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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11.17 19:01

2017년 누가복음 43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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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43강                                                                                                   김요한

누가복음 20:19-47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20:38)

예수님은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를 믿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예수님은 반석이시고, 믿음 없는 사람에게는 거치는 돌일 뿐입니다(20:17,18). 믿음이 없는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이 비유를 듣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바로 알아들었습니다(19상). 말씀 듣고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줄 알면서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회개하기 보다는 자기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권세로 즉시 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두려워서, 그것 또한 자기들 뜻대로 하지 못했습니다(19하). 진리가 없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꾀를 내고, 일을 꾸며 예수님을 없애고자 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있는 그대로 진리를 말씀하시고 행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19-26)

20절을 봅시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백성들의 반발 없이 예수님을 없앨까 열심히 엿보다가 한 가지 그럴듯한 방안을 찾아내었습니다. 예수님을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들 손이 아니라, 로마의 손을 빌려 예수님을 없애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들 생각으로는 묘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정탐들을 보내어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님의 말을 책잡자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21절을 봅시다. 그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자기들이 묻는 말에 다른 소리 하지 말고 예수님의 생각을 바로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묻기를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였습니댜(22). 바로 말씀하시는 예수께서 ‘옳다, 옳지 않다’고 대답하라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옳다’ 하시면, 로마 식민지 백성으로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백성들에게 ‘예수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다 하였다. 과연 그가 유대인의 그리스도인가’ 하여 유대 백성들에게 여론전을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옳지 않다’ 하시면 바로 로마 당국에 반역죄로 고발하여 십자가형에 처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께서 ‘옳지 않다’고 답하실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간계, 겉과 속이 다른 그 질문의 목적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피하셨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간계를 아셨으니 그들을 야단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23). 24절을 봅시다.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당시 통용되고 있는 동전 데나리온에는 로마 황제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2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런즉” 예수님은 그들이 로마 황제 가이사의 형상과 글이 새겨진 돈으로 실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가이사의 것인 세금은 가이사에게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세금으로 가이사는 가이사에게 주어진 권세로 로마와 로마 식민지 백성들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십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 외에, 더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또한 지금 여기서 대한민국의 시민입니다. 시민으로써 세금을 마땅히 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써 하나님께 헌금하여야 합니다. 이는 의무입니다. 세금 내지 않으면 시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습니다. 세금을 낼 수 없는 형편이면 나라의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면서 헌신하지 않는다면 이미 하나님 나라 백성의 권리를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26절을 봅시다. 예수께 희한한 질문을 하여 예수님을 책잡고자 하였던 그들이 백성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능히 책잡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는 그들이 놀랍게 여겨 침묵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사람의 간계를 물리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곧 간계임을 알게 되었을 그 때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치게 되면 간계에 넘어가게 됩니다. 또 간계에는 간계로 대하여야 하겠다며 이리저리 나의 꾀를 낸다 해도 간계에 넘어갈 뿐입니다. 우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말씀으로 돌아와 기도하고 말씀을 들은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따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질문을 한 사람들은 서기관들, 곧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꾀를 내어 예수님을 시험하였는데,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물리치시니 바리새인들과 앙숙이었던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부활이 없다는 이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27-40)

27절을 봅시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예수께서 물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바리새인들과 함께 유대교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이 있다 하였는데, 이들은 부활이 없다 하였습니다. 부활이 없다 하니 이들은 지금 여기서 잘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권력을 잡고 자기 본성대로 마음대로 하고자 합니다. 당시 사두개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성전을 관리하며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예수께 무엇을 물었습니까? 28절을 봅시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신명기 25장 5,6절에 기록된 율법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계를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들이 예수께 질문하였습니다. “그런데” 항상 이 “그런데”가 문제입니다. 말씀을 말하고는 “그런데”라고 합니다.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그 후에 여자도 죽었습니다(29-32). 이들은 말씀대로 행하였습니다.

33절을 봅시다.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입니다. ‘대답할 수 있겠어요?’ 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들도 간악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게 성경 읽고 꾸며대면 되느냐’고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실상을 말씀해주셨습니다. 3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갑니다. 그러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습니다(35). 우리가 부활한다 함은 지금 이 세상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삽니다. 이 세상의 모습으로는 장가도 가야 하고 시집도 가야 합니다. 자녀도 낳습니다. 부활이후의 몸은 지금의 몸과 다른 몸입니다. 성경은 이를 신령한 몸이라 하였습니다(고린도전서 15:44).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습니다.

