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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베드로후서 2강 정여호수아

베드로후서 2:1-3:18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라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후서 3:12,13)

1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너희 마음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주의 말씀을 주의해서 읽으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까지 더욱 힘쓰는 삶을 살고 또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할까요?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이 있으리라(2:1-22)

1절을 봅시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어느 시대나 백성 가운데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여러 사람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를 것입니다(2). 호색은 색을 좋아하는 것, 곧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정욕대로 살아도 하나님을 얼마든지 섬길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듣고 따르기가 좋습니까? 그래서 따라 가는 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를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입니다(2). 이들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탐심으로서 지어낸 말을 가지고 성도들로 이득을 삼기 위함입니다. 그들은 결코 사람들을 위하지도 책임지지도 않습니다. 그들을 이용하고 결국에는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

이런 거짓 선생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합니다(3).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라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습니다(4).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셨습니다(5).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습니다(5). 소돔과 고모라 성을 재가 되게 하셨습니다(6). 이를 통해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습니다(6). 과거의 심판은 과거에 있던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을 경고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경건하지 않은 옛 세상에서도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셨습니다(5).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습니다(7). 이처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십니다(9). 그러나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형벌하십니다(9,10).

거짓 선생들은 당돌합니다.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영광이 있는 자를 비방합니다. 교회를 비방하고 지도자를 비방하고 더 나아가 예수님과 하나님을 비방하기까지 합니다(10,11)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은 자들입니다(12).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입니다(14).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나귀에게 저지당한 선지자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들입니다(15).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입니다. 사막에서 만나는 신기루 같은 자들입니다.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 곧 뭔가 있어 보이지만 바람이 불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자들입니다(17). 그들을 위하여는 깜깜한 어둠만이 예비되어 있습니다(17).

그들은 자유를 준다고 합니다(19). 어떻게 보면 그들이 자유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진정한 자유가 있을까요? 그들은 자유인이 아니라 오히려 정욕의 종들이요 멸망의 종들일 뿐입니다. 불의의 삯에 종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탐심에 넘어간 자들로, 이긴 자가 아니라 진자들입니다. 자유인이 아니라 종입니다. 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19).

20,21절을 봅시다.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이런 그들에게 어울리는 속담이 있습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22) 우리가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또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불사르기 위하여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3:1-7)

베드로는 편지를 써서 그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고자 했습니다(3:1).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그의 사도들을 통하여 명령하신 것을 기억나게 하고자 했습니다(2). 성도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3,4절을 봅시다.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세에는 조롱하는 자, 곧 자기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을 부정합니다. 그 근거로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말합니다. 곧 세상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오신다고 하지만 어제도 아무 일도 없고 오늘도 아무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주님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잊으려 함입니다(5). 하늘과 땅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습니다. 땅은 물에서 나왔고 물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매우 불안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이 그대로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조금이라도 힘을 빼신다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노아시대 때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했습니다(6). 옛적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땅이 경건하지 않은 자들로 가득하게 되었을 때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했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해서 보호하신바 되었습니다(7). 곧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입니다(7). 우리가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해 보존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안다면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8-18)

8절을 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같고 천 년이 하루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합니다. 요즘 저는 시간이 매우 짧게 느껴집니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금방 지나가 버리고, 심지어 일 년도 며칠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예전 저의 청년시절을 생각하면 하루 하루가 참 길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군에 있을 때는 1년이 매우 매우 긴 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시간에 대한 체감 속도가 그때와 지금 다릅니다. 40세 밖에 안된 제게도 1년이 이렇게 짧게 여겨지는데, 영원 속에 계시는 우리 주께는 얼마나 짧게 여겨질 까요? 우리는 2000년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주님께서 오시지 않는가 생각하지만, 주께는 겨우 이틀이 지난 것입니다.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느냐고 왜 이렇게 아우성이지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다고 합니다. 저는 올해 1,2월은 무척 길게 느껴집니다. 신년수양회, 이취임식 준비로 바빴고, 또 앞으로도 학생수양회 준비, 봄학기 준비 등등 아직도 많은 할 일들 있었습니다. 주께 하루가 천 년같다는 것은 주님께서 하루에도 천년에 이룰만한 그런 일들을 하실 수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천 년에 하실 수 있는 그 많은 일을 하루 동안에 하실 수 있습니다. 천 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고 이 천 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 것을 보면 주께서 이루실 일이 아직도 많아서 오시지 않는 모양이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습니다. 하루 만에 주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다 이루실 수 있습니다.

주께서 무슨 일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주님은 왜 아직 오시지 않는 것입니까? 다같이 9절을 한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오늘도 하늘이 그대로 있고 태양이 뜨고 땅이 흔들리지 않고 보존되는 것은 우리로 자기 정욕대로 마음대로 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렇게 살지 않고 경건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더 주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오래 참으십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무한정인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도 아무 일도 없었다고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주께는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 년같습니다.

10절을 봅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고 아끼던 것들 부와 명예와 권세는 다 잿더미가 됩니다. 모든 불의한 것들은 다 태워져 버립니다. 모든 불의한 것, 거짓된 것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11-13절을 봅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 풀어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봐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복된 곳입니다. 그러기에 그 땅에 거할 우리도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써야 합니다(14).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겨야 합니다(15).

이는 베드로 사도 자신의 주장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그들에게 이같이 썼습니다. 또 그의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습니다(15). 물론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습니다.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릅니다(16).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합니다(17). 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합니다(18).

 

우리는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오셔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은 반드시 심판하시고,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임하게 하십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오늘 하루는 우리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늘로부터 주어진 기회의 날이요, 은혜의 날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기 정욕을 따라 살아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게 영원한 형벌이냐, 영원한 생명이냐가 결정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을 간절히 사모함으로 매일의 삶에서 주 예수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데 더욱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후서 3:12,13)

 

 

2022 베드로후서 2강 메시지 0201-0318 정여호수아.hwp


  1. 2022년 베드로후서 2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2. 2022년 베드로후서 1강 메시지(천모세_

  3. 2017년 베드로후서 3강 메시지

  4. 2017년 베드로후서 2강 메시지

  5. 2017년 베드로후서 1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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