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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19.10.13 13:34

2019년 사도행전 13강 메시지(천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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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년 사도행전 13강 메시지                                                                                                  천모세

사도행전 15:36-16:40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사도행전 16:9)

오늘 말씀은 바울의 2차 선교여행 기록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15:36-41)

안디옥 교회에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여 많은 다툼과 변론이 생겼습니다. 이에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로 갔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음을 확실히 하고, 다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도록 하는 편지를 받아 교회가 평안해졌습니다(15:1-35).

36절을 봅시다.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주의 말씀을 한 번 전한 것으로 끝이 아니라 다시 가서 형제들의 상태가 어떠한지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들은 형제자매들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목자들입니다.

그런데 선교여행을 가기도 전에 서로 심히 다투었습니다(39). 바나바는 선교여행 가운데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였지만,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였습니다(37,38). 그리하여 어떻게 되었습니까? 피차 갈라섰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였습니다(39-41).

앞에서 유대인들과 할례 문제로 다툼이 생겼을 때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가 되어 이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에 가지고 가서 해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에는 심히 다투고 이를 해결하지 않고 갈라섰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고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 무슨 선교역사가 있을 수 있는가 싶었습니다. 선교여행을 떠나기 전에 어떻게 하든지 갈등을 봉합하고 화해를 해서 함께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히 다투고 갈라섰음에도 바나바는 바나바대로, 바울은 바울대로 선교역사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의 캐릭터가 어떠하든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쓰시고 선교역사를 계속하여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복음역사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때로는 각기 옳다, 옳지 않다라는 문제로 서로 의견 대립이 있고 다툼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갈라서기도 합니다. 교회 공동체 내에서 이런 일들이 생기면 환멸감이 들고 이곳을 떠나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 자신이 사람들과 싸우기도 하고, 그리고는 과연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쓰시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연약하여 다투고 갈라선 바울과 바나바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선교역사 가운데 쓰심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역사에 쓰임 받는 각 사람을 훈련해 가십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는 것에 맹렬히 반대하던 바울은 후에 마가와 동역을 하며 선교역사에 쓰임을 받았습니다(디모데후서 4:11). 옳지 않다며 바나바와 심히 다투던 그는 에베소 교회에서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습니다(사도행전 20:31). 교회 공동체라고 해서 성숙한 사람들만 모여서 다툼이 없는 성숙한 모임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다를 것이라 기대하며 사람을 바라보면 계속하여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여러 허물과 연약함 가운데서도 선교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이후에 바울이 또 누구와 함께 하였습니까?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16:1-5)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이고 아버지는 헬라인이었는데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16:1,2). 위로의 아들 바나바와 같이 형제들을 잘 위로하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 모임에서나 바나바나 디모데와 같이 위로하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바울에게도 디모데가 필요했습니다.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하다가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알았기 때문입니다(3).

바울은 앞에서 이방인의 할례문제로 많은 다툼과 변론을 하며 예루살렘 교회에 이 문제를 들고 가서 그들에게 멍에를 지우지 아니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문제를 삼기도 전에 먼저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역사 가운데 사람들과 다투면서 정말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많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불필요한 분쟁을 없애고자 하였습니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할례 문제에서 이랬다 저랬다 하느냐며 비난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관성을 지키는 일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복음 안에서 사람들을 얻고자 하는 일에 일관성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라 하였습니다(고린도전서 9:19,20). 또한 선교역사에 함께 동역하는 디모데가 공격받지 않도록 그를 보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였습니다(4). 곧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것입니다(15:20).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5).

저는 일관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제가 내 생각의 일관성을 지키려고 하는지, 말씀을 전하기 위한 일에 일관성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학생 시절에 어떤 목자님이 결혼을 하고 처가에서 집을 마련해주는 것을 거절했다는 소감을 듣고, 처가의 도움을 받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롬 목자님과 결혼을 하고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주일 예배에 나오게 되었고,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새롬 목자가 기려를 임신하였습니다. 당시 새롬 목자님과 저는 원룸에서 일 년 간 보증금 500, 월세 35만원을 내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부산에 살고 계시던 장모님이 당시 새롬 목자와 제가 인턴하면서 목자 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며, 양산에 있는 아파트를 알아보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처가 덕을 본다는 말이 듣기 싫다며 새롬 목자를 통해서 장모님에게 양산으로 안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저는 처가 덕을 보면 안 된다는 제 생각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 동역하려던 장모님의 마음에 상처를 드렸습니다. 지금은 어떠할까요? 저는 셋째인 나라가 태어나니 하루라도 빨리 장모님이 양산으로 오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토요일과 주일 뿐 아니라 수양회와 모임이 있을 때마다 기려, 요셉을 아무 말 없이 맡아주시고 우리가 복음역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의 도움으로 저와 새롬 목자는 흔들리지 않고 바쁜 전공의 가운데서도 계속하여 말씀역사 가운데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자신의 주장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 사람을 괴롭게 한 일이 이외에도 많을 것입니다. 이를 회개하고 주님께서 지금 제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잘 듣고, 복음을 전하는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 분별력이 생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내 고집이 아니라 주의 말씀이 증거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할 때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후에 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6-10)

