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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창세기
2019.03.10 15:25

2019년 창세기 2강 메시지(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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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 2 강                                                                                                                        김요한

창세기 1:26-2:3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

여러분 중에 혹시 너는 누굴 닮아서 그렇니?’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습니까? 또는 이런 말을 듣거나, 듣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누굴 닮아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제가 저의 아버지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도 닮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확실치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래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확실치 않았습니다. 생긴 대로 논다, 생긴 대로 한다는 말도 듣는데, 내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그것도 애매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읽고 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확실해졌습니다. 그러자 제 삶의 방향을 정하는데 있어 복잡하지도 애매하지도 않고 확실해졌습니다. 생각에 힘이 생겼습니다. 오늘 저는 제가 받은 바 이 은혜를 메시지로 전하고자 합니다.

창세기 말씀은 사람이 누구를 꼭 닮았다고 전합니까? 누구를 따라 만들어졌다고 합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26-27)

26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하나님께서는 우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천사들과 같이 일하십니다(창세기 18:2). 무엇보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십니다(요한복음 1:1-3).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지으시면서 목적을 가지고 지으셨습니다.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으신, 생명이 있어 활동하는, 바다와 하늘과 땅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존재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동하도 그렇고, 이제 곧 이삭이도 그럴텐데,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움직이는 것을 다스리게 할 목적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질서는 하나님-사람-다른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지으시면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만들자 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모양대로라 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음을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또 다시 강조하여 정리하여 전합니다. 27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성경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신성한 존재임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마태복음 4:18,19, 누가복음 5:2). 하루하루 고기 잡아 먹고 살면서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던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이를 깨달았습니다. 같이 베드로후서 14절을 볼까요?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신성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음을 믿고 붙드는 사람은 덕을 쌓고, 지식을 더하며, 절제하고, 인내하고 경건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음을 믿는 사람은 형제간에 우애가 좋고, 이에 더하여 사랑을 더할 수 있습니다(베드로후서 1:5-7). 자신의 정과 욕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깨끗하게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베드로전서 1:22).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베드로 사도는 그의 편지에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하였습니다(베드로전서 4:8). 용서받고 용서하는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마가복음 11:22-25). 이는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에도 물론 그랬지만, 섭섭한 마음이 자꾸만 생겨서 좀 괴롭습니다. ‘아 섭하다하는 마음이 저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창세기 126절 말씀은 제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신성한 성품을 가진 사람임을 깨우쳐주십니다. 이 말씀은 저를 섭섭한 마음에서 떠나게 합니다. 용서받고 용서하는, 허다한 죄, 파고 파도 계속 나오는 허물과 죄로부터 저를 건져내십니다. 그리고 사람을, 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신성한 성품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로 보게 하십니다. 정혼자가 생긴 사랑하는 제 딸이 워싱턴에 있던 제게 자신의 정혼자를 위해 이런 것 저런 것 사오라고 리스트를 보내왔습니다. 쇼핑을 하면서 즐겁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왠지 좀 섭했습니다. 약간의 배신감? 그래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딸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옆 사람을 한번 보실래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입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남자와 여자, 이 성이 다른 사람 간에 끊임없이 갈등이 있어왔고, 있고, 또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같이 신성한 성품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룹니다. 같이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습니다.

제가 복음을 영접하고 복음전파에 쓰임 받은 지 올해로 40년이 되어 갑니다. 그동안 한 가지 확실하게 본 바는 남자와 여자가 믿음으로 결혼하고, 그리고 부부가 서로 존중하는 가정이 실제로 복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입니다. 부부가 서로 인정하지 못하고 존중하지 못하고 티닥거리면 그 자녀, 그들이 섬기는 형제자매가 행복하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말에도 여자 무시하는 남자, 잘되는 것 못 봤다,’ ‘남자 존중하지 않는 여자 잘되는 것 못 봤다하지 않습니까. 제가 아는 어떤 형제는 경상북도 어딘가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면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이 그 마음에 남아 있다 하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믿음으로 결혼하고 아내와 딸을 존중하고 삽니다. 그 집 아이들은 영육 간에 건강합니다. 그는 또 다섯 시간이나 계속하여 얘기하는 어떤 자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습니다. 그 자매는 말씀을 영접하고 복음 증거자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서로 존중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창세기 127절 말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로 영원할 것 같은 이성간의 갈등을 확실히 해결할 비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복을 주셨습니다. 무슨 복을 주셨습니까?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28)

