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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로마서 제 17 강                                                                                                           김요한

로마서 14:1-15:13

 

 

서로 받으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로마서 15:7)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비판하고 업신여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구나 자신이 가진 믿음이라면서 그렇게 하면 개선되기도 힘들고 갈등과 상처가 더 깊어집니다. 각 나라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개척한 바울 사도는 이런 현상을 많이 보았습니다. 전도자로서 이를 해결하는 것이 고민이요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로마서를 마무리하기 전에 로마 성도들에게 간절히 전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서로 받으라.”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 받는 것입니까?

 

비판하지 말라(14:1-6)

141절을 봅시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믿음이 연약한 자란 확신이 약한 자입니다. 따라서 너희는 상대적으로 믿음이 강한 자를 뜻할 것입니다. 곧 확신이 강한 사람이 확신이 약한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의 잘못을 나무라지 말고 받으라 하십니다.

그리고 전하기를, 2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습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교회 내에서 큰 관심사였습니다. 당시 시장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고기들이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믿음이 강한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연약한 자는 어떻게 율법에서 먹지 말라하는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먹지하며, 채소만 먹었습니다. 주로 유대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유대적인 배경이 없는 사람들, 이방인들은 그거 뭐, 먹으면 되지하고 돼지고기를 잘 먹었습니다. 얼핏 보면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유대인들이 더 믿음이 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들을 믿음이 약한 자라 합니다.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생각이 율법의 뜻보다는 율법 조문의 좁은 범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면서 우상에 드려진 고기를 먹는 자들을 자꾸만 비판하였습니다. 또 반면에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겼습니다. 고기 먹고 안 먹고 하는 것이 사소한 문제 같지만, 각기 자기들의 믿음이라 하며 갈등을 일으키니 교회 공동체에서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3절을 봅시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하십니다. 먹는 자든지, 먹지 않는 자든지 다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먹는 자든, 먹지 않는 자든 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남의 하인을 비판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사람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4).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습니다. 자기 주인이 그 하인을 세웁니다. 곧 믿음의 사람을 세우시는 권능은 주께 있습니다(4). 바울 사도는 믿음이 강하다, 약하다 하며 서로 업신여기고 비판하는 교회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을 세우신 하나님을 보도록 권합니다.

당시에는 먹는 문제뿐만 아니라 날 문제도 있었습니다. 5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겼습니다. 율법에는 무슨 절, 무슨 절하며 지켜야 하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날을 정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교회 공동체 내에 있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하여야 합니다. 6절을 봅시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까?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7-12)

7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우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각기 자신의 주님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습니다(8).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입니다(8). 9절을 읽어봅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우리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사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을 열심히 지키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그를 부활하신 주께서 찾아주셔서 그가 실제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가 회개하고 말씀을 전하는 그릇으로 쓰셨습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누구에게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그가 겪은 것은 환난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대로 바울이 율법을 어긴다며 죽이려 했고, 이방인들은 이방인대로 자기들의 유익을 훼방한다고 죽이려 했습니다. 이런 환난을 어디서나 계속 당하다 보니 그도 죽고 싶었습니다. 그가 고백하기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하였습니다(빌립보서 1:21). 그런데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가 고백하기를 육신으로 세상에 살면서 환난을 당하는 것과 지금이라도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이 둘 사이에 끼었다고 하였습니다(빌립보서 1:23). 이런 고민 끝에 그가 믿음으로 결단하기를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여 육신으로 있기로 하였습니다(빌립보서 1:20,24). 그는 살든지 죽든지 그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지혜로운 자이든지 어리석은 자이든지 다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주인이었습니다.

1989년 여름수양회를 가덕도 기도원에서 했습니다. 그때 저의 나이가 36세였습니다. 한참 때였습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양회 기간 동안 주일이 되어 우리 프로그램에 따라 따로 주일예배를 드리려 하였는데, 기도원 원장 할머니께서 같은 주님을 믿으면서 왜 그렇게 하려 하십니까?’ 하였습니다. 저는 갈등하다가 이 한마디를 듣고 기도원 분들과 같이 예배를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10절을 봅시다. 믿음이 강하든지, 약하든지, 각기 자기 믿음에 따라 형제를 비판하고 업신여기든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습니다(11). 12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뭐라고, 뭐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주님 앞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응답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산다면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딪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말라(14:13-15:2)

13절을 봅시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내 자신이 주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가지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이웃을 돌아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서로 비판하기 전에 내가 혹시라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부딪칠 것이나 거질 것을 형제 앞에 두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라 하십니다.

14절을 봅시다. 바울 사도가 주 예수 안에서 확신하는 바는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될 뿐입니다. 그래서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15). 그래서 강하게 권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16절부터 봅시다. 우리의 선한 것, 곧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고자하는 그 마음과 행동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17).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18). 19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 하십니다. 자신과 옆 사람을 살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힘을 쓰는 것이 성도가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지 말라 하십니다(20). 만물이 다 깨끗합니다(20). 다만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입니다(20). 그래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21).

이같이 누구든지 자신에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하십니다(22).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가 심판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각기 자신이 가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가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이미 정죄되었습니다(23).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23).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입니다(23). 그래서 믿음으로 한다 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또 자신도 정죄하며 사는 것은 그야말로 불행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 하십니까? 151절을 봅시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고, 이웃을 기쁘게 합니다(2). 이렇게 하는 것이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2).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아버지께 영광을(3-13)

3절을 봅시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다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입니다(4). 성경을 읽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4).

하나님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5). 어떤 형제가 최근에 창세기를 인내함으로 자세히 읽고 나서 스스로에 대해 하나님께서 소망을 가지셨음을 발견하고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여러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로 많은 사람들을 선으로 이끄심을 보고 받은 은혜라 하였습니다.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십니다(5).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십니다(6). 그러므로 우리가 하여야 할 바가 무엇입니까? 같이 7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믿음이 강하다고 여기든, 약하다고 여기든 서로 받으라 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온갖 사람들의 죄를 다 감당하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내어놓으셨습니다. 이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습니다. 이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습니다. 나 자신을 이렇게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믿음이 영 없는 것 같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교회 공동체 내의 누구라도 서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같이 행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받는 공동체는 거기에 속한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사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어떤 형제는 행복하려고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람이 언제 행복합니까? 돈이 있어서? 아닙니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서로 받을 때입니다. 어떤 형제가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엄마가 생각났다 하였습니다. 엄마는 자녀를 받아줍니다. 나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나를 받아주는 엄마 품에서 누구든지 행복합니다. 저는 1978년 처음 교회에 나와 말씀을 공부하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저를 그대로 받아주는 형제자매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죄라도 고백하고 웃었습니다. 목욕탕에서 벌거벗었으나 행복한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심이라 하고(8),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전합니다(10). 그러므로 열방들이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고 모든 백성들이 주를 찬송합니다(10,11). 이사야는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습니다(12).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같이 13절을 읽어봅시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에게든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목자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소망의 하나님의 모든 기쁨과 평강과 믿음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합니다.

우리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소망의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죄인 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음으로 되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를 항상 기억하고 붙들고 믿어 서로 받고 함께 하나님께서 세우신 믿음의 공동체를 견고하게 세워가는 데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로마서 15:7)

 

2020년 로마서 17강 메시지 1401-1513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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