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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갈라디아서
2018.01.21 12:45

2018년 갈라디아서 3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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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갈라디아서 3강 김아브라함

갈라디아서 3:1-29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 3:9)

 

제가 전할 말씀의 제목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입니다. 우리는 갈라디아서 1, 2강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다른 복음은 없고, 우리가 이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배운 대로만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서신을 쓰고 있는 바울 사도처럼 분명한 믿음으로 살 수 있다며 더할 나이 없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들을 볼 때, 믿음으로 산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고, 뭔가 변화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자기 성질대로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앙 생활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 말고, 눈에 확실히 보이는 뭔가를 하면 쫌 나아질 것도 같습니다. 이런 생각, 이런 길로 가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바울은 ‘어리석도다.’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로 아브라함과 함께 복 받는 자가 되도록 권면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 받는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시작합니다. ‘스튜핏’ 하는 요즘 유행어처럼 ‘foolish’ 말합니다. 그들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제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람에서 ‘어리석도’다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왜 어리석습니까? 갈라디아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그들 눈앞에 밝히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로 죽어 마땅한 자신들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믿음으로 산다는데 확실한 표를 보여 봐라. 믿음이 있으면 눈에 보이는 결과를 보여라. 믿었으면 할례도 행하고 율법대로 살아야지 이야기함으로 그들을 꾀었고, 갈라디아 성도들은 흔들렸고, 넘어갔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그들에게 바울 사도는 연달아 질문을 합니다. 2~5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라디아 성도들이 무슨 율법의 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 얻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사는 것이 마음에 괴로움만 있는 것 같다고 믿음을 버리고, 구원도 주지 못하는 율법으로 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해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말하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6) 이 말씀은 창세기 15장의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에 큰 민족과 복의 근원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따라왔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주변에 적들이 가득한 이때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했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때 아브라함은 욱했습니다. 여호와를 따라온 10년 동안 자식하나 안 주시면서 ‘방패, 큰 상급’ 또 말로 때웁니까? 하나님이 자식을 주지 않으니 자기 생각대로 자기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 삼겠다 하였습니다. 10년 전 말씀 한마디로 하나님을 좇아 간 아브라함도 대단하지만, 하나님께 들이 받는 아브라함도 보통은 아닙니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고 따라왔기 때문일 겁니다. 쫌 불경해 보이는 아브라함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매로 다스리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뭇별을 보여주시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여 주십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대들던 아브라함은 놀랍게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 받은 것은 무슨 행위를 해서가 아닙니다. 믿기 힘든 그 때에라도, 자기 생각대로 해보려는 그 때에라도 자신을 찾아와 약속하여 주신 하나님, 그리고 그 약속대로 이루어 가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7) 그들의 행위나, 혈통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8하)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됩니다.(9) 율법 행위가 아니라 그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믿음이 아브라함과 같이 복을 받게 합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헷갈린 것은 믿음과 행위를 같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이러 이러한 수준에까지 올라가고, 눈에 보이는 열매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을 때 ‘믿음만으로 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고, 율법이나 할례 같은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찾고자 합니다. 율법은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발견케 할 뿐입니다. 10,11절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을 한번 행했다고 끝이라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뭐가 되었든 해버리면 의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한번이 아니라 모든 일을 항상 행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저주 아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다릅니다.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같이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십니다.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도 율법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이것도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율법보다 믿음이 먼저 임을 말합니다. 사람의 언약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도 약속을 하셨습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8) 이 자손은 오직 한 사람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율법은 사백삼십 년 후인 모세 때에 생겼습니다. 나중에 생긴 율법이 먼저 있던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합니다. 믿음과 율법 중에 믿음이 먼저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믿음만 주시지 왜 율법은 주신 것입니까? 율법과 약속(믿음)이 다른 것입니까? 둘 다 한분이신 하나님이 주셨고, 사람이 제대로 살게 하려 주셨습니다. 그 역할이 다릅니다. 율법은 온 세상이 죄에 갇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 죄가 뭔지 알게 합니다. 하지만 율법이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또한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기까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들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께로 왔다면 율법은 그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초, 중, 고 정규과정을 다 거쳐 대학에 들어왔는데, 더하기 틀렸다고 다시 초등학교 갈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26)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구분이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으로 하나가 되고, 그를 믿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됩니다.

 

본문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어 감사가 됩니다. 고등학교 때 아이들 손잡고 같이 교회에 오는 한 집사님 가정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식하나 바랐던 것처럼 저는 ‘여우같은 마누라, 토끼같은 자식들이랑 오순도순 살면’ 그게 행복이라 생각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지금 친부모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방황하였습니다. 동물가족 만들었다가 언제 서로 잡아먹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의 인생에 이런 일들을 만드신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독재자’라며 원망했습니다. 그럼에도 말씀을 보는 가운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였고, 독재자 하나님에서 절대자 하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버림받은 나를 도리어 하나님은 캠퍼스 아비 없는 자의 아비요, 목자 없는 자의 목자로 부르심을 영접하고 그 길을 가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믿었다고 바로 하나님이 아비 없는 자의 아비요, 목자 없는 자의 목자로 만들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자녀도, 양도 없었습니다. 그러할지라도 계속 그 믿음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이 자녀도, 양도 주시고, 무엇보다 자신을 한량이에서 아비요, 목자로 변화시켜 사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당장 눈앞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내 생각보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을 좇을 때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실 것을 믿습니다. 나의 허물과 약점까지도 하나님의 이루시는 그 구원의 역사에 쓰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믿음에서 떠나 율법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복을 받고,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서 3:9)

 

2018 갈라디아서 3강 메시지 0301 0329 김아브라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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