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INJE UBF

메시지

조회 수 3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024년 요한계시록 1강 정여호수아

요한계시록 1:1-20

 

 

이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 1:3)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 모든 교회는 로마 황제의 박해로 인해 배교자들이 늘어나고, 내적으로는 거짓교사들이 들어와 많은 영혼들이 혼란한 상황 가운데 있었습니다. 주의 종 사도 요한도 박해로 인해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안팎으로 계속되는 어려움으로 인해 교회의 앞날은 암울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영광의 주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듣고 본 바를 교회들에게 전하라 하십니다.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이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1-8)

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요한은 요한계시록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계시록이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계시감추어져 왔던 비밀의 베일을 벗겨내고 뚜껑을 열어서 환하게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환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시라고 하면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하거나 풀 수 없는 무슨 신비한 비밀처럼 생각합니다. 특히 환상이나 상징이나 숫자들을 무슨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수수께끼로 생각하여 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밝히 보여주려고 한 것인데, 오히려 더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어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자신이 전할 내용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계시는 하나님이 그에게 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계시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듣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베일을 벗겨내고 뚜껑을 열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열어 보여주시는 대로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계시의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입니다(1). 또한 그 일들은 그 종들에게 보이기 위해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서 요한에게 알게 하신 것입니다(1). 이를 볼 때 요한계시록은 세상의 종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쓰여진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신자들을 깨우치시려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도 이 책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증언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2). 그렇기에 우리가 기록된 이 책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3절을 봅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언제나 주의 말씀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습니다.

이 구원의 복을 얻느냐 못 얻느냐는 언제 결정됩니까? 많은 사람들은 지금은 아니고 먼 미래에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죽을 때가 되어야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복을 얻느냐 못 얻느냐는 지금 현재 결정됩니다. 박해라는 현실 앞에서, 온갖 세상 정욕의 유혹 앞에서도 지금 여기서 기록된 이 말씀을 지키며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지금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깐 현재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3). 주님 다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지 2천년이 지났는데, 과연 때가 가깝다는 말이 의미가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의 의미는 예수님의 재림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언제가 되든지 간에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아직도 주어진 시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저는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불미스런 사건을 통해 주님께서 만약 지금 오시면, 이 모습 이대로의 저는 꼼짝없이 심판과 멸망을 당한다는 그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처럼 주님과 독대하는 것 같은 정말 두렵고 살 떨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 인해 깊이 안도하며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랑하시는 요한목자님이 갑자기 쓰러지시고 살아나시는 사건을 통해서 다시 한번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일로 주께서 잠자고 있던 저와 우리 모두를 깨워 주셨습니다. 정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곧 곤고한 날,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순식간에 도둑같이 이를 것입니다(12:1).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고 했습니다(5:16). 베드로 사도도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며 비웃는 자들을 향하여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였습니다(벧후3:4,8).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금 돌이키지 않고 있는 죄를 언젠가는 회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면 안됩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다 알아서 해결되고 그 죄에서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해선 안됩니다. 요즘 일용할양식 본문인 사사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지금 여기서 돌이키지 않는 그 죄가 결국은 그들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올무와 가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공부하며 말씀에 기록한 대로 지키는 삶의 선택과 결단을 하는 사람들은, 내일도 그런 결정을 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오늘은 하지 않고 내일로 미루는 사람은 내일에도 모레로 미루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사탄의 최후의 전략이 내일로 미루게 하는 전략이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 계시록 말씀을 대할 때도, 먼 미래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하는 오늘에 관한 말씀으로 깨닫고자 하는 마음으로 듣고 받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진정 복 있는 사람입니다.

4절을 봅시다.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입니다. 당시 일곱 교회는 로마 제국이냐 하나님 나라냐, 로마 황제냐 주님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주를 선택한 자들은 큰 환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순교하는 자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극심한 박해는 자신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마음이 들게 했을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요한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하십니다(4). 또 그의 보좌앞에 일곱 영이 있다고 합니다(4). 무엇보다 그들이 믿는 예수님 자신이 가장 충성된 증인의 삶을 사시다가 죽으셨지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음을 증거합니다. 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한다고 기도합니다(5). 또한 요한은 그들이 이미 받은 은혜와 평강이 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합니다(5). 또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고 합니다(6). 곧 죄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를 그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시고, 또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는 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1:75). 그러므로 비록 박해로 인해 힘들고 괴로울 지라도 그들은 은혜와 평강가운데 계속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은혜와 평강가운데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7절을 봅시다. 주께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를 그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 뿐 아니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를 찌른 자들, 곧 성도들을 괴롭게 한 자들도 보게 될 것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7). 곧 그들에게는 주의 날이 심판의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입니다. 애곡의 날이 아니라 기쁨의 날입니다.