6,7절을 봅시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찌하든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최선을 다 했으나 번번이 길이 막혔습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도 함께 일하러 가지 않았다고 안 된다고 한 그가 얼마나 스스로 애를 썼겠습니까? 그러다가 무시아를 지나 해안가 드로아까지 내려갔습니다(8).

이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9절을 봅시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하였습니다. 이는 바울의 생각이 아닙니다. 환상이 바울에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찌하든지 아시아로 가고자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마게도냐, 곧 유럽임을 보여주십니다. 이에 바울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고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습니다(10). 이로써 유럽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선교역사가 바울의 뜻과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바울을 통해서 이루어짐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선교역사를 한다 하면서 성령께서 무엇이라 하시는 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동안 해오던 자기 생각과 고집을 주장하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그리할 때 애를 쓰지만 번번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을 믿고 마게도냐로 갔을 때 유럽 선교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성서한국, 세계선교라는 기도제목을 볼 때에 무엇을 해야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고, 이것만큼은 꼭 지키자하며 애를 쓰기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령의 역사인지, 자신의 고집인지가 분명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열매가 달라질 것입니다. 먼저 여러 많은 생각과 부담을 내려놓고 먼저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이고, 말씀 따라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환상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가 양산캠퍼스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저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볼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마게도냐로 가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11-15)

사도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따라 막힘없이 갔습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그들이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11-13).

그들이 1차 선교여행 때에는 주로 유대인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기도하며 말씀을 전할 만한 건물도 없고 말씀을 듣는 자들도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강가에서라도 기도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로 볼 때 교회 건물이 있어야 말씀이 전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모이고 말씀이 전해지려면 번듯한 건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양산캠퍼스에서 처음 말씀 공부를 할 곳이 없어서 김요한 목자님과 함께 병원 복도 바닥에 앉아서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신촌 센터에 파송된 당시 한의학전문대학원 조교로 근무하던 페트라 목자님의 사무실이 캠퍼스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학원으로 쓰이던 허름한 건물의 2층을 리모델링하여 2010829일 양산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서든지 전해집니다.

그들이 강가에서라도 말씀을 전하였을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습니다(14).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사도 바울 일행을 청하여,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였습니다(15).

건물이, 그 사람의 훌륭한 인격이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여십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말씀을 전하였을 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습니다(13:48). 때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나에게 많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여심을 믿을 때, 그 사람은 기도하게 되고, 말씀으로 돌아가, 장소와 사람에 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여시고, 동역자를 주십니다.

이 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16-24)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습니다(16). 그가 바울과 그 일행을 따라와 소리 질러,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였습니다(17). 귀신이 성령이 바울을 시켜 하시는 일을 귀신같이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날 동안 따라다니며 바울을 심히 괴롭게 하였습니다. 바울이 돌이켜 그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하니 귀신이 즉시 나왔습니다(18).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습니다(19). 그들은 이 사람들이 유대인으로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였습니다(20,21).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였습니다(22,23). 간수는 명령을 받은 대로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습니다(24).

사람들의 소망은 한 사람의 영혼이 온전하여지는 것보다, 자신의 수익이 어떻게 되는지에 가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가운데서 말씀을 전하며 사람들을 온전하게 하는 삶을 살면 반드시 고난이 따릅니다. 이렇게 고난이 따르면, 먹고 살기 힘든데 굳이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목자님들이 세상적인 많은 유익을 포기하면서도 시간을 내어 제게 말씀을 전하여, 저로 말씀 따라 온전하게 하시는 일에 쓰임 받으심을 보게 하셔서 감사드립니다. 많은 목자님들이 자신의 물질과 시간을 드려 양들을 돕습니다. 제가 저의 소망을 수익에 둘 것인지 말씀에 따라 한 영혼이라도 온전하게 하는 것에 둘 것인지 분명한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제가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제가 남들과 비교하며 세상 가운데 어떻게 살까 노심초사하는 삶이 아니라, 캠퍼스 가운데 말씀 없어 고통하는 영혼들을 온전하게 하는 일에 말씀 따라 쓰임받기를 기도드립니다.

