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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부활절 말씀 2강 정여호수아

고린도전서 15:35-58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린도전서 15:51,52)

 

우리가 믿음생활을 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항상 흔들리고 엎치락 뒷치락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이런 우리가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고 합니다. 우리의 이 죄악되고 연약한 몸이 정말 변화될까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우리의 몸이 어떻게 다시 살아납니까?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아니하면 살아나지 못하겠고(35-41)

35절을 봅시다. “누가 묻기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절망하게 되는 것은 마음은 원이지만 좀처럼 잘 따라와 주지 않는 몸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애물단지 같은 몸이라도 있기에 그래도 우리는 뭔가를 시도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그 몸이 썩어서 없어집니다. 아무리 향품처리같은 것을 해서 고이 묻힌다고 할지라도 세월이 가면 결국에는 다 썩고 분해됩니다. 요즈음은 화장을 해서 다 태워 없어집니다. 심지어 비행기 사고로 사람이 공중분해 되어 사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에 빠져서 시신도 못 찾고 그냥 물고기 밥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온갖 경우를 생각하면 부활이 있다고 할지라도 과연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런 질문을 하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36). 왜 그렇다고 합니까?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사는가?’하는 부활의 원리가 주변의 자연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바울은 씨를 이야기 합니다. 씨들이 싹이 나서 자라려면 먼저 씨가 죽어야 합니다(36). 썩어서 그 형체를 다 잃어버려야 합니다. 뿌린 그대로 생생하게 있으면 싹이 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씨를 뿌리는 것은 거기서 먹을 수 있는 잎이나 열매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상추를 얻기 위해서 상추를 뿌리지 않습니다. 배추를 얻기 위해서 배추를 뿌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 씨를 뿌립니다(37). 그 씨가 죽으면 싹이 나고 그 씨에 따라서 상추가 되기도 하고 또 배추가 되기도 합니다. 씨를 뿌리지만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십니다(38). 그 씨에 이미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이 죽어야 부활합니다. 몸의 형체를 잃어버려야만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께서 각 씨가 썩을지라도 장래의 형체를 주시는 것처럼, 우리의 죽은 몸이 썩을지라도 부활의 장래의 새 형체를 주십니다.

그럼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몸으로 부활할까요? 39절을 봅시다. 바울은 이번에도 자연에서 하나의 원리를 이끌어 냅니다. 육체라고 해서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입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습니다. 땅에 속했으면 걷거나 달릴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습니다. 하늘에 속했으면 창공을 날수 있는 날개가 있습니다. 물에 속했으면 그 물속에서도 숨 쉬고 헤엄칠 수 있는 아가미와 지느러미가 있습니다. 그 속한 환경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알맞은 육체를 주십니다. 다른 것은 육체뿐만 아닙니다. 그 영광도 다릅니다(40). 하늘에 속한 형체 중에서 해와 달과 별들이 있습니다. 다 하늘에 있고, 다 동그랗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해는 뜨겁고 강렬하고, 달은 은은하며, 별은 영롱한 빛을 발합니다. 각각의 별들도 그 품어내는 영롱함이 다 다릅니다(41). 만물은 다 각기 그 영광이 있고, 그 영광은 다 다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부활의 때에 우리에게도 그에 합당한 육체와,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할까요?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42-53)

42-44절을 봅시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현재 우리의 몸은 아무리 젊음을 자랑하고 몸매를 자랑할지라도 결국 죽으면 다 썩을 몸입니다. 또 끊임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기를 탐하는 욕된 몸입니다. 또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감기 바이러스에 콧물을 흘리고, 가는 세월과 젊은 날에 없던 온갖 병들이 생기는 약한 몸입니다. 그런데 이런 썩고, 욕되고, 약한 이 육의 몸이 어떻게 됩니까?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이 됩니다. 내용과 가치와 능력과 본질이 다 변합니다.

20대는 한참 때입니다. 그래서 몸이 약해진다는 것을 잘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좀 미안하지만 늘 20대가 아닙니다. 저도 20, 30대를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제 몸이 이제 이 나이를 기억합니다. 언제부턴가 제 머리에도 새치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감출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조금만 무리를 해도 비염증상이 심해집니다. 제 동역자도 얼마 전에 눈에 노안이 왔다고 합니다. 어떤 목자님은 허리디스크 때문에 요즘 맘 놓고 운동하지를 못합니다. 늘 청춘인 줄 알았던 한 자매 목자는 무릎이 아파서 테니스에 못나오겠다고 합니다. 어떤 형제는 벌써 눈 떨림이 와서 공부하는데 지장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부활했는데도 이 몸 이대로 부활해서 천국양로원에 들어가야 한다면 더욱 슬픈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지금의 몸과 다릅니다. 병들거나, 늙지 않습니다. 몸을 가꾸려고 땀을 흘리고, 다이어트를 하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머리도 염색할 필요가 없고, 노안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며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여전히 남아있는 이 죄성으로 인해 마음으로 계획하는 모든 것이 악한 지금과도 달라집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합니다.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육신이 그대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죄에 다시 시달리지 않고, 애통하거나 곡하거나, 아픈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이 됩니다. 이 몸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45절을 봅시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심으로 생령, 곧 살아 움직이는 영이 되었습니다(창세기 2:7). 그러나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살려 주는 영, ‘Life-giving spirit’, 곧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라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입니다(46). 그렇기에 우리는 이 땅에서 흙에 속한 아담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하늘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을 것입니다(47-49).

