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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요한계시록 4강 정여호수아

요한계시록 3:1-22

 

 

차든지 뜨겁든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요한계시록 3:15)

 

오늘은 일곱 교회 중에서 남은 3개의 교회, 곧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께서 주신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을 받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보내실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겠습니다.

먼저 주께서 사데 교회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1-6)

1절을 봅시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사데 교회 성도들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살아 있다는 칭찬을 듣는, 대외적으로 아주 평판이 좋고 번창하는 교회였습니다. 수많은 행사와 다양한 사역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주님께서 보실 때는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육신은 살았으나 영적으로는 그 생명을 다 잃어버린 자입니다. ‘더 이상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이런 냉정하고도 냉혹한 평가를 받는 것을 볼 때, 사데 교회는 겉과 속이 가장 달랐던 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일년 내내 예배와 제사와 절기와 기도가 끊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주께서 찾으시는 열매가 하나도 없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그들도 주께 저주를 받아 뿌리째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처럼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2절을 봅니다. 깨어나서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히 하라고 하십니다. 이를 볼 때 그들 중에 다 죽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 남아 있는 복음의 불씨가 있습니다.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면 아직은 충분히 되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남은 바 불씨를 굳게 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3절을 봅시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들 자신이 주님과 주의 종들을 통해 어떻게 복음을 듣고 받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를 생각하면 그들은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참된 믿음의 삶으로 돌이킬 수 있습니다. 깊은 잠에서 깨어 날 수 있습니다.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어떻게 됩니까? 주께서 도둑같이 이르실 것입니다. 어느 때에 이르는지 그들이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사데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굳게 믿고 있던 경비병들은 근무시간에 잠을 자고 있다가 순식간에 함락되었습니다. 그것도 이런 일을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재림의 주께서 그들에게 도둑같이 오시면 그들은 이를 알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야 합니다.

4절을 봅시다. 감사하게도 사데 교회에 아직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었습니다. 죽지 않은 자’,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 거룩한 싸움을 하는 자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주께서 이 싸움에서 이기는 자는 깨끗한 흰 옷을 입혀주실 것이라 하십니다(4). 주께서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하나님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라 하십니다(5).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지금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6).

이제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편지합니다. 무엇이라 하십니까?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7-13)

7절을 봅시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다윗의 열쇠하나님의 나라를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입니다. 이 열쇠는 오직 예수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로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십니다(요한복음 14:6). 이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8절을 봅시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께서 그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어두셨다고 하십니다. 너희들은 무조건 패스라고 하십니다. ! 이보다 더 큰 복된 약속이 어디 있을까요? 주께서 이들에게 왜 이 같은 축복과 은혜를 약속해 주시는 것일까요?

8절 하반절을 봅시다. 먼저 그들이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작은 능력은 교회의 규모나 재정이 적다는 뜻일 수도 있고, ‘성도 수가 적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능력이 약하고, 숫자가 적을수록 거센 세상 파도에 더 떠밀려 다니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정반대로 주의 말씀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으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봤지만 일곱 교회 중에 책망받는 교회가 많았습니다. 특히 주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발람과 니골라당이나 이세벨과 같은 거짓 선지자들의 교훈에 빠지는 교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성도들은 작은 능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의 말씀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도 않았습니다. 외부의 어떤 핍박가운데서도 주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믿음을 지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9절을 보면 그들도 서머나 교회처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거짓 고소를 받아 큰 어려움과 환난가운데 처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그 사람들 중 몇 사람을 그들에게 주어 그 발 앞에 절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일을 통해 내가 너희를 사랑하시는 줄을 알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큰 박해자였던 사울이 갑자기 사도 바울로 변화되어, 주의 역사에 적극 동참하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인내로서 주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또 주의 이름을 지키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그뿐아니라 주님 다시 오실 그 날 온 땅에 있을 그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십니다(10). 그러므로 그들은 속히 오실 주님앞에 그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그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11).

