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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021.04.04 12:28

2021년 부활절 특강 (정여호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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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부활절 특강 정여호수아

고린도전서 15:35-58

 

 

우리도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린도전서 15:52)

 

 

예전 어떤 한 자매님이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하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크게 절망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선생님의 말처럼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믿음생활을 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실제이고, 또 저의 실제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바울 사도가 말합니다. “우리도 변화되리라.” ‘변화사물의 형상 또는 성질 등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과 같고, 꾸물꾸물 기어 다니던 애벌레가 훨훨 나는 나비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우리의 이 죄악되고 연약한 몸이 변화 될까요? 변화된다면 실제로 어떻게 변화될까요? 그리고 변화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를 제대로 알 때 우리의 소망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더욱 확실해지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우리의 몸이 어떠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까?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35-52)

35절을 봅시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이 질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의 질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육체가 썩어서 없어지게 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단 말인가? 또 살아난다고 해도 어떤 몸으로 살아난다는 말인가 싶습니다. 젊을 때의 모습으로 부활하는가? 아니면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부활하는가?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이 모습 이대로 부활한다면 부활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같이 말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36). 왜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까? 자연의 이치를 봐도 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구체적인 예로 씨 비유를 듭니다. 씨를 뿌리면 그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36). 씨가 땅에서 썩고 자기 형체를 잃어버릴 때 거기서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자라납니다. 또 그 뿌리는 씨는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밀 같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알갱이에 불과합니다(37). 그런데 버찌씨를 심으면 싹이 나고 그것이 점점 자라서 벚나무가 되고, 작은 사과 씨를 심으면 사과나무가 되고, 배 씨는 배나무가 되고, 작은 느티나무 씨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됩니다. 그 씨에서 상상이 되지 않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형체가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알맞게 그 형체를 주시기 때문입니다(38). 육체를 봐도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사람의 육체가 다르고, 짐승의 육체가 다르고, 새의 육체가 다르고, 물고기의 육체가 다 다릅니다(39).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습니다(40). 해처럼 강렬하게 빛나는 영광이 있고, 달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영광도 있으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의 영광도 있습니다. 별과 별의 영광이 다 다릅니다(41). 만물은 각기 다 그 영광이 있고, 그 영광은 다 다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42).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43).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44). 지금 육의 몸이 있는 것 같이 또 부활의 몸, 영의 몸도 있습니다(44).

그런데 바울 사도는 여기서 썩을 것으로 죽고가 아니고,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농부가 씨를 심는 것은 추수 때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고자 하는 소망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또한 장차 얻게 될 인생의 열매, 곧 부활의 몸에 대한 산 소망을 가지고 지금 여기서 썩고 욕되고 약한 육의 몸을 땅에 하나, 하나 심는 것입니다. 씨를 땅에 묻는 것처럼 썩어지고 욕된 혈기와 자존심과 욕심을 땅에 묻고, 힘들고 어려우면 포기하고 타협하고 싶은 그런 약한 마음을 땅에 묻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으면 그렇게 합니다.

지난주에 제가 옆 집 가게 주인과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었습니다. 제가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주차장 입구에 어떤 차가 대각선으로 주차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게 손님들 차로 인해 그동안 참고 참아왔는데 그만 참지 못하고 차주에게 한마디 했다가 그 차주와 가게 주인으로부터 엄청난 욕설을 받았습니다. 욕설을 듣고 화가 나서 저도 되받아쳤습니다. 분풀이는 했지만 이 일로 주변에 덕이 되지 못했고, 또 그동안 참았던 것들이 다 헛된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계속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부활말씀을 공부하면서 제가 정말 변화될 영광스런 몸을 소망한다면 지금 여기서 이 썩고 욕되고 약한 육의 몸을 완전히 죽이고, 제 몸을 땅에 심어야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자기를 부인하고 옆집 가게 주인을 찾아 몸을 굽혀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다시는 풀리지 않을 것 같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제가 이 죽을 몸도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산 소망을 따라 지금 여기서 육의 몸을 심고, 심고 또 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 의지로는 되지 않을 터이니 다만 말씀을 믿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육의 몸이 어떻게 영의 몸이 될 수 있습니까? 기록 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려 주는 영이 되었습니다(45).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살려주는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과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49). 이는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50). 우리 몸이 하나님 나라에 맞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이 같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까? 다같이 51,52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오심을 알리는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울릴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 순간에 죽은 자들, 곧 부활의 소망가운데 잠들어 있는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그들의 이미 썩어 없어진 그 몸이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변화됩니다. 우리의 썩고 욕되고 약한 육의 몸이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이 변화는 순식간에, 그리고 홀연히 일어납니다.

