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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9 12:18

2022년 베드로전서 1강 메시지 (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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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베드로전서 1강 김요한

베드로전서 1:1-25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3)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사방에 흩어져 나그네 되어 고난 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합니다.

어떻게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까?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1-4)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합니다(1). 보통 이런 경우에, ‘조금만 견디면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다릅니다.

2절을 봅시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을지어다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택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택하심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 가운데서 되었습니다. 그들의 뜻이 아니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죄가 씻겨서 택하심을 받았음으로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이 은혜가 더욱 많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하는 기도입니다.

3절을 봅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합니다. 찬송은 승리하였을 때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미 승리하였음을 증거 합니다. 어떤 승리입니까?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셨습니다. 진실로 사람이 산 소망을 가지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하셨습니다(3). 다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죄악 된 본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절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하셨습니다(3). 죽음은 사람을 절망하게 합니다. 죽으면 끝이다 싶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죽기를 싫어하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 ‘, 죽을래?’ 이 한마디면, 견디고 싶던 마음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죽음에 매여 종노릇 합니다(히브리서 2:15).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 많으신 긍휼대로”(3) “긍휼이란 상대방에 대해 불붙는 마음으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은혜를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에 그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끊임없이 긍휼히 여기십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마태복음 8:17).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죽음에서 놓여났습니다(히브리서 2:15). 이로써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거듭났습니다. 다시 태어났습니다. 산 소망, 죽음을 넘어서는 살아 있는 소망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도 베드로의 체험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된 인생이 될 것이라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나야 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예수께 그러시지 말라고 항변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따르는 자신도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말 죽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예수께로부터 사탄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마가복음 8:29-33). 이랬던 그가 계속하여 예수님을 따르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많으신 긍휼대로 그가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이 가지는 산 소망이 무엇입니까? 4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하나님 나라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게 됩니다. 죽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믿는 자의 산 소망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특히나 믿음으로 산다고 살다보면, 어느 날 불현 듯, 이렇게 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때가 되면 사람은 죽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도 죽습니다. 장기려 박사님도 죽었고, 베드로도 죽었습니다. 위대하게 보이던 믿음의 종들도 죽습니다. 다 썩어 없어질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때로는 사람이 살면서 하는 일들이 다 자기 욕심대로 자기 뜻대로 사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다 더러운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느 부활절 수양회에서 어떤 형제가 김요한 목자는 여유가 있어 캠퍼스에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산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났습니다. 밖으로 나와 큰 돌을 집어 던졌습니다. 사람이 화가 나면 힘이 세집니다. 그러다가 내가 왜 이렇게 화를 내지 싶었습니다. 그 말이 일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화를 낼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 제게 그렇게 말해준 형제를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를 들자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그 믿음의 확실함을 전합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5-12)

5절을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면 여러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6). 그래서 아무리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합니다(6).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이는 확실합니다. 7절을 봅시다. 그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합니다. 우리가 보는 그 빛나는 금은 많은 단련을 통해 얻어집니다. 금광석을 뜨거운 불에 녹여,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그리하면 귀한 24k 정금이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금이라 해도 없어집니다. 우리 믿음의 확실함은 정금보다 더 귀합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믿음을 금에 비유한 것은 그만큼 우리 믿음도 연단을 받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은 더욱 순수해집니다. 그렇게 순수해진 믿음, 고난 가운데서 참고 연단된 믿음은 결과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입니다(7). 말씀하신 대로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오르셔서, 말씀대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나다(누가복음 22:69,마가복음 16:19). 이를 본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는 듯 평안하였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하였습니다(사도행전 7:55-60). 믿는 자의 본입니다.

8절을 봅시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우리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고 즐거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9) 이 구원에 대하여는 많은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미리 증언하였습니다(10,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자세히 살피고 생각해서 증언하였습니다. 이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12). 위로부터 임한 계시로 알게 되어,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우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12). 곧 우리가 지금 여기서 읽고 듣는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따르는 사람은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 믿음은 반드시 결과를 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게 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은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3-25)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13) 우리가 무슨 일을 제대로 하려면 허리띠를 단단히 조이고 시작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마음의 허리를 단단히 동여매어야 합니다.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하십니다(14,15). 기록되었으니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습니다(16).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외모로 보시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행위를 보시고 심판하십니다(17).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를 아버지라 부른즉 지금 여기서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십니다(17).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실지 아닐지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을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가 우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무슨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18).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19).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습니다(2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입니다(21).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습니다(21).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하신 것은 우리로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22). 우리가 왜 이렇게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거듭난 사람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습니다(23). 금광석이 용광로에서 불순물이 다 제거되어 순금이 되듯이, 우리 믿음은 연단 받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24,25). 말씀, 곧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음을 전하는 이 복음을 믿는 자는, 고난을 견딥니다.

사람이 내 인생 끝났다 싶으면 더 이상 고난을 견디고 싶지 않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될 대로 되라, 고난은 고난일 뿐이다. 고생 끝에 고생이다 싶어 그냥 마음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다 그만두고 싶습니다. 형제, 자매를 뜨겁게 사랑하려고 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 싶을 때 더 그렇습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지만, 이렇게 살면 그대로 끝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말씀을 받고 믿는 사람에게는 산 소망이 있습니다. 고난을 견딥니다. 끝까지 견딥니다. 고난은 우리의 믿음을 더 순수하게 만듭니다. 순전한 믿음은 주님 다시 오실 그때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산 소망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산 소망이 항상 살아, 지금 여기서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베드로전서 1:3)

 

2022 베드로전서 1강 매시지 0101-0125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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