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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9.07.28 13:42

2019년 창세기 19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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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19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창세기 27:46-28:22

 

 

벧엘의 하나님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27장에서 이삭은 에서인줄 알고 야곱을 축복하였고, 이를 변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에서는 자신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리브가가 야곱을 피신시키고자 하여 그를 외삼촌이 있는 밧담아람으로 보내고자 합니다. 이제 야곱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먼저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밧담 아람으로 가서 아내를 맞이하라(27:46-28:9)

2746절을 봅시다.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합니다.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에서가 아내로 맞이한 헷 사람의 딸들로 인해 리브가 자신의 삶이 싫어졌습니다. 그 하는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이에 리브가는 만약에 야곱의 아내도 이런 사람이 들어오면 내 삶에 무슨 재미가 있느냐며 남편 이삭에게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이삭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다같이 281,2절을 봅시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를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릅니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담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아브라함은 이삭이 아내를 맞이할 때 가나안 땅을 떠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라면 이때 야곱을 밧담아람으로 보내야 될지 말아야 할지 정말 많은 고민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야곱에게 밧담 아람으로 가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함은 이제 아내 리브가의 말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에는 리브가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삭에게 전해도, 이삭은 뭐 그래, 맏아들 에서가 축복을 받아야지하면서 에서를 축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가 리브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렇던 그가 그로서는 몇 번이나 확인하였는데도 야곱을 에서인줄 알고 축복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일로 정신을 차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관계없이 자기 뜻과 생각에 기초해서 큰 아들 에서를 축복하고자 했던 자신의 큰 실수와 허물들을 믿음의 동역자 리브가가 수습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삭은 아내 리브가를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동역자로 깊이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브라함이 왜 그렇게 밧담 아람까지 가서 리브가를 데려왔는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야곱에게 믿음의 계승역사가 이루어지려면 다른 어떤 것보다 그가 믿음있는 여인과 결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이에 그는 야곱을 리브가의 고향 밧담 아람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야곱을 축복합니다. 3,4절을 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 번성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이삭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야곱에게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지금은 밧담아람으로 떠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가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을 또한 믿었습니다. 5절을 봅시다. 이같이 축복한 후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 곧 아람사람 브두엘의 아들 리브가의 오라비에게 이르렀습니다(5).

이삭이 이렇게 하는 것을 에서가 보았습니다(6,7).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8). 이에 그가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9). 그가 이렇게 함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전에도 그는 사냥한 고기로 요리를 만들어 아버지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신이 아닌 야곱을 축복한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에서는 인간적으로 볼 때 착한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믿고 따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의 겉모습을 따라할 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를 기쁘게 하지 못하고, 말씀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한다면서 에서같이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목자님들 눈치가 보여서 나름 머리를 써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 같이 비슷하게 하는 것같이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말씀과 관계없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 눈치 보면서 신앙생활에는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도리어 근심하게 할 뿐입니다. 누구든지 말씀대로 하려 한다면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말씀대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브라함과 같이, 이삭과 같이 말씀대로 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삭의 축복을 받고 집을 떠난 야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28:10-13)

다같이 10,11절을 봅시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서 누워 잤습니다. 집을 나온 그는 그 동안 해보지 않았던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칠흙 같은 어두운 광야에서 찬바람이 그의 온 몸을 휘감았습니다. 들짐승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왔을 것입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했는데 그동안 부잣집 왕자님으로 대접받고 섬김만 받고 살다가 이부자리도 없이 맨 땅에다 차갑고 딱딱한 돌베개를 베고 자려니 야곱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먼저 나오려고 형의 발꿈치를 잡았고,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명분도 빼앗고, 아버지로부터 축복도 빼앗았습니다. 그러면 형에 집에서 쫓겨나고 자신이 집에서 아들 노릇을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형은 집에 있고, 자신은 집에서 나와 홀로 광야에 돌베개를 베고 자고 있습니다. 야곱이 생각하던 스토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엄마 리브가도 이제 의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지?’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지?’ 두렵고 막막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든 야곱이 무엇을 보았습니까? 12절을 봅시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사닥다리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눈에 하늘이 보이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보였습니다. 위가 보였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땅의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토록 그가 원하였던 땅의 것들에서 멀어져 홀로 광야에서 돌베개 하고 자는 그에게 하늘이 보였습니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그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그가 보았습니다. 땅에 코 박고 있던 데서 눈을 들어 하늘에 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또 무엇을 보았습니까? 다같이 13절 상반 절을 봅시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사닥다리에 위에 서서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그 분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소개하십니다. 여호와가 누구이십니까?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입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제 야곱에게 직접 그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에서는 부모를 보고, 부모를 기쁘게 하려 했습니다. 그가 본 것이 그것이 다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하늘이 보이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보고, 여호와 하나님이 보였습니다. 사람에게 무엇이 보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 보이신 것은 그야말로 은혜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는 말씀으로 찾아오셨던 하나님께서 왜 야곱에게는 이같이 세 단계를 거쳐 자신을 보여주신 것일까요? 야곱은 그 이름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있고 붙잡을 것이 있어야만 믿고 따라오는 사람입니다. 이런 야곱을 누구보다 하나님이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찾아오시기보다 먼저 야곱에게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보여주시되 야곱 편에서 야곱이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보여주셨습니다. 이로써 당장 붙잡을 것이 없는 야곱이 이제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 자신을 붙잡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같이 자신을 보이신 후 하나님은 야곱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13-15)

