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INJE UBF

메시지

조회 수 5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023년 에스라 5강 정여호수아

에스라 9:1-10:44

 

 

울며 기도하며 자복할 때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에스라 10:1)

여호와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에스라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힘입어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이제 그는 결심을 실행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돌아온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인 성전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들가운데 이방여인과 통혼하는 심각한 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했던 에스라에게 누가 이 문제를 들고 나아 왔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9:1-10:1)

1절을 봅시다. 이 일 후, 곧 에스라가 2차 포로귀환민들과 성전에 도착한지 약 4개월이 지난 시점입니다. 그때 어떤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나아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이방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1,2). 이 소식을 듣고서 에스라는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주저 앉았습니다(3). 허물어진 영적인 성전을 재건하고자 결심하고 예루살렘까지 올라온 에스라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온 몸에서 힘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이 소식을 듣고 왜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성민이 이방 여인을 아내와 며느리로 취하는 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너무도 가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1절을 보면 이 땅의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다고 하십니다. 그 더러움의 구체적인 내용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듭니다. 그것이 레위기 18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살붙이, 곧 어머니, 아버지의 하체를 범했습니다(6-8). 또한 아버지의 아내, 아버지의 딸, 어머니의 딸, 손녀, 외손녀, 누이, 고모, 이모, 숙모, 며느리, 형제의 아내, 이웃의 아내의 하체도 범했습니다(9-20). 그들의 자녀들을 몰렉에게 내어주며(21), 여인과 동침하는 것 같이 남자와도 동침했습니다(22). 심지어 짐승과 교합하기까지 했습니다(23).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이 다 더러워졌고, 땅이 더 이상 그들을 용납하지 못할 정도까지 이르렀습니다(24,25).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 들이시면서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12)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어기고 그들과 통혼하여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 행하였습니다(왕상 14:24). 심지어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에서 남색하는 자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망하고 이방에 사로잡혀 갔습니다(13).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주의 백성을 남겨 주사 사로잡힌 데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13). 그런데 이같은 은혜를 입고도 그들이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기 시작했습니다(14). 그것도 이 일에 방백과 고관들이 으뜸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가장 앞장섰던 지도자들의 후손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를 무너뜨리는 일에 가장 앞장서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데 4절을 봅시다. 주저 앉아 있는 에스라에게 나아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였습니다. 그들이 왜 에스라에게 모여들었을까요?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이 에스라에게 온 것은 고관들의 죄를 비난하거나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로 인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통혼의 문제가 그 죄를 범한 자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전체의 문제요, 그들의 생명과 안전과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에스라가 짧게나마 성전에서 4개월 동안 행한 말씀 사역의 열매일 것입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들가운데 이런 위기의식이 생겼고, 그래서 두렵고 떨림으로 먼저 에스라에게 믿음으로 나아 왔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아니할 수는 없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따라 처음 가졌던 믿음과 소원을 잃어버리고 다시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한때 힘쓰고 애쓰며 세웠던 거룩한 성전이 순식간에 다시 허물어져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듣되 계속 듣고, 말씀 따라 발견되는 그 죄를 차마 그대로 둘 수 없어 주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있다면 거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 공동체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난 자들로 인해 이제 에스라는 근심 중에서 일어납니다. 속옷과 겉옷을 찢고 무릎을 꿇고 자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로 나아갑니다(5).

6-10절을 봅니다. 자신은 너무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죄악이 너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허물이 너무 커서 하늘에 미치기 때문이라 합니다. 우리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우리왕들과 우리제사장들을 하나님께서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겨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셨다고 합니다(7). 그런데 이제 우리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초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하나님이 우리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다고 합니다(8).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다고 합니다(9). 우리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실지 두렵다고 합니다(10). 이 범죄로 말미암아 우리중에는 의로우신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설 자가 없다고 고백합니다(15).

6절에서 10절 사이에 우리라는 단어가 자그마치 22번이나 나옵니다. 에스라는 주께 나아가 기도하면서 단지 이 사람들의 죄라고 하지 않고, ‘우리의 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의 죄를 강하게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푸쉬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우리 공동체 모두의 죄로 인식하며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의지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결단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죄를 품고 그들을 대신하여 자신이 회개하며 나아갔습니다. 근심가운데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했습니다(10:1). 이 같이 공중앞에서 드리는 에스라의 눈물과 통곡과 자백이 그 자리에 있던 백성들에게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에스라와 같은 마음이 되어 많은 백성들이 크게 통곡했습니다. 남녀는 물론이고 어린아이들까지도 통곡하며 큰 무리가 에스라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1).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고, 준행하고 가르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우리 자신이 하나님앞에서 가져야 하는 태도입니다. 핑계 대고, 환경 탓, 남 탓하다 보면 말씀 앞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주변을 빙빙 돌 뿐입니다. 두렵고 떨리더라도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짓누르는 고통이 뒤따를지라도 말씀 앞으로 있는 그대로 나아가 자복해야 합니다. 통곡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무엇이 있습니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10:2-4)

다 같이 2절을 봅시다. 통곡하던 무리 가운데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나아오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스가냐는 통곡하며 엎드려 있는 에스라에게 소망을 말합니다. 그는 어떤 점에서 이스라엘에 아직도 소망이 있다고 합니까? 다 같이 3절을 한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곧 내 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지금이라도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소망이 있다고 합니다. 이 소망을 따라 당신이 먼저 일어나 이 일을 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힘써 돕겠다고 합니다(4).