28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제부터 니네들 알아서 살아라하지 않으셨습니다. 복을 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하셨습니다.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 신나는 복입니다. 사람이 일이 있을 때 생기가 돕니다. 사람이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니다. 그래서 결혼할 상대가 결정되면 남자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여자는 얼굴에 생기가 돕니다. 애기를 가지면 기분이 좋아져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제가 아는 어떤 자매는 결혼하고 첫 애기를 가졌을 때, 그의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기쁜 목소리로 할머니, 저 애기 가졌어요하였습니다. 그 집 애기들은 세 명입니다. 그 중 한 아이는 김해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서 그동안 자신을 돌봤던 할머니가 아이고 이제 낯선 곳에 가서 우째 살래?’ 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할머니는 여기서 평범하게 사세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은 사람은 땅을 정복하는 삶을 삽니다.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대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복하고 다스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연구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공부입니다. 이번에 미국 워싱턴에 선교사로 간 저의 딸이 결혼 한지 한 달 만에 갑자기 뇌졸중으로 병원에 헬리콥터로 실려 갔습니다. 그리고 두개골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많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저는 곁에서 이 과정을 보면서 사람이 역시 공부를 하여야 하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날 전날 저의 아내 곧 제 딸의 엄마가 허리 아프다, 왜 이렇게 계속 아프지하자, 응급실에 근무하는 전문의인 모세 목자가 빨리 오라 하였습니다. 갔더니 영상을 찍고, 피를 뽑고 하더니, 콩팥에 염증이 생겼다며 입원하여 항생제를 맞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 허리 아프다는데, 콩팥에 염증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다니놀라웠습니다. 설날을 앞두고 병원에 갑자기 입원한 엄마를 위해 기도한다고 우리 집안 카톡이 분주해졌습니다. 그런데 워싱턴에 있는 딸이 올린 글이 평소와 다르게 철자도 틀리고 문법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토를 했다는 카톡글을 본 병원 인턴인 저의 아들이 이는 stroke, 뇌졸중이라 하였고,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워싱턴이고, 제 딸은 글이 잘 안되고, 사위는 미국 사람이라 한국말은 모르고, 어쩌지 하고 있는데, 영국 살다가 온 며느리가 아들의 말을 바로 바로 영어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속히 큰 병원으로 갈 수 있었고, 거기서도 피 뽑고, 영상 찍고 하더니 뇌에 선천성기형인 동정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였습니다. 8시간 뇌 수술한 의사는 중국인인데, 수술을 마치고 나와 확신에 찬 목소리로 ‘Everything is OK.’라 하였습니다. 그 모습이 참 멋있었습니다.

카톡을 발명해서 쓰게 해준 사람에게 고마웠고, 응급차도, 응급헬기도, 수술에 관련된 여러 일들을 전문적으로 감당하는 의사, 간호사, 여러 기사 분들이 고마웠습니다. 일사분란하게 흔들림없이 사람을 살려내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딸의 곁에 수술날 이전에 도착하도록 만든 항공사도 감사했습니다.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가 생각나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역시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구나, 일이 터졌을 때 이를 확실히 해결할 수 있는 전문인이 되어야 하는구나 실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사람이 일하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람을 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이 복입니다. 이를 해내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하는 줄 압니다. 제가 아는 어떤 자매는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어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고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이 말씀으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발견하였습니다. 간호학을 공부하고, 간호사로서 인공신장실에서 일하며 혈액 속에 생긴 노폐물을 스스로 처리 못해 퉁퉁부어 올라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그 노폐물을 빼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일하는 것이 힘들고 하기 싫다 싶었는데, 창세기 128절 말씀이 그에게 힘이 있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창세기 128절을 평생 붙들고 살 인생요절로 잡고, 무슨 일에나 이 말씀이 그에게 방향이 되어 새롭게 힘을 얻고 있습니다.

카톡을 만드는 공학, 이를 퍼뜨리는 경영학, 수술하는 의학, 간호학, 약학, 물리치료학, 사람이 이를 잘 하도록 하는 건축학, 디자인학, 말을 알아듣게 하는 어학, 인문학... 물리학, 화학, 수학, 철학.. 모든 공부가 다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셨음을 믿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 재능대로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를 쓰십니다. 사람 살리는 일에 쓰십니다. 아멘!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같이 해봅시다.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복입니다.

