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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13강 메시지 천모세

창세기 18:1-19:38

 

 

아브라함을 동역자로 삼으신 하나님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창세기 18:18,19)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과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간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을 따라간 롯의 삶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삶이 각각 어떻게 되었을까요?

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18: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까?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었습니다(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아브라함에게 말씀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들렸고,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12:1-3, 15:1, 17:1).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가는 가운데 육신으로 오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말씀으로 듣던 데에서 이제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자에게는 이처럼 진전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을 안다 하지만 실제로 글자로 적힌 성경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이 굉장히 딱딱하게 여겨지고 때로는 말씀이 실제 내 삶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아주 형식적으로 보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으로 볼 때에 우리가 말씀을 따라갈 때에 우리에게 말씀이 들리고 말씀이 우리 각 사람에게 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어떠한지 보기까지 진전이 있을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따라 간 사도 요한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 우리가 말씀을 보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숙제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광을 볼 소망 가운데 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어떻게 환대하였습니까?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혔습니다(2).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도 자기 할 일을 바빠서 모른 채 한 것이 아니라 달려나가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하였습니다(3-5). 그들이 네 말대로 그리하라 하자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할 떡을 만들라 하고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어 급히 요리하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서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셨습니다(5-8).

아브라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섬겼습니다. 그들이 씻을 것과 쉴 곳과 먹을 것을 아낌없이 대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렇게 섬길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이렇게 대접하였을까요? 히브리서에는 그가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했다 하였습니다(히브리서 12:3). 아브라함은 그들이 하나님인 것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신지도 모른 채 이렇게 섬긴 것으로 보아 아브람이 고상한 아버지에서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 성장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섬길 수 있었을까요?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는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믿고 물질 문제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의 여유는 그의 좋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분명한 결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모세의 계명을 다 지킨 청년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묻자 그를 사랑하시고 네게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그는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습니다(마가복음 10:17,21,22).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세리직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버렸으나 예수님을 얻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태복음 13:44). 세리 레위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좋은 땅을 롯에게 양보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그의 방패요 그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시는 하나님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갈 때에 말씀도 좋고 물질도 좋고 할 수 없습니다. 롯은 하나님께서 멸망하실 땅이지만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풍족한 소돔 땅을 택하여 갔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지 물질을 따르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결단에 따라 열매도 완전히 다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이 대접한 음식을 먹었습니다(8).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확실한 증거입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며 찾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장막에 있나이다 대답하였습니다(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습니다(10).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습니다(11). 사라는 아이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는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생각 하였습니다(12). 사라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진 것을 볼 때에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라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13).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마음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들어도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농담 정도로 여기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이를 드러내시고 그를 도와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또 무엇이라 하십니까?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였습니다(14). 하나님께는 능하지 못한 일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말씀하신 것과 같이 사라에게도 하나님께 능하지 못한 일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라가 자신을 볼 때에 아들을 낳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녀를 도와가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따라 간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시면 되지 왜 사라에게도 말씀하시는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하시고 그의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하셨습니다(17:15). 아브라함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소망을 주셨듯이 사라에게도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될 소망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처럼 사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함께 이 길을 가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아내이니까 그냥 순종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도우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볼 때에 얼굴이 예쁜 나의 공주로 볼 것이 아니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열국의 어머니로 소망을 가지고 보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생각하지도 못한 새롬 목자님과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그 동안 내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지 새롬 목자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과 소망이 무엇인지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저를 양산캠퍼스 가운데 복음을 증거하고 구원 얻게 하는 일에 부르신 것처럼 새롬 목자님도 함께 부르심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새롬 목자님을 볼 때에 나에게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새롬 목자를 캠퍼스의 영혼들을 먹이는 믿음의 어미로 볼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라가 두려워서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부인하였으나 주께서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하였습니다(15). 하나님과 사라가 농담을 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대하시고 그에게 숨기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16절을 봅시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갔습니다(16). 여호와께서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십니다(17). 가장 친한 친구에게 숨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친구처럼 여기시고 그에에게 무슨 일을 하려 하시는지 그에게 숨기지 않고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다 같이 18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란에 머물러 있던 아브람에게 처음 주셨던 약속의 말씀과 동일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하셨습니다(12:2,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잘 따라오지 못한다 하여 약속을 수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 약속하신 그대로 지켜가시는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에게 복을 주시고 천하 만민이 그를 통해서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복이 무엇입니까? 19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19)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바로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도를 지키면 의와 공도를 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떤 점에서 복일까요? 아담과 하와가 가장 간교한 뱀의 꾐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창설하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탐심을 따라 사는 사람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시기심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모든 여자를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버린 그들을 홍수로 심판하시고 다시는 땅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어려서부터 마음에 계획하는 바가 항상 악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바벨탑을 쌓아 흩어짐을 면하고 자기 이름을 지면에 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고 다스리는 복을 주셨으나 탐심에 넘어가 이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볼 때에 마음이 안타까우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탐심에 넘어가지 않고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삶을 살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온전히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이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릴 뿐 아니라, 그의 자식과 권속들도 이를 지켜 복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천하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가장 간교한 사탄은 그럴듯한 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도록 합니다. 저에게도 자꾸만 사탄은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말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현실 감각을 가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돈과 사람들의 인정이 저를 안정적으로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학사 수양회를 통해서 말씀 안에 생명이 있음을 목자님들의 메시지를 통해서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장래 문제로 고민하는 가운데 말씀을 놓쳐 버릴 때 제 안에 생명이 없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말씀은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고 어두운 가운데 빛을 비추입니다. 다들 자기 좋을대로 사는 삶 가운데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지만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진정으로 생명을 얻는 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는 것이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하겠다고 하십니까?