이기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12절을 봅시다.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약속도 유대인들에 의해 회당에서 축출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정죄를 받은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줍니다. 온 건물을 지탱하고 지지하는 것이 바로 기둥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자신을 축출한 유대인들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하나님이 성전을 지탱하고 지지하는 기둥이라고 하십니다. 결코 성전에서 다시 떠나지 아니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촛대는 옮겨질 수 있어도, 기둥은 옮겨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께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이기는 자 위에 기록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12). 그러므로 귀 있는 자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13).

빌라델비아 교회는 앞에 있는 사데교회와 비교됩니다. 그들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말씀을 지키며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을 주께서 무한히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를 볼 때 사람이 많고 적고, 재물이 많고 적고, 학식이 많고 적고, 능력이 많고 적고,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교회에 속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나 자신이 주님 다시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굳게 간직하고, 지금 여기서 인내로서 주 앞에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주님께 인정받는 가장 지혜로운 삶입니다.

우리도 세상적으로 보면 작은 능력 밖에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숫자로나 건물의 크기로나 매우 작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살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명절을 맞아 다 놀러간다고 난리인데 우리는 이 시간에 주일예배를 지키고자 이렇게 믿음으로 나아 왔습니다. 아마 우리중에 핍박을 이기고 나아 오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이런 우리를 누구보다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빌라델피아 성도들에게 주신 복을 부어 동일하게 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이 귀한 씨름을 통해 주께서 우리를 주의 성전의 기둥으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봄학기 우리 각 사람이 이 믿음으로 주의 이름이 증거되는 일에 주의 기둥같이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라 하십니까?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14-22)

먼저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자신을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로 소개하십니다(14). ‘아멘그렇게 되어지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항상 하고 순종하셨습니다. 또 그는 충성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충성하시되 죽기까지 아들로서 충성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참된 증인이십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증거에 대해서 참된 증인이 되십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창조의 주관자이시오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뒤에 보면 칭찬은 하나도 없고 무서운 책망만 있습니다. 그만큼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셨습니다.

실제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15,16절을 봅시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한마디로 주께서 토해버리고 싶은 상태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차다’ ‘뜨겁다는 말은 찬물’ ‘뜨거운 물을 말합니다. 실제로 라오디게아 옆 동네인 히에라폴리스에는 뜨거운 온천물이 흘렀고, 반면 골로새는 맑고 차가운 물로 유명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물이 나지 않아 히에라폴리스와 골로새에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수로로 받았는데, 오는 도중 두 물이 다 미지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지근한 물이 어떠합니까?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린 후에 사람들은 시원한 물을 원합니다. 혹은 날씨가 추울 때는 따뜻한 물이나 차를 원합니다. 그런데 미지근한 물은 어디에서도 쓸데가 없습니다. 맛이 없어서 사람들은 입에 넣었다가 그냥 토해 버립니다. 뱉어버립니다. 기분만 잡칩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성도들의 신앙상태가 주님께서 보실 때 이와 같았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인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신앙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를 끊임없이 서성이며 살게 됩니다. 어느 한쪽도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세상과 주님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한 마음으로 두 주인을 섬기는 자입니다. 그렇기에 주께서 너무 역겨워서 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이들에게 이제 한 주인만 섬기도록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미지근한 그들의 상태가 실제로 어떠했습니까? 17절을 봅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겉으로 볼 때 그들은 부자였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 마음이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그들의 실상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들은 곤고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었고, 벌거벗은 거지와 같다고 하십니다. 그 수치를 가질 만한 작은 천쪼가리도 가지고 있지 않는 아주 가련한 자들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 가련한 상태에서 벗어날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하십니까?

18절을 봅시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먼저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하십니다. 사도 베드로도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금과 같은 믿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습니다(베드로전서 1:7). 곧 정금같은 믿음은 고난을 통해 생깁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돈으로 고난을 회피하던 삶에서 돌이켜 그 고난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으로 정금같은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들은 흰 옷을 사서 입어야 합니다. 이를 볼 때 그들이 미지근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흰 옷,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벗어 버린 데 있습니다. 주의 십자가의 공로를 잊어버린데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만이 우리의 모든 수치와 죄의식을 가려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시 그 흰 옷을 사서 그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야 합니다.

