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30강 메시지(정여호수아)

by 정여호수아 posted Oct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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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30강 정여호수아

누가복음 18:9-30

 

 

영생을 얻는 길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29,3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너희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며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도 나는 이미 항상 기도하고 있는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9). 이런 그들에게 예수께서 또 어떤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십니까?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18:10-14)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였습니다(10). 바리새인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11절을 봅시다. 그는 서서 따로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한다고 치면 최소한 무릎은 꿇고 기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뭐가 그렇게 떳떳한지 서서 기도합니다. 그것도 따로 기도합니다. 그는 세리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 제목이 어떠합니까? 자신이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11). 또 자신은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자랑합니다(12).

반면 세리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13절을 봅시다. 그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였습니다.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습니다. 그는 실로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입니다. 토색하고 불의를 행하고 영적인 간음을 행한 자와 같습니다. 이를 알기에 차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주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만을 간절히 구합니다. 이 두 사람중에서 누가 의롭다 함을 받았을까요? 예수님은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다고 말씀하십니다(14).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자기를 높인 바리새인은 의롭다고 인정받지 못했고, 자신을 죄인으로 알고 자기를 겸손히 낮춘 세리는 도리어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주의 은혜로 거룩하고 흠없는 주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또 주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살 때 경건의 모양뿐 아니라 능력을 갖추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가 자신을 의롭다고 여길 수는 있을까요? 이는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주의 죄사함이 계속 필요한, 주의 긍휼과 자비하심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죄인일 뿐입니다. 이같이 자기를 하나님앞에서 죄인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자기를 높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 앞에서 이런 겸손한 마음과 자세를 항상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주께서 때마다 진리의 말씀을 들려주사 우리의 지각을 깨워주시길 기도합니다.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게 하시고, 또 항상 기도한다는 것을 앞세워 주 앞에 자기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자기를 높이지 않고, 하나님께 높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여야(15-17)

15절을 봅시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어린 아기들이 모이면 얼마나 시끄럽고, 또 정신이 없는지요! 이런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자 제자들은 그 아기를 데려온 부모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보신 예수께서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6).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기 때문이라 하십니다(16). 하나님의 나라가 왜 이런자의 것입니까?

17절을 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어린 아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가르쳐 주는 그대로 겸손히 다 받아들이고 영접합니다. 실제로 제 아들 갈렙과 딸 이레는 제가 하는 말을 그대로 다 따라합니다. 제가 놀랄 정도로 제가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합니다. 동화책을 읽어주면 그 그림 한 장면 한 장면에 나온 내용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 마음이 겸손하여 그대로 듣고 받아들이고 배웁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어린아이 같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말씀대로 듣고 받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사람이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또 이런 사람을 우리 자신이 누구보다 귀하게 여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계속해서 있는 그대로 듣고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18-30)

18절을 봅시다. 어떤 관리가 예수께 왔습니다. 당시 관리는 회당장이나 산헤드린 공회원을 지칭할 때 쓰는 말입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그는 청년입니다(마태복음 19:20). 또한 그는 큰 부자입니다(23). 꽤 젊은 나이에 그는 부와 명예를 얻었습니다. 뭐 하나 아쉬울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네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8) 이로볼 때 이 사람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별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소유의 넉넉함이 그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예수님이라면 해결해 주실지 모른다는 기대와 소망가운데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9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예수님은 먼저 그의 선의 개념을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마도 많은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예수를 선하다고 생각했고, 그 자신도 지금 누리는 이 부와 지위 때문에 선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항상 악할 뿐입니다(창세기 8:21).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선의 기준이십니다. 선하다 악하다 결정하는 기준이 되십니다. 사람앞에서는 선한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선함도 하나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선의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0절을 봅시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한 계명을 언급하십니다. 곧 말씀이 선의 기준입니다. 답은 멀리 있지 않고 항상 말씀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하나님 사랑에 관한 계명은 조금도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이웃 사랑에 관한 계명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탐내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은 또 빠뜨리셨습니다(출애굽기 20:17).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께서 이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논지를 이웃 사랑으로 제한함으로 그가 자기 문제를 확실히 깨닫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한일서 4:20).