36절을 봅시다. 다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체입니다.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지금 살아 있든 죽었든 예수님 다시 오실 그날 모든 사람들이 다 살아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한 형벌에,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심판이고, 예수님 다시 오실 그 날 일어날 일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성경대로 읽도록 도와주십니다. 37절과 38절을 봅시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셨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서 11장 연구발표에서 들은 바와 같이 120년을 살았습니다. 그 중 40세가 되기까지 바로 공주의 아들로서 당시 최고의 공부를 최선을 다하여 하였습니다. 뛰어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리분별을 하게 된, 장성하게 된 40세 때 자신이 당시 노예백성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것이 고난이라 할지라도 이성과 지성으로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 이후 80세가 되기까지 40년의 고난의 길을 갔습니다. 동족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쫓겨, 광야에서 자기 양도 아닌 장인의 양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사십년을 살면서 무엇을 생각하였을까요?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시나무 불꽃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나타나주셨습니다(출애굽기 3:2).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라지지 아니하는” 불꽃입니다. 누구라도 사람은 그야말로 사라지지 않는 생명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이번 가을수양회에서 연구발표도 좋았고, 메시지도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리고 수양회에서 밥도 먹고(이번 수양회에서 밥이 맛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밥 먹으면서 또 산책하면서, 그리고 같은 방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눕니다. 저는 밥 먹으면서 오랜만에 마음껏 웃으면서 즐겁게 먹었습니다. 어느 목자가 말하기를 ‘우리 모임이 썩었다’고 했습니다. 일부 어떤 사람은 긴장했습니다. 왜 썩었다고 생각하느냐 하였더니, 그가 생생하게 말하기를 자기가 말할 때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던 어떤 목자가 사모님이 얘기하니 금방 반응을 보이더라고 하면서 우리 모임에서 높은 사람, 나이 많은 사람, 우리 모임에 오래 있었던 사람의 얘기가 먹히니 이는 썩은 증거라 하였습니다. 사년 전 이야기라 하였습니다. 그때 그 어떤 목자가 함께 있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고맙다. 그 사건이 사년 전이라 고맙다. 지금은 말씀을 따라 썩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 모임에 남아 있는 이유는 우리 모임이 다른 데 비해서 덜 썩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믿음 투쟁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옆을 보십시오. 썩을 사람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썩을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80세가 되기까지 살면서 자기도 죽고, 바로도 죽고 다 죽고 말텐데, 과연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지, 이삭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지, 야곱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지 그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시는지 풀리지 않는 질문 가운데 있을 그 때, 사라지지 않는 불꽃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출애굽기 3:6).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죽자 같이 죽지 않으셨습니다. 이삭이 죽자 이삭과 함께 계셨던 이삭의 하나님이 사라지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이 죽자, 그가 고생 끝에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고 발견한 그 하나님이 모세에게 당시 거기서 나타나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당시 모세에게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계십니다.

38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벨은 죽었으나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았습니다. 같이 다시 옆을 보시겠습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자입니다. 썩을 몸이지만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어떤 형제가 부활을 듣고는 ‘지금 이처럼 살 바에는 차라리 부활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썩을 몸, 죄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부활은 이 죽을 몸, 썩을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생명, 사랑과 빛이 있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그러자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였습니다(39). 이들은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서기관들도 사두개인들도 이제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40).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진리로서 책잡힐 일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고 답하십니다.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41-47)

41절을 봅시다. 말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42,43). 44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로 함은 다윗에게 약속하여 말씀하신 대로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신 것은 말합니다(로마서 1:3). 그러나 다윗이 시편에서 고백한 그대로 주께서는 다윗 이전에도 계셨고, 다윗 이후에도 계시는 항상 살아계신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백성, 말씀 듣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말씀해주셨습니다(45상).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그들의 마음을 아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6절을 봅시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하셨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어떤 분이 말하기를 목자가 되기를 참으로 원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선배 목자님이 한 마디 하면 그대로 되는 것을 보며 그런 권세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을 내어놓고 섬겨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면서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47절을 봅시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였습니다. 특히 식사기도를 길게 오래 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하십니다(마태복음 7:12). 남으로부터 꼬치꼬치 듣고 싶지 않으면 자신도 그렇게 남에게 꼬치꼬치 묻지 말아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행할 일이 무엇일까요? 예수께로부터 들은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이삭의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변개하지 않는 이삭의 믿음이 지금 여기서 우리 형제에게 일하고 계십니다. 이를 믿으면 누구든지 이삭과 같이 행하고 이삭처럼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습니다. 기드온의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연구 발표한 형제에게, 라합의 하나님께서 라합을 연구 발표한 자매에게, 요셉의 하나님께서 요셉을 연구 발표한 자매에게 지금 여기서 일하고 계십니다. 살아계십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살아계심을 말씀해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일들에 마주치게 되는데, 그 때 마다, 하나님, 지금 여기서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믿고 붙들어, 지금 여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생명을 누리고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누가복음 20:38)

 

2017 누가복음 43강 메시지 2019-2047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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