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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10강 정여호수아

사도행전 9:32-11:18

 

 

일어나 잡아먹어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사도행전 10:13)

 

   선교는 그냥 되지 않습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합니까? 일꾼이 필요합니다. 일할 일꾼들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지난 말씀이 박해자 사울을 변화시켜 이방인의 사도요 일꾼으로 쓸 준비를 시키는 것이었다면, 오늘 말씀은 사도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들을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먼저는 베드로 한 사람이 마음이 준비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주께서 베드로를 어떻게 준비시키셨을까요? 베드로는 어떻게 준비된 자가 되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각 사람이 주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길 기도합니다.

   먼저 그때에 베드로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다비다야 일어나라(9:32-43)

  32절을 봅시다. 그때에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다녔습니다. 그때가 언제 입니까? 스데반의 순교 이후 사울의 박해로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던 성도들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흩어져서 복음을 증거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던 때입니다. 이에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던 베드로는 말씀 역사가 있는 유대 땅을 실제로 방문하며 어떠한지 살피고 주의 역사를 더욱 든든히 세워나가는 일에 힘쓰고자 했습니다. 한번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는데, 거기서 중풍병으로 침상에 누운지 여덟해나 되는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33). 이에 베드로가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하니 그가 곧 일어났습니다(34). 이를 본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35). 그런데 룻다에서 약 20km떨어져 있는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었는데 그가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습니다(36). 그런데 그가 안타깝게도 그만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37). 이에 그에게 은혜를 입은 제자들이 긴급하게 베드로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38,39), 이에 베드로는 함께 가서 다락방에 있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 후에 다비다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습니다(40). 마치 예수께서 죽었던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사건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았습니다. 베드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부활과 생명이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고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있었습니다(42). 그리고 베드로는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물렀습니다(43). 무두장이는 짐승을 도축하여 가죽을 만드는 사람으로 죽은 짐승을 손을 만졌기 때문에 부정하게 여겨졌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백정처럼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멸시받는 창기와 세리들과 함께 했던 것 같이, 베드로는 무두장이 시몬과 함께 했습니다. 베드로는 같은 유대인이라면 누구라도, 좀 더 넓혀 사마리아인들까지도 영접하고 함께하고, 돕는 단계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이방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장벽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주께서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일어나 잡아먹으라(10:1-16)

    101절을 봅시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당시 백부장은 치열한 전장을 수없이 누빈 베테랑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온 집안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구제하며 기도에도 항상 힘썼습니다(2). 그런데 그가 기도하다가 환상중에 하나님의 사자의 심방을 받았습니다(3).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4,5) 이에 고넬료는 세 사람을 뽑아 욥바에 있는 베드로에게 보냅니다(7,8).

  그때에 베드로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9절을 봅시다.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때가 6시 곧 정오였으니 기도하면서 배가 많이 고팠던 것 같습니다(10).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고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봤습니다(11).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12) 돼지, 낙타, 토끼, 오소리, 까마귀, 독수리, 올빼미, 박쥐 등등 이방인들은 먹지만, 유대인들은 속되고 부정하다고 여기는 것들로 가득했습니다(레위기 11, 신명기 14). 그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이에 베드로가 손사래치며 대답합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리이다”(14) 그러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15)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하늘로 올려져 갔습니다(16). 한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들렸습니다. 베드로에게 세 번의 메시지가 들렸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오래전 예수께서 자기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세 번 반복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 이 말씀만큼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이 말씀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호불호, 베드로의 처지, 베드로의 상처나 기질을 떠나 그가 반드시 영접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일어나 잡아 먹어라!”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단순히 생각하면 나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으면 그것은 우리 몸의 일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아무거나 마구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려서 먹습니다. 보통은 자기 입에 익숙한 것을 먹고 자기 몸에 도움 되는 것을 먹습니다. 저는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지만, 서양식에 익숙한 요즘 젊은 사람들은 김치 먹기를 힘들어합니다. 근육을 키우려는 사람들은 닭가슴살을 수북히 쌓아놓고 먹기를 좋아하는데, 저는 왠지 사육당하는 것 같아 거북합니다. 익숙한 음식과 혐오 음식이 있는 것처럼, 나의 정서에 익숙한 사람이 있고 혐오스런 사람이 있습니다.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은 사람과 나의 영혼에 알러지를 일으킬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어나 잡아먹어라는 말씀은 이전에는 비록 혐오의 대상이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나와 같은, 나와 함께할 친근한 존재로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말이 쉽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예수님에게 3년 반을 교육받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았고, 성령 충만했던 베드로도 이렇게 계속 거부 한 것을 보면, 사람이 기존의 자기 생각과 고정관념을 버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말씀에 기초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듣고 받은 사랑은 이 모든 것을 다 뛰어넘는 사랑입니다. 사울 같은 원수같은 자도 용납하고 포용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따라 판단하고 정죄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9:13). 예수님은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하고자 두 팔을 벌리셨습니다. 자신을 향해 조롱하고 저주하는 자들을 향해 십자가에서 이같이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214절에서 이같이 증거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무셨도다예수님 안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함께하지 못할, 희망을 두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영접하기 힘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믿음 없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 좋고 진리를 사모하기에 더더욱 영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래전 어떤 남미 선교사님은 수시로 남친을 바꾸는 자매양을 보며 판단하는 마음으로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정서와 도덕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억지로 참고 견디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흘러 양의 깊은 상처를 이해하고 영적 갈망을 발견하고 나서야 남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소망으로 돕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알기전 저도 제게 익숙한 사람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 주로 사귀었기 때문에 갈등하는 문제가 그렇게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캠퍼스 목자로 살고자 할 때 정말 제가 조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유형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듣습니다. 공감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해하기보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더 앞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 눈에 어떻게 보인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두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겸손히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을 부인하고 일어나 잡아먹어라는 말씀을 따라 삶의 현장에서 자기 세계를 넘어서는 결단을 드려야 합니다. 한 생명의 소중함을 붙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나 같은 죄인에게 주께서 베풀어 주신 크신 은혜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내 마음에 용납할수 있는 힘을 주시고, 나의 생각과 판단보다 주의 뜻을 더 앞세워 갈수 있게 역사 하십니다. 우리가 내 눈에 어떻게 보인다 하더라도 일어나 잡아먹어라는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보내주신 누구에게라도 도움의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환상을 본 후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17-48)