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25-28)

사람들은 자기의 수익이 끊어질 것이 두려워 바울과 실라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은 갇혀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25). 그들은 상황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에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 때에 상황과 형편이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한 사람을 온전하게 하였다가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들은 계속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하였습니다(로마서 5:3). 그들이 매를 맞고 갇혀서도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자 죄수들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믿는 자들의 삶을 지켜봅니다.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벗어졌습니다(26).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였습니다(27). 당시에는 죄수가 탈옥할 때 간수의 책임이 되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이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다 같이 28절을 봅시다.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바울은 좋은 기회라 하며 탈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간수의 몸을 상하지 않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귀신 들린 여종을 온전하게 한 것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한 영혼이 온전하여지고 상하지 않는 일에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과 실라는 죄 없는 상황에서 옥에 갇혔습니다. 탈옥하여 탈옥 죄를 만들 것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지혜로운 자들이었습니다.

이에 간수는 어떻게 하였고 바울은 그에게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29-40)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하였습니다(29,30). 간수는 옥에 갇혀 있던 그들이 도망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자 한 것이 너무도 놀라웠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하였습니다(31). 사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 얻는 길임을 분명히 증거 하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말씀을 전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는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고 스데반이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8:1). 그러나 스데반이 죽임을 당하면서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며, 평안히 잠드는 것을 보았습니다(7:60). 부활하신 예수께서 박해하는 그를 빛으로 만나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성경을 새롭게 읽는 가운데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심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이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으리라 전하였습니다(고린도전서 15:2-4).

저는 과연 무엇을 믿고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죄와 실패 가운데서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은혜로 말씀을 듣고 죄에서 멀어진 깨끗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지금 이런 실패를 만회하는 삶을 사는 자신으로 만족하면서,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얻었음을 잃어버렸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놓쳐버리니 제게 시간이 많아도, 일이 없어도 앞으로 어찌될까 두려워하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사도 바울의 메시지를 읽게 되니 감사가 됩니다. 저로 이미 받은 바 복음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함으로 구원 얻고 이 복음의 말씀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습니다(32).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33,34).

날이 새자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하였습니다(35).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평안히 가라하였습니다(36). 이에 바울이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바울이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로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하였습니다(37). 바울은 자신이 놓여나게 되었다고 좋다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에게 죄가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죄인이라 낙인이 찍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해 받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하였습니다. 자기 욕심에 이끌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지혜가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가 보입니다.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였습니다(38,39).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갔습니다(40).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요한이라 하는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바나바와 심히 다투며 갈라섰습니다. 그는 이 열심을 가지고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애를 썼지만 성령이 허락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다 인정하고 마게도냐로 건너가 유럽 선교역사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뜻과 계획대로 유럽 선교를 이룬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환상을 보고 자신을 꺾고 마게도냐로 갔을 때 유럽 선교의 길이 열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데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에서 그의 고백을 통해서 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습니다(빌립보서 3:5,6).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지 못해 핍박하는 그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빛으로 만나주셨습니다. 그는 성경을 새롭게 읽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 성경대로 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던 것을 꺽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자 열심을 내었습니다. 이전에 유익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까지 여겼습니다(빌립보서 3:8). 그는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하였습니다(빌립보서 3:10,11). 그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 하였습니다(빌립보서 3:14).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내 생각과 내 뜻이 이루어지도록 애쓰는 삶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말씀을 읽는 가운데 나의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읽을 수 있으면 그 사람은 묵은 사람이 아니라 늘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우리 각 사람이 말씀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 자신에게 보여주시는 비전을 보며 성서한국, 세계선교역사에 말씀 따라 쓰임받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사도행전 16:9)

 

 

2018-2019 사도행전 13강 메시지 1536-1640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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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사도행전 2018-2019 사도행전 2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8.11.15 80
21 사도행전 2018-2019년 사도행전 3강 메시지(김요한) file 정여호수아 2019.01.06 79
20 사도행전 2018-2019 사도행전 4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1.14 75
19 사도행전 2018-2019 사도행전 5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1.24 837
18 사도행전 2018-2019년 사도행전 6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1.27 58
17 사도행전 2018-2019 사도행전 7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2.05 78
16 사도행전 2018-2019 사도행전 8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02.12 79
15 사도행전 2018-2019년 사도행전 9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02.17 52
14 사도행전 2018-2019년 사도행전 10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19.02.26 51
13 사도행전 2019년 사도행전 11강 메시지(김요한) file 정여호수아 2019.09.29 47
12 사도행전 2018-2019 사도행전 11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09.30 39
11 사도행전 2019년 사도행전 1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10.06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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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도행전 2018-2019년 사도행전 14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10.20 28
8 사도행전 2018-2019 사도행전 14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10.21 35
7 사도행전 2019년 사도행전 15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19.10.27 28
6 사도행전 2018-2019 사도행전 15강 메시지(천모세) file JohnKim 2019.11.01 21
5 사도행전 2018-2019 사도행전 16강 메시지(김요한) file JohnKim 2019.11.10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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