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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심을 믿는 소망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였고 가이사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소망으로 무엇을 하였습니까?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7:1-44)

사도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이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에게 맡겨져 로마로 향하는 배를 탔습니다(1).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말씀역사의 승리를 체험하며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비젼을 가지게 되었고 드디어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로마에 죄수의 신분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간 것이 아니라 죄수로 로마 군인의 통제와 감시 아래에 있었습니다. 주의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복음을 증언하러 가는 길에 결박된 채로 갔습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한다 하였습니다(20:21). 그는 자신의 생각을 앞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이끄시는대로 갔습니다. 결박되었지만 그는 이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배에 올라 항해하는 가운데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였습니다(2). 그는 바울과 같이 에베소 교회에서 말씀역사를 섬겼고,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골로새서 4:10). 복음 역사 가운데 고난이 있어도 떠나지 않고 바울과 함께 하였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할 때에 소수이지만 동역자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이달리야로 향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로 갈아탔는데 풍세가 허락하지 아니하여 간신히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5-8). 사도 바울은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많은 손해를 끼칠 것이라며 더 머물렀다 가기를 권하였습니다. 그는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9,10), 그런데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11). 그들은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기거서 떠나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고자 하였습니다(12).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남풍이 순하게 불다가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습니다(13,14). 풍랑으로 심해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렸습니다(18,19).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었습니다(20). 풍랑은 자신들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잠잠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살 소망을 잃어버리고 먹지도 못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에 가운데 섰습니다(21). 그는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다고 하였습니다(21). 사도 바울은 항해하기가 위태하다고 경고하였음에도 항해를 고집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일 것이라 하였습니다(22).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제 밤에 그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신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23,2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자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25).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였습니다(26).

열나흘 째 되는 날 밤에 사공들은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놓고 도망하고자 하였습니다(27,30). 바울은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를 알려 도망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31). 그리고 14일 동안 먹지 못한 자들에게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사람들을 먹였습니다(33-36). 배에 있는 자들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었습니다(37). 날이 새자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만나 배의 고물이 큰 물결에 깨어져 갔습니다(39-41).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은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였습니다(42,43).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여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었습니다(44).

로마로 가는 배의 처음 리더를 맡았던 백부장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백부장의 편에서 볼 때에 죄수들을 로마로 빠른 시일 내에 데리고 가서 맡은 바 임무를 잘 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그로서는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루어줄 것 같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그런데 선장과 선주는 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항해가 위험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따라 움직입니다.

이에 반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는 로마로 복음을 전하러 가는 그의 비젼과는 별로 관계없는 군인들과 죄수들을 생각하고 기도하였습니다. 함께 배를 탄 자들의 생명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말씀을 전한다 하면서 함께 한 배를 탄 자는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심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상황을 보고 사람들의 생명을 생각하였습니다. 배의 리더를 맡은 자는 백부장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먹이고 구원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서 그 삶과 행동이 달라집니다.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고자 할 때에 이를 만족시켜줄 만한 사람들을 믿고 좇아갑니다. 사람들은 남들이 어떻게 되든 자신이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생각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사도 바울에게는 하나님께 말씀과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 하였습니다(20:24). 그는 이 믿음으로 어디에 있든지 자신의 삶을 통해서라도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맡았다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생각하기보다 내 자존심과 내 목숨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에 새롬 목자와 학교에서 함께 오다가 경사진 길을 내려오면서 저에게 잡아달라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도 못 내려올까 하며 내 생각을 앞세우고 걸어가는데 새롬 목자가 그만 오른쪽 발목을 접지르며 넘어져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다음 날 기려와 요셉이와 함께 엄마 병문안을 가는데 제가 앞서서 걸어가느라 기려가 철퍼덕 넘어졌습니다. 기려는 병원에서 엄마를 보자마자 아빠가 빨리 걸어가서 넘어졌다고 사실에 근거해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제게 그 동안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음을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서 정말 나는 무엇을 믿고 사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을 말씀을 맡았다 하면서 자기 옳다 하고 자기 생명밖에 모르는 자라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죄수의 신분이라도 사람들의 생명을 생각하는 사도 바울의 믿음이 새롭게 읽힙니다. 제가 말씀을 가졌다 하며 자기 옳다 하고 사람들의 생명을 해하는 자가 아니라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을 새롭게 읽고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하시는 들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28:1-10)

