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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로마서 18강 메시지 천모세

로마서 15:14-33

 

 

복음의 제사장 직분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15:16)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하여 웬만한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답이 분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계속 읽고 또 읽고 공부하고 소감을 쓰고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들으며 모임을 이루고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이 나는 누구인지,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분명하게 합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습니다. 더구나 사람은 누구나 연약합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미혹당하기 쉽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만난 사람은 사도 바울과 같이 어떤 문제에도 미혹당하지 아니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누구라고 합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15:14-16)

사도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을 볼 때에 그들이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들임을 확신한다 하였습니다(14). 복음에 대한 지식도 차고 서로 권하는 그들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편지를 쓰는 것은 그들로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15). 사도 바울은 그들을 가르치려하기보다 그들로 생각나게 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도 편지를 쓰며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한다 하였습니다(디모데후서 1:6). 또한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사도행전 17:11,12).

생각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보고 생각한대로 행하게 됩니다. 또한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됩니다. 생각에 따라 사람마다 그 삶이 달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로마서 8:5).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로마서 8:6).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며 자신을 내세우거나 정에 호소하지 아니하고 성도들이 다시 복음을 생각나도록 돕는 진정한 목자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무엇을 생각나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혜를 전하고자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쓴다고 합니다(15). 그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6절 상반 절을 봅시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공동생활을 한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곁에서 겪어보지 못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에 못자국과 창에 찔린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었고 이를 확신합니까? 그는 말씀을 새롭게 읽고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원래 그리스도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며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 이런 그를 예수님께서 빛으로 둘러 비추어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이라며 확신이 넘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잡으려 다녔지만 사흘 동안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꺾였을 때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며 주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께서 아나니아를 그에게 보내시고 그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즉시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사도행전 9).

그는 자신의 생각이 꺾였을 때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새롭게 성경을 읽었습니다. 다소로 내려가 3년이라는 기간 동안 말씀을 새롭게 읽는 가운데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고린도전서 15:3,4). 그는 예수님을 생전에 본 적도 없지만 성경 말씀을 읽고 생각하는 가운데 자신을 부르신 분이 주님이시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확신하였습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누구로부터 이 사명을 받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있었던 마가는 좋은 마음으로 동역하고자 바울 일행의 선교여행에 따라갔다가 선교지의 어려움을 겪고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달랐습니다.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견뎠습니다. 자신이 말씀을 읽고 생각하는 가운데 그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이방인을 위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음을 확신합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한다고 사람들이 그를 순순히 따르며 칭찬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박해를 당하였고 갇히기도 하고 여러 죽을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였습니다(사도행전 14:2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방인을 위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쓰임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고백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5). 그는 현재의 고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장차 나타날 영광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과 같이 그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생각하는 가운데 그가 부활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심지어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도 주는 그리스도이심을 전하였습니다.

