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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11강 정여호수아

사도행전 11:19-12:25

 

 

안디옥 교회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사도행전 11:26)

 

오늘 말씀은 안디옥교회 이야기입니다. 10장의 고넬료가 이방인 신자를 대표한다면,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교회를 대표합니다. 이제 사도행전은 유대인 중심에서 이방인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역사가 있었을까요?


몇 사람이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니(11:19-21)

1119절을 봅시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성도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도망쳐 왔습니다. 그들은 핍박을 당해도 타협하지 않고 고향을 버리고 떠날 정도로 믿음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도망 온 그곳에 이르러서도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였습니다(20). 그러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21).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것을 보면, 거물급 인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에 의한 주목받지 못한 역사였습니다. 그것이 안디옥교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주의 손은 우리의 계산과 예측을 뛰어넘어 새 일을 하십니다. 사도가 아닌 빌립이 사마리아를 개척한 것도, 사도가 아닌 스데반이 첫 순교자였다는 것도,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대적하고 박해했던 사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받은 것도 우리의 예측을 벗어납니다. 저 같이 점과 흠이 많은 자가 인제역사를 계승하게 된 일도 그러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주님의 손길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과 계산 너머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소망을 갖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사람을 가리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이 전해지면 그곳이 어디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주의 손이 함께 하십니다. 아멘!

그런데 이같이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 주목받지 못한 역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더라(22-26)

22절을 봅시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파송하였습니다. 바나바는 그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고 이를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이에 그들을 향해 권면합니다.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라”(23) 보통의 유대인 목자였다면 헬라인들의 부흥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주께로 돌아온 이방인들을 크게 축복하고, 그들이 믿음을 잘 간직하도록 도왔습니다. 그 자신이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편견없이 영접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어디를 가서도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24). 그리하여 안디옥가운데 이전보다 더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는 은혜로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때 바나바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25절을 봅시다.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갔습니다. 가장 바쁠 그때에 그는 왜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갔을까요? 주께로 돌아온 이방인들을 말씀으로 깊이 있게 도울 수 있는 성경선생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전에 주께서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셨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났던 것 같습니다(사도행전 9:15). 그럼에도 과거에 너무나도 화려한 경력이 있는 사울과 함께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착한 사람입니다. 곧 사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먼저 주의 뜻을 구하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사울의 과거의 이력이 어떠하든, 그가 정말 필요한 일꾼이라면 그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에 그를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26).

그렇게 둘이 합심하여 일년 동안 말씀을 가르치며 제자들을 도왔을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26절 하반절을 봅시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들이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비로소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유대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방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교회안에서 그들 자신이 이렇게 호칭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것도 그렇게 좋은 뜻으로 부른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소위 말하면 한국에서 예수쟁이라고 하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왜 이렇게 불렀을까요? 입만 열면 그들의 입에서 그리스도가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시작되고, 그리스도로 연결되고, 그리스도로 귀결되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 그리스도께서는 뭐라고 하셨는지 생각하고 행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삶의 표준이요 기준이었습니다. 자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불렸던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안디옥 교인들이 최초로 들었습니다.

요즘 그리스도인’, ‘기독교인’, ‘크리스찬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예수님의 자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믿는다면서 실제로는 자기 스타일, 자기 주장대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좋은 것은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부담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스타일에 맞는 것은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살아온 스타일과 다르고, 이해가 안되는 것은 비난하고 무시합니다. 한마디로 자기 중심입니다. 여전히 자기가 왕이고, 자기가 주인입니다. 복음도 자기 필요에 따라서 받아들입니다. 아니다 싶으면 뱉어냅니다. 이런 사람을 무늬만 신자라고 합니다. 지금 나는 어떠한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정말 뭘 중심으로 삼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러면 안디옥 성도들은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교회에 계속 있다 보니 된 것일까요? 아니면 세월이 가다보니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된 일까요? 아니면 성령님의 무슨 특별한 간섭으로 된 일일까요? 아니면 무슨 큰 표적과 기사의 역사로 된 일일까요? 26절을 볼 때 이것은 그들이 단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일년동안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서 열심히 말씀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그들을 지배하고 복음이 그들의 중심에 자리 잡고, 그들의 삶을 새롭게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곧 말씀의 능력입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어떤 사람이라도 그 심령을 찔러 쪼갭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합니다(고린도후서 10:5). 또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한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디모데후서 3:16,17).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순간에도 놓치지 말고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감동이 우리 안에 역사하여 우리의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고, 소원이 변하고, 인격이 변하고, 삶이 변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 속하지 못한 것으로 아쉬워하고, 세상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과 다르지 않은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고, 애통해하는 거룩한 주의 사람이 됩니다. 진실로 말씀을 듣고 가르치고 배우는데 그 모임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과 소망을 따라 계속해서 성경말씀을 배우는 일에 힘쓰길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안디옥 교회의 실제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27-30)

27,28절을 봅시다. 그때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처럼 글리우디오 때에 온 천하에 큰 흉년이 왔습니다. 이 흉년으로 인해 물가는 오르고 인심이 사납고, 갈수록 먹고 살기가 팍팍했을 것입니다. 특히나 예루살렘은 흉년에 직격탄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에 안디옥교회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29,30절을 봅시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지금 풍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 자신도 흉년으로 인해 지금 먹고 살기가 어렵고 팍팍합니다. 더군다나 지금까지도 유대 형제 중 대다수가 자신들을 같은 형제자매로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에 있는 형제들을 같은 형제요 동역자로 알고 그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부조를 보내기로 마음에 작정을 했습니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그들을 위해 자신들의 손을 폈습니다. 이같이 안디옥 교회는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요한일서 3:18). 자신들과는 다른 유대인이라고 해서 거리를 두거나 도움의 손을 거두는 편협한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에 걸 맞는 풍성한 사랑을 가진 품격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안디옥교회처럼 손을 펴서 이웃을 실제에서 사랑하고 베풀고 섬기는 데 풍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안디옥교회가 주의 말씀으로 이같이 든든하게 서 갈 그때에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를 해하려 하여(12:1-19)

