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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30 강 김아브라함

마태복음 20:17-34

 

 

도리어 섬기려 하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오늘 요절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 “도리어라는 단어가 머리에 맴돕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난데 하며 내가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며 소리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 왕이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오셨습니다. 이 시간, 도리어 섬기려 하신 예수님을 알며, 또 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 우리는 어떻게 섬겨야 할지 알고 행하길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와 요한도 몇 년 째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있을 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서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원하느냐(17-23)

17절부터 봅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 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길 가시다가 걸음을 멈추고 따로 열 두 제자에게 말씀하셨으니 뭔가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중에 예수께서 열 둘을 따로 부르셨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고백하였습니다(16:16). 베드로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은 이 고백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16:18). 또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라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하리라하셨습니다(19:28).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중심도시로 가는 때였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곧 뭔가 사건이 날 것이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무엇인지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8,19절입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예수님은 제자들이 뭔가 인간적인 기대나 소망을 할 때쯤 그 기대에 찬물을 뿌리십니다. 예수님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왕으로 등극할 것을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그들 앞에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이전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십자가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베드로는 처음 예수님이 십자가를 이야기 했을 때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계속해서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이 뭐라고 하든지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지금은 영접하지 못할지라도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를 제자들이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뜻을 알고 영접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제자들이 함께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가고자하시는 그리스도의 길과 제자들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길이 달랐습니다. 그 때에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했습니다(20). 쭈뼛거리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원하느냐물으십니다(21). 그러자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하였습니다(21). 이제 곧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에 자기 아들을 좌우편에 꽂아 달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먼저 고백한 베드로 때문에 자기 아들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만년 2, 3위에 머물 것 같았던지, 자기 아들을 1, 2위로 자리를 확정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엇이라 답하십니까? 몹시 궁금합니다. 22절을 봅시다.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께 자신들의 자리를 요구하는 그들이지만,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하십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예수님 옆자리는 승리의 건배를 드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십자가의 쓴잔을 마시는 자리요, 부활 승천하신 하나님의 옆자리입니다. 예수님은 도리어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네가 마실 수 있느냐물으십니다. 무슨 잔인지도 모르면서 자리에 눈이 먼 그들은 할 수 있나이다대답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장이 되면 그 권세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예수님 옆 자리인데, 그 자리만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23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하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고난의 쓴잔을 마셨습니다. 야고보는 사도 중에 첫 순교자가 되고,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죽을 때까지 고난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들이 이러한 고난을 감내하더라도 예수님 옆 자리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다 그 뜻들은 모아서 살펴보면 결국 자기 잘 되려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자기 욕심과 이상을 위해, 더 나아가 천국 가기 위해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신지, 예수님이 하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구하기보다, 자기가 어떻게 되는지 더 생각이 많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인지, 내가 하는 일을 예수께서 도와달라는 건지, 때로는 애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주를 따르는 것입니까?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도리어 섬기려 하고(24-28)

엄마까지 동원해 자리를 구하는 요한과 야고보에 대해 열 제자가 듣고 분히 여겼습니다(24). 페어플레이하지 않고 엄마 찬스를 써서 분을 냈겠습니까? 자기들도 자리 욕심이 있는데 선수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자들을 불러다가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25) 세상 사람들이 자리를 갖고 다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리에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자기 뜻대로 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통령 욕하면서 대통령이 되려고, 또는 대통령 라인에 서려고 줄을 서 있는 이유는 실상이야 어떻게 되었든 자기 마음대로 한번 해보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라 말씀하십니다(26). 여기에서 너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 사람과 같다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26,27) 크고자 하는 것,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로 권위에 눌려서 어쩔 수 없이 따르게 한다면, 앞에서는 , 할지 모르지만 뒤돌아서서는 욕하고 따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섬기는 자, 종으로 그들의 필요를 알고 도울 때 그들이 듣고 따르게 됩니다.

이 말씀하시는 예수께서는 이를 행하십니다. 2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하늘에는 사람들의 찬송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제물이 올라오는 동안 식어서, 아니면 사람들의 경배를 직접 받고자 내려오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섬김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지만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오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섬기셨습니까? 병든 자, 귀신들린 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영접하시고 고치셨습니다. 어린아이도 다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도 항변하는 베드로, 십자가 앞에서도 자기 자리를 요구하는 야고보와 요한을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피로 우리 각 사람이 죄로 말미암는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얻었습니다. 내 죄로 내가 죽어야 마땅하지만,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희생으로 그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섬김과 희생 없이는 사람 살리는 구원의 역사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도 이를 알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몹시 어려웠습니다. 마치 날 때부터 눈이 먼 맹인과 같습니다. 그러나 맹인도 눈을 뜹니다. 어떤 맹인이 눈을 떴습니까?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29-34)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리고를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랐습니다(29). 이때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30)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해도 더욱 소리질러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소리쳤습니다(31).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32). 그들의 대답은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합니다(33).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이 무엇을 구해야 할지, 또 누구에게 구해야 할지 알고 구했습니다. 앞에 있을 십자가와 부활을 이야기하는데 자리를 구하는 자들보다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아는 맹인들이 훌륭해 보입니다. 그들 스스로 맹인인지 알고 보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어떤 점에서 맹인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모릅니다. 여러 가지 섬긴다면서 분주한데 정작 일을 해치우는 것인지 사람들을 살리고자 자신을 내어놓는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알기는 하나 싶습니다. 내 생각에. 내 때는 이러했으니까? 나는 이렇게 도움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자 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그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또 맹인이 눈 뜬다는 것은 아예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맹인들은 예수님을 찾아 자신들의 눈 뜨기를 구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성경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만나고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이렇게 하면 된다는 식의 메뉴얼을 만들어 따르면 바리새인이 되기 쉽습니다. 또 예수님의 뜻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고난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을 괴롭게 할 뿐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알고 체험하고 믿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고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을 알고 배워 섬김이 무엇인지 찾고 구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구속 역사에 자신을 드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더욱 풍성한 생명 누리길 기도합니다. 아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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