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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년 사도행전 3강 김요한

사도행전 3:1-4:3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건강하게 되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사도행전 4:10)

사람은 누구나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오늘 말씀에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건강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가 어떻게 건강하게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3:1-11)

31절을 봅시다. 오늘 본문은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 일어난 일을 전합니다. 여기서 사도 누가는 베드로와 요한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베드로가 요한과와 함께 다섯 번이나 반복됩니다(3:1,3,4,11,4:13). 그만큼 베드로와 요한의 동역을 강조합니다. 갈릴리 같은 동네에 살던 어부들인 이들이 예수님께 같은 날에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마태복음 4:18-21, 마가복음 1:16-20, 누가복음 5:10-11).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마가복음 5:37,누가복음 22:8), 또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마가복음 10:35,41), 하여튼 서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 관계였습니다(요한복음 21:21). 그런데 이제 회개하고 기도하고 성령을 받은 이들은 제대로 동역하였습니다. 기도하지 못하고 않던 그들이 기도시간에 따라 같이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이 건강하게 되는 데는 이같이 믿음의 사람들의 합심동역이 있고, 합심기도가 있습니다.

2절을 봅시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왔습니다.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였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일 것입니다. 돈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것이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구걸이 그의 생존하는 길이었습니다. 비참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렇게 사십 년을 넘게 살아왔습니다(4:22).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최대한 처량하게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내 신세여..어머님 왜 나를 나으셨나요..’ 하며 구걸하였습니다(3).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똑바로 딱 주목하여 말하였습니다. “우리를 보라”(4) 그러자 그가 됐다싶었는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간절하게 바라보았습니다(5).

무엇을 얻을까 바라보는 그에게 베드로가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6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그가 바라고, 사람들이 바라는 은과 금은 베드로에게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그에게 줄 것이 있고, 그에게 준다고 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에게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면 그가 일어나 걸을 수 있음을 베드로는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믿었고, 믿음으로 말하였습니다. 믿음은 이같이 실제에서 용기를 가지게 합니다. 실제 문제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생각 이상의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실제 문제 해결에 도전하게 합니다. 안될 것 같은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또 어떻게 하였습니까? 7절을 봅시다.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믿음으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였지만, 이를 듣는 그는 얼마나 의아하고 황당하고 당황스러웠을까요? 돈이나 몇 푼 얻기를 바랐는데, 그의 기대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말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런 그를 도왔습니다. 오른손을 잡았습니다. 얼마나 그에게 힘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잡은 오른손에 힘을 주고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습니다. 사도 누가는 믿음의 역사는 얼마나 섬세하게 일어나는가를 자세히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하여줍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힘이 빠진 사람을 도우면서 말씀을 들려주고, ‘믿음을 가지세요.’ ‘믿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을 잡는 일도 또한 중요합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도록 실제에서 힘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사람 살리는 일에 중요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개라도 켜고 운동하고 세수하고 식사를 하는 것은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길임은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가 봅니다. Peter Lee 선교사는 이를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극심한 경쟁사회인 미국에서도 능히 자립하고 있습니다.

일어날 생각이 있지만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게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면 또 일어납니다. 일어날 생각이 없는 사람은 땡깡을 부릴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들은 이 사람에게는 일어날 생각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8절을 봅시다. 그는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온전하게 건강하여졌습니다. 불평이 사라지고, 돈이나 바라며 살던 데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온전한 자립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랐습니다(9,10).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여들었습니다(11).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하시던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1412절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여기서의 너희는 예수께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영접한 사람들, 곧 영생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요한복음 6:68). 예수께서 그들 안에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셔서 아버지께로 가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는 사람은 누구든지 주의 하시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놀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를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3:12-26)

12절을 봅시다. 베드로가 몰려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하며, 그들의 눈과 마음이 자신들이 아니라 예수께 가도록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 하는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13절부터 봅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그들이 그 앞에서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이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습니다(14,15).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바로 이 일에 증인이라 하였습니다(15).

16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완전히 나았습니다. “완전히나았다? 어떤 것이 완전히 나은 것인가요? 이 사람이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8).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걸을 뿐만 아니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의학적으로 완치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이 사람은 주의 사람들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주의 종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완전히 나았습니다. ‘낫는다함은 정상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고, 하나님께서 심히 좋아하시는 존재였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존재로 살아가는 삶이 정상 상태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정과 욕심이 생겨 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스스로 지혜 있다 하여 어리석게 되었습니다(로마서 1:21,2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로마서 3:23).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예수께서 살과 피를 내어놓으시고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를 듣고 믿는 사람이 죄로부터 나음을 얻고, 죽음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곧 병든 상태에서 정상상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영생입니다.

어떻게 병든 사람이 이렇게 완전히 나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음에서 믿음이 생겼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로마서 1017절은 이렇게 우리에게 전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따라서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17절부터 봅시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습니다(18). 그러므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말씀을 읽고 듣고 받아 회개하는 사람은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든, 말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중풍병자이든, 자기 밖에 모르는 세리이든, 어떤 죄인이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완전히 나음을 받은 새 것입니다. 아멘!

베드로는 이러한 사실을 말씀에 있는 대로 그들에게 증거 합니다. 20절부터 26절에서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키는 놀라운 일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에 따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도들에게 외부로부터 핍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사도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건강하게 되어(4:1-22)

41절에서 3절을 봅시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아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습니다(4).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하였습니다(5-7).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8,9) 이렇게 대답한다 하였습니다. 10절을 봅시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 예수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11). 같이 12절을 읽어봅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베드로 사도는 확실하고 명백하게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천하 인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외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7:3).

베드로 사도는 말씀을 읽고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성도들에게 베드로전서 24절과 5절에서 이렇게 권하였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우리가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본 바와 같이 베드로는 예수께서 사람에게 버려지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항변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이 길이 과연 그리스도의 길인지 몹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좇아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는 예수님이 사람을 살리는 산 돌, Living Stone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하 사람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외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었습니다(13,14).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여 그들을 위협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였습니다(15-18). 이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하니(19,20), 관리들이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들을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습니다(21).

이에 대해 초대교회는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담대히 말씀을 전하니라(23-31)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하였습니다(23,24).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대주재이시며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심을 고백하고(24). 관리들이 이같이 사도들을 핍박한 것은 이미 주의 종 다윗을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대로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임을 또한 고백하였습니다(25-27). 그들이 이렇게 믿음의 역사를 핍박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 하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29절과 30절을 봅시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기도하였습니다. 31절을 봅시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진실로 건강하게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나사렛 시골 사람, 목수의 아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아기로 오셔서 사람의 죄를 다 감당하시고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사람을 완전히 건강하게 하십니다. 돈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좇아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건강하여졌습니다. 합심하고 동역하였습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운명적인 사람, 사람들로부터 구걸하여 사는 비참한 사람을 일어나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까지 완전히 낫게 하는데 쓰임을 받았습니다. 외부로부터 핍박이 있었지만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욱 분명히 붙들고 증거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건강하여졌습니다. 말씀이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 각 사람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일상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완전한 사람이 되어 한 마음으로 동역하고 기도하여 캠퍼스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 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사도행전 4:10)

 

 

2018-2019년 사도행전 3강 메시지 0301-0431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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