이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8절을 봅시다.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처음 세상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마지막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 대한 모든 주권이 다 전능하신 우리 주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장에 우리의 환경을 바꾸고 조건을 바꾸어 놓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로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만듭니다.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다시 오실 예수님께 있음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그 사람은 눈에 보이는 환경과 조건에 매이거나 갇히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며 인내하는 가운데, 요한 처럼 환난가운데 있는 사람들 돕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쓰임받게 됩니다(5:3,4)

이제 요한은 고난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인자 같은 이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그 모습이 어떠합니까? 그리고 이 모습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으니(9-20)

9절을 봅시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요한은 예수님을 따랐던 열두사도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또 밧모섬에 갇히기 전까지 에베소교회를 맡아 섬기는 책임자요,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자신을 그들과 같은 형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과 같이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의 권위나 직분은 전혀 내세우지 않고 그들과 같이 환난에 동참하는 형제요 동역자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그가 어떻게 동참했습니까?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9). 하루 종일 돌을 깨거나 무거운 돌을 나르는 노역에 동원되었습니다. 이 암담한 현실앞에 소망이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절을 봅시다. 주의 날, 곧 주께서 부활하신 주일에 성령에 감동되어, 그의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은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주님은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셨습니다(11). 이에 요한이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몸을 돌이켰는데, 일곱 금 촛대가 보이고(12),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보였습니다(13). 사람의 모습을 한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13-16절을 봅시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는 흰 양 털 같고 눈 같았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았습니다(13,14). 또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으며,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는 좌우에서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15,16).

어떻습니까? 너무도 낯선 예수님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알던 예수님은 사람들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오실 때부터 사람들에게 밀리고 밀려서 구유에 누이셔야 했습니다(2:7). 머리 둘 것 하나 없는 힘들고 가난한 삶을 사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이셨습니다(9:58). 두 벌 옷도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왕이나 제사장이 입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십니다.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고 계십니다. 감히 죄인들이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찬란히 빛나고, 아름다우며, 영광스러운 모습이십니다. 바라 보는 자로 하여금 오금에 저리게 할 정도로 강하고 위엄있고 두려운 심판자의 모습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는 사도 요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가까이서 오랫동안 본 사람입니다. 더구나 예수님께 몸을 막 기댈 정도로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친숙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너무도 달라지신 예수님의 모습에 압도당하여 크게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 앞에 엎드려져 마치 죽은자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17). 이런 그의 모습은 이사야나 다니엘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였을 때 절망하며 주저앉았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6:5,8:17,18).

예수님의 이 같은 영광스럽고 위엄있는 이 모습이 큰 환난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 요한과 일곱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 어떤 메시지가 되었을까요? 또 지금 우리에게 말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믿고 바라보아야 할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게 줍니다.

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된 요한에게 주께서 그 오른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7,18) ‘살아있는 자는 구약에서 하나님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되던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표현을 예수님 자신에게 적용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있는 분으로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고 하십니다. 곧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심판의 주이십니다.

당시 로마는 원형경기장에서 기독교인들을 잡아 처형하였습니다. 사자들과 싸우게 하고 검투사들과 싸우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싸움에 이길지라도 황제의 엄지손가락을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따라서 살고 죽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생과 사가 황제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삶과 죽음, 구원과 심판이 로마황제나 세상의 권세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습니다. 내 인생의 결정하는 것이 큰 소리치는 교수님이나 직장상사들에게 있는 것처럼 여겨져서 우리는 때로 신경질이 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십니다. 예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요한에게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하십니다(19). 그리고 그가 본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입니다. 또 일곱 촛대는 일곱교회의 사자곧 주의 종들입니다(20). 한마디로 모든 교회와 주의 종들을 교회의 머리 되신 주께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 강한 오른손으로 굳게 잡고 계십니다. 눈동자같이 보호하고 계십니다. 이를 온 교회로 알게 하십니다. 언제까지나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때가 가깝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주께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없이 각 사람이 이를 볼 것입니다. 이것이 고난과 유혹이 많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계속 읽고 듣고 기억하고 붙들고 지켜야 할 복된 말씀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고난에 매몰되지 아니하고 인자같은 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지만 다시 사신 영광의 주,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봄으로 인내로서 이 믿음의 경주를 매일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금도 능력과 권능의 주님께서 강한 오른손으로 우리를 굳게 붙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3)

 

 

2024년 요한계시록 1강 메시지 0101-0120 정여호수아.hwpx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3 요한계시록 2024년 요한계시록 4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2.11 32
422 요한계시록 2024년 요한계시록 3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24.02.04 24
421 요한계시록 2024년 요한계시록 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1.29 29
» 요한계시록 2024년 요한계시록 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1.21 31
419 디모데후서 2024년 신년 3강 메시지(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4.01.14 37
418 마가복음 2024년 신년 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1.07 35
417 마가복음 2024년 부활절 특강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31 25
416 민수기 2024년 봄학기 준비특강 2강(김유신) file 정여호수아 2024.02.25 26
415 민수기 2024년 봄학기 준비특강 (여동현) file 정여호수아 2024.02.18 23
414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6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4.24 18
413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6강 메시지(양산 센터 천모세) file 이제현 2024.04.21 18
412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5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24.04.14 16
411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4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24 38
410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3강 메시지(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4.03.18 30
409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10 27
408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03 35
407 시편 2024 신년 1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23.12.31 25
406 느헤미야 2023년느헤미야 2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3.11.05 73
405 시편 2023년 추수감사절 특강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3.11.19 39
404 에스라 2023년 에스라 5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3.10.08 5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2 Next
/ 2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