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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느헤미야 5강 정여호수아

느헤미야 11:1-13:31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느헤미야 13:30,31)

 

어제 물어 놓고 또 같은 질문을 하는 저를 보며 많은 분들이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목자님은 제 말을 듣기는 하시나요?’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하실까요?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이 말을 3번이나 합니다. 그에게는 나를 기억하시는 나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힘 빠질 일이 많은 그가 힘을 빼지 않고 많은 이들을 위로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죄와 싸울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앞에서 대적들의 온갖 방해속에서도 성벽 중건 역사가 52일 만에 끝났습니다. 이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말씀대로 살고자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했습니다. 세운 언약을 따라 그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십분의 일은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11:1-12:26)

1절을 봅시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습니다. 또한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습니다. 제비에 뽑히지 않은 백성들 중에서도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백성들이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2). 공동번역을 보면 농토를 떠나 예루살렘에서 사는 것은 불리한 일이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보면 예루살렘 성에 거주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왜 이렇게 했을까요?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않고자 한 것입니다. 실제로 성읍은 아직도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쳐 건축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7:4) 이에 그들이 십분의 일은 성에 거주하게 하되, 누가 성에 거주할지는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겼습니다. 이전과는 달라진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비록 어렵고 힘들지라도 거룩한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냅니다.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깁니다. 먹고 사는 실제 문제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렇다고 제비에 뽑히지 않은 사람들은 헌신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비에 뽑히든 뽑히지 않든 자기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자기 있는 그 곳에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자기 기업을 지킵니다.

이어서 3절부터는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좀 특이한 점은 그들을 가리켜 용사라고 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6,14).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을 대적으로부터 지키는 하나님의 용사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성전을 섬기는 문지기, 그들의 종인 느디님 사람들, 그리고 노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19-24). 예루살렘 성 주변 마을과 들과 그 주변 동네에 거주한 백성들도 있습니다(25-36).

11장이 예루살렘 성안에 살게 된 사람들의 명단이라면, 12장은 성벽보다 먼저 완성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명단입니다. 1절부터 11절까지는 1차 포로 귀환 때 돌아온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을, 12절부터 26절까지는 제사장 21반열의 이름과 우두머리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후 다윗 때처럼 제사장 반열이 정비되고, 성전 제사가 계속 드려지며, 하나님의 전이 어떻게 관리가 되었는지를 증거합니다. 이같이 제비뽑힌 자들 중 성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정착하는 역사, 또 성전을 관리하고 섬기는 종들까지 굳게 세워지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12:27-13:3)

27절을 봅시다. 마침내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찬양대를 소집하고(28,29), 정결의식을 행하였습니다(30). 이후 백성의 절반으로 나누어 성벽 위로 대오를 지어 가게 하였습니다(31). 한 무리는 오른쪽 분문을 향하여 가게 하되 학사 에스라가 앞서서 가게 하였고(31-37), 다른 무리는 왼쪽으로 행진하게 하되 느헤미야가 함께 갔습니다(38-39).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는데(40), 이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습니다(43). 성전지대가 놓였을 때는 늙은이들은 통곡했고, 젊은이들만 기뻐했었습니다. 그게 우는 소리인지 찬양소리인지 분간조차 어려웠었습니다(에스라3:12,13). 그런데 이번 성벽봉헌식 때는 늙은이와 젊은이는 물론이고, 부녀와 어린아이까지도 즐거워하였습니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43). 하나님께서 백성들로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다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가장 크게 기뻐하셨다는 말일 것입니다.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이었을까요? 고레스를 통해 포로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한지 딱 94년만이 이루어 진 일입니다. 70년간의 포로기간 보다 성벽을 재건하는 역사가 더 오래 걸렸습니다. 참으로 더디고 지난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의 백성들이 마침내 견고한 성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대적들의 온갖 방해를 이겨내고 극복하고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와 헌신과 결단을 축복하시고 이 성벽 봉헌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즐겁게 하심으로 기쁨이 가득한 그 날,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또 무엇을 했습니까?

131절을 봅시다.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습니다. 이제 무엇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낭독된 율법의 말씀을 통해 백성들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한 까닭입니다(2). 이에 백성이 곧 그들 가운데서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습니다(3). 이같이 섞여 들어온 것들을 분리하는 것이 애써 지은 성전과 성벽을 다시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입니다. 섞이지 말아야 할 것과, 섞인 것을 분별하고 분리할 수 있는 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리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같이 성벽봉헌식에 백성들 가운데 외벽뿐 아니라 내적인 성벽이 세워져 하나님께 봉헌하는 귀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으로 책이 마무리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애써 분리한 것들이 다시 섞이는 문제가 또 발생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길어진 이유일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13:4-31)

6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왕의 부름을 받아 1년가량 잠시 총독의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4,5절을 봅시다. 이전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성전에 큰 방을 하나 내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도비야가 암몬 사람이고, 또 그동안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얼마나 집요하게 방해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그 대적 도비야에게 엘리야십이 방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어준 방이 자기 방도 아니고, 성전 봉사를 하는 레위인,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에게 주는 십일조를 보관하는 방입니다(5). 이는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고, 도적을 안방에 불러들인 것과 같은 일입니다. 내가 싸워야 할 나의 대적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할 때, 싸우지 않고 적당히 타협할 때, 이같이 대적에게 안 방을 내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어찌되었든 성전 섬기는 레위 사람들에게 돌아갈 몫이 대적 도비야의 배를 불리는데 이용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자기 몫을 받지 못한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은 자기 밭으로 도망할 수밖에 없었고(10), 하나님의 전이 다시 버려둠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11). 리더 한 사람의 죄의 누룩으로 인해 그동안 힘쓰고 애쓰며 세웠던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다시 세우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타협하지 않습니다. 돌아오자 마자 그는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던지고, 또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습니다(8,9). 또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백성들로 십일조를 곳간에 들이게 하고,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습니다(11,12). 그리고 충직한 사람들을 세워 형제들에게 돌아갈 몫이 제 때에 분배되도록 하였습니다(13).