그런데 그 사람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1절을 봅시다.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물론 이 말은 다 사실입니다. 그는 간음을 하거나 사람을 죽인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은행을 털거나 이웃집에 침입하여 위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그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은 간음이라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28). 또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살인하는 죄와 같다고 하였습니다(마태복음 5:22). 그러나 그는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만을 죄로 여길 뿐이었습니다. 계명에 대한 그의 이해와 해석은 지극히 얕았고, 또 피상적이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께서 무엇이라 대답하셨습니까?

같이 22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예수님은 그에게 아직 한 가지가 부족한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한 가지 부족한 것만 채우면 그가 얻기 원하는 그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라 하십니다(22). 그의 말대로 그는 지금까지 율법을 문자적으로 잘 지켰고, 이웃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움이 실제로 필요한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로 앞에서 나온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레위인이나 제사장과 같았습니다. 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나온 그 부자와 같았습니다. 정작 이웃이 도움이 필요한 때에는 도와주기를 거절했습니다. 이웃에게 베푸는 일에 조금도 자기의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았고 모은 재물을 자기만을 위해서 썼습니다. 그의 근본문제가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재물이 그의 마음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아신 예수께서 그가 진정 탐심에서 돌이키도록 말씀으로 도전하셨습니다. 이로써 그의 현재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지? 드러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23절을 봅시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뜨고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재물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합니다. 그에게 있어 재물이 여전히 주인이며 자신의 생명입니다. 그는 이 생명과도 같은 재물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부족한 한가지 때문에 그는 결국 영생은 얻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죽어야 부활하듯, 버려야 영생이 있습니다. 재물을 의지하지 않아야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땅의 것을 내려 놓아야 하늘의 보화가 내게 있습니다. 욕심을 버릴 때 진정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그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일꾼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그를 보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24,25절을 봅시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중동지역에서 낙타는 제일 큰 짐승입니다. 이런 큰 낙타가 실 한가닥이 들어가는 작은 바늘 귀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불가능 일보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면 아예 일말의 가능성조차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는 듣는 자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6절을 봅시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유대인들은 재물을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생각했습니다. 부를 경건의 척도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자는 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런 그들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으셨습니다. 그러나 놀란 이런 그들에게 예수께서 또 무엇이라 하십니까? 27절을 봅시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부자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부자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자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재물이 주는 그 막강한 유혹을 떨쳐버리고 영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재물의 청지기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구할 수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께 나아와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28) 겉으로 볼 때 부자 관리에 비해 제자들은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팔 것도 별로 없는 자들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제자들은 모든 것을 다 팔고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부자 관리가 결코 흉내조차도 낼 수 없는 위대함입니다. 그들은 진정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어떤 축복을 해 주십니까? 다 같이 29,30절을 읽어봅시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제자들의 희생과 아픔을 깊이 알고 계셨습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희생은 재물이 아닙니다. 집과 가족까지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넘치는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먼저 그들은 현세에서 여러 배를 받습니다. 그들은 가족을 두고 떠났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영적인 가족들을 많이 얻을 것입니다. 또 자녀를 가질 기회를 포기했을지라도 하늘의 별처럼 많은 영적인 후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도 축복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주시는 가장 귀한 축복은 장차 올 세상에서의 영생입니다. 영생을 가질 때 우리는 모든 것을 갖게 됩니다. 영생을 가진 사람은 은행 계좌가 무제한인 사람과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공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가진 사람이 가장 큰 부자입니다. 그들은 어딜 가서도 그 영혼에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 단기적으로 무엇인가를 잃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우리가 기대하고 상상한 것 이상으로 우리를 더 크고 풍성하게 축복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따름으로 감당해야할 헌신과 수고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 두려운 이때에 주께서 제게 이 말씀을 들려주심에 감사합니다. 제 속과 저의 마음을 알아주시고 무한히 축복해 주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위로받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계속해서 저의 구원의 반석이요 소망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 제 있는 것을 다 팔아 영생을 얻는 생명의 길로 나아 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어린 아이들 같이 있는 모습 그대로 주의 말씀을 듣고 받아 하나님 나라를 영접하고, 지금 여기서 모든 소유를 팔아 예수님 따르는, 가장 귀한 영생을 얻는 복된 길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붙들어 주사 우리로 영생을 얻기까지 계속해서 인도해 주시고 도와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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