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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신년말씀 2강 김아브라함

학개 1:1-15

 

 

성전을 건축하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학개 1:8)

제가 전할 메시지의 제목은 성전을 건축하라입니다. 이 말씀은 주로 건축 역사가 있을 때 공부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제 1, 2, 3층 리모델링도 마쳤으니, 이제는 지하 예배실 리모델링을 할 때가 된 것일까요? 기도 제목대로 120명의 주일 예배를 위해서 더 넓은 땅에 새로운 교회 건물을 지어야 하는 것일까요? 물리적인 성전도 지어야 하겠지만, 먼저는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살펴보고, 마음이 주께로 집중하여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합니까?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1-11)

학개는 선지자입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절을 봅시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절에서는 먼저 시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리오 왕은 바벨론이 망하고 세워진 바사(페르시아) 왕입니다. 바사의 초대왕은 고레스 2세로 칙령을 통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모든 민족들의 본토 귀환을 지시하였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탈취해 갔던 예루살렘 성전의 성물들도 돌려보냈고, 총독 스룹바벨을 예루살렘에 파견하여 성전 건축을 돕도록 했습니다.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힘을 내어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전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성전의 기초를 놓고는 그들에게 벅찬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변나라들이 건축 역사를 훼방하고, 고레스왕의 죽음으로 지원도 중단되자 성전 건축 역사는 멈춰버렸습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은 성전 건축이 16년이나 멈춰있던 때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6년 동안 성전은 기초공사만 하고는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를 통해 유다 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였습니다.

2절을 봅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 백성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나의 백성이 아니라 이 백성입니다. 우리가 보통 이 사람이 할 때의 이 백성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신 걸까요? 이 백성들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였습니다. 아직 때가 아니다. 성경에서 많이 나오는 때는 보통 하나님께서 때가 아니다 하시는데 지금은 이런 저런 이유들로 성전 건축을 멈추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때가 아니다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자신들이 성전 건축이 멈춘 것을 정당화 합니다. 그들 생각에 하나님의 때는 주변 나라의 방해가 없고, 든든히 지원하는 사람이 있어야지 성전을 건축이 순조롭게 되는 때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백성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3,4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십니다.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그들이 생각하기를 성전 건축의 때가 아니라 하면서 성전 건축은 멈추고 한 것은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입니다. 당시 흙벽돌로 집을 짓고 회칠을 하여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더 나아가 나무판을 벽에 붙여 고급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했던 백향목으로 성전 건축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집을 꾸몄습니다. 그러면서 아직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말하고 있는 그들이 옳으냐?’ 생각하게 하십니다. 나아가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하십니다. 성전 건축 안하는 것도 안하는 것이고,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서 자기 것을 챙기고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도록 하십니다. 자신의 것을 챙기면 잘 될 것 같은데 정작 그 모습이 어떠합니까?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6) 내 것을 챙기면 내게 남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만족이 없었습니다. 하면 할수록 힘만 들었습니다. 왜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는가? 고민을 해도 자기들로서는 답이 없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시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결단을 촉구합니다. 그러면 내 것을 구하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성전을 건축하라 하십니다. 그런데 성전 건축이라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처럼 보입니다. 자재도 레바논 백향목 같은 최고의 자재에, , , 보석들로 꾸밀 생각을 하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창한 재료를 얻기 위해 돈을 끌어 모으고, 다른 곳으로 지원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하십니다. 어떤 산에 올라가라 합니까? 어디 먼 나라의 산이 아니라 지금 그들 눈에 보이는 산입니다. 그 곳에 올라가야 합니다. 기도도 해야 하지만 기도만 한다고 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와야 합니다. 최고급 자재 운운하며 이걸로는 안 된다 말만 하지 말고, 지금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해서 성전을 건축하라 합니다. 솔로몬의 성전처럼 최고급 자재에 금은으로 장식한 성전이 아니라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십니다.