20,2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하십니다. 사람이 죄악을 즐기며 산다고 당장에 큰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범한 그 죄악에 대해서 듣고 보고 계십니다. 우리로 그 죄악을 듣고 보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 행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습니다(22). 아브라함이 주께 가까이 나아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23,24). 아브라함의 기도는 의인만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는 의인을 위하여 악인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래를 누이라 하여 바로에게 빼앗겼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바로를 야단치시고 그의 편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용서함 받은 자로서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하였습니다(25). 하나님께서 이에 무엇이라 하십니까? 여호와께서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하십니다(26). 아브라함은 여기에 머물지 아니하고 감히 주께 아뢰고(27),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하며 아뢰고(30), 이번 만 더 아뢰리이다(32) 간구하여 의인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대답을 얻어냅니다.

그의 간구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함이 드러납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소돔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하겠다고 말씀하시니 그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며 떠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의인을 위하여 악인도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의 기도는 제사장적인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죄악된 사람 사이에서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한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용서하지 못하는 세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들 혼자서 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사람들 안 보고 혼자서 어딘가에 들어가서 살고 싶습니다. 때로는 옆에 있는 사랑스러운 동역자도 용서가 안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갑자기 고집을 부리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싶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서 진정한 복은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은 자로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태복음 6:12). 용서함을 받고 용서하는 자가 진정한 복을 누리는 자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악하다하여 그들을 피하고 정죄하는 자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그러한 것처럼 하나님께 죄인을 위해 간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러면 소돔은 어떻게 되었고 소돔에 살고 있던 롯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91,2절을 봅시다. 저녁 때에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내 주여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하자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하였습니다(19:1,2).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롯은 그들을 위하여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었습니다(3). 롯에게는 하나님은 가지 않고 두 천사만 갔습니다. 롯도 천사들을 영접하였지만 아브라함의 대접과는 비교가 됩니다. 그는 집으로 초청을 하였지만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하였고 살진 송아지를 낸 아브람과 달리 무교병으로 대접하였습니다.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에게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하였습니다(4,5). 젊은 사람 늙은 사람 할 것 없이 소돔 땅 가운데 죄악이 만연하였습니다.

이에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는데 내가 그들을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합니다(6-8).

그러나 소돔 사람들은 네가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하며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 밖의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하였습니다(9-11).

천사들이 롯에게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가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하였습니다(12).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고 우리가 멸하리라 하였습니다(13). 롯이 나가서 딸들과 결혼한 사위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14). 그들에게 구원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하였습니다(15). 그러나 롯이 지체하였습니다. 천사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습니다(16). 천사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무엇이라 합니까?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방향을 주었습니다(17).

그런데 롯이 무엇이라 합니까? 다 같이 19,20절을 읽어봅시다.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19,20). 롯은 천사들이 생명을 보존하도록 도우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합니다. 그럼에도 천사는 계속하여 그를 도와갑니다.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겠다 하니리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습니다(21,22).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고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셨습니다(23,24).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습니다(25).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도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26).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습니다(27,28). 아브라함의 목자로서 소돔과 롯을 위해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 내보내셨습니다(29).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습니다(30). 두 딸은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우리의 베필 될 사람이 이 땅에 없으니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큰 딸이 동침하고 이튿날 작은 딸도 동침하여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였습니다.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여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 되었고 작은 달도 아들을 낳아 벤암미라 하여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30-38).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롯의 삶이 대조가 됩니다. 그들은 모두 하란에 머물고 있던 데라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은 사람을 보고 따라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완전히 행하지만 롯은 기준이 없이 상황에 맞추어서 삽니다. 그들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친구처럼 대하시며 숨기지 않으시고 그에게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알려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만 구원 얻는 삶이 아니라 죄악된 소돔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는 제사장이요 목자의 삶을 삽니다. 그러나 롯은 끊임없이 두렵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자기 생각을 주장하며 스스로 굴속에 갇혀 근친상간을 통해 모압과 암몬 자손을 낳게 됩니다.

 

우리가 똑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지만 말씀을 붙드는 자가 있고 상황에 맞추어 사는 자가 있습니다. 롯과 같이 당장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 맞추어서 사는 것이 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행하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에게 숨기지 않으시고 그의 간구를 들으심을 보게 됩니다. 사탄은 자꾸만 우리에게 말씀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삶을 통해서 자신이 복을 받고 그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시편의 기자는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편 1:1-3).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고집하다가 롯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세기 18:18,19)

 

2019 창세기 13강 메시지 1801-1938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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