왜 꼭 이렇게 되어야만 합니까? 이는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50). 그렇기에 우리의 이 썩을 몸 육의 몸이, 하나님나라에 맞게 썩지 않을 새로운 몸으로, 신령한 몸으로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이 같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까? 51,52절을 봅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오심을 알리는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울릴 것입니다. 그 나팔소리가 울릴 때에 먼저 죽은 자들, 곧 주 안에서 잠들었던 성도들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일이 일어납니다. 그 무엇으로도 어찌 할 수가 없는, 도저히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이 애물단지 같은 몸이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환골탈태하게 됩니다. 마치 꾸물꾸물 기어다닐 수밖에 없던 애벌레가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는 것과 같은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53절을 봅시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이는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54-58)

54절을 봅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이제까지 사망이 모든 것을 삼키고 이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망이 삼킴을 당하고 패배를 당합니다. 삼키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호랑이가 토끼를 삼킵니다. 뱀이 죄를 삼킵니다. 그러면 누가 사망을 삼키고 이기는 것입니까? 우리가 사망을 삼키고 이기게 됩니다. 사망이 우리의 먹입니다. 곧 부활의 때에는 우리가 승자이고 사망이 패자입니다. 물론 아직은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사망이 사람들을 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는 것은 사망에게 먹혀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을 향하여 이같이 외칠 수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5) 사망이 우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독침을 쏘지 못합니다. 사망이 그동안 우리에게 너 그러다 죽는다!” “어차피 죽을 건데 다 무슨 소용 있니?” 하며 마구 마구 독침을 쏘아 댔습니다. 이 독침에 쏘여 다 KO패 당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당하지 않습니다. ‘.. 아닌데...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는데...’ ‘죽어야 다시 사는데.. 또 당할 줄 알았냐! 이제 넌 찌그러져 있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당당합니까? 얼마나 멋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같이 멋진 최후 승리를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57).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같이 58절을 한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먼저 어떤 바람이 불지라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죽으면 다 끝이라는 악한 동무들이 하는 말에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냥 중심을 지키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가끔이 아니라 항상입니다. 또 이 정도 선에서 그만이 아니라 더욱힘쓰는것입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욱 힘써야 합니다. 지금 공부하기도 바쁜데, 내일만 하기도 벅찬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예전에 그렇게 수고했으면 되었지, 지금은 몸도 마음도 나이가 먹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학생 때는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주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에 가고 직장에 가면 물리적인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어쩌라는 말입니까? 직장이고 대학원이고 다 그만두어야 할까요? 다 풀타임 목자가 되어야 할까요? 이는 주 안에서 안주하거나 머물지 않고 늘 살아있는 심령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지금 할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이전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보입니다. 무엇이든지 다시 할 수 있습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쓸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될까요?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 ‘헛되다는 것은 다 부질 없고 의미 없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한 코미디 프로에 무슨 말만 하면 , 의미없다고 말하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정말 세상살이는 이렇게 살아도 의미가 없고 저렇게 살아도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잘 먹어야 그때뿐이고, 잘 나가봐야 그때뿐입니다. 지금 쉽고 편해봐야 별것 아닙니다. 정말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입니다. 바람 따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인생일 뿐입니다. 벚꽃이 아무리 화려하게 핀다 한들 바람에 지고 말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사는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가 다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작은 몸짓, 작은 기도, 작은 관심과 헌신을 주님은 다 기억하시고 받으시고 부활과 생명으로 풍성하게 갚아 주십니다. 심지어 나의 실패와 실수조차도 부활을 위한 삶의 밑거름으로 바꿔주십니다.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이 헛되지 않음을 알고, 그 헛되지 않은 일을 더욱 힘써 할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우리의 수고를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실 하나님, 부활 승리하게 하실 하나님 믿음으로 계속해서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으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이번에 주께서 여러 많은 일들과 여러 사건 사고를 통해 저의 연약함과 죄를 들추어 내셨습니다. 제가 지금 이 몸으로서는 정말 구원의 소망이 없는 썩을 몸, 욕된 몸, 약한 몸, 육의 몸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매일의 삶속에서 끝없는 실패와 추락과 죽음을 맛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이는 모두 부활을 향한 과정임을 보게 됩니다. 썩고, 욕되고, 약한 저의 실존을 깊이 깨닫고, 그 한계를 맛보고, 이에 대한 자랑과 집착을 거두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봅니다. 이 시간 없어져 버릴 세상 소망, 죽은 소망에 코 박고 있던 저를 죽고 부활하는 이 놀라운 신비의 세계로 인도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 같은 자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로 바꿔가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또 넘어지고 엎치락 뒷치락 하겠지만 주께서 제게 주신 이 부활의 산 소망을 따라 기죽지 말고, 위축되지 말고, 주의 일에 계속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여기서 저의 이 썩고 욕되고 약한 몸을 심고 심고 또 심는 일에 계속 도전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날 저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실 주님으로 인해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아멘!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린도전서 15:51,52)


2023년 부활절 말씀 2강 메시지 고린도전서 1535-1558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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