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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베드로전서 4강 김아브라함

베드로전서 4:1-19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13)

 

베드로전서 말씀에 계속 고난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으면 고난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많은 고난이 있게 됨을 봅니다. 쉽고 편하게 살고 싶은 저는 이런 고난이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이쯤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을 그만두면 어떻게 될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되돌아간들 더 좋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저에게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합니다.

어떻게 고난이 즐거울 수 있습니까?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고난이 고역일 수 있고, 같은 고난이지만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고난이 어떻게 즐거움이 되는지 찾고, 우리가 이 즐거움에 함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먼저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1-6)

1절을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음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를 믿는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합니다.

갑옷은 전쟁에 나갈 때 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산다는 것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인간적인 좋은 마음으로는 전쟁을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씨름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입니다(에베소서 6:12).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합니다(에베소서 6:13). 사람의 좋은 마음으로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피하지 않고 싸우려면 마음에 준비가 단단히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고난을 감당하려면 간절한 기도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그 결심으로 고난을 감당하는 자는 죄를 그치게 됩니다. 죄를 즐길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합니다(2). 어차피 구원받는 거 지금은 좀 더 죄를 즐기고 싶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다 합니다(3). 지금까지 그만큼 죄에 휘둘렸으면 됐지, 더는 같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살 때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히 여기게 됩니다. 같이 죄를 즐기던 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서, 같이 놀지 않으니 이상히 여겨 비방할 것입니다(4). 이는 지금뿐 아니라 나중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인 예수 그리스도께 이 사람은 우리가 극한 방탕에 달음질할 때 같이 하지 않았다고 사실대로 고할 것입니다(5). 그들이 심판을 받으면서 우리를 비방하여 말하기를 저 사람은 우리랑 같이 컨닝도 안 하고, 같이 술 퍼마시지도 않았어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말이 그대로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 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하루만 더 늦춰지면 좋겠는데 싶듯이, 우리는 심판의 그 날이 오더라도 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말합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7-11)

7절을 봅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마지막 심판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이를 대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합니다.

마지막 심판을 대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잠도 안자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그렇게 깨어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잠은 잘 자야 합니다. 평소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8절을 봅시다.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합니다. 멀찌감치 서서 관심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을 돕고 살리고자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의 죄도 감당하게 됩니다. 또 섬기고 돕는 데는 많은 수고가 들어갑니다. 들어가는 것은 많은데 나오는 것이 없을 때 원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합니다(9). 내가 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게 뭔가를 해줄 것을 바라게 되면 원망이 생깁니다. 원망 없이 하려면 바라지 말고, 주면 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사도행전 20:35).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10).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합니다(11). 내가 사람을 돕는데 고난을 감당했다고 해서, 내가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산다고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자기 영광을 구한다면 이는 거짓되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람이 줄 수 없는 상이 있습니다. 영광은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부활시키신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우리는 이 그리스도로 구원 얻고 하나님 나라에 유업을 받는 것으로 족합니다.

우리 중 한 목자님은 예수님을 믿고 할 일이 없어져 심심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즐기던 세상 재미를 이제는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이제는 재미가 없게 됩니다. 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는 강도 이야기를 듣고는, 그 강도처럼 지금은 고난을 피하고 있다가, 딱 죽기 전에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강도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12-19)

12절을 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 합니다. 연단이라는 것은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서 단단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에 들어갔다, 찬 물에 들어갔다, 거기다 망치질을 당하면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단을 통해 자신도 모르던 불순물이 다 타버리고 깨끗하여지고, 단단해집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가 됩니다.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연단을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니 참으라 하지 않고 즐거워하라 합니다. 지금의 연단은 고생일 수 있지만, 장차 있을 상급이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의 때 예수께서 영광으로 나타나시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고난을 감당하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하게 변화된 성도들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십니다.

물론 고난이라고 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영광의 영,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 있는 자이지만(14),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는 것은 자기 잘못이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15). 지금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고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16).

베드로는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지만(마태복음 16:16),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 곧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예수께 그러시지 말라고 항변하였습니다(마태복음 16:21, 22). 이제 막 따르겠다고 고백했는데,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면 자기도 고난 받는 길로 가야 하는데, 그것은 싫었습니다. 그래서 안 된다고 한 것입니다. 이랬던 베드로가 지금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말합니다. 그가 고난이라고만 생각했던 십자가의 죽음이, 죽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은 사람의 죄를 대속하는 죽으심이며,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하십니다(마태복음 16:24).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할 때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예수께로부터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인정과 칭찬이 있습니다.

우리의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편하고 재미있는 것으로 끝낼지, 마지막 때가 있음을 알고 지금 예수님을 따라 고난에 참여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인지? 우리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 결정에 따라 심판의 때 우리가 어떻게 될지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함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멘!

17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가 같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는다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들은 어디에 서게 되겠습니까(18)?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들은 믿음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삶을 통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하여야 합니다(19). 내가 고난을 받았으니 내 자리 주세요 하나님께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십자가와 부활의 주를 믿고, 주를 따라 즐거움으로 고난을 감당하는 가운데 주께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함으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는 고난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싫어합니다. 어제 일을 잘하려면 특강을 들으면서도 일을 잘하기보다, 일을 안 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봤습니다. 나도 고난이 싫은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라는 메시지를 준비하는 것이 그 자체로 고난이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저의 생각과 시선이 고난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고난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안 받을 수 있으면 안 받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고난은 안 받는 게 낫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선을 하나님 나라에 두면 달라집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는 들어가야 합니다. 이 좋은 것을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이 주의 구원의 역사에 함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지금 감당해야 할 고난에 당장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을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소망함으로 끝까지 십자가와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이웃을 사랑하고 감당하는 일에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4:13)

 

2022 베드로전서 4강 메시지 0401-0419 김아브라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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