바울과 일행이 구조된 곳은 멜리데라는 섬이었습니다(1). 비가 오고 날이 추웠는데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영접하였습니다(2).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었는데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었습니다(3). 원주민들은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한다 하였습니다(4). 그런데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었습니다(5).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그를 신이라 하였습니다(6). 사도 바울은 바다에서 광풍을 만나 가까스로 구조된 섬에서 하필이면 독사에 물렸습니다. 로마에 가기까지 어디서든지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가는 길이 고생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가 독사에 물린 가운데서도 조금도 상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는 일 가운데 유라굴라와 같은 예상하지 못한 광풍을 만나기도 하고 뜬금없이 독사에 물리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지만 바울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지키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 섬에서 가장 높은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자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어찌보면 섬의 원주민들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 별로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을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증언하는 일과는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원주민들도 고친 말씀을 읽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자는 어디에 있든지 그 삶을 통해서 복음이 증거가 됨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이 살아 있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기를 기도드립니다.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바울이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28:11-31)

석달 후에 그 섬을 떠나 보디올에 이르러 형제들을 만나 이레를 함께 머무르다 로마로 갔습니다(11,14).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바울의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왔습니다(15).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15). 로마에서도 그와 함께 하는 동역자들이 있음을 보고 위로를 얻고 마음이 넓어졌던 것 같습니다.

로마에 들어가자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였습니다(16). 바울은 로마에서 먼저 유대인들을 청하여 자신이 로마에 오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에 가든지 먼저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 하였습니다(20). 청함을 받은 유대인들은 바울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였습니다(22).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였습니다(23). 에베소에서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주제로 하여 말씀을 강론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였습니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졌습니다. 바울은 이를 보고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다 하였습니다(25). 다 같이 26,27절을 읽어봅시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유대인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임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말씀을 가졌다 하는 것을 회개하고 주께서 저의 귀를 열어주시고 감긴 눈을 뜨게 하시고 말씀을 새롭게 보며 깨달을 수 있도로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그들이 듣지 아니한다 하여 포기하였습니까?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였습니다(28).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였습니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말씀을 들으러 오는 자들을 다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30,31).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도 어찌보면 셋집에 사는 것과 같은 삶일 것입니다. 제가 자꾸만 욕심이 생깁니다. 셋집이 아니라 무언가 권력과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얻고자 몰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삶이 셋집의 삶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잠시 이 땅에서 셋집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히 가르치는 사도 바울의 믿음을 배우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향하는 배 안에서도, 멜리데 섬에서도, 로마에 있는 셋집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를 전하였습니다. 자신의 형편이 어떠하다 하더라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또 이를 전하였습니다.

저는 과연 무엇을 믿고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는 가운데 발견하는 것은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라 하지만 실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거룩하게 된 믿음의 종들의 삶을 존경하고 따라가고자 하였습니다. 저는 어디에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영광을 얻기를 바라고 소망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가 옳다 주장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를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제가 하나님의 말씀도 사람들의 말도 듣지 않는 자임을 드러내십니다. 제가 계속하여 이렇게 살다가는 나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힐 뿐 아니라 죽게 만들 것입니다.

제가 사도 바울의 믿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가 어떻게 악조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할 수 있었는가 싶습니다. 그도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예수 그리스도 믿는 자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는 길에 빛으로 예수님을 만나 앞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아나니아를 통해서 그가 주께서 그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후에 말씀을 새롭게 읽는 가운데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고전 15:3,4).

그는 이전에도 성경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성경을 새롭게 읽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주님과 함께 다시 살아날 것임을 믿었습니다. 저로 사도 바울과 같이 성경 말씀을 새롭게 읽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신 복음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믿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저에게도 주님께서 여러 일들을 통해서라도 저를 만나주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바로 이 때가 성경을 펴고 새롭게 읽어야 할 때입니다. 저로 기도하며 간절한 심정으로 주의 말씀을 마음을 다하여 읽는 가운데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을 굳게 믿어 어디에서나 생명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에 쓰임받기를 기도드립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사도행전 28:30)

 

2018-2019 사도행전 19강 메시지 2701-2831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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