121절을 봅니다. 사울이 회심하여 박해가 잠잠해지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헤롯 왕이 박해를 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으면 사탄의 역사도 언제나 함께합니다. 헤롯은 요한의 형제 사도 야고보를 죽입니다(2).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이제는 베드로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고 유월절 지나면 처형하고자 했습니다(3). 이전처럼 혹시나 모를 탈옥을 대비하여 4명씩 4개조로 짜여진 군인들을 베드로 옆에 붙여 24시간 감시하도록 했습니다(4). 이제 베드로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습니다. 교회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5).

그런데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6,7절을 봅시다. 헤롯이 베드로를 처형하려고 작정한 전날 밤에 베드로가 잠자고 있는데,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며 말합니다. “급히 일어나라그러자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졌더니, 이어 천사가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하니베드로가 그대로 했습니다(8). 그때까지도 베드로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 줄로 알았습니다(9). 그렇게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렸고, 감옥을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니, 천사가 곧 떠났습니다(10). 베드로는 그제서야 주께서 천사를 보내어 자신을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11,12). 베드로는 기도하면서도 자신이 이런 식으로 구원받을 줄 전혀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베드로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12절을 봅시다. 그때에 성도들은 마가의 집에 모여 베드로의 석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집을 찾아가 대문을 두드리자 로데라 하는 여자아이가 맞이하러 나왔습니다(13). 여자아이는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너무 기뻐하여 미처 문을 열어주지도 않고 집안으로 달려가 외쳤습니다(14). ‘베드로 사도님이 대문밖에 서 있어요!’ 그러자 그들이 네가 미쳤다하니, 여자 아이가 힘주어 말합니다. ‘참말이라니까요’. 그러자 그들이 말합니다. ‘그러면 그의 천사겠지’(15) 그러는 사이 베드로는 답답하여 대문을 계속 두드렸고, 그때서야 그들은 베드로가 풀려난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16).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기대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보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저도 기도는 합니다. 그러나 정작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의 탈출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실제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돌아가는 현실을 보고 있으면 과연 하나님께서 일하실까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기도라도 받으시고 친히 일하십니다. 이번에 봄수양회를 섬기면서 저는 이를 실제로 체험했습니다. MT수양회로 거창하게 이름을 정했지만 정작 양들이 아무도 초청되지 않아서 힘이 빠져있었는데, 학생들이 전한 메시지를 통해 제가 이제까지 참석했던 그 어떤 수양회보다 더 큰 은혜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가 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좌절하고 절망하기를 반복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일하심을 믿고, 기도하는 믿음의 자리로 계속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번 여름수양회를 이 믿음으로 기도하며 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7절을 봅시다. 이후 베드로는 그들에게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다음날 베드로의 탈옥으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적지 않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18,19). 어찌되었든 야고보는 죽고, 베드로는 떠나갔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20-25)

20절을 봅시다. 당시 두로와 시돈은 무역을 통해 얻은 돈으로 헤롯에게 양식을 사서 먹었는데 헤롯이 큰 흉년을 빌미로 이를 막아버렸던 것 같습니다. 이에 그들이 한마음으로 나아와 그의 신하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화목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이에 헤롯이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여기저기서 아부성 발언이 쏟아졌습니다(21).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22). 그렇게 자신을 신으로 추앙해주니 헤롯은 정말 자신이 뭐라도 된 것 마냥 더 기고만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는 그를 하나님께서는 가만두지 않으시고, 주의 사자를 보내 쳐서 벌레에게 먹혀 죽게 하셨습니다(23). 헤롯이 그토록 허무하고 비참하게 죽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후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4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야고보는 죽고 베드로는 다른 곳으로 떠나갔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세상권세를 갖고 있는 헤롯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의 영광을 구하는 자와 주께서 함께 하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붙들고 씨름하는 자들, 말씀을 믿고, 배우며, 전하고, 가르치는 자들, 말씀 따라 기도하는 자들과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실제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힘쓰길 기도합니다. 말씀 따라 기도하고 인내함으로 세상속에 살지만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 능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사도행전 11:26) 


2023년 사도행전 11강 메시지 1119-1225 정여호수아.hwp


  1. 2023년 사도행전 19강 메시지(정여호수아)

  2. 2023년 사도행전 18강 메시지(천모세)

  3. 2023 사도행전 1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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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23년 사도행전 15강 메시지(김아브라함)

  6. 2023년 사도행전 14강 메시지(정여호수아)

  7. 2023년 사도행전 13강 메시지(정여호수아)

  8. 2023년 사도행전 12강 메시지(천모세)

  9. 2023년 사도행전 1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10. 2023년 사도행전 10강 메시지(정여호수아)

  11. 2023년 봄 MT수양회 주제메시지(여동현)

  12. 2023년 봄MT수양회 개회메시지(오페트라)

  13. 2023년 사도행전 9강 메시지(김아브라함)

  14. 2023년 사도행전 8강 메시지(정여호수아)

  15. 2023년 부활절 말씀 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16. 2023년 부활절 말씀 1강 메시지(천모세)

  17. 2023년 사도행전 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18. 2023년 사도행전 5강 메시지(김아브라함)

  19. 2023년 사도행전 4강 메시지(정여호수아)

  20. 2023년 사도행전 3강 메시지(정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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