신앙생활의 좋은 점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변화된 사람입니다. 담배 골초였던 사람이 담배를 끊고,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 게임도 끊고, 공부와 담을 쌓던 사람이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의 변화는 더딥니다. 좀처럼 잘 변화되지 않습니다. 저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일용할 양식을 먹으려고 기도하는데, 정말 잘 안 변합니다. 성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잘 안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자세를 버리고 섬기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데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믿음으로 살아도 자신은 변화되지 않는다고 절망합니다.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해 버리고, 그 절망은 체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바울 사도가 비밀을 말해 줍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곧 나팔소리가 날 때 우리의 변화되지 않은 이 애물단지 같은 몸이 순식간에 홀연히 완전히 변화된다고 합니다. 그때 우리는 그동안 육의 몸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모든 아픔과 상처와 고통을 다 벗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몸에 남아 있던 죄성이 완전히 없어질 것입니다. 더 이상 아무도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그때는 감기나 비염이나 허리 디스크로 고생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지 못해서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런 날이 온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기쁘고 행복해지지 않습니까? 그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부활의 새 몸을 입고 너무 기뻐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놀 것입니다.

이 놀랍고도 소망스런 믿음의 비밀을 알고 증거 하는 바울의 감격에 찬 승리의 선언이 어떠합니까?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53-58)

53,54절을 봅시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삼키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호랑이가 토끼를 삼키고 이깁니다. 뱀이 쥐를 삼키고 이깁니다. 반대로 먹히면 집니다. 그러면 누가 사망을 삼키고 이기는 것입니까? 우리가 사망을 삼키고 이기게 됩니다. 사망이 우리의 밥입니다. 부활의 때에는 우리가 승자이고 사망이 패자입니다. 물론 아직은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사망이 사람들을 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는 것은 사망에게 먹혀서 죽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기 위함입니다. 육의 몸을 내주고 영의 몸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같이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5) 사망은 부활하게 될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를 쏘지 못합니다. 부활의 때에 우리에게 먹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56절을 봅시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입니다. 죄의식이 들면 벌써 죽음입니다. 무엇이 사람으로 죄의식이 들게 합니까? 율법입니다. 양심에 따라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면 죄가 우리 몸에 들어와 너는 안돼, 너는 죽었어.’ 합니다. 양심에 따라 그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있을까요? 그러나 57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57). 아멘!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3,4).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같이 58절을 한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먼저 견실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죽으면 다 끝인데 믿어봐야 다 소용없다는 믿지 않는 악한 동무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33). 흔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그 수고가 주 안에서는 결코 헛되지 않은 줄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드린 수고가 헛되다는 생각이 들면, 낙심이 되고 주와 복음에 드리는 수고와 희생과 열정은 식어버리고 주저앉게 됩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드린 우리의 모든 진심과 수고와 헌신은 부활이 있기에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사람이 다 죽지만 한번 죽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그 때 우리의 이 죽을 몸도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지금도 왕 노릇 하는 것 같은 이 사망을 삼키고 이기는 최후 승리의 날이 반드시 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무슨 일에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린도전서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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