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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로마서 16강 정여호수아

로마서 13:1-14

 

 

빛의 갑옷을 입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로마서 13: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죽을 몸도 다시 살 산 소망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이 은혜와 소망을 따라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먼저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해서, 다음으로는 이웃에 대해서, 그리고 종말로 치닫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먼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1-7)

다같이 1절을 봅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먼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위에 있는 권세들은 말 그대로 우리 위에 있는 모든 권세들입니다. 자녀에게는 부모님, 학생에게는 교수님, 직장인에게는 상사, 군인에게는 상관입니다. 또 대통령과 또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모든 법과 규칙이 다 포함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복종하라 하면 납득할 수 있겠는데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하라고 하니 제 마음이 불편한 것은 왜 일까요? 그것도 순종도 아니고 복종하라고 하니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 각 사람은 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됩니까?

1절을 다시 봅시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습니다. 곧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입니다. 곧 세상 모든 권세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경에는 이런 가르침이 아주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서가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이 포로 되어 있던 때 쓰여 졌습니다. 다니엘 417절은 이렇게 전합니다.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하였느니라이는 당대 최고의 왕이었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또 골로새서 1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이처럼 만물뿐만 아니라 왕권들, 주권들, 통치자들, 권세들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또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위에 있는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게 됩니다(2).

그러면 하나님께서 위에 있는 권세들을 세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3,4절을 봅시다.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위에 있는 권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합니다.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는 일을 하고, 또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운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따라 그 악에 상응하여 보응하는 일을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칼, 곧 힘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힘과 권세로 나라와 국가와 사회의 질서와 평안을 유지하고, 선을 장려하며, 악은 억제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권세에 복종하는 이유가 단지 복종하지 않으면 받게 되는 진노 때문에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다같이 5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실제로 세상 사람들은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따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세금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씁니다(6). 실제로 나라를 유지 경영하는 데 있어서 세금은 아주 중요합니다. 세금을 거두어야 공공시설도 갖추고, 쓰레기 치우는 일이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일 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정의와 공의뿐 아니라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세움 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합니다(7). 시민으로서 납세, 국방, 근로 등 국민의 의무를 성실하게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는 모든 왕과 다스리는 자들이 그 권세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 가진 권세로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기보다 도리어 불의를 도모하고, 백성들을 압제하고, 자기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자들이 드물지 않게 제법 많습니다. 이런 현실에 부딪치면 우리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과연 이런 자들에게도 복종을 해야만 하는가? 그래서 어느 시대 때나 불의한 권세자들에게 저항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열혈당원들은 로마 정부에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기를 들고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정부 운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세금 문제를 가지고 나아와 질문했을 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하시며(마가복음 12:17), 로마 정부에 세금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또 빌라도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도 그가 내린 판결을 받아들이시고 십자가형을 그대로 당하셨습니다. 다윗도 자신을 시기하여 끊임없이 죽이고자 추격해 오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자신의 손으로 해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24:6). 비록 악한 왕이라도 그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경외심으로 그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권세자들이 불의하다는 핑계로 시민으로서의 나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권세자들이나 공권력을 가진 기관들이 우리의 신앙양심에 위배된 우상숭배를 강요하거나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명령을 내릴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도행전을 보면 성전에서 복음 전하기를 금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사도행전 5:29)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왕이 자신이 만든 금신상에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면 다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다니엘 3:18). 다니엘도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엎드려 절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왕의 명령을 듣고도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멈추지 아니하였습니다(다니엘 6:10). 하나님은 이같이 믿음을 지킨 자들을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보호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되 만약 그들이 우리의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명령을 하는 경우에는 복종해선 안됩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해야 할 말을 하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으로 저항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들로 우리를 박해할 핑계거리를 주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다스리는 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바르게 다스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전서 2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같이 우리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는 복종하되 이웃에 대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8-10)

다같이 8절을 봅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바울 사도가 왜 갑자기 빚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요? 앞에서 그는 국가에 대한 책임으로 조세를 바치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국민 된 의무로 조세를 내야 하는데 그것을 체납하거나 거부해서 국가에게 빚을 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개인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빚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갚을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돈을 빌려서 타인에게 부담을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또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다른 빚은 지면 안 되지만 서로 간에 사랑의 빚은 져야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빚을 진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의무가 수반됩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 사도가 피차 사랑의 빚을 지라고 한 말에는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마음이 생겨야 사랑하고, 사랑할만한 여건이 되어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실제로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빚이요 의무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랑이 의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또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피차 이 같은 사랑의 빚을 져야합니까?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나 큰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자신이 평생 무엇을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 흘리심으로 우리 죄 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일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주께로부터 이 같은 큰 사랑의 빚을 진 우리에게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동안 그 받은 사랑을 주변 이웃에게 갚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로마서 1장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라 하였습니다(로마서 1:14).