이방인을 위해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 사도 바울의 삶이 만만치 않았던 것처럼 캠퍼스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금까지 해 왔으니까, 올해도 어찌되겠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모를뿐더러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받고 감당하기 위해서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나에게 이 일을 주신 분은 누구이신지에 대한 생각이 각 사람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언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 하게 될까요?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며 기세등등한 사도 바울을 주님께서 빛으로 멈추어 세웠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멈추게 하시고 말씀으로 돌아가 생각하도록 도우십니다. 저는 겉으로 캠퍼스 복음역사를 섬기겠다고 말을 하였지만 저의 속의 생각은 존경받고 훌륭한 의사가 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저의 생각은 병원인턴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드러났습니다. 인턴 첫 턴에 저는 마취과를 돌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무슨 과에 관심 있냐고 물었을 때 저는 뜬금없이 선교에 관심이 있고 기회가 된다면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역사에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전공을 택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기도해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생각에 당시 양산 캠퍼스 복음역사는 열매도 잘 보이지 않았고, 목자님과 부모님의 삶은 초라하게 여겨졌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장기려 박사님이나 유사무엘 선교사님처럼 인정받고 존경받는 삶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흉부외과에 지원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남들 하지 않는 어려운 길을 간다는 말을 듣고 싶고 사람의 가슴을 열고 심장과 폐를 다루는 멋있어 보이는 흉부외과 의사에 매료되어 결정하였습니다. 10년 가까이 말씀을 공부하며 기도지원을 받았지만 저는 결국에는 제 욕심에 기초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전공의 지원 3일을 앞두고 갑자기 엄마로부터 전화가 와서 어떻게 살 것이냐는 말을 듣고, 저는 엄마에게 지금 와서 왜 그러느냐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생각하다가 말씀을 받아 흉부외과 지원의사를 철회하였습니다. 당시 흉부외과에는 전공의가 없어 교수님들이 엄청 기대를 하고 있어서 거절의사를 밝히기가 두려웠는데 당시 일용할양식 말씀을 통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믿음으로 흉부외과에 못 가겠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욕심을 따라 가고 있는 저를 목자님과 부모님을 통해서 멈추어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는 새롬 목자를 통해서 오프가 분명하고 교수 자원이 필요한 응급의학과에 지원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듣고 지원을 하게 되었고 응급의학과 수련을 받는 가운데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는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의사임에도 매일 어김없이 몰려오는 환자를 귀찮아하고 짜증을 내는 저의 바닥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는 자주 싸웠고 무엇보다 나의 실수로 인해 의료사고로 이어질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는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주 인제센터로 말씀을 공부하러 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말씀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내가 모임을 떠나지 않았고 바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였습니다. 말씀 자체에 관심이 없으니 생각도 없고 무엇을 물으면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요한 목자님은 끊임없이 저를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생각하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때로는 2시간이 넘도록 야단을 치셨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렸지만 왜 내가 힘든 가운데 애쓰고 있는 것을 몰라주시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컸습니다. 저는 말씀을 공부하러 오지만 정작 말씀에는 관심이 없는 삶을 살았었습니다. 그리할 때 예수님도 모르고 옆에 있는 동역자와 사람들이 무엇으로 힘들어 하는지 응급실의 환자들은 무엇으로 힘든지 관심도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로지 자기 기준에 맞추어서 남을 판단하고 응급실에서 모든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때려치워야지 생각하며 매일 출근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소천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슬픔보다는 저는 부친상으로 며칠을 쉴 수 있는지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누구로부터 이 일을 받았는지에 대한 생각도 없고 결단도 없어 저는 좋은 마음으로 버텨보다가 결국에는 터져버렸습니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제 스스로의 답이 있어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은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을 자랑하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가 누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은 죽을 것을 두려워하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합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16). 그는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이방인을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받으실 만하게 되게 하기까지 그가 어떤 수고를 하였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회성의 말씀공부와 복음전파로 이방인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거룩한 제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봅니다. 저도 결국에는 목자님들의 삶과 부모님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고린도전서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하였습니다(고린도전서 15:31). 그는 사람의 방법으로 맹수와 같은 자들과 더불어 싸우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리들로부터 양들을 지키기 위해 깨어 있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며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는 악한 자들로부터 양들을 지키고자 말씀을 가르치며 경책하며 권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렇게 행하고 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어느 덧 전문의 시험을 합격하고 이제 32일부터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전임의 근무에 들어가게 됩니다. 앞으로 제가 만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생각을 할 때에 기대보다는 갑갑한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일을 마치고 쉬면서 다른 길은 없는가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근무 스트레스가 덜하고 돈을 많이 주는 지역 일반병원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오래 계시던 교수님 2분이 나가셨고 올해도 한 분이 지역병원으로 나가셨습니다. 함께 전임의로 들어가는 동료도 의료소송이 끝나는 대로 로컬로 나갈 계획이라 하였습니다. 저는 남들이 다 나가려고 하는 곳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병원에 교수라는 타이틀을 얻고자 합니까? 제가 양산부산대학교 응급실에 전임의로 들어가는 것은 양산캠퍼스 가운데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데이, 나이트, 오프와 주말 24시간 당직을 서는 가운데서도 양산 UBF 주일 메시지를 감당하고 캠퍼스 모임을 이루고 양들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어렵게 사느냐고 끊임없이 말을 합니다. 캠퍼스 선교역사 말고 교회에 다니며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대학생성경읽기 선교회에서 말씀을 공부하며 예수님을 만나고 죄와 실패로 누워있던 삶에서 말씀으로 생명을 얻어 일으켜 세우심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말씀공부를 통해서 생명을 얻은 것처럼 저로 말씀공부를 통해서 또 다른 생명을 돕고 살리는 일에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까지 나의 좋은 마음으로 하다가는 복음역사가 안 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제가 다른 무엇보다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을 읽고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분명한 아이덴티티가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자꾸만 저는 사고가 날 것을 생각하고 사람들을 생각하고 저의 몸이 견디지 못할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음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제 마음에 확정할 때에 응급실에 갈 수 있습니다. 사고가 나지 않을까 죽지 않을까 눈치보는 삶이 아니라 한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한 번 두 번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묵상하고 십자가에 달리시되 다시 살아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계속하여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하여서 내 자신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만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질 뿐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동역자, 자녀들과 하나님 모르는 생짜배기 양들도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받으시는 제물로 드리는 일에 제 삶이 쓰임받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17-33)

