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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베드로전서 2강 정여호수아

베드로전서 2:1-25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 믿다가 사방으로 흩어져 나그네 된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이 있게 하셨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1-3)

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너희에게 전한 주의 말씀, 곧 복음은 세세토록 있으므로입니다(1:24,25). 그러므로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 합니다(1). 사람이 살다보면 은근슬쩍 거짓말도 하게 되고, 속 마음과는 다르게 겉을 꾸미게도 되고, 남을 비방하게도 됩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다 그렇지 뭐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거듭나서 산 소망이 있게 된 사람은 다릅니다.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2절 상반 절을 봅시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합니다. 젖 먹던 힘까지 내라는 말 그대로, 갓난아기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젖을 찾고 찾습니다. 사모합니다. 그러면서 자라납니다. 그처럼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을 열심히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라납니다. 우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합니다(2).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 듣고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의 그 인자하심을 맛본 자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자로서 주의 말씀을 매일 사모함으로 먹으면 산 소망이 더욱 새로워집니다. 고난이 있다 하더라도, 죽을 것 같은 상황에 놓여진다 하더라도 이에 지지 않고 다시 일어납니다. 거듭난 사람이 가지는 비밀입니다.

당시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은 사람들에게 버림 받고 흩어져 나그네 되었습니다. 이런 중에도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소감을 감당하고 기도하면 그 사람은 무엇을 알게 됩니까??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4-8)

4절을 봅시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 Living Stone 이십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예수께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자마자 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온갖 수모와 멸시를 다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고난과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가 내 상황과 처지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로써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는 구원의 주가 되셨습니다. 보배로운 산돌이 되셨습니다. 어떤 죄와 운명가운데 있는 사람도 능히 살려내시는, 구원의 반석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예수님을 알게 된 사도 베드로는 세상에서 버림받아 흩어져 나그네 된 성도들에게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라고 합니다. 나아가되 한번 두 번 나아가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됩니까?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된다고 합니다(5). 이는 기록된 성경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과 같습니다(6). 하나님께서는 건축자들이 버린 예수님을 택하사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보배로운 모퉁잇돌이 되게 하셨습니다(7). “모퉁잇돌은 두 기둥을 연결시키는 돌로, 건물의 기초와 기준이 되는 돌입니다. 그러므로 모퉁잇돌이신 예수께 자신의 삶의 기초와 기준을 맞추어서 그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은 누구나 신령한 집으로 세워집니다. 비가 나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부는 심판의 날에 그 인생의 집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보배입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 곧 심판의 돌이 됩니다. 이는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입니다(7,8).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됩니까?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9-10)

9절을 봅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먼저 택하신 족속입니다.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어떤 점에서 특별한 존재입니까?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면서 심판받아 멸망 길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믿는 사람을 그냥 제사장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은 그들이 어떻게 왕 같은 제사장일 수가 있습니까? 왕은 리더입니다. 왕의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 향해 있지 않고 백성을 향해 있으면 백성이 따릅니다. 비범한 리더로 인정합니다. 지난 주 결산계획보고에서 세계선교부를 섬기는 목자님이 인제에서 파송된 선교사뿐만 아니라 다른 선교사분들에게도 선물을 보내게 되어 감사하다고 하면서 ‘2022년에는 장막터를 넓히자하여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습니다. 이런 마음이 왕 같은 제사장의 마음일 것입니다.

베드로도 그의 관심은 그저 이스라엘의 회복에만 있었습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계속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따랐고, 그는 이제 흩어져 나그네 된 성도들을 뜨겁게 사랑하기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 카자흐스탄 정국이 안정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카자흐스탄 백성들이 알아줄까요? 우리가 왜 우리와 상관 없어 보이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까? 어떤 목자님은 직장을 잃고 자기 살길 찾기도 빠듯할 것 같은데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드려 요회 양들을 힘을 다해 먹이고 섬깁니다. 이런 삶이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산 소망을 가신 믿음의 사람들이 섬기는 그 섬김의 기쁨을 잘 알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으면서도 계속 하여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을 끊임없이 버리고 떠나갑니다. 때로는 비방을 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다시 섬기기 위해 방법을 찾고 기도로 나아갑니다. 얼마나 거룩한 투쟁을 하는 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나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이런 거룩한 투쟁을 하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한 존재로 보시겠습니까! 자기 소유로 삼아셔서 눈동자 같이 보호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러한 신분을 주셨습니까? 9절 하반 절을 봅시다. 이는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혼자만 그 아름다운 덕을 보게 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이 덕을 알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는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하여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은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10).

그러므로 이 긍휼을 얻은 자로써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라(11-25)

11절을 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하나님 나라 산 소망이 있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거류민이요, 세상에 있다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로 갈 나그네입니다.

그러면 성도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2절을 봅시다. 이방인 중에서 선한 행실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리할 때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도 우리가 행한 그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기 때문입니다(12). 구체적으로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특히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는 것입니다(13,14). 어떻게 들으면 세상과 타협을 하라는 말같이도 들립니다. 그러나 주를 위하여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 법들도 모두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왕과 총독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세상의 주권자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순종할 때 그 선행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사람들, 곧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불신자들의 무식한 말을 막을 수 있습니다(15). 이런 이유로 우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해야 합니다(16).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해야 합니다(17).

사환들, 곧 종들은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해야 합니다(18).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기 때문입니다(19).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하나님께 무슨 칭찬이 있겠습니까(20)?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일입니다(20).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는 참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한번 두 번 정도는 참을 수 있는데 계속 참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21). 이를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도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본이 되셔서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심입니다(21). 그는 죄를 범하지 않으셨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셨습니다(22).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욕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그들을 부탁하셨습니다(23). 그리고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 자신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로 나음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24). 이로써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던 우리가 이제는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와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25). 예수님을 생각할 때, 그의 선한 자취를 따라 세상의 어떤 부조리와, 억울함도 이길 수 있습니다. 부당한 고난도 능히 참고, 계속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둠가운데서도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사 주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일에 귀하게 쓰십니다.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자로서, 우리의 삶을 통해 주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여 어둠가운데 있는 자들을 주의 기이한 빛으로 인도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능히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2:9)

 

2022 베드로전서 2강 메시지 0101-0125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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