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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3강 정여호수아

사도행전 3:1-26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사도행전 3:6)

이제 곧 개강입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고, 과연 새로운 학기를 잘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께서 일어나 걸어갈 소망의 말씀을 들려주심에 감사합니다. 무엇이 우리로 일어나 걸어가게 할까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1-6)

1절을 봅시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제 구시면 오후 3입시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오전 9, 정오, 오후 3시 하루에 세 번씩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든지, 성전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이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서로 누가 크냐하며 기싸움을 했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제 함께합니다. 또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기도하라 해도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했던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회개하고 돌아온 3000명의 사람을 도와야 하는 가장 바쁘고 정신없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기도하러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요?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이 서로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합심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바쁜 새 학기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제 포스터도 만들고, 전도카드도 만들고, 대 청소도 하고, 캠퍼스에 올라가서 뭔가를 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앞서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가짐도 바뀌고, 무엇보다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새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갈 그때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2절을 봅시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성전 미문에 두었습니다. 이는 그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고 있는 이 사람의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서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청와대에 왔는데 대통령에게 구하지 않고, 구경하러 온 사람에게 구하고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사람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주는 은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매주 예배드리러 몸은 왔다 갔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어떤 기대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끊임없이 사람들만 찾고, 사람에게만 기대고 의지할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라도 도움을 받지 못하면 힘들고 고단한 인생을 버틸 힘이 없고, 그래서 나가지도 못하고 계속 교회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도 새로운 날이 이르렀습니다. 어떻게 이르렀습니까?

3절을 봅시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도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그가 보고 구걸했습니다. 한푼만 줍쇼! 이에 기도하러 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는, 구걸하는 그를 주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를 보라”(4) 그러자 그가 뭐 대단한 것을 주는 줄로 알고 잔득 기대하며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5). 이런 그에게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다 같이 6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시작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베드로는 그에게 자신에게는 그가 기대하는 은과 금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도 있는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네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가 이 이름을 왜 주겠다고 합니까? 이 이름이 그를 일어나 걸어가게 하는 이름이라 합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전혀 뜻밖의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걸어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 번도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일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누구도 그에게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거나 일어나 걸으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자신은 사람들에게 구걸이나 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를 때 저도 늘 이런 생각들로 어둡고 무기력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이미 내 인생이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갇혀 뭘 하나 시도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보면 갈수록 이런 생각에 갇혀 살아가는 청년들이 제법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더 달라질 것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삶의 기대와 소망을 잃어버린 청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 파여진 운명의 골짜기가 너무 깊습니다. 무기력과 절망의 자리에서 걸어 나올 힘이 없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이번 생에는 망했다는 이생망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사람이 구걸할 힘만 있어도 그래도 먹고 산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구걸할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누워만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은금일까요? 물론 은금이 일시적인 도움을 줄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 그들로 스스로 일어날 힘을 주고, 걸어갈 능력을 주며, 뛰어갈 소망을 줍니까? 베드로가 증거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에 정답이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그 이름 권세가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어떤 운명적인 사람도 일어나 걸어가게 합니다. 어떤 크고 무거운 죄를 범했을지라도 정죄와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합니다. 사망과 죽음의 권세도 그 이름앞에서 힘을 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이를 어떻게 드러냈습니까?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7-10)

7절을 봅시다. 그의 오른 손을 잡아서 일으켰습니다. 믿음으로 앉은뱅이의 어둡고 딱딱해진 심령에 도전하였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손을 내밀어서 그의 오른손은 잡아서 끌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일어날 힘과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말씀을 들려주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을을 가지세요!’ 이렇게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그 손을 잡아 일으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가 믿음을 가지도록 실제에서 힘과 도움이 되는 일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러자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습니다(7). 또 뛰어 서서 걸으며 그가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8). 그는 단 한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자입니다. 아장 아장 걸음마단계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자입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선 것도 모자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장애자요 불구자로서 성전에 들어갈 수 없던 자였는데 이제는 그 몸이 온전하게 되어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9,10절을 봅시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랐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람에게 일어난 이 일도 놀랍지만, 베드로가 어떻게 이 같은 일에 도전할 수 있었는지가 더욱 놀랍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름을 믿음으로(11-16)

11절을 봅시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여들었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 그는 이 일이 자신의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된 일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대신 누구를 주목하게 합니까?

13절을 봅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까? 또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심으로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14,15).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고 합니다(15). 그리고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곧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16).

베드로는 그 이름을 강조합니다. ‘그 이름이 그 사람을 완전히 낫게 했음을 강조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 이름에 권능이 있다는 것, 곧 그 이름이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할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가진 그 믿음도 예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먼저 베드로를 찾아 오셨습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먼저 그에게로 오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물고기를 잡으라말씀하셨고, 베드로가 그대로 순종 했을 때 그물 가득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 후에도 예수님은 많은 가르침과 많은 일들을 통해서 자신을 베드로에게 보이셨고, 이를 통해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그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먼저 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40일간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사도행전 1:4). 이로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도 베드로 스스로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17-26)

17절을 봅시다. 베드로는 형제들과 관리들이 이를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음을 자신이 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임을 밝혔습니다(18).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다같이 19절을 한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19).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죄가 없어지고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에서부터 이를 것입니다.

앞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던 그 사람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되었습니다. 굳어진 다리와 발목이 힘을 얻어 다시 살아났고 새롭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도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새롭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새롭게 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고린도후서 5:17). 그는 백성중에서 멸망받지 아니하고 복을 받습니다(22-26).

요즘 제가 주의 역사를 섬기고자 할 때 갈수록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자꾸만 저 개인의 권능과 경건의 능력이 더 있어야만 주의 역사를 섬길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은과 금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도 계속 생깁니다. 기도하기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제게 있어야 할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임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 이름을 믿는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도 주께서 주심을 보게 됩니다. 제가 여러 많은 일을 하려 하기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일하실 것을 믿는 믿음 갖고자 겸손히 나아가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와 같이 죄가운데 주저앉아 구걸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 캠퍼스 영혼들을 일어나 걸어가게 하는 하나님의 일에 믿음으로 도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 각 사람이 봄 학기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의지하여 죄 가운데 주저앉아 있는 캠퍼스형제자매들을 일어나 걸어가게 하는 하나님의 일에 믿음으로 도전하고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사도행전 3:6)

 

2023년 사도행전 3강 메시지 0301-0326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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