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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마가복음
2018.07.05 19:10

2018년 마가복음 15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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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마가복음 제 15 강                                                                                                                 김요한

마가복음 8:1-26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마가복음 8:21)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아직도 모르겠나어릴 때부터 우리가 많이 들어온 말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나요? 주로 엄마, 아빠, 선생님, 목자님,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나를 생각하고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아마도 엄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엄마 없는 사람이 서럽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에게 누군가로부터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이런 말을 듣게 되면, ‘아 나에게 소망을 두고 있구나생각할 수 있으면 깨달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직도에 포인트를 두고 같이 제목을 읽어봅시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무엇을 깨닫기 원하십니까?

 

칠병이어로 배불리 먹고(1-10)

1절부터 봅시다. “그 무렵에헬라인 수로보니게 여자가 개 취급을 당하였는데도, “주여 옳소이다.” 말하여 예수께서 그의 어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신 그 무렵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역사가 유대인을 넘어서서 이방인들에게도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여기서의 큰 무리는 유대 땅이 아닌 이방 땅에서의 큰 무리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셨습니다. 2,3절을 봅시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앞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상을 먹이실 때는 제자들이 먼저 무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사 먹이자고 예수께 제안하였습니다(6:35,36). 그런데 여기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서 이르셨습니다. 사흘이나 먹을 것이 없었는데도 제자들은 예수께 별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자들은 아마도 이방인들을 괄호 밖의 사람으로 인식하였던 것 같습니다. 내 집안 식구 중 누가 굶고 있다면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습니다. 스물일곱 살 젊은 아빠가 새벽까지 노름하다가 집에 들어와 어린 아들 세 명이 누워 자는 것을 보고는 정신이 들어서 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지금 우리나라의 첫째가는 세계적 기업을 일으켰습니다. 나의 가족이 굶어가고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 제자들은 이방 땅 사람들이 그렇게 먹을 것이 없어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먹여야 할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아마도 사흘 동안 제자들이 무슨 말을 하려나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사흘이 지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그들의 심령을 깨우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의 대답이 어떠하였습니까? 4절을 봅시다.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하였습니다. 오병이어 때 하였던 그 말과 똑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이방인이냐 유대인이냐를 넘어서서 사람을 먹이려 하면 무엇인가 있어야 하는데, 거기는 광야이고 자신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가진 것으로 광야에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이신 일이 얼마 지나지 않을 때였습니다. 그래도 똑 같이 제자들이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5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하셨습니다. 오병이어 때도 예수께서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하셨습니다(6:38). 제자들도 변하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이 말씀은 오병이어 때나 칠병이어 때나 지금이나 예수께서 예수님 따르는 사람들에게 물으십니다. 특히 무엇을 해야 하기는 하여야 하겠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를 때,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예수께서 자꾸 사람 먹이라 하시는데, ‘나는 가진 것이 없는데 왜 자꾸 그러십니까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마침 두 개나 더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하였습니다(5). 예수께서 같은 패턴을 반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6).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7).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습니다(8). 사흘 동안 거의 먹지 못했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손대지 않은 떡과 고기가 일곱 광주리였습니다. 흡족하게 먹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같이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십니다.

그때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약 사천 명이었습니다(9). 그리고 오병이어 때처럼 사람들을 흩어 보내시고(9).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습니다(10). 예수께서는 무리들은 흩어 보내시고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그들을 먹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셨습니다(6:37). 제자들이 이방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가족이든지 어떻게 먹일 수 있는지. 예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그렇게 많은 것을 깨닫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저는 사십 년 넘게 성경을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읽다가 보면 때때로 성경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었나 싶습니다. 특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룻의 누룩을 주의하라(11-15)