8절을 다시 봅시다. 우리가 피차 사랑의 빚을 지는 것은 남을 사랑하는 것이요,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9절을 봅시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간음하거나 살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의 것을 도둑질하거나 탐낼 수가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세금을 떼어먹을 수 없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기치고 거짓말할 수 없습니다. 곧 모든 율법이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다 들어있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결코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10).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 따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그 받은 은혜를 따라 계속해서 서로를 깊이 돌아보며 사랑의 빚을 져야 함을 알게 됩니다. 또 앞으로 만나게 될 캠퍼스 형제자매들을 주의 사랑과 말씀으로 먹이는 일에 힘을 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갈수록 사랑이 식어가는 이 시대 가운데 주의 사랑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주의 사람들이 되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런 삶을 실제로 살 수 있습니까?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1-14)

11,12절을 봅시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바울 사도는 너희가 이 시기를 안다고 했습니다. ‘시기어떤 일이나 현상이 진행되는 시점이나 때입니다. 지금 이 시기는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곧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그 날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날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분명히 의식하고, 또 이 날이 올 것임을 분명히 믿는다면 지금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먼저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비록 그동안 자고 있었다 하더라도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 깨어나야 합니다.

깨어나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같이 12절을 읽어 봅시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빛의 갑옷을 입기 전에 먼저 어둠의 일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가 벗어야 할 어둠의 일이 무엇입니까? 13,14절을 봅시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먼저 방탕과 술취함입니다. 이는 아무 대책 없이 놀고먹으며, 술독에 빠져 사는 삶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음란과 호색입니다. 이는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며 자기 몸을 더럽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 다툼과 시기가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은 다 자기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어둠의 일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 대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어둠의 일과 대조해서 빛의 일을 입자고 하지 아니하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했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자고 표현했을까요? ‘갑옷싸움을 할 때 화살이나 창검을 막기 위해 입는 전투복입니다. 이는 무장하여 싸우는 것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옷을 벗고 입는 일상의 삶이 전투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우리의 실제 삶이 치열한 영적 전투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 하여, ‘세월아 네월아하면서 그냥 가만히 있다가, 때가 되면 저절로 하나님나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베드로전서 5:8). 근신하고 깨어 빛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으면 대적 마귀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신앙생활은 매일 매일이 영적 전쟁이며, 싸움의 연속임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승리 할 때 의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디모데후서 4:7,8).

그러면 우리가 입어야 하는 빛의 갑옷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다같이 14절을 다시 봅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입어야 할 입니다. 여기서 옷이 하는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옷은 우리의 몸을 보호하고, 일하는데 편하게 하며, 품위를 갖추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사탄 마귀로부터 보호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힘이 되며, 하나님의 자녀다운 품위를 갖게 하십니다. 여기서 또한 오직이 중요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말고는 우리를 죄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갖추게 해 주시는 분이 없습니다.

저는 이것을 체험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제가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사고를 친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는 모든 동역자들이 보는 앞에서 목자님에게 대들고, 분에 못 이겨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또 주먹으로 벽을 쳐서 제 손목뼈까지 부러뜨렸습니다. 얼마 전에는 자꾸 울며 떼를 쓰는 제 아들 갈렙에게 짜증이 나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저의 동역자가 당신 그러고도 예수님 믿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목자도 아니에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동역자의 이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노로 폭주하던 저를 멈춰 세워주셨습니다. 저로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게 하는 분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 한분밖에 없습니다. 요즘 저는 제가 또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못난 짓을 행하지는 않을지 두렵습니다. 그러나 제가 예수께서 저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이를 어떤 상황에서도 붙들고 간직할 때 주께서 저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제가 매일의 삶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음으로 분노를 능히 다스리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어,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며, 빛의 자녀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시대가 많이 악합니다. 밤이 더욱 깊어가고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 곧 구원의 날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가 아닙니다.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할 때가 아닙니다. 이런 때 일수록 우리는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을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모든 죄와 어두움과 심판의 두려움에서 우리를 능히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음으로 갈수록 어두워져 가는 이 세상에서도 빛 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로마서 13:12)

 

 

2020년 로마서 16강 메시지 1301-1314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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