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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일서 제 1강 정여호수아

요한일서 1:1-10

 

 

우리의 사귐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요한일서 1:3)

 

요한일서는 요한복음을 쓴 사도 요한이 그가 사랑하는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편지를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사귐을 가지는 모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당시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것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을 가지도록 이 편지를 썼습니다.

먼저 사도 요한은 우리의 사귐은 어떤 사귐이라 합니까?


우리의 사귐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1-4)

1절을 봅시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보고 자세히 보고 만진 바라 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이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았고 증언하여 전하였습니다.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다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2).

사도 요한은 보고 듣고 만졌음을 강조합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시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육신은 죄악된 것인데, 어떻게 거룩하신 말씀이 육신이 될 수 있는가 하였습니다. 그들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은 악한 것이며, 선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육적인 것 보다는 영적인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사람이 보고 만질 수 없는 비밀스러운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그 비밀스러운 영을 안다고 하여 영지주의자들이라 하였습니다, 이들의 그럴듯한 교묘한 주장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에 사도 요한은 자신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자세히 보고 만졌다고 전합니다. 이는 우리가 요한복음을 통해 이미 자세히 듣고 읽었습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이같이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그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강조하는 목적은 우리에게 사귐이 있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사귐이라는 단어가 좀 낫설게 느껴집니다. 보통 이성 친구와 교제를 하고 있을 때 나는 현재 누구와 사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이 단어를 이성 친구가 아닌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성도들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사귐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교제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이 편지를 쓴 원어인 헬라어의 의미는 동료의식’, ‘공동체 의식을 뜻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귐을 가지며 살아갑니다. 가족과의 사귐이 있고, 학교에 가서 사귐을 가지고, 학교에서는 서로 생각과 취미가 맞는 사람끼리 친목 모임도 가집니다. 같이 일하면서 서로의 유익을 가져가는 모임, 회사도 있습니다. 회사에 가면 사람들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꼴 보기 싫다고 회사를 그만 두면 돈은 어떻게 벌 수 있으며, 돈을 벌지 못하면 어떻게 나와 가족이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참고 사귐을 가집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에서의 사귐은 어떤 사귐입니까? 그 사귐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3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우리의 사귐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는 사귐은 교회 공동체의 사귐, 우리의 사귐이 아닙니다.

4절을 봅시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것들로 인해 교회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는데 사람이 많이 모인들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은 어떤 사귐입니까?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5-10)

다같이 5절을 봅시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숨겨두거나 감춰놓은 게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하면서 어둠에 행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6).

그러므로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7절을 봅시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게 됩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을 갖는다는 것은 곧 죄에서 깨끗함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의 사귐은 다른 어떤 사귐과 다른 것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어떤 사람, 어떤 죄인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남녀 노소, 빈부나 신분의 차이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 각 사람을 영원하신 긍휼과 사랑으로 대해 주십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몸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과 연약함을 친히 감당하시고 세상 죄를 다 지고 가셨습니다. 이를 믿고 고백하는 사람의 모임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을 읽고 들으며, 예수님은 부활을 두 번이나 목격하고도 다시 물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을 예수께서 어떻게 감당해 주셨는지, 특별히 베드로 한 사람에게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자세히 보고 들었습니다. 물고기 많이 잡게 해주시고,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고, 또 세 번 사랑 고백 하게 하심으로 그의 모든 죄짐과 실수와 허물을 다 씻어주셨습니다. 이 사랑에 기초하여 제자들은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고 그들을 통해 놀라운 사도행전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 안에는 죄 사함이 있습니다. 서로 사귐을 가진다 하면서 서로 간에 어두움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이미 제대로 된 사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이 있으면 빛이신 하나님 앞에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8,9절을 봅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은 우리가 죄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고 말한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져 발견된 자신의 죄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 살 때는 그것이 어둠인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비추이면 내가 얼마나 어둠가운데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실때 온전하지 않은, 흠과 점 투성이인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임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마음에서부터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숨기거나 감추고 싶습니다. 괜히 드러냈다가는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심판 받을 것 같고, 또는 사람들로부터도 뭇매를 맞고, 매장당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죄 없다고 말하고, 또 그 죄가 드러나게 되었다 하더라도 변명하거나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말씀을 볼 때 어둠가운데 계속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는 것이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같이 진실하게 나아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7).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9).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마음에 역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크고 무거운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믿음과 확신이 들고, 그 죄 사함으로부터 주어지는 마음의 평강이 임합니다. 뿐만 아니라 속에서부터 죄를 미워하는 거룩한 마음이 일어나고, 죄와 실제로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점차 모든 불의로부터 깨끗해 집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고,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고, 그의 말씀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게 됩니다(10). 말씀을 더 이상 진리의 말씀으로 들을수도 깨달을 수 없고, 그 말씀이 주는 감동도 느낄 수도 없으며, 내 속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9절을 다시 봅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불편한 진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은 늘 불편합니다. 자백은 고통이요 수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빛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더불어 사귐을 가질 수 있는, 우리가 모든 불의에서 깨끗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제가 목자로 살고자 할 때 제일 힘든 것은 복음역사를 섬기고자 하면 할수록 저의 죄와 허물이 더 많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너무 괴롭습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한심하게 여기실지, 또 쓸모없게 여기실지 싶고, 그래서 결국은 버리시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떠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저 같은 자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소망이 생깁니다. 제가 주 앞에 온전할 수 없는 죄인임을 제 마음에서 깊이 인정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주께 자백하면 주께서 제 모습이 어떠하든 저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저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입니다. 제가 매일의 삶에서 말씀을 따라 저의 죄를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백하는 믿음의 투쟁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면 우리 가운데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하는 사귐이 있을 것입니다. 아멘!

 

우리 모임이 계속해서 주의 진리의 말씀을 빛으로 받아, 빛 가운데서 행하고, 죄를 진실되게 자백함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이 있는 귀한 모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못난 것은 감추고 잘난 것은 뽐내는 거짓된 모임이 되기보다, 부족하지만 진실한 모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죄라도 자백하고, 어떤 아픔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라도 다 사랑을 받고, 어떤 죄라도 다 사함을 받고, 어떤 아픔이라도 나음을 얻는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모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한일서 1:3)

 

2021 요한일서 1강 메시지 0101-0110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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