들어 깨우고, 이 문제를 확실히 드러내시고 이를 도려내고자 하셨습니다.

교회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어디를 가든 문제가 있고, 또 믿음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있습니다. 그 믿음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을 통해서 늘 문제가 발생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늘 새로운 일을 하시고, 그들을 쓰셔서 선하게 역사를 하십니다. 그 드러난 문제를 통해 하나님은 복음의 진리를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시고, 믿음의 공동체를 더 견고하게 건강하게 온전하게 세워 가십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 안에 주 예수의 은혜가 살아나게 하십니다. 주 예수의 은혜 안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이를 믿음으로 언제라도 속에 있는 데로 말하고,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오늘은 또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봐 늘 전전긍긍하는 삶을 내려놓고, 무슨 일이든지 주께서 하고자 하시는 선한 일이 있음을 믿고 나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베드로의 증언으로 여러 논쟁으로 치닫던 모임이 잠잠해 졌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교회 총회장인 야고보가 일어나 말합니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13-35)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신 것은 시므온의 증언일뿐 아니라(14) 선지자의 기록된 말씀도 이와 일치한다고 합니다(15). 기록된 아모스 911,12절 말씀을 인용하면서(16,17) 이방선교는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해 놓으신 말씀의 성취임을 증거하였습니다(18).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19),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20). ‘우상의 더러운 것우상의 제단에 바쳐지고 나온 음식을 말합니다, ‘음행가까운 친척들끼리 근친혼을 하는 것이나, 이방신전에서 제사 드리면서 남녀가 정욕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목매어 죽인 것은 피를 빼지 않고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주로 이교도들의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들로 유대인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것들입니다. 최소한 이런 것들을 금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21절을 봅시다.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곧 이방인 신자와 유대인 신자 간의 교제에 거리낌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에 사도와 장로들과 예루살렘 교회는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22).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 사항을 보증할 사절로 뽑혔습니다(22).

23-29절은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이 이들 편에 부친 편지의 내용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가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보낸 사람들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24). 대신 바울과 바나바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이라고 최고의 칭찬을 함으로써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깊이 신뢰하는 훌륭한 목자임을 보증했습니다(25-26).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 사항이 무엇입니까? 28,29절을 봅시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사도와 장로들은 이 결정이 성령과 우리의 결정이라고 하여 성령을 앞세웠습니다. 이 편지로 예루살렘 교회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를 수호하고 확증했습니다. 이로써 기독교는 유대교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놓게 되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에 그들이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30), 무리가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였습니다(31). 그들은 율법의 무거운 멍에와 짐을 벗어나 다시 주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는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그들은 흔들리던 신앙을 바로 잡고 복음 진리 위에 굳게 서게 되었습니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이므로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였고(32), 거기서 얼마 동안 지낸 뒤에 형제들에게서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33). 이 일로 큰 힘과 위로를 얻은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유하며 수다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는 일에 더욱 힘을 썼습니다(35).

우리 각 사람이 나 같은 자에게도 동일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기억함으로 돌아오는 영혼들에게 주께 입은 그 은혜를 베푸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께 입은 은혜가 늘 우리 속에 살아 있어 어떤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함께 하며, 서로를 돌아보며, 진리의 복음을 지키고 수호하고, 또 요긴한 것들을 하나하나 세워나갈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사도행전 15:11)

 

 

2023년 사도행전 14강 메시지 1501-1535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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