그런데 사실 스가냐가 이렇게 먼저 나아와 이같이 말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1026절을 보면 엘람자손 중 이방여인과 결혼한 남자들의 명단이 나오는데, 그 중 그의 아버지 여히엘의 이름이 있습니다. 곧 그의 아버지가 이방 여인을 취한 것입니다. 그는 큰 아픔이 있을지라도 아버지의 심각한 죄 문제를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고 도려내고자 결단했습니다. 그것이 자신이 살고, 자신이 속한 가정이 살고, 이스라엘 공동체 모두가 사는 길임을 확신하고 이같이 행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했을 때, 하나님의 편에 서서 범죄에 가담한 자기 형제들을 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던 레위자손과 같은 모습입니다(32:27,28). 하나님의 종 모세를 대적하는 아버지 고라의 편에 서지 않고 모세의 편에 서서 그 진멸함가운데서 구원을 얻은 고라의 아들들의 모습입니다(26:9-11). 이미 범한 죄로 인해 다 끝난 것 같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은 건넌 것 같을지라도, 주께서 용서해 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누구라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는 진멸가운데서 구원받을뿐 아니라 무너진 성전을 세우는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5절을 봅시다. 스가냐의 말을 듣고서, 그때까지도 통곡하며 엎드러져 있던 에스라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무리가 다 맹세했습니다. 아내를 내보내고, 그들의 소생까지 다 내보내기로 결단 한 것입니다. 진실로 아직도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을 따라 에스라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의 뜻대로 행하여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6-44)

6절을 봅시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백성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자리를 떠나, 개인적으로 은밀히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간 것입니다. 사실 백성들의 마음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에스라 입장에서 이 문제를 최대한 빨리 종결짓고자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은밀한 곳으로 가서 사로잡혔던 자들의 죄를 근심하여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6). 자신이 일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선한 손이 먼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들에게 이같이 공포했습니다(7). “너희는 예루살렘에 모이라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삼일 내에 예루살렘에 오지 아니하면 그의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7,8). 이에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사람들이 삼일 만에 모였습니다. 그 날은 아홉째 달 이십일입니다(9). 그때에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 앞 광장에 앉았는데, 큰 비 때문에 그들은 벌벌 떨었습니다(9). 하지만 그들이 떨고 있는 것은 추위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 곧,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떨었습니다. 떨고 있는 그들에게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단호하게 말합니다(10).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에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10,11) 그러자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12)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도저히 안될 일인 것 같았습니다. 천지가 개벽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성들이 그대로 순종하기에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회중이 에스라의 말을 하나님의 뜻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하나님앞에서 죄를 끊어버리고자 결단하는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드린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결심과 믿음의 도전이 참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가운데 거룩한 참 성전이 비로소 재건되는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만 그들은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라 이 일을 하루 이틀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13). 그러니 온 회중을 위하여 방백들을 세우고 이방여자에게 장가든 자를 면밀히 조사를 할 수 있도록 기한을 정하여 이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중히 요청하였습니다(14). 물론 모두가 다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몇몇 소수의 사람이 그 일을 반대했습니다(15). 그러나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그들에게 동요하지 않고 에스라가 명령한대로 잘 따랐습니다(16). 그 종족을 따라 족장들 몇 사람을 선임하고 열째 달 초하루부터 조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첫째달 초하루에 조사를 마쳤으니 딱 3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16,17).

18-43절에 나오는 명단은 총 113건의 이혼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내는 물론이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습니다(44). 분명 그들의 아픔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언약한 대로 그들의 결단을 이행했습니다. 이 명단은 이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명단이 아니라 생명책에 기록된 영광스러운 명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들은 어떤 죄와 저주 가운데 있더라도 구원과 생명과 축복으로 옮겨집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아멘!

고레스 왕을 통해 기록된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마음에 감동을 받아 안정된 터전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호와의 성전이 다시 재건될 수 있었습니다. 무너진 언약공동체가 다시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전의 박힌 못이 흔들리는 것처럼,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로 인해 그들 가운데 다시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아직도 소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죄를 가슴에 품고 하나님앞에 나아가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자복하는 에스라 한 사람의 중보기도가 있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와 섬김으로 백성들이 말씀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죄에서 돌이키는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저와 우리가 오늘 말씀을 따라 무엇을 가르치고 전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경외함으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말씀으로 인한 떨림이 우리 안에 늘 살아 있어,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는가운데 발견되는 죄를 있는 그대로 자백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에스라와같이 죄 가운데 흘려떠내려 가는 이 시대에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중보 기도하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0:1)에스라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2023년 에스라 5강 메시지 0901-1044 정여호수아.hwp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