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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09.05 14:39

2017년 누가복음 34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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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 34강                                                                                               김요한

누가복음 17:1-19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누가복음 17:6)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친구가 용서가 되지 않아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회개하거든 용서하라(1-4)

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예수님을 따라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될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하셨습니다. “실족”이란 가다가 미끄러지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에서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표로 잘 가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겠다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그러니 실족하게 하는 것이란 남을 죄 짓게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재물로 친구를 사귀면서 주님께서 보내주신 형제자매들과 함께 관계성을 맺어 가며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자들이 이렇게 하면서 사람들이 죄를 짓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이어서 바로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하십니다. 어느 정도의 화입니까? 2절을 봅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작은 자는 믿음이 약한 사람을 말합니다. 믿음이 강하면 무슨 바람이 불어도 견딥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하고 작아서 이런 말을 들으면 이런 것 같고, 저런 말 들으면 저런 것 같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은 차라리 연자맷돌, 황소가 끄는 큰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하십니다. 그렇게 바다에 빠지면 나오지 못합니다. 예수님 말씀은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지만, 형제자매 중에 한 사람을 죄짓게 하면 그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역사에 믿음으로 쓰임 받고자 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3절을 봅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하십니다. 자신을 스스로 살펴보라 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작은 자가 문제가 아니고, 실족하게 한 그 사람이 죽는 게 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자신이 죽지 않으려면 그 형제가 만일 죄를 범하거든 먼저 말씀으로 돌아오라고 경고하고, 돌아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하십니다. 한 번 말하고, 이를 들은 형제가 돌아와서 ‘제가 잘못 했습니다’ 하면, 둘째 아들처럼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이렇게 나오면 송아리를 잡아서라도 용서하고 잔치를 할 것입니다. 송아지는 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환한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4절입니다. 4절을 읽어봅시다.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하루에 일곱 번이나 죄를 짓고 또 돌아와서 회개한다고 하면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떤 형제가 프린터 카트리지가 다 되었다고 프린터에서 빼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괜히 집어 다른 데로 옮기자 카트리지에 남아 있던 검은 잉크가 새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이걸 어쩌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울컥 했습니다. 뭐라 하면 또 카트리지를 건드려 또 잉크가 새어나올 것 같아, ‘가만히 있으라.’ 하고는 그 카트리지를 종이에 꽁꽁 싸서 가져왔습니다. 얼굴에는 송구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하였습니다. 이런 일을 하루에 일곱 번 계속 한다면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할까요? 그래서 그 일곱 번 마다 뭐라고 뭐라고 잔소리를 한다면 그 잔소리 듣는 사람이 ‘아이구 내가 믿음을 가진다고 애쓴다고 되겠나’ 하면서 실족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도에서 선교사로 쓰임 받은 William Carey(1761-1834) 선교사는 선교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이 분이 남긴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대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볼 때 용서 하는 것입니다. 계속 용서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일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회개하면 용서할 텐데, 회개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용서를 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회개하면 용서하겠다’고 마음먹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돈만 있다고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같이 살아야 합니다. 같이 살아야 사람 사는 맛이 납니다. 모임을 이루고,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살맛이 납니다. 동아리 박람회를 해서 새로운 형제자매도 만나고 그래야 모임도 살아납니다. 예수께서는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재물로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친구가 용서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행복하지 않습니다. 늘 뿔이 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용서하지 않고 뿔이 나 있으면 믿음이 작은 자들을 실족시킬 수 있습니다. 같이 밥을 먹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 먹고 있으면 ‘둘이 싸웠느냐?’고 합니다. 믿음 잃는 쪽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들로 죄를 짓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임에 와서 항상 프라스틱 미소를 짓고 있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화목할 수 없습니다. 죄를 짓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들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였습니다(5). 사도들도 이리 같은 세상에 나가 전도를 하며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났습니다. 이 사람들을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려니 그들도 믿음이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5-6)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같이 6절을 읽어봅시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겨자 씨 한 알, 겨자씨는 볼펜 자국 하나 만큼 작습니다. 그것도 한 알. 작고도 적습니다.

