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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 12 강 김요한

창세기 17:1-27

 

 

여러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창세기 17:5)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하리라 하셨습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도 사라로 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뜻이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

171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바로 앞 절인 창세기 1616절에는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아브람이 팔십육 세라고 나옵니다. 아브람이 그의 첫 아들 이스마엘을 낳고 십삼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십삼 년 동안 아무 기록이 없습니다. 아무 기록이 없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르신 말씀을 봅시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간 때가 칠십오 세였습니다(12:4). 그때까지 그의 아내 사래가 임신하지 못하여 자식이 없었습니다(11:30).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하셨습니다(12:1-3). 자식이 없던 아브람에게 이 말씀은 큰 도전이 되었고, 그는 그에게도 자식이 있을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 십일 년이 지나 그의 몸에서 이스마엘이 났습니다. 그의 자식 없는 결핍이 채워졌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였을까요! 팔십육 세 아브람과 칠십육 세인 사래는 아기 이스마엘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들을 보며 방긋 웃으면, ‘웃었어, 애가 웃었어하며 손뼉을 치고 기뻐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스스로 자신의 몸을 뒤집었을 때는 온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자식 가진 아빠와 엄마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다 보니 십삼 년이 지났습니다. 자식 없던 아브람에게 있어 의미 있는 세월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아브람과 함께 하시면서 말없이 지켜보셨습니다. 그가 마음껏 아빠의 행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이 만으로 열세 살이 되어 이제 코 밑에 거뭇거뭇 수염도 나고, 슬슬 아빠와 엄마를 피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자, 아브람과 사래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십니다. 무슨 때를 기다리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를 기다리셨다가, 아브람 편에서 말씀이 들릴 때에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따르는 사람과 항상 함께 하십니다. 십삼 년의 세월동안 아브람은 이스마엘의 아빠로서 의미 있는 세월이었고, 하나님께는 말씀을 따르는 아브람과 함께 하시며 그가 말씀을 들을 때를 기다리시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의미 없는 시간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점에서 완전하라 하십니까?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2-9)

2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하나님 사이에 하나님의 언약을 두고자 하십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관계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음으로 그 관계가 맺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언약하셨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이 언약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크게 번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자, 아브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에서 멀어져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십삼 년 동안 그의 제일 관심은 아이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나 늘 이스마엘, 이스마엘이 먼저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3절 상반 절을 봅시다. 아브람이 엎드렸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이 같이 도우십니다. 누구든지 말씀이 들리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씀 앞에 완전하게 행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을 다시 듣고자 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3). 4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그와 함께 있음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아브람이 노년에 얻은 자기 몸에서 난 자기 아들 이스마엘만 돌보고 있지 말고, 그가 따르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그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엎드린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이 그와 함께 있음을 상기시키시고, 그의 이름을 언약을 따라 부르겠다고 하십니다. 같이 5절을 읽읍시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아브람이란 이름은 고상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자식 없던 아브람이 간절히 바랐던 삶은 자식을 낳아 고상한 아버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따랐고, 이스마엘을 낳아 그의 그 결핍이 채워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언약을 상기시키셨습니다. 그의 결핍이 자신의 아들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결핍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가, 그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을 충족시키고 있는가에 있도록 항상 언약을 따라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그를 향한 한결 같은 소망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연약을 생각하게 된 그의 이름을 자기 아들을 돌보는 고상한 아버지,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살고자 하는 그를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십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다르고, 무엇보다 생각이 다른, 각기 다른 여러 민족의 아버지, 이들을 다 돌보고 섬기고 살려내는 아버지, 이 말, 저 말 각기 다른 말들을 다 들어주는 아버지, 그러면서도 일관성이 있어서 믿고 따를만한 아버지, 그 여러 민족들을 다 살려내는, 복 받게 하는 아버지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복인 아버지, 여러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되게 하십니다.

경북 왜관에서 태어나 삼강오륜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 생각했던 어떤 형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미국 워싱턴 자매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 둘,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왜관에 있는 그의 동생과 통화하면서, ‘상수야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아니야, 그렇게 이름을 부르지 말고, 작은 아버지라 해야 돼.’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은 친밀하게 그의 작은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는데, 왜 그러지 하였습니다. 한국 사람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십니다. 천지의 주재이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하십니다. 6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심히 번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아브라함으로 나오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누구이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복을 주시려 하십니까? 그가 말씀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따르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따르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자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레위기 22:21). 어려서부터 그 계획하는 바가 악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아브람도 그러하였지만, 그는 말씀을 듣고 따르는 가운데 그의 마음이 새롭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가 허물이 있고 악하지만, 그런 자신임을 알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엎드려 영접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하나님께서 고상한 아버지에 머물고자 하는 아브람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되게 하십니다. 그 생각이 넓어지게 하십니다(이사야 54:2).

7절을 봅시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붙드는 믿음의 사람과 하나님께서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에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그가 지금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8).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9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그가 들은 바 말씀을 지키면 그 후손도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하신 그 언약을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은 대로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무엇을 하라 하십니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10-14)

10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하셨습니다.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하십니다. 포피를 베는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그 후손 사이에 세우는 언약의 표징입니다(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하십니다(12). 집에서 난 자든지 돈으로 산 자든지 다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하나님의 언약이 그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될 것입니다(13).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입니다(14). 이는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음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14).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을 사람이 항상 기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이 이스마엘을 얻고 나서 십삼 년이 지나서야, ‘,,’ 하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음을 발견하는 아브람을 보시면서 그 살에 표징을 가지게 하심으로 항상 하나님의 언약, 아브라함,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복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하라 하십니까?

