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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느헤이먀 3강 정여호수아

느헤미야 6:1-7:73

 

 

하나님께서 이루셨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헤미야 6:16)

 

오늘 말씀에서 드디어 성벽 건축역사가 끝납니다. 그것도 공사를 시작한지 52일 만에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이 일은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대적들의 온갖 중상모략과 방해속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어떻게 이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내고 건축역사를 마칠 수 있었을까요?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6:1-9)

앞장에서 느헤미야는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도 물러서지 않고 성벽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는 믿음을 심었습니다. 위협하는 원수들을 대비해서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한 손으로 일했습니다. 또 밤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경계를 서며 공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성벽을 쌓아 올려 무너진 곳을 다 연결했고, 이제 성문들의 문짝만 달면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1).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든 것입니다. 그런데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랍 사람 게셈과 그 밖의 원수들이 이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합니다(1,2).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2) 그동안 적대적이었던 대적들이 중간지점인 오노 평지에서 평화협정을 맺자는 제스처를 취해 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싸우며 원수처럼 지내지 말고 서로 타협하여 잘 지내보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안은 그동안 그들에게 조롱과 협박에 시달려온 느헤미야에게 꽤 솔깃한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느헤미야를 해하는데 있었습니다(2). 이들은 아무리 양의 옷을 입고 나아와도 그 실체는 노략질하려는 이리들입니다. 그들의 겉모습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오노? Oh, No!'하면서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3절을 봅시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 내려가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적들은 포기할 줄 몰랐습니다. 느헤미야에게 4번이나 이같이 사람을 보내서 같은 요구를 했습니다(4). 사람이 한 두번은 거절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계속해서 요구하면 마음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삼손이 뭘 몰라서 들릴라에게 넘어갔습니까? 솔로몬도 뭘 몰라서 이방 여인들에게 넘어갔습니까? 사람이 뭘 몰라서 넘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싸울려니 귀찮고, 이제 좀 그만 시달리고 싶어서 마지못해 조금씩 타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한결같은 대답으로 거절했습니다(4).

그러자 산발랏이 다섯 번째로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서 보내왔습니다(5). 왜 편지를 봉하지 않았을까요? 편지의 내용을 슬쩍 공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편지의 내용이 어떠합니까? 6,7절을 봅시다. 느헤미야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성벽을 건축하는 목적이 바사 왕을 모반하고 자신이 유다의 왕이 되고자 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문이 이방 중에 이미 떠돌고 있고, 왕에게 들리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와서 우리와 함께 의논하자고 합니다. 산발랏은 이같이 악성루머를 통해 느헤미야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 그가 오노 평지로 가도록 유인했습니다. 이에 느헤미야가 사람을 보내 이같이 말합니다.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8). 한마디로 그건 너의 뇌피설일 뿐이다고 일축했습니다. 대적들이 아무리 중상모략을 해도, 느헤미야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조금도 흔들지리 않으수 있을까 싶습니다. 사실 그라고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염려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전체 역사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데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에게는 그가 의지하는 그의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의 손을 힘있게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있습니다(9).

이 후에 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나는 외소에 들어가지 않겠노라(10-14)

10절을 봅시다.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여 느헤미야가 그 집에 심방을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따로 심방을 갈 정도면 당시 스마야는 중요한 직분을 감당했던 선지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기 집으로 찾아온 느헤미야에게 스마야가 이같이 말합니다.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지금 그렇지 않아도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악성루머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스마야가 오늘 밤에 자객이 올 것이니 외소’, 성소안으로 대피하자고 합니다. 그 정도로 지금이 위급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일단은 피하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더구나 이 말을 누구도 아닌 선지자 스마야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11절을 봅시다.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느헤미야는 이번에도 ‘Oh No!’ 하며 거절했습니다. 거절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할 수는 있겠느냐고 합니다. 여기서 나 같은 자유다 총독이요, 성벽 공사를 책임 맡은 자를 말합니다. 그는 설령 산발랏이 보낸 자객에 의해 자기 목숨을 잃을지라도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끝까지 책임을 다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느헤미야가 오직 책임감 때문에 도망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성소에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민수기 18:7). 그러니깐 제사장도 아닌 자신이 생명을 보존하겠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성소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미 주와 주의 역사를 위해 많은 일을 했고 지금도 이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율법보다 자신을 위에 놓을 수 있는 이유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과 있지 말아야 할 곳,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주의 역사를 위해 많은 일을 앞장서서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제사장 사무엘이 늦게 오자, 자기가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삼상 13:8,9).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의 왕위를 빼앗아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웃시야 왕도 주님의 보시기에 기뻐하실 일을 많이 하며 유다를 새롭게 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제사장만이 하는 분향을 자기가 직접 하고자 하다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역대하 26:19). 사람이 주를 위해 뭔가를 하게 되면 그 뭔가를 했다는 것 때문에 자신의 직분과 위치를 잃어버립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있어야 할 곳과 있지 말아야 할 곳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심각한 죄에 빠집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어떤 가운데서도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자신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느헤미야는 무엇을 알게 되었습니까?

12,13절을 봅시다. 스마야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자신에게 이 같은 예언을 하는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두려움에 빠뜨려 율법을 어기게 하고, 이를 빌미로 악한 말을 지어 자신을 비방하려 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엄위하신 하나님의 말씀앞에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고자 할 때,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하나님앞에 깨끗하게 하고자 하면 깨끗하지 않은 것이 보이고, 깨끗하지 아니한 사람이 뭐라고 해도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을 따라 열매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형통한 길을 갈 수 있습니다(시편 1:1,3).

