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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예레미야
2019.01.01 13:37

2019년 신년 3강 메시지(천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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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신년 3강 천모세

예레미야 29:1-23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13)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처한 현실은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새해가 시작되니 새로운 소망이긴 한데, 현실을 생각할 때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새로운 결단보다는 버티기라도 잘 해야 할 텐데 싶어서 걱정이 앞섭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우리에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나의 말을 성취하여(1-11)

오늘 말씀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긴 때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고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모두 탈취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의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갔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비천한 자 외에는 남은 사람이 없을 정도 였습니다. 여호야긴 왕과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의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습니다.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 대신에 숙부인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랴로 고쳤습니다(열왕기하 24:10-17).

이런 때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보내는 사신 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습니다(3). 4절 말씀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라고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포로로 끌고 갔는데 하나님께서 사로잡혀 가게 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느부갓네살의 파워에 굴복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고난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재앙과 같은 일을 겪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세상에서 받는 고난인지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쓰셔서 받는 고난인지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십니다(5).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라 하십니다(6). 그들의 자녀들도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게 하고 거기에서 번성하여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하십니다(6). 그 곳에서 나오라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정착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로잡아온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십니다(7). 그들을 위해서 저주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평안하도록 기도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자신들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포로로 사로잡아온 그들을 생각할 때 분노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대항하지도 못하고 무력하게 당한 자신들의 약함에 울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살다가 자신들 뿐 아니라 자녀들까지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루 속히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런 때에 그들에게 그럴 듯한 메시지를 전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선지자 하나냐는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꺽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하였습니다(28:11).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어버리시고 이 년 안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메시지입니다. 정말 그들이 원하고 듣고 싶었던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두 선지자가 각각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며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하나냐의 메시지가 듣기에 좋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괴롭히는 원수와 같은 바벨론을 꺾으시는 것이 마땅해 보입니다. 실제로 하나냐는 당시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예레미야는 백성들로부터 배척당하고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말씀하십니다(8). 이런 혹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자들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음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였습니다(9). 그들이 꾼 꿈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하십니다. 바라는 것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0). 이곳이 어디일까요? 그들에게 이곳은 고향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약속의 땅에서 사로잡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 하지만 실제 현실은 이방의 땅에서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하신 약속을 깨시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하며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이곳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들과 맺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약속의 땅은 과연 어떤 땅입니까? 아브라함은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창세기 12:1-4). 그는 그의 가족과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2:6,7). 그런데 그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라 전합니다(히브리서 11:9). 그가 약속의 땅임에도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살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살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브리서 11:10).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살면서도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히브리서 11:16).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로볼 때 약속의 땅은 단순히 예루살렘이라는 장소가 아닙니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현지 신, 하나님이 아닌 우상 바알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거주한다 하나 실제로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었고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 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바벨론을 쓰십니다.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칠십 년이 차야 합니다. 칠십 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징계를 받아야 할 시간입니다. 70은 성경에서 완전수로 쓰였습니다. 그들의 죄값이 완전히 다 치루기까지 칠십년이 채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그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1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어긴 그들을 징계해서라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당장에 바벨론의 포로의 생활은 재앙 같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재앙 가운데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생각이 무엇인지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서 우리의 죄에 대해서 벌하시지만 우리를 영원히 징계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때로는 재앙과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벌하시는가 싶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지만 약속을 지키지도 못하고 능력 있게 행하지 못하는 자신을 볼 때에 괴롭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간당간당한 저에게 과연 무슨 평안이 있으며 미래와 희망이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매일 죄를 더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제 인생에 재앙이 생기지 않을까 자주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말씀대로 살지도 못하고 죄로 고통 하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주시고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제 자신을 생각할 때에는 별로 소망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든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죄로 인해서 징계 받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생각이 무엇인지 알 때에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소망을 알고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기도하라(12-2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12,13). 기도하면 최종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되 온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하는 것은 기도할 때에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진실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하는 것입니다. 온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만나주십니다.

14절을 봅시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에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그들이 포로된 땅에서 그 땅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주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19,20).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지 먼저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저는 수십 년 동안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저에게는 말씀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 들었던 말씀을 저는 또 다시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말씀 듣는 장소에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제 마음은 먹고 사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잃어버린 저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바벨론의 포로 된 자와 같이 괴롭습니다. 저에게 평안이 없고 미래와 희망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때로는 재앙과 같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야간 근무를 하다가 내 상황과 관계없이 응급실로 몰아닥치는 환자들이 부담스러워 어디론가 도망을 가고 싶었습니다. 저의 유일한 희망은 짧게는 오프를 기다리는 것이고, 조금 더 길게는 2월 말까지의 Day, Day, Night, Off. 이틀 낮근문, 하루 밤근무, 그리고 하루 휴식의 지옥 같은 근무가 끝나는 것입니다. 젝 바라는 바는 그저 평일에 오후까지 근무하고 주말에는 쉬는 편한 근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프한다고 저에게 참 만족이 없습니다. 오프 때에 가족들과 여행을 가보기도 하고 맛있는 것 먹으러 가는 것에 잠시 기분이 들뜨지만, 이내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오프가 저를 구원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제가 응급실 근무를 그만 두는 것이 답일까요?

제가 진짜로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싶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생각을 알게 되어 감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재앙 같은 상황에 놓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생각이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한 생각을 알 때에 하나님께 의지하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다른 무엇보다 힘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에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 동안 제가 하나님보다 나의 정욕과 욕심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제 자신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리할 때 학개 말씀처럼 남는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부터 떨어졌는지 보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기도드립니다.

제가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이 떠 먹여 주는 말씀으로 겨우겨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가 스스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공부 시간에 잠시 나아와 목자님들이 떠 먹여 주는 말씀만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행하는 훈련을 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안 되겠다며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2019년 한 해가 오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날 때에 재앙과 같은 일이 닥친다 할지라도 평안하고 미래와 희망을 볼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베론 포로의 땅, 유배지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은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지는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께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었을 때에는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다니엘 9:5,6).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울고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이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 간 그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아버지요,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벨론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어리석게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라 나는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3). 그들은 이스라엘 중에서 어리석게 행하였습니다(23).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것이 아니라 세상 끝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간음하며 자기 탐욕대로 살았습니다(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로마서 1:21-25).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과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 자는 어리석게 됩니다. 그는 실제로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탐욕을 따라 삽니다.

우리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런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의 속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기도하라 하십니다. 성경은 온통 기도를 전합니다. 아브라함도 기도했고 선지자들도 다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 하십니다(로마서 8:26).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우리가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기도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는 자는 기도합니다. 세상 가운데서 죄에 넘어져 허우적거리며 빠져 가는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심을 확신하는 자는 성경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2019년 한 해를 바라볼 때에 여러 산적해 있는 문제들로 고민이 되고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재앙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의 평안을 생각하시며 미래와 희망을 보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 때에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소망이 생깁니다. 이 소망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께로 온 마음으로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13)

 

 

2019 신년 3강 메시지-예레미야 2901-2923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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