 

사래는 사라라 하라(15-18)

15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하셨습니다. ‘사래나의 공주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은 그 아내 사래가 비록 임신하지 못하여 자식이 없었지만, 그의 아내를 생각하면 항상 나의 공주였습니다. 이런 아브람으로 인해 사래는 자식이 없었지만 행복하였을 것입니다. 바로에게 잡혀 가기도 하고, 아브람에게서 아들을 낳은 자신의 종 하갈로부터 때로는 멸시를 받기도 했지만, 아브람과 같이 이스마엘을 키우면서 행복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공주같이 사는 사래를 사라’,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 하라 하셨습니다. 말씀역사는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여러 형제자매들을 자신의 자식 같이 사랑하고 키워내는 일입니다. 자식은 아빠 혼자 키워내지 못합니다. 엄마 혼지 키워내지도 못합니다. 엄마, 아빠가 같이 키워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었으면 사래도 사라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캠퍼스 형제자매들을 초청하여 같이 식사를 하려 하는데, 그의 공주 같은 아내 사래가 으응 하지 마, 우리끼리 있자 응..’ 해버리면 아무리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살고 싶은 아브라함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을 것 같지요? 그렇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이를 아셨습니다. 그래서 사래를 사라로 하라 하셨습니다. 이는 또한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를 볼 때 항상, ‘여러 민족의 어머니로 보라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16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복을 주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주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습니까? 17절을 봅시다. 아브라함이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때 엎드린 것은 받아들이는 것과 다른 의미였습니다. 그가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ㅋㅋㅋ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라함도 참, 어찌 이렇게 지금의 우리와 같을까요. 말씀을 말씀대로 듣지만,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합니다. ‘하나님도 참, 현실을 모르시고 ㅋㅋㅋ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런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말씀하여 주십니다.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삭이라 하라(19-22)

19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닌 것은 아니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사라가 낳을 아들의 이름까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하나님의 언약을 세우실 것이고, 이는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십니다.

아브라함이 걱정하는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들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하나님께서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 년 후에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셨습니다(21).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복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복주셨습니다(창세기 1:27,28). 여자를 남자에게 아내, 돕는 배필로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창세기 2:18, 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남편과 아내를 서로 간에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창세기 2:25). 아브라함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살려 하면, 그 아내 사라도 같이 믿음으로 살게 되고, 또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어야 하듯이 사라에게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도우실 뿐만 아니라, 사라도 도우십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고, 사라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역사에 쓰임 받는 사람은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디모데저서 3:2,12). 그래서 부부를 동역자, 같은 일을 하는 사람, coworker라 부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보니 말씀을 잘 듣고 받았음을 보셨습니다. 안심하고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할례를 받았고(23-27)

23절부터 봅시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습니다. 아브라함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24),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습니다(25). 그 날에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동시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습니다(27).

아브라함은 그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완전하게 행하였습니다. 그의 마음과 뜻을 다하여 늙은 나이에 할례를 행하였습니다(신명기 30:6).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큰 자랑으로 여기는 유대인들은 말씀대로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라 하여 아주 멸시하였습니다(사무엘상 17:6,36). 이는 할례의 의미를 모르는 믿음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228, 29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할례는 육의 몸을 벗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겠다는 표징입니다(골로새서 2:11).

언약이 먼저이며, 할례는 아브라함이 이를 받아들인 표징으로 그가 행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몸에 무슨 표를 남기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의식을 행한다고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따릅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노년에 얻은 아들 이스마엘에게 빠진 아브람을 십삼 년 동안 지켜보셨습니다.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그에게 말씀이 들릴 때에 그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도록 하셨습니다. 고상한 아버지에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따르는 사람을 누구든지 아브라함과 복을 주시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십니다.

저는 아홉 남매의 다섯째인 경상도 사람입니다. 이런 저를 하나님께서 말씀을 들려주시고 말씀을 따라 캠퍼스 복음역사에 쓰시고 계십니다. 그런 중에 결혼하고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인제역사에 쓰임 받으면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첫 아들이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저의 아내를 갑자기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둘 딸을 가진 모니카 동역자와 결혼하였습니다. 두 딸들은 제가 만났던 아들들과 아주 다른 아이들이었습니다. 공주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들 딸들이 결혼하여 두 며느리가 생겼습니다. 그 중의 한 며느리는 영국에서 살다가 온 거의 영국사람이고, 한 사위는 아예 미국사람입니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도 다 다른 사람들입니다. 저의 손자는 제가 무슨 제안을 했더니,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라 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왜 제게 이렇게 행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 역사는 저와 다르고, 또 서로 각기 다른 형제, 자매들을 만나고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는 일입니다. 저로 이 역사에 쓰시고자 하심을 알게 되니 그 동안의 여러 일들이 다 감사가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귀하게 쓰실 것을 소망하게 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성경 말씀을 읽고 읽은 바 주의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아브라함이요 사라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말씀을 읽고 듣고 받아 이 시대 캠퍼스 여러 형제자매들을 살리는 아버지요 어머니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세기 17:5)

 

2019 창세기 12강 메시지 1701-1727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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