11절을 봅시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였습니다. 트집을 잡고 비난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제자들보다 더 많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성경 말씀을 따라 세상과 구별 된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말씀이신 예수님을 보고 비난하고 트집을 잡을까요. 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표적. 사람 눈에 보기에 와 저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진짜 기적적인 일이다싶은 일을 예수께서 하기를 또 구하였습니다. 이는 물론 예수님께 구할만한 것입니다. 누가 제게 표적을 구하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이같이 예수께 표적을 구하니 예수께서 표적을 또 보이시면 될 것 같은데, 예수께서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하셨습니다(12).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하셨습니다. “이 세대라 하셨으니 그 시대 사람들을 말하니,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예수님만 보면 오 표적 하나 보여주시지요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이런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12). 너무나 크게 슬프고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13). 그런데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습니다(14). 일곱 광주리나 남았었는데,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었습니다(14). 예수님과 함께 하고 따르며 복음역사를 하다보면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표적을 행하여도 그 때뿐이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그 떡도 안 챙기고..’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15절을 봅시다.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하셨습니다. “삼가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제자들의 마음에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이 살짝 들어와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누룩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면 반죽을 이만큼 부풀게 합니다. 그처럼 제자들 속에 바리새인들의 누룩, 바리새인 같이 되고 싶은 마음이 그들의 마음에 들까 말까 하고 있었습니다. 헤롯? 그참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제자들 마음에 들까 말까 하고 있었습니다. 이 바리새인, 헤롯의 공통점은 둘 다 당시의 지도층이었습니다. 종교계, 정치계에서.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시고, 이번에는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자, 그 현장에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라면 바리새인보다는 내가 좀더 센 권력을 가질 수 있겠구나, 예수님과 함께 하면 헤롯 정도의 힘은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락말락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겉과 속이 달랐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종교 지도자로 인정받고 싶어서 외출에서 돌아오면 손도 씻고, 밥그릇도 다 씻었습니다. 거룩하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다른 사람들 보고 들으라고 큰 소리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당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 따르면서 그런 지도자가 될 생각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우리 모임에서도 목자가 되는 것에 큰 소망을 둡니다. 이는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디모데전서 3:1). 그러나 목자가 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목자가 되면 복음역사에 권세를 행사할 것으로 보여서 목자가 되고자 하였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스스로 많은 훈련을 받습니다. 동기들이 다 요회 목자가 되는데, 자신은 되지 못해 목자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여 요회 목자가 되었을 때 참으로 기뻤다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바리새인의 누룩이지 않을까요. 어떤 공동체이든지 사람이 모이면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서 권세를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에게 이같은 권력 의지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간곡히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하셨습니다. 우리가 만약 목자 타이틀을 주 목적으로 하여 예수님을 따른다면 우리 모임이 어떻게 될까요? 예수께서 이를 탄식하시며 지금도 우리에게 이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를 깨닫고 주의할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16-21)

1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말씀 듣고 수군거리는 것은 제자들의 또 하나의 특성인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수군거렸습니다.

예수께서 이를 아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17,18). 다섯 번의 “~가 좌악 연속으로 나왔습니다. 이를 듣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이어서 두 번의 질문을 하시고 답을 들으셨습니다.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제자들이 열둘이니이다답하였습니다(19).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물으셨고, “일곱이니이다답하였습니다(20). 예수께서 그렇게 권능을 베푸신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누룩 얘기를 하시자 제자들은 떡이 없어서 그러하시는가 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이 말씀 하시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는 생각보다도, “”,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할 그 문제에 매여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세례를 받으신 후 제일 먼저 하신 일은 시험 받으신 일입니다(1:13). 주리신 예수께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시험하였습니다(마태복음 4:3).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뭐니 뭐니 해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였던 제자들도 끊임없이 이 떡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배도 버리고 어부직도 버리고 세리직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실제로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확신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바리새인이 되어야 할 것 같고, 헤롯 같이 되어야 할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하여튼 뭔가가 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작 예수님은 잃어버리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십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21). 깨달음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하신 것으로 볼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지금쯤은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셨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깨닫기 원하셨을까요? 마가복음 11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하였습니다. 곧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들이 깨달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많이 보이셨습니다. 그 현장에 그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나병환자도 손을 대시고 고치시고, 중풍병자에게 죄를 사하시며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야이로의 죽은 어린 딸도 달리다굼하시며 살리셨습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왜 예수께서 누구신지 보다도 떡 문제에 매일 수밖에 없었을까요? 이것이 우리가 사람임을, 하나님을 떠나 죄악 된 본성을 가진 사람임을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역할을 하기를 원하였던 것 같습니다. 역할을 하여야 하겠는데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너무 마음이 아프셔서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자칫 물들기 쉬운 바리새인과 헤롯은 당시 지도자들이었지만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이 땅에서 증거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바리새인이나 헤롯이나 제자들이나 믿음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가 말씀공부하면서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하고 공부하기 보다는 이번 기말고사에는 예수께서 무슨 문제가 나오는지 좀 가르쳐주시면 좋겠다하고 말씀공부 하고 있지나 않는지요. 나의 앞날에 대해서 예수께서 밀어주시되 좀 팍팍 밀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임이 이루어지면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을 찾게 되고, 타이틀을 찾게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 듯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이 들어와 믿음 없는 공동체가 되어버리는 것을 생각할 때, 예수께서 얼마나 탄식하실까요.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신 소망을 가지시고 책망하십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하심으로 그들에게 소망을 가지고 계심을 드러내십니다.

