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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27강 정여호수아

누가복음 16:1-31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누가복음 16:9)

요즘 부동산 시세가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또 불안정한 정세와 물가는 우리를 계속 불안하게 만듭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고 이로 인해 어떤 대비를 해야 할지도 몰라 두렵습니다. 이런 시대 가운데 우리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지금 여기서 장래를 위해 어떤 투자와 준비를 해야 할까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1-18)

1절을 봅시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청지기는 그 주인의 집에 거하면서 주인의 소유를 맡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주인에게까지 들렸습니다. 당연히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서 문제를 추궁했습니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2) 해고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그동안 청지기는 다른 종들이 힘들게 땅을 팔 때 시원한 사무실에서 장부정리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제 그 좋은 시절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직장만 잃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살 집, 곧 거할 처소도 없어집니다. 그런데 땅을 파서 먹고 살자니 힘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빌어서 먹자니 그것도 부끄러운 일입니다(3). 이때 그는 한숨만 푹푹 쉬며 있지 않았습니다. 골몰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아직 청지기로 있는 동안 직분을 빼앗긴 후에도 사람들이 그를 자기 집으로 영접할 기가 막힌 대책을 세웠습니다(4). 그 대책이 무엇입니까?

5절을 봅시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먼저 온 자에게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물었습니다. 그가 기름 백 말이라고 하니, 청지기는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하였습니다(6). 또 밀 백 석을 빚진자에게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하였습니다(7). 기름 백말은 당시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000데나리온으로 노동자 3년 품 삯정도 됩니다. 그중 절반이면 지금 시세로 약 5천만원에 해당되는 큰 돈입니다. 밀 백석은 노동자 10년 품삯인데, 그중 20%를 감해주면, 이 또한 5천만원의 빚을 줄여 준 셈입니다. 어디 이 두 사람 뿐이었겠습니까? 그는 주인에게 빚진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불러다가 그들의 빚을 이같이 줄여 주었습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주인의 장부까지 조작해 더 큰 손해를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8절을 봅시다. 주인은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했다며 칭찬했습니다. 때려 죽여도 모자랄 판인데 도리어 칭찬을 했습니다. 정상적인 주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가 옳지 않은 청지기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칭찬한 것은 이 옳지 못한 청지기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일을 지혜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어떤 점에서 지혜로웠습니까? 그는 청지기 직분을 잃어버리기 전에, 가만히 않았습니다. 자신의 앞날을 미리 대비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동안 아직 청지기 직분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과 기회를 이용해서 실직한 이후의 삶을 대비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은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십니다(8). 이 세대 아들들,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먹고 살길을 찾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치열한 경쟁을 하며 내일을 준비합니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해서, 또 힘없는 노후를 대비해서 여기저기에 재물을 쌓아둡니다. 은행에 쌓아놓기도 하고, 보험을 몇개나 들기도 하고,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준비는 자기 시대, 곧 이 땅에서 먹고 살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를 위해 이 정도로 대비한다면, 빛의 아들들은 어떠해야 할까요?

9절을 봅시다. 너희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사실 재물 자체가 불의한 것은 아닙니다. 가치 중립적입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불의의 재물이라 하신 데는 그것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영원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쫒겨난 후에도 거주할 집을 마련하기 위해 한 일은 재물로 친구를 사귄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재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곧 사용하지 못하게 될, 없어지게 될 주인의 재물로 그렇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청지기로서 주어진 시간과 권한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주께서 맡겨주신 재물을 쓸 수 있는 양과 시간이 한정적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쓸 수 있는 그 재물로, 쓰지 못하게 될 그 때가 오기 전에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재물만 없어질 뿐 아니라 우리도 육신의 장막을 벗어야 할 때가 옵니다. 그리고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 우리는 거할 처소가 필요합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기 전에 영주할 집을 마련해야 합니다. 영주할 집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 친구는 누구일까요? 앞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2:4). 또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4:2). 또 마태복음에서는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하셨습니다(마태복음 25:40). 이로 볼 때 친구는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의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들입니다. , 얼마전에 하나님의 나라 잔치 비유에서 나온 바로 가난한 자들’, ‘몸불편한 자들’,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누가복음14:13). ‘대접해도 갚을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는 대접을 받아도 갚을 것이 없어 갚지 못하는 이들이지만 의인들의 부활 시에 갚을 것이라고 한 바로 그들입니다(누가복음 14:14). 이들을 섬길 때 이들이 영주할 처소로 영접할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갚은 것이 없는 자들을 위해 나의 아까운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쓰는 것보다 더 미련해 보이는 일이 없어 보입니다. 때때로는 내 인생을 쓸데없는 일에 다 허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계속 뒤치닥거리만 하다가 내 인생도 다 끝나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이런 생각에 자주 시달립니다. 이런 자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며 어쩌지 못해 목자 생활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제가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지혜롭게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를 알게 되니 청지기로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은 목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제 속에서 어느새 어둡고 슬픈 마음이 물러가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흘러나왔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며 죽은 자와 같이 살던 제게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처소로 들어갈 산 소망을 새롭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아멘!