다 같이 17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사도 바울이 자랑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합니다.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고 합니다(18,19). 우리는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서 이를 보고 배웠습니다. 말씀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을 때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기도 하고, 독사에게 물려서도 상함이 없었습니다. 그가 침묵하고 싶을 때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려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하셨습니다. 때로는 사도 바울의 개인적인 역량이 뛰어나서 이렇게 쓰임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저는 김요한 목자님이 서울대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복음역사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서울대도 안 나오고 머리도 나빠서 안 된다는 생각을 자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볼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를 통하여 역사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꾸만 무엇을 갖추려고 애를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실 것을 믿는 자는 기도할 것입니다. 저로 자꾸만 내가 무엇을 하려고 애쓰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도록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가졌던 원칙이 무엇입니까? 다 같이 20절을 봅시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그가 이렇게 한 것은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는 기록된 말씀을 따라 한 것입니다(21).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모르는 삶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 듣지 못한 자들에게 가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내가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셨습니다(누가복음 4:43). 이제 2020 학번 형제들이 캠퍼스에 올 것입니다. 어느 정도 기본이 되어 있는 형제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우리 각 사람이 기도하며 주께서 주시는 힘과 용기로 어떤 형제자매들도 받고 친구가 되며 주님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또 무엇을 하고자 합니까?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가기를 바랐습니다(23). 이는 지나가는 길에 그들을 보고 먼저 그들과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지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과의 사귐은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우리가 세상의 별의 별 사람들을 만나는 가운데서도 매주 함께 모여 말씀을 배우고 소감을 나누는 사귐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기쁨이 생깁니다. 양산캠퍼스 가운데서도 계속하여 성도들과의 사귐이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고자 합니다(25).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기 때문입니다(26).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 합니다(27). 예루살렘 성도들 중에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는 자들을 위해 이방 교회에서 지원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기쁘게 자신을 것을 내어 도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제 배만 채우기에 급급한 삶을 살았음을 회개하고 주의 성도들을 돌아보며 물질을 내어놓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저도 기도할 터인데, 여러분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자신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합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31,32). 사도 바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고 겸손하게 그들의 기도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든 알아서 할게 하는 말을 하면서도 알아서 못합니다. 제가 동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또한 기도의 지원을 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 같이 33절을 읽어봅시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하며 아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평강의 하나님께 때마다 나아가는 삶을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많은 고난과 심지어 죽임을 당할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는 말씀에 기초하여 생각하며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게 하셨다는 아이덴티티가 분명하였음을 배우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어, 다 그만두고 싶기도 합니다. 이때에 우리 각 사람이 주의 말씀으로 돌아가 성경 말씀을 읽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마음에 확정하여, 어떤 고난도 이겨내며, 캠퍼스 형제자매들에게 주는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로마서 15:16)

 

 

2020년 로마서 18강 메시지 1514-1533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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