그런데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을 하려면 먹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일을 하려면 먹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일만 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있는 이 먹는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먹을 거리가 되리라(29-30)

29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먹을 거리를 주셨습니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30).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먹고 살기 힘들다며 이것 해결하기 바쁩니다. 그래서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보다는 먹고 사는 일을 무엇을 할지 그것을 먼저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전합니다(마태복음 6:33).

대학에 들어온 많은 학생들이 내가 꼭 이 공부를 해야 하나 합니다.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 취직을 위해서 그냥 시험준비 하는 차원에서 공부라는 것을 합니다. 때로는 내게 있는 재능을 한번 발휘해보려고 뭔가를 하려 하면, 주위에서 안돼, 우선 먹고 살아야지,’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 합니다. 그리고는 또 내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말씀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를 이미 알고 준비하셨음을 알려주십니다. “먹을 거리가 되리라,” “먹을 거리로 주노라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공부를 하면, 먹는 문제보다 나를 확실히 복 있게 할 것이 무엇인지 찾게 됩니다. 삶의 질서가 잡힙니다. 그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시편 1:1,2).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이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31)

31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은 1도 없었습니다.

사람에게는 크게 두 종류의 스타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는 사람, 불평하는 사람. 당연히 불평하는 사람보다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사람은 사람과 관계성을 가지며, 좋은 관계성을 가질 때 행복할 것입니다. 누가 불평하는 사람하고 계속 같이 있고 싶겠습니까?

창세기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이를 보시고 심히 좋아 하셨음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영접하고 믿는 사람은 어떤 일에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히 좋아하셨는데, 내가 어떻게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불평불만, 원망이 생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를 찾고 내가 왜 불평불만 원망이 있는지 한번 속 시원하게 따져보고 싶습니다. 어떤 분이 수십 년을 말씀대로 산다고 살아 왔는데, 자신의 형편이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하게 되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한번 따져보고 싶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이 더 비참해졌습니다. 그는 다시 성경 말씀으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음을 새롭게 영접하자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하였습니다.

나의 모습이, 다른 사람의 모습이, 다른 어떤 것들도 그 행동이 내 눈에, 내 생각에 어떠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이를 영접하면 그 사람은 참 제대로 된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참고 견디고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오늘 말씀을 들은 여기 있는 우리 각 사람이 이런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렇게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안식하시니라(2:1-3)

21절을 봅시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2절을 봅시다. 안식하셨습니다. 쉬셨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계속 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엿새 동안 일을 하시고, 일곱 째 날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안식하셨습니다. 쉬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녁이 되면 쉬시다가 아침이 되면 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쉬어야 합니다(요한복음 9:4).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면 낮에 일하고, 밤이 되면 자야 합니다. 또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고, 일곱 째 날은 거룩하게 구별된 날로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쉬지 않고 일하면 병이 납니다. 피터 리 선교사는 빚을 갚으려고 일주일에 62시간을 일하다가 어깨를 다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는 노예근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일곱 째 날은 안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안식일 지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쉬는 날이라 하여 고주망태가 되어버리면, 심심한데 게임 한판 하다가 또는 동영상 보느라 눈이 벌개지도록 날밤을 새면, 또는 마음에 생긴 불평불만 원망이 사라지지 않아 끙끙거리다 보면, 그 다음 날뿐만 아니라 일주일, 또는 평생을 망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곱 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일에 마음이 가 있던 것을 일곱 째 날은 하나님께로 더 집중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 쉬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어떤 형태로든 예수께 나아가는 것이 쉬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 후 축구를 할 때,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축구를 하면 예수께 나아가 쉬는 것일 것입니다.

저는 스물여덟 살에 말씀을 읽고 영접하여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결단한 스물여덟 살 때 당시 3시 예배라, 일요일 오후에 친구 네 명이서 복식으로 테니스를 치다가 나는 예배보러 간다해서 친구들로부터 엄청 욕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과는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 이후 제 삶은 일주일 단위로 질서가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아침 일용할양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하루의 삶이 질서가 잡혔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그 사람의 삶에 질서가 생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신성한 성품이 각 사람에게 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빛과 사랑이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요? 말씀을 들은 대로 믿고 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일을 하되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음을 우리 각 사람이 늘 기억하고 붙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생육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2019 창세기 02강 메시지 0126-0203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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