그러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머물 집이 없어서 성전을 건축하라 하신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온 땅과 하늘이 다 주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성전, 교회 건물도 성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19) 예수님의 자신의 육체가 성전임을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사람이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며,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곳입니다. 성전 건축이라는 것은 단순히 교회 건물 짓는 것을 넘어 자기중심에서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일 때 자기 것을 챙겼습니다. 많은 것을 바랐고, 자기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적었습니다. 하나님이 불어 버려 다 날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그들이 황폐한 하나님의 집을 내팽개친 채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재를 들게 하심으로 그들이 수고해도 제대로 결실 얻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은 성전건축 안했다고 백성을 괴롭게 하는 치사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복을 누리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하던 그들을 70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생활하게 하시고, 또 돌아와서는 하나님의 중심으로 성전 건축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자기 열심으로 뭔가를 한다고 열매 맺고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열매 맺고 복을 누립니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가는 성전 건축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희 가정에 열국이와 보라가 있습니다. 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센터 건축역사가 있었습니다. 열국이가 태어난 2005년 여름에 센터를 구매하면서 1, 2층을 리모델링했습니다. 퇴근해서 밥만 먹고는 센터로 왔습니다. 보라가 태어난 2007,8년 겨울에는 지하층을 예배실로 바꾸었습니다. 이 때도 퇴근하면 센터로 와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어떻게 우리 집에 아기만 낳으면 건축역사가 있는 건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들이 복덩이라서 건축을 하는 건지? 아기가 태어나면 가정에서도 아빠의 역할이 필요한 그 때 마다 불러내시는지? 제가 찾은 결론은 마음을 하나님께 두는가?”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저의 인생 모토는 여우같은 마누라, 토끼 같은 자식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내 집을 위해 건축학과에 왔습니다. 결혼도 하고 애들이 태어나는 것은 딱 자기중심, 자기 집 중심으로 살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식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내게 강 같은 평화외치면 사는 아브람의 행복보다도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으로 더 큰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내 집이 아니라 주의 성전에 마음 두게 하셨음을 봅니다. 그러면 제가 이럴 삶을 살 때 동역자나, 아이들이 불쌍해집니까? 보시다시피 불쌍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나와 같이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마음을 둠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하나님 백성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누리고 또 나눌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마음을 감동시키시매(12-15)

12절을 봅시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스룹바벨,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를 경외하였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것을 챙기는 삶이 그들에게 유익이 없음을 체험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하나님께로 먼저 마음을 두고, 성전 건축해야 함을 알고 돌이켰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 학개를 통해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노라’(13) 하십니다. 돌이킨 유다 백성에 대해 이 백성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14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말씀을 들을 때 그들의 마음에 감동 있었고,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며 성전 건축을 멈춘 때나, 지금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한 때나 형편이 바뀐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지원은 끊겼고, 주변 나라에서는 훼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씀으로 돌이켜 하나님께 그 마음을 둘 때 바쁜 추수기라도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 김바나바, 마리아 목자 가정에 이삭이 태어났으니 다시 건축역사를 이루어야 할까요? 이들도 센터로 불러내어 복을 누리게 해야 할까요? 제 경우가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이게 영적인 성전 건축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하나님께 둘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십니다. 내 하고 싶은 것을 이루는 일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를 경외함으로 순종해서, 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이번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하나님을 먼저 구하는가? 뭐가 쫌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죽기를 싫어합니다. 앞에서 말한 건축 역사는 어떻게든 해야 해서 했지만 다른 것들은 쫌 뒤로 물러나 있었습니다. 특히 아침에 일용할 양식하는 것에 대해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는 잡는다고 할 때 일찍 일어난 벌레는 잡아먹힌다며 자기 몸을 사렸습니다. 각자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일찍 일어나서 뭔가를 하면 오후에 피곤하니 내 몸이 편한 것을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순번 때 나오는 것으로 스스로 조율했습니다. 양식 모임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다 하나님께 마음 두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먼저 하나님을 구하기보다 내 편한 것을 찾았습니다. 또 제가 기도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에 기도하면 할 일이 늘어나고 신경쓸 일도 많아집니다. 그 일도 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입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최소한 만 하고 끝내고 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마음 없이 육신의 몸만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런 저에게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하십니다. 매일 몇 페이지의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한 줄, 한마디 쓰면 됩니다. 거창한 대제사장적 기도가 아니라 지금 말씀 깨달아 알도록, 주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내 몸을 편하게 하려 하기보다는 마음을 주께 드려, 주를 만나고,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학개 1:8)”

2019 신년 2강 메시지 학개 0101-0115 김아브라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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