또한 그들은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야 합니다. 이를 볼 때 그들이 미지근해질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부요함에 그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이 가려져 버리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합니다. 고난에 뒤에 있을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편함과 안일함만을 추구하게 되거나, 당장 보이는 것을 따라 어둡고 편협한 자기 세계에 갇히게 됩니다. 그 마음은 염려와 불안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하십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병든 눈을 치료하여 올바른 가치관, 역사관, 세계관을 소유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할 때 그 사람은 주님 오실 때까지 언제나 깨어서 뜨겁게 주와 복음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 가지 모두를 내게서사라고 하십니다. 이는 다른 데서 얻을 수 없고 오직 주님께로부터만 살 수 있다고 하십니다. 결국 우리가 신앙적으로 회복되고 다시 뜨거워질 수 있는 모든 힘과 능력은 다른 데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맺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이 맺혀져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다 같이 19절을 봅시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그는 주께서 하시는 책망의 말씀을 사랑으로 받습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잘못된 길을 가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는 부모가 없습니다. 만약 그냥 내버려 둔다며 그 부모는 자녀를 참으로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자녀가 그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도록 책망하여 징계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요즘 주변을 보면 아무도 쓴소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움받을 것이 두려워 그런 씨름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점점 갈수록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내 주변에 나를 책망해 주시는 분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복 받은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점에서 우리는 정말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늘 책망을 해주시는 우리의 선한 목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도록 가만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책망을 통해서 돌이키게 하시고 끝까지 돌이킬 수 있도록 씨름을 해주십니다. 뜨겁게 사랑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망을 받았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크신 주님의 사랑으로 알고 더욱 열심을 내어 회개해야 합니다.

20절을 봅시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많은 분들이 이 본문을 불신자를 초청할 때 많이 쓰는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미지근한 자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교회 안에 들어가려고 애쓰시면서 문밖에 서서 두드리시지만, 정작 그 교회는 문을 열어주지 않아 교회 밖에 계속 서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라디오게아 교회의 상태가 그러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그 교회에서 쫓겨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직 소망은 있습니다. 회복의 길이 열려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20절을 다시 봅시다. 예수님은 문밖에 서서 계속 두드리고 계십니다. 언제라도 문만 열면 들어가고자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됩니다. 내 마음을 두드리시는 주의 음성으로 듣고,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주님과 더불어 먹게 됩니다.

이를 볼 때 우리가 미지근한 신앙의 상태를 해결하는 방법 내 인생의 문 밖으로 추방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영접하는 데 있습니다.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주의 세미한 음성을 계속 듣고 들릴 때마다 문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의 심령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흠없는 신부로 삼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그와 더불어 먹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닙니다. 더 좋은 약속이 있습니다. 21절을 봅시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하십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통해 저의 신앙상태를 돌아보게 됩니다. 명절기간 동안 제가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내일 저의 장인어른이 간암수술을 하시는데도 말씀을 전파하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그렇게 없었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줄을 알면서도, 양들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미지근하게 식었습니다. 왜 그런가? 곰곰히 생각해 볼 때, 결국은 주님이 다시 그리고 속히 오신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임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제 속에 간절함과 절박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족이든 양들이든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갈리게 되는 아주 중요한 직분을 맞았음에도, 제게는 이같은 영적인 긴장감이 없었습니다. 재가 이제 정말 정신을 차려야 겠습니다. 회개하고 매일 말씀을 전파하기 위한 치열한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겠습니다. 이 일을 하기에 앞서 매일 말씀으로 먼저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교제에 힘써야 겠습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제게 하시는 이 말씀을 들려 주심에 감사합니다(22). 제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부요해진 마음에서 돌이켜 지금 도울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을 전하고다가오는 봄학기 말씀 역사를 전심전력으로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주님은 미지근한 신앙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우리가 미지근해지지 않으려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주께서 반드시, 다시, 그리고 속히 오십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굳게 간직하는데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는데 있습니다. 주의 뜨거운 책망의 말씀을 지금 여기서 마음으로 듣는 데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지금 주의 말씀으로 돌아가 다시 주님과의 뜨거운 사랑의 관계성을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심령에 먼저 불이 붙고 힘이 나서 다가오는 봄학기 열정적으로 주와 복음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요한계시록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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