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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018.01.07 20:42

2018년 갈라디아서 1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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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갈라디아서 1강 김요한

갈라디아서 1:1-24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1:7)

복음은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들리는 소식 중에 어떤 소식이 좋은 소식입니까? 사람에게 들린 좋은 소식 중에 가장 좋은 소식,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우리를 위하여 구주, 곧 그리스도 주께서 나셨다”(누가복음 2:10,11)는 소식입니다. 이외에 다른 좋은 소식,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전하는 오직 한 가지 주제는 우리를 죄에서 구해내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가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사도행전 4:12). 어떻게 바울과 베드로가 이토록 배타적인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어떻게 이렇게 다른 복음은 없다고 전할까요? 실제로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어떻게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까?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1-5)

1절을 봅시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먼저 자신이 어떻게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가 되었는지를 소개합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 자신의 믿음입니다. 이로 인해 그에게는 담대함(confidence)이 있었습니다(요한일서 5:14).

그는 담대함으로 그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기도하였습니다(2,3).

그러면 바울 사도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이같이 담대함을 주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같이 4절을 읽어봅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의인이십니다. 그냥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신 의인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 죄를 대속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대속하는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죄에는 반드시 벌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죄 값을 치르야 합니다. 이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로마서 6:23상).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는 대신 치르는 그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복음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여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망이 아니라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건짐을 받은 것은 우리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로마서 5:8).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변치 않는 은혜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너무나 감동이었습니다. 5절을 봅시다. 같이 이 영광의 찬송을 읽어 봅시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따르는 사람,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에 바울 사도는 분명하게 전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6-9)

6절을 봅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바울 사도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 너무 이상하였습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빛과 사랑을 누리고 나누는 일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그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속히 떠나는 것이 놀랍도록 이상하였습니다.

그래서 전합니다. 7절을 봅시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교란하여, 혼란스럽게 하여 뒤흔들어 그들의 믿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임을 밝힙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사람들은 그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8절을 봅시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기 위해 대속제물로 자기 몸을 드리신 이 복음 말고 다른 복음을 전하면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에게 잘해주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다시 강조하여 전합니다. 9절을 봅시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받아 은혜를 누리고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것을 따를까요? 먼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은 자기 몸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남이 자기를 살리기 위해 남이 그 몸을 나를 위해 주는 것은 좋아합니다. 언제든지 환영, 대환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남을 위해 자기 몸을 드리는 것은 싫어합니다. 정말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싫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고, 다른 복음은 없는가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께 가장 먼저 예수님이 자신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한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이 고백을 들으신 후,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마가복음 8:31).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충격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 그렇게 하시면 나는 어떻게 됩니까 하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항변하였습니다(마가복음 8:31).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가복음 8:34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를 앞두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36)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죄에서 구원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를 부인하여야만 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만 하게 되면, ‘뭐 다른 복음은 없나,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도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구원 얻는 그런 복음은 없나’ 찾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사람은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릅니다(디모데후서 3:2,4, 4:3,4).

그러므로 성경 말씀은 단호하게 전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피 흘리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 다른 복음은 없다고 단호하고 절대적으로 전합니다. 예수께 항변하였던 사도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들을 세상에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바울도 변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담대히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

사도 바울은 세계 각 곳을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별별 일들을 다 겪고,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났습니다. 특히 고난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고 들은 사람들의 별별 공격과 비난을 들으면서 그는 자신에게 많이 질문하였을 것입니다. ‘정말 다른 복음은 없을까?’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또 우리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10-24)

10절을 봅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증거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1,12).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믿는 제자들이 예수께서 부활을 증거하며 온 유대 땅을 다니자, 이들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잡아들이고자 하였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를 완전히 둘러 싸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사도행전 9:1-6). 그가 스스로 증거하기를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13-15)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합니다(13-16상).

같이 16절을 읽어봅시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주께서 바울 속에 주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그의 속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를 기뻐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바울 사도에게 복음을 나타내시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이방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럴 때 그는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인정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17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습니다(17하). 그동안 그는 성경 말씀을 창세기부터 새롭게 읽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예언의 말씀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 삼 년 만에 바울 사도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하였습니다(18,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20) 바울 사도의 신앙양심에 따른 고백입니다.

그 후에 바울 사도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그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다만 그들을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바울 사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1-24).

바울 사도는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주의 부르심을 따라 복음역사를 섬겨왔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소아시아, 발칸반도, 이탈리아,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땅 끝이라 생각하였던 지금의 스페인인 서바나까지 이르고자 하였습니다(로마서 15:19-21). 그는 복음을 전하면서 별 일을 다 겪었습니다. 그는 이를 통해 다른 복음은 없음을 더욱 실감하고 체감하였습니다. 그는 증거 합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사람을 살리는 것은 돈도 아니고,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 복음 외에는 없습니다.

저는 부르심을 좇아 40년 가까이 주의 역사에 쓰임 받고 있습니다. 1978년에 처음 여름수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연애에 실패하고 폐결핵에 걸려 군에도 가지 못하고 고통하던 때였습니다. 대학친구가 여름수양회에 한 달 반에 걸쳐 제가 다니던 직장에 찾아와서 저를 초청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대학시절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하는 말에 솔깃해졌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과 성경공부하는 수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대학 4학년 학생들이 진리를 좇아 자기 인생을 드리고자 하는 그 열정이 참 좋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제 욕심대로 살고 있는 저는 중풍병자요 세리인 찌질이 같았습니다.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1980년 1월 출애굽기 12:13 말씀으로 애굽 같은 세상에서 제 욕심대로 살다가 심판 받을 저를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되셔서 십자가 피로 건져내셨음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이 되어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출애굽기 12: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말씀이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캠퍼스에서 저 같이 사는 대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겁이 나서 가지 못했던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군에서도 말씀 지키느라 빳따도 맞고 하는 중에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한 번은 대학생 선교활동을 했던 군목 장교가 저를 찾아와서 진심으로 제게 신학대학원에 진학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그에게 제가 받은 바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그렇다면 알겠다며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이는 지금의 삶을 계속 지탱하는데 중요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8년 봄 인제대학교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저와 다른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질문하게 되었고, 저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쓰시는 것은 제 뜻이 아니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임을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일들을 겪는 가운데,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저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그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소망이 제게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사람들로 인해 시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같이 주님과 주님의 역사에 헌신, 몸을 드리고 있으면 동지 의식을 느낍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몸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우리를 구원하는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어떤 때에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들고 믿음으로 생명을 누리고 나누길 기도합니다. 아멘!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라디아서 1:7)

 

2018 갈라디아서 1강 메시지 0101-0124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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