그런데 느헤미야가 없는 사이 이스라엘에 들어온 죄의 누룩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5,16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을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며, 심지어 바닷가에 사는 두로 사람들까지 성안에 들어와서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팔았습니다. 이에 느헤미야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불러다가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며 크게 꾸짖었습니다(17,18). 또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을 단속하도록 하고(19), 또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는 장사꾼에게는 안식일에 오지 말도록 경고하며(20,21), 레위 사람이 성문을 굳게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하였습니다(22).

그때에 느헤미야가 또 보니 어떤 아이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였습니다.그렇게 힘들게 분리했는데 그들이 다시 이방인과 통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23,24). 이에 느헤미야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입고도 이방여인을 취하여 하나님앞에 큰 악을 행한 솔로몬 왕을 언급하면서, 그들로 다시는 이방인과 통혼하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게 하였습니다(25-27).

그런데 이 큰 악을 행하는데 있어 누가 가장 앞장섰습니까? 28절을 봅시다. 대제사장 엘리야십이 자기 손자를 성벽공사를 방해했던 호론 사람 산발랏의 딸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암몬사람 도비야에게 성전 방을 내 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그가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까지도 어겼습니다(29). 이에 느헤미야가 그를 성전에서 쫓아내어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습니다(28,30,31).

그들은 이방인과 통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10:20).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겠다고 했습니다(10:21).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겠다고 했습니다(10:39). 그들 스스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이를 지키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체 1년도 안되는 기간에 이 3가지를 모두 다 어겼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간 그 40일 사이에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이 괜히 기록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32:8).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간 백성들이 순식간에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세대가 된 것도 그냥 기록된 것이 아닐 것입니다(사사기 2:10). 이를 보면 정말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싶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건축하는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가 아무리 회개를 하고,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한들 다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성찬식을 하고, 세례를 받고, 목자 안수를 받고, 장막에 들어와 산다고 한들 다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이를 기억 못합니다. 잊으면 망할 수 있고, 죽을 수 있는데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우리는 힘이 빠집니다. 차라리 12장까지만 기록하고 끝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누구보다 힘이 빠지는 사람은 느헤미야 본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힘을 빼지 않았습니다. 다 무너질지라도 그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옵소서(14,22,29,31)

다같이 31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한 마디로 그에게는 나를 기억하시는 내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1:5). 비록 범죄했을 지라도 다시 돌아와 계명을 지켜 행하면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그들을 자기 이름을 두려고 택하신 곳에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9). 또한 주의 백성들을 향한 악인들의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3:2). 또한 자신이 행한 선한 일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시요, 그를 기억하사 크신 은혜를 베푸시며 아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3:14,22). 반면 거룩한 직분을 더럽히고 언약을 어긴 자들도 반드시 기억하사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29). 느헤미야는 힘든 순간마다 살아계신 이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나를 기억해 줄 나의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기억할 나의 하나님이 있는 자는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기억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사람들로 인해 넘어지거나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는 기도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또 어떤 직분을 가지든지, 어느 때든지 그것과 관계가 없이 하나님께서 기억하사 선하게 일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한결같은 믿음의 길을 갑니다. 지금 여기서 실제 하나님편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며 다른 곳에 가서 예배와 기도와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슨 직분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계실 때가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있다고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건데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 원망하고 이런 것들에 연연하다가 힘을 빼며 시간을 다 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서 같이 힘빠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그러한 사람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올해 초에 있었던 그 사건으로 인해 온몸에서 힘이 빠졌습니다. 사탄에게 순식간에 안방을 내준 것 같았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긴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제 믿음의 삶이 다 부정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죄와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힘든 순간에 제가 늘 부담스러워 하고 어려워했던 십자가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십자가에 같이 매달린 강도가 드린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주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그가 드린 그 간구도 들으사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약속하시는 주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23:42,43). 제가 아무리 죄인일지라도 그 죄에서 돌이킬 때 주께서 저를 기억해 주십니다. 저를 기억하시는 주님을 기억할 때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는 저의 죄악된 모습까지도 기억하실 하나님을 알고, 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드린 믿음의 간구를 기억하십니다. 그 사람도 낙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시간 제게도 들린 바 말씀이 있고, 기억나는 말씀이 있어, 어떤 죄가운데 있더라도 저를 구원하실 나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나아가 간구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저와 우리가 들린 바 말씀을 따라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고, 어떤 때에라도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기도함으로, 힘 빼지 아니하고 주의 거룩한 성을 건축하는 일에 계속 도전하길 기도합니다.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느헤미야 13: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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