다같이 13절 하반절에서 14절을 봅시다.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십니다. 또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축복의 내용과 동일한 축복입니다. 그동안 야곱이 한 일을 생각할 때 그가 이 같은 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이삭에게 주신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라도 이같이 약속하신 말씀하신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은 야곱에게 또 무엇을 약속하여 주십니까? 다같이 15절을 봅시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앞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축복의 말씀은 야곱에게 현재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두신 뜻은 언젠가는 이루실 것입니다. 야곱이 현재 가장 시급하고, 또 절실하게 해결하기 원하는 문제는 그가 안전하게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가장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와 함께하여 주심으로 그가 어디로 가든지 지켜주시고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확실하게 약속하여 주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야곱이 얼마나 마음에 안심이 되고 또 힘이 났을까요? 걱정과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그의 마음에 안정과 평강이 있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제 문제를 아시고 그 실제문제를 도와주시고 함께 하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야곱 같은 자에게라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가시고 그와 함께 하시는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참으로 놀랍습니다. 저 자신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하자도 모르던 저 같은 자가 어떻게 인제 역사를 계승하는 축복을 받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 놀랍습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서 헤매고 있는 저 같은 자와도 실제로 함께 하시고 섬세하게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느낄 때 놀랍습니다. 저는 수양회기간동안 그동안 섬겨왔던 자매 양들이 오지 않아 힘이 좀 빠졌었습니다. 앞으로 나는 목자의 길을 계속 갈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게 여름수양회를 통해 한 알의 밀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24) 그동안 머리로만 알던 이 말씀이 제 마음에 소망과 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실문제에 코 박고 있던 제가 하늘을 향해, 하나님나라에 대해 눈이 떠지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말씀으로 저의 눈을 들어 하늘의 것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정말 놀랍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맹인 같은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하심에 감사를 찬송합니다. 제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주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해 계속해서 나와 함께 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보고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잠에서 깨어난 야곱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16-19)

다같이 16절을 봅시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지금까지 야곱은 여호와는 할아버지나 아버지하고만 함께 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브엘세바에나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그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 ‘여기에’ ‘지금그에게 나타나셔서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이제 야곱에게 있어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이시며, 또 자신의 하나님이십니다. 드디어 야곱도 나의 하나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약속의 말씀을 인격적으로 받았습니다. 은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7절을 봅시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먼저 그는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본 야곱의 첫 번째 반응이었습니다. 아무리 야곱이지만 그 또한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이 있었습니다. 이에 그가 무엇을 하였습니까? 18,19절을 봅시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자기가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루스입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에게 있어서 이곳은 자신의 하나님을 만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로 통하는 문입니다. 야곱에게 있어 하나님을 기억하는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또 무엇을 하였습니까?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20-22)

다같이 20-22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야곱은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습니다. ‘서원이 무엇입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 도움을 받기 위해서 하는 맹세나 약속입니다. 곧 서원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스스로 자원해서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습니다. 야곱이 이런 서원을 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만큼 야곱의 마음이 힘들고 절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야곱이 하나님께 드린 그 서원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먹고 사는 현실 문제와 안전을 보장해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합니다. 누가 야곱 아니랄까봐 정말 자기중심적인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야곱의 이 서원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너무나 귀한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한 서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여 주시고 그를 지켜주시며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그를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이 서원을 하였습니다. 말씀에 따라 서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가 드린 이 서원을 꼬투리로 이제 그의 가는 길에 함께 하여 주시며, 그가 하나님과 씨름 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게 하십니다. 은혜입니다.

또한 야곱의 이 서원 기도가 귀한 것은 그가 자신의 절박한 실제문제를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들고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내 삶은 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박한 현실 문제를 만나도 그냥 자기가 어떻게 해결해 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과 관계성을 맺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절박한 현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들고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십일조도 드리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야곱은 자신의 서원을 실제로 들으시는 나의 하나님을 이제 그의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계속 만나고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아무 일도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조건도 걸어보고 결단도 해보고 작은 헌신을 약속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조건들을 섬세하게 들어주십니다. 비록 우리는 잊어버리고, 연약하여 잘 지키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신실하게 응답하시고 인도해 가십니다.

저도 학생시절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장래방향이 보이지 않아 저의 마음이 가난해졌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평소에는 잘 찾지도 않던 기도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토목기사를 합격시켜 주시면 하나님께서 저를 풀타임목자로 부르신 것으로 알고 평생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의 서원을 들으시고 정말 저를 토목기사에 합격시켜 주셨습니다. 저는 이 일로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제 실력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자가 뭐하는 지도 모르던 제가 그렇게 풀타임 스탭 목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저는 이 서원을 기억하고 붙들었습니다. 저는 저의 약점과 허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제가 이 길을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자주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제 모습이 어떠하다 하더라도 이런 저를 아시고도 저를 택하시고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시간 제가 하나님 앞에서 지난날 드렸던 그 서원 기도가 이제까지 저의 삶을 이같이 견고히 지탱해 주고 있었음을 생각할 때 놀랍고 또 감사가 됩니다. 요즘 제가 인제역사를 계승한다는 것이 그 어떤 때보다 두렵고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제가 드린 서원을 따라 이제까지 저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저의 삶을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생각하니 소망이 생깁니다. 제가 제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다 이루기까지 주께서 저를 떠나지 아니하실 것을 믿고 계속해서 주의 말씀을 붙들며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야곱이 홀로 된 그때 야곱을 찾아오셔서 자신을 보여주시고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비록 야곱이라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신 주신 축복을 그대로 지켜 가시고, 그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야곱과 함께하신 이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외롭고 힘들어하는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말씀을 주시고 소망을 주십니다. 어디에 이 하나님이 계십니까? 성경 말씀에 계십니다. 야곱에게 찾아오셔서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다 이루기까지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셔서 주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우리 각 사람을 쓰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세기 28:16)

 

 

2019 창세기 19강 메시지 2746-2822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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