갈수록 자기 사랑 돈 사랑하는 세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롭게 사는 삶이라고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부추기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이 같은 세상의 조류에 흘려 떠내려 가지 말아야 겠습니다. 도리어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지혜로운 길을 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겠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 믿음의 소망을 따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없어질 것으로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거처를 마련하는, 진정 지혜롭고 복된 길로 나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제자들이 재물을 지혜롭게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10절을 봅시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불의한 재물을 친구를 사귀는데 쓰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참된 것, 곧 하늘의 보물 창고를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11).

실제로 우리가 재물을 어디에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실제로 어디에 가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경건한 척 해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조금도 돈을 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재물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13). 많은 사람들이 둘 다 섬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은 둘 다 자신을 주인으로 모실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주인 중에서 한 주인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므로 이 모든 것을 비웃었습니다(14). 그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면 부가 따라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부는 경건의 척도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재물을 섬긴 자들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 중에 높이 받는 것을 더 사랑한 자들입니다(15). 자기 탐심을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버린 자들입니다(16,17). 율법을 악용하여 자기 아내도 버리고, 다른데 장가든 간음한 자들입니다(18).

이들의 결국이 어떻게 될까요? 예수께서 또 무엇이라 하십니까?

이것을 기억하라(19-31)

19절을 봅시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도 있었습니다(20). 복음서에 나사로라는 이름이 자주 나옵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나의 도움이시다입니다. 뜻은 참 좋은데 지금 눈에 보이는 현실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부자의 이름을 나사라로 하면 딱 맞을 것 같은데 오히려 거지의 이름이 나사로입니다. 더구나 나사로는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영양실조까지 걸렸는지 온 몸이 헌데 투성입니다. 그 상태로 부자 집 대문 앞에 버려진 채 있었습니다(20). 그가 바라는 것은 부자 집에서 잔치하고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배를 불리는 것입니다(21). 그런데 그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니 개들이 와서 그의 상처를 핥아도 쫓아낼 힘도 없습니다(21). 나사로는 그렇게 살다가 결국은 죽었습니다(22). 정말 슬프고 비참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22). 이후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습니다(22). 부자나 거지나 인생은 죽음 앞에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처소는 달랐습니다. 부자는 음부에 떨어져 지옥의 고통에 시달렸습니다(23). 그런데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가 보였습니다(23). 부자는 그가 자기 집 대문 앞에 쓰러져 있던 그 거지 나사로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24)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25)

무엇이 이 두 사람이 거할 처소를 갈랐을까요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자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그는 괴로움을 받습니다. 그러니깐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받는 것은, 그가 거지 나사로에게 무슨 해코지를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나사로에게 그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부를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썼습니다. 호화로운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자기 집 대문 앞에서 헌 데를 앓으며 굶주린 나사로를 보고도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그의 죄입니다. 부를 가지고 자기만을 위해 쓰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그의 죄입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 아브라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거지 나사로도 거지이지만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들은 한 하나님의 백성이고 한 형제입니다. 형제가 주려 죽어가고 있는데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도 돈을 더 사랑했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습니다. 돈을 주인으로 섬겼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을 영주할 처소로 영접할 친구를 사귀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갈 곳은 지옥 밖에 없었습니다. 부자는 거기서 크게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있는 곳과 지옥은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서 서로 왕래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26).

27절을 봅시다. 그제서야 부자가 정신이 났는지 자기의 다른 형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다섯 형제들도 결국 이 고통스러운 곳으로 단체입장 할 것이 뻔합니다. 이에 그는 나사로를 선교사로 자기 형제들에게 파송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고통받는 이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28).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으라고 합니다(29). 모세와 선지자는 구약 말씀을 가리킵니다. 이미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재물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이미 성경말씀을 통해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주어진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나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사정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30) 아무리 그래도 죽은 자인 나사로가 짠! 나타나서 회개하라고 하면 달라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1절을 봅시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31) 아무리 죽은 자가 살아나서 메시지를 전한다고 할지라도 그때 뿐입니다. 정말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매주 말씀을 공부하는 우리는 정말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 복이 정말 복이 되려면 내가 지금 여기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지금 나에게 주어진 말씀임을 영접하고 들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속에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에스겔 11:19). 능히 모든 탐심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게 하십니다. 말씀을 듣는 자가 살아납니다(요한복음 5:25).

자기 사랑 돈 사랑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기보다 더하는 세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디모데후서 3:2).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가는 세상입니다. 우리도 자칫하다간 이 세상의 조류에 같이 휩쓸리기 쉽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 모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오늘 주께서 들려주신 이 말씀을 기억함으로,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할 친구를 사귀는 일에 지금 여기서 없어질 재물을 아낌없이 드리는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누가복음 16:9)

2022년 누가복음 27강 메시지 1601-1631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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