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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베드로전서 3강 정여호수아

베드로전서 3:1-22

 

 

도리어 복을 빌라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8,9)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흩어져 나그네 된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우리에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을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였습니다. 또 우리가 흩어져 고난 받고 있지만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느지를 말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는 가정생활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편에게 순종하라, 아내를 귀히 여기라(1-7)

사도 베드로는 먼저 아내들에게 말합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1)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남편이 가정의 머리니까 당연히 순종해야 한다 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예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심 같이입니다(2:24). 이로 말미암아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던 우리가 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습니다(2:25). 이와같이 순종하라 하였습니다.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입니다(1). 성경 말씀의 관심은 항상 사람의 구원에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은 가정을 이루고 한 집에서 같이 삽니다. 아내와 같이 사는 남편이 보는 것은 아내의 말이 아니라 그 아내의 행실입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아내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봅시다(2). 그러므로 아내는 단장을 하되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3),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하였습니다(4). 이는 하나님 앞에 갚진 것입니다(4).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했습니다(5).

그 대표적인 사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입니다. 사라가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했습니다(6, 창세기 18:12). 사라는 늙어서 이미 생리가 끊어졌고, 남편 아브라함도 백세에 가까워 도저히 잉태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라도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히브리서 11:11). 이는 그 남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을 미쁘신 줄 알았음이었습니다(히브리서 11:11). 사라는 소망 없는 자신과 남편에게 소망을 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산 소망입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습니다(히브리서 11: 12). 믿음으로, 산 소망이 있는 아내는 어떤 소망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자기 남편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으로 섬깁니다. 이같이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는 자는 그의 딸, 곧 믿음을 따르는 사라의 딸이 됩니다(6).

그러면 남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7절을 봅시다.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자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데 있어 여자를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는 남편에게 있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며,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창세기 2:20-24). 이 같은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면, 남편은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 받을 자로 알고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하면 기도가 막히지 않습니다. 가정을 하나님의 신령한 집으로 세우게 됩니다(7).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리어 복을 빌라(8-22)

다같이 8,9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것이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하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합니까?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함이라”(9)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복, 곧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 유업을 이어 받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나라 유업의 복을 이을 산 소망이 있는 자로서 우리는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세상과는 구별된 비범한 생각과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바라보는 그 소망이 어떠냐에 따라 그 주어진 문제나 환경이나 조건에 대한 마음의 생각도 달라지고, 대처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예수께서 세상에서 구별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태복음 5:38,39),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43,44). 그리고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하셨습니다(마태복음 5:48).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산 소망을 가진 사람은 지금 여기서 온전한 삶을 살라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절을 봅시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무엇보다 혀를 금하라 하십니다.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고 그것을 따르라”(10,11) 혀는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야고보 3:5,6). 말 한마디가 큰 불을 냅니다. 저는 예전에 이웃집과 주차문제로 불편함이 있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만 순간을 참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말 한마디 했다가 욕을 한 바가지나 들었습니다.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이 다 허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뿐 아니라 예수님까지 욕하는 것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제가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어떤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참고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고자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이 일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12).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가만히 계시는 것 같아도 의인을 지켜보고 계시며, 그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악행하는 자는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우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구도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13).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1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태복음 5:10). 그러므로 박해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고 합니다(14,15). 또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 합니다(15). 우리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사람들은 저 사람은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해 질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깁니다. 이때가 곧,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때 마음 속에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확실하게 소망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주장하거나, 설득하려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온유와 두려움으로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16). 그 사람으로 믿게 하려고, 있지도 않는 사실을 과장되게 부풀려 말하기 쉽습니다. 또는 좀 부담스러워 할 수 있는 말씀은 빼고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전하는 그 사람 자신의 양심이 거리끼게 됩니다. 내적인 힘을 상실하게 됩니다. 제대로 신앙을 드러내거나, 변론할 수 없게 됩니다. 주도권을 내주고 계속 끌려다니게 됩니다. 선한 양심을 가질 때 바른 증거를 할 수 있고, 용기를 가지고 불의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고 견딜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힘이고, 진리를 따르는 사람에게 생기는 능력입니다.

무엇보다 그리할 때 선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이 도리어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십니다(16). 17절을 봅시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17). 제가 인생을 그리 오래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선을 행할 때나 악을 행할 때나 둘 다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피하려 한다 해도 고난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고난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함은 무엇을 위해 고난을 받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십니다(로마서 2:7). 반면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임합니다(로마서 2:9).

우리가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8절을 봅시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습니다. 곧 선을 행하심으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불의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그 육체가 죽임당하심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습니다(19). 그 영들은 노아가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입니다. 노아를 욕하고 비방했던 자들은 이같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무서운 심판을 당했습니다. 환난과 곤고가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방주를 예비한 노아와 그 가족은 그들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물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물은 복종하지 아니한 그들에게는 심판의 물이었지만, 복종한 자들 노아와 그 가족에게는 구원의 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물, 곧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우리를 구원하는 표입니다. 세례는 우리의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입니다(21). 22절을 봅시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사 지금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모든 천사와 권세와 능력을 다스리고 계십니다(22).

제가 악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길을 가던 불쌍한 자였습니다. 죄악된 본성을 따라 혈기대로 행하다가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대물림하고 비참하게 죽을 자였습니다. 이런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진정 복된 삶이며, 생명의 삶임을 보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피하기만 하려 했던 고난을 도리어 기꺼이 받고자 하고 이런 고난을 받을 수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을 주신 주께 감사합니다. 제가 선을 위하여 고난 받는 기쁨을 실제 삶 속에서 배우고, 이 복을 증거하고 나누는 삶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는 세상에서 도리어 복을 비는 왕 같은 제사장의 삶,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고난을 받는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불의한 세상에서 같이 악하게 대하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비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함으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는 복을 누리고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3:8,9)

2022 베드로전서 3강 메시지 0301-0322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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