   17절을 봅시다. 베드로는 생각하기도 싫은 혐오스런 환상이었는데도 무슨 뜻인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그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아왔고(18), 그때에 성령께서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19-20). 이에 베드로는 그들을 불러들여 유숙하게 하고, 다음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23).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내어 맡겼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에게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다고 하였습니다(28,29). 이에 고넬료는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다고 하였습니다(33). 이를 보고 베드로는 무엇을 깨닫게 되었습니까?

   34,35절을 다 같이 한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세상은 외모로 판별합니다. 비주얼이 좋으면 마음씨도 좋게 봐줍니다. 성적이 좋으면, 무슨 짓을 해도 예쁘게 봐줍니다. 그와 같이 베드로 또한 그동안 유대인이라는 외모를 통해 판별했습니다. 유대인이면 병든 여인이든, 죽은 여인이든, 무두장이이든지, 소망으로 보았습니다. 반면 이방인들은 아무리 날고 기더라도 이방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베드로의 눈이 열리자, 그는 이방인 고넬료를 향해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했습니다(38). 예수님은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했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마귀에게 눌린 자들을 고쳤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무에 달아 죽였습니다(39).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40).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택하신 자들에게 보이셨습니다(41). 그리고 제자들에게 명하사 전도하게 하셨습니다(42).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바로 이 예수님이심을 증언하게 하셨습니다(42). 재판장이 무죄! 선고하면 무죄이고, 유죄하면 유죄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43). 이같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전했을 때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왔습니다(44). 베드로와 함께 온 신자들은 이방인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보며 크게 놀랐습니다(45,46). 이에 베드로는 지제하지 않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또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였습니다(48).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 일로 베드로가 할례자들, 곧 유대인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11:1-18)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도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뻐하기는 커녕 그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당도하자 할례자들이 네가 무할례자들과 함께 먹었도다며 비난폭격을 퍼부었습니다(2). 이때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4절을 봅시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자세하게 차례로 설명해 주었습니다(4). 5절부터 16절까지 보면 정말 있는 그대로 자세히도 설명해 주었습니다동역자들도 자신과 같이 이방인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든 영접하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지어 말했습니다. 17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17) 이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18)

  요즘 많은 동역자들이 하나님의 역사편에서 제가 무엇을 하는지? 또 왜 그렇게 하는지,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뭔지 그것을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제가 하는 일마다 시시콜콜 시비를 거는 것 같고, 방해하려는 것 같아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실제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제대로 동역하고 싶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 동역자들이 하나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를 잘 알지 못했고 이를 힘들어 하면서 계속 자기 방어적으로 나갔던 것 같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하지 않아도 될 많은 오해를 갈등을 낳게 됨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동역자들의 진심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갇혀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상처를 받을까봐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볼 때 이것이 다른 어떤 일보다 지금 제가 일어나 잡아먹어야 할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오늘 본문의 베드로를 보고 배워야 겠습니다. 저의 좁고 편협한 생각과, 모든 속 두려움을 이기고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행하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동역자들과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굳게 세워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 누구나 희망을 두고 섬길 수 있습니다. “일어나 잡아먹어라!” 지금 내 눈에 어떻게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람임을 알고, 소망으로 영접하고 사랑하고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어떤 모양으로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힘 있게 확장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사도행전 10:13)

 

2023년 사도행전 10강 메시지 0932-1118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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