어떻게 이를 드러내셨습니까?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22-26)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였습니다(22). 맹인. 앞에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크게 둘로 나누어, 맹인, 비맹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보는 사람, 뭔가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바리새인들, 헤롯, 제자들이 맹인임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앞에 번히 있는데도 볼 수가 없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그들에게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눈에 침을 뱉으셨습니다(23). 아무리 맹인이라도 그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예수께서는 항상 지금 여기 있는 것으로 일하십니다. 그리고 맹인 된 자가 눈을 뜨는 계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물으셨습니다(23). 맹인에게 주시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그러자 그가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하였습니다(24). 저처럼 눈 나쁜 사람은 안경을 쓰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저 길쭉한 나무같이 보입니다. 안경을 쓰면 누군지,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았습니다(25).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26). 무엇을 그가 보았을까요? 어린아이들도 말은 하지 못하지만 아기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이의 엄마는 대개 알아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 그냥 나무 같은 것이 있구나 하게 되면 그 사람들은 그저 나무일 뿐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엇으로 고민하고 있는지 보게 되면 밝히 보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떡에 맛이 가서 한계에 갇혀 있지만, 그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해 뭔가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삶을 사모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형제자매들과 말씀을 같이 공부하고 수양회에 초청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그 사람을 초청해서 나도 한 사람을 초청했다 하는 자부심을 가질 목적으로 초청한다면, 예수께서 이를 얼마나 슬퍼하실까요.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창세기의 요셉과 같이(창세기 40:6,7), 그 사람의 얼을, 넋을 볼 수 있다면 사람을 낚는 어부, 목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맹인에게 안수하시고, 또 안수하심으로, 터치하시고 또 터치하심으로 우리의 심령을 말씀과 영으로 계속해서 두드리심으로 우리 눈이 떠져서 볼 수 있게 하십니다. 같은 믿음의 공동체에 있으면서 서로를 그렇게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수께서 우리를 이같이 계속 두드리심으로 우리 눈이 그처럼 밝아질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 놀라운 믿음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또한 이를 소망합니다. 어느 나라 청년이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모임을 이룰 수 있을까요? 성경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온전하게 되기를 소망하고 또 그렇게 될 것을 증거합니다(에베소서 4:12,13, 빌립보서 1:20). 이는 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될 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움 받습니다(골로새서 1:28). 그래서 바울사도는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하였습니다(빌립보서 3:12).

저는 스물 여덟 살 때 여러 모양으로 실패하고 제 앞날이 어떻게 될지 답이 보이지 않을 그때 친구의 초청으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요한복음 628절과 29절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묻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하셨습니다. 그래서 별 일이 다 생길 때마다 이 말씀이 기억나서 기도하고 그리고 용서하고 용서 받는 은혜를 누리는 삶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마가복음 11:22-25).

그래서 베드로는 초대교회가 핍박받을 그 때 그는 고난 받은 성도들 곁으로 갔습니다. 어떤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주의 어린 양, 무엇을 잘 못보고 깨달음이 느린 주의 양을 먹이고자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아니하고. 예수께서 그에게 둔 소망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받아 자신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람 낚는 어부, 사람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가 됩니다. 아멘!

우리 각 사람이 어느 때 어떤 일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으시는 대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상 누룩에 찌들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주의 뜻대로 온전하게 보고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마가복음 8:21)

 

2018 마가복음 15강 메시지 0801-0826 김요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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