어찌되었든 대적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지자까지 돈에 매수당하여 자신을 이같이 속일 줄은 느헤미야는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환멸과 배신감에 잠도 못 자고, 치가 떨리고, 손이 떨려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한 상황입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또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심히 두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그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하나님께 나아가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14).

그러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15-19)

15절을 봅시다.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났습니다. 이는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지 94년 만에 이루어 진 일입니다. 70년간의 포로생활보다 더 긴 94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해내지 못했던 그 일이 52일 만에 다 이루어 졌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6). 느헤미야와 백성들을 두려워 낙담에 빠뜨릴려고 했던 그 대적들이 도리어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 같은 역전이 일어난 것입니까? 16절을 하반절을 봅시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알게 됨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이를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이제까지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총동원해서 성전 공사를 막았습니다. 비방을 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고, 주변 나라들과 연합하여 위협하기도 하고, 협박도 하였습니다. 이도 안 먹히자 몇 번에 걸쳐 회유를 하기도 하고, 악성루머를 퍼트리고, 뇌물을 먹여 사람을 매수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성벽은 기어이 완성되었습니다. 흉년가운데 자기 먹을 것도 없어 골골대는, 아무 대적할 힘도 능력도 없는, 그 가난하고 미약한 그 백성들을 통해서 이 일이 일어났습니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공사를 도중에 포기했더라면 그들은 정말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더욱 그 마음이 높아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들의 그 콧대가 완전히 꺾였습니다. 하나님은 진정 살아계셔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참 하나님이셨습니다. 대적들이 이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거룩한 성을 건축하게 하시는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성을 건축하고자 할 때 끊임없이 대적들의 방해를 허용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이심을 그들로 알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요즘 갈수록 하나님이 없다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 되어갑니다. 이런 시대 가운데 우리가 거룩한 성을 건축하는 거룩한 싸움을 한다는 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이 무모한 일인 것 같아 보입니다. 과연 똑같은 일을 당하고도 느헤미야처럼 다 이겨낼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살아 역사하셔서 비록 미약할지라도 믿고 순종하며 그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가운데 그의 영광을 친히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살아 있는 믿음을 가져 느헤미야와 같이 어떤 비방가운데서도 거룩한 성을 건축하는 이 거룩한 싸움을 계속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대적들은 기가 꺾였을 뿐이지, 아직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벽이 완공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느헤미야를 괴롭히며 공격했습니다. 그 무렵에 유다의 귀족들이 도비야와 여러번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17).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고 느헤미야를 죽이고자하는 도비야와 내통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도비야는 암몬 사람이지만, 유다의 지도자인 스가냐의 사위였습니다. 또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다에는 그와 동맹을 맺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18). 심지어 그들은 느헤미야에게 도비야를 칭찬했습니다. 또 느헤미야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도비야에게 일러 바쳤습니다. 도비야는 도비야대로 느헤미야를 위협하는 편지를 여러 통 보내서 위협하였습니다(19). 성벽을 다 쌓았지만, 아직 어려움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결코 우리를 향한 사탄의 공격은 끝나지 않습니다. 또 우리가 잠시 믿음의 승리를 한다고 해서 그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이를 알고 어떻게 준비했습니까?


백성을 모아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7:1-73)

71절을 봅시다. 성벽이 건축되자 문짝을 단 다음 느헤미야는 먼저 성전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사람들을 세웠습니다. 또 자기 아우인 하나니와, 충성스럽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중에서 뛰어난 영문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성을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2). 느헤이먀가 이같이 신중하게 사람을 택해서 세운 것은 그만큼 지금 문지기와 책임자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만리장성이 4번 뚫렸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문지기가 매수당해서 문을 열어주었다고 합니다. 성벽을 아무리 잘 쌓아도 문지기가 뚫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잘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도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게 했습니다(3).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3). 이렇게 함으로 언제 공격하여 들어올지 모르는 대적들에 대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또 느헤미야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4절을 보면, 예루살렘 성벽을 쌓았지만,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었습니다. 가옥도 미처 건축하지 못했습니다. 곧 예루살렘이 아직 성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힘들게 쌓아올린 성벽도 지킬 수 없고, 심지어 성전조차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마음에 감동을 주사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을 모아서 그 계보대로 등록하게 하셨습니다(5). 이때 그는 처음으로 돌아온 자의 계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5). 이 계보에 기초하여 그는 성을 떠난 백성들이 다시 돌아와 정착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성이 잘 유지되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찾고 구하고 행했습니다. 잠언 기자는 성을 빼앗는 것보다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습니다(잠언 16:32). 세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힘들게 세운 것을 지키는 것은 더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노력하여 이룬 성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얼마가지 못해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의 승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믿음의 승리를 잘 지키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가장 먼저 문지기를 세운 것처럼 우리도 내가 이룬 승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고, 생각을 지키고, 신앙을 지키고, 부르심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사 우리를 형통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모르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룩한 성을 건축 하고자 할 때에 숱한 어려움과 유혹에 부딪칩니다. 매순간 어떻게 이를 헤쳐 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할 때 두렵고 막막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같이 우리가 지금 여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따라 정직하게 행할 때 능히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승리할 뿐 아니라 끝까지 지킬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거룩한 싸움을 하고자 하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느헤미야 6:16)

 

2023년 느헤이먀 3강 메시지 0601-0773 정여호수아.hw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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