그처럼 작고 적은 믿음이 있으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뽕나무가 떡 뽑혀 바다에 딱 심겨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해보고 싶어서 인제대학교 캠퍼스에 가서 나무 하나 하나 마다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용서하라”는 말씀을 하시자, 사도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라 하였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부부간에 싸우고, 부모 자식 간에 싸웁니다. 존경하는 일대일 목자와 싸웁니다. 믿음을 더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내 속에 있는 용서하지 못하는 그 깊은 죄의 뿌리를 뽑아 바다에 완전히 던지라고 하면 순종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자신과 전혀 말도 다르고 생활패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내 스타일에 아닌 사람과 만나야 하고, 또 그 사람이 돌아와서 회개하면 용서하여야 합니다.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야 한다고 사도들이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많은 믿음, 큰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말씀하십니다. 겨자씨, 씨에는 생명의 원천이 들어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곧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는 것을 믿음, 이를 믿는 살아 있는 믿음은 그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 작고 적다하더라도, 그 믿음이 있으면 죄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 하였습니다(민수기 12:3). 그런데 그 모세가 육십만 대군, 육십만 대군이 한 마디씩만 해도 육십만 마디인데, 광야를 지나면서 생기는 그 수많은 불평불만을 다 들었습니다. 특히 광야에서 물을 마음껏 마시지 못하자 사람들이 짜증을 내고 모세에게 불만을 토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위를 지팡이로 치면 물이 나온다 하셨을 때, 모세가 두 번을 쳤습니다(출애굽기 20:10,11). 화가 나서. 많이 참고 두 번밖에 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모세가 그렇게 두 번이나 쳤다 해서 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들어가지는 못하게 하셨습니다(신명기 32:51,52). 모세라도 분을 참기 힘들고, 용서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모세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용서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예 기대조차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용서는 내 자신이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할 때, 용서받지 못할 때 생기는 분노, 억울함, 원통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믿음을 더하소서” 하는 사도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작고 적은 믿음이라도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면 용서하지 못하는 죄악 된 본성이 뽑힐 것입니다.

그러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으로 용서하였을 때 그 기쁨이 어떠하겠습니까? 너무 기분이 좋아, 목에 힘이 들어가기 쉽습니다. 어깨에, 온 몸에 힘이 들어가고 말에 힘이 들어가기 쉽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할지니라(7-10)

7절부터 봅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없습니다.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8)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9) 여기서 주인이 갑질을 했냐 하지 않았냐고 하는 것은 아예 질서를 벗어난 질문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종의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같이 10절을 읽어봅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지고 용서했다고 해서, 믿음으로 무엇을 체험하였다 해서 어깨 올리고 힘을 주게 되면 그것참 봐주기 힘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한 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하는 그저 종일뿐이라 할 것이라 하십니다. “다만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하십니다. “we have only done our duty.” 그저 나의 duty를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걸 했다고 눈에 힘들어가고 목에 힘들어가고 말에 힘이 들어가면 벌써 종의 자세를 잃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강조하십니다. 실제로 나 아니어도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우리가 가끔 이상하게도 무슨 일을 하고는 ‘나 아니면 곤란할 걸..’ 하는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특히 하나님의 일을 자세히 미루어 살핀 누가는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을 가집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11-19)

11절과 1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코도 없고, 손가락도 잘리고 몸에 진물이 질질 나는 문둥병자 열 명이 서서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였습니다(13).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상) 제사장들은 몸에 진물 나는 사람들을 일주일간 잘 살펴서 더 이상 진물이 나지 아니하면 나병이 다 나았다고 판정을 합니다(레위기 14:3-8). 그래서 일주일 장막 밖에 있다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맛은 역시 같이 사는 데 있습니다. 나병으로 인해 사회생활하지 못했던 이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도 당당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만져주세요’ 하지 않고 말씀만 듣고 갔습니다.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14하). 열 명이 다 깨끗해졌습니다.

15절을 봅시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께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16). 성경도 잘 모르고 그냥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17절과 18절을 봅시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셨습니다. 아마도 남은 아홉은 유대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제사장에게 가서 깨끗함을 받았으니 그리고 각기 할 일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사람은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졌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되었지 생각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예수께 돌아왔습니다.

19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네 믿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그의 믿음입니다. 무익한 종의 자세입니다. 그리하였을 때 그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왔다 갔다 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예수께 왔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으로 인해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아니하는 참 평강이 임하여 왔습니다.

1학기 언젠가부터 친구로부터 말씀공부 권유를 받은 어떤 형제와 일대이 또는 일대삼으로 말씀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라도 말씀공부하려 하는가 물었더니 ‘뭘 알아야 반박을 하더라도 할 것 아닌가요’ 하였습니다. 반박할 거리를 찾으려 말씀공부를 하려 하다니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긴장하여 한 주에 로마서를 한 장씩 읽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제게 ‘목자님은 말씀대로 사세요?’하고 물었습니다. 드디어 올 질문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말씀대로 못 살지. 다만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쓸 뿐이지.’ 하였더니, 그 형제가 ‘그 말을 들으니 신뢰할 만합니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인으로서는 말씀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즉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무덤까지 가지고 갑니다. 철천지 원수가 되어 밀양의 아랑각 전설처럼 밤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생각할 때,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예수님으로 인해 내가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다 용서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아무리 적고 작더라도 이를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합니다. 예수님 믿는 겨자씨 한 알만한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면, 용서 받고 용서하고,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며,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언제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 받고, 또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누가복음 17:6)

 

2017 누